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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24화 (24/175)

#24화

미국 하원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강제 노동에 대한 우려를 밝히며, 이 지역의 수출품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게 아니라는 증거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에 제시하지 않을 경우 수입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 하원은 이러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저 유명한 염전 노예 사건이다. 지역 군의원마저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사람을 노예로 부리다 구속된, 가해자 중 일부가 왜 피해자를 다시 잡아왔냐는 언론의 물음에 집 나간 개를 찾은 거라는 등의 헛소리를 늘어놓기까지 한 이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하원 의원 상당수의 동의를 받은 결의안을 끌어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지금껏 끊이지 않았다는 보도와 함께 말이다. 새우잡이 어선에서의 착취는 물론이고 연속해서 일어난 장애인에 대한 임금 체불까지.

미 대사관의 조사 보고서는 염전 노예가 바뀌지 않은 현실임을 밝혔다. 평소엔 관심도 가져 주지 않아 놓고 왜 비난하냐는 지역 군청의 SNS 게시물이 무색하게, 첫 사건으로부터 십 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바뀐 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리하여 미 하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이와 같은 종류의 강제 노동을 근절할 의지가 없는 건 아닌지마저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와 관련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 다른 문제로, 다도선객이라는 유명한 범죄자와 관련이 되어 있었다.

미 하원은 별호처럼 수많은 섬 사이를 오고 가며 숨어 있는 악질적인 범죄자가 한국 정부와 중국 공안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 끈질긴 도주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지역 사회와의 협조가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한민국 정도 되는 공권력과 치안력을 가진 나라에서 왜 그를 잡지 못하는 거냐는 의문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다도선객이 중국과 한국을 오고 가며 절도와 강탈은 물론 지역사회에 협조하며 인신매매를 하는 것 같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매우 뚜렷했으니까.

현지 조사를 맡은 한국의 미 대사관은 지역 앞바다에서 발견되는 변사체의 상당수가 한국 국적이 아닌 걸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함께 올렸다.

결국 이 결의안으로 인해 언급한 지역의 소금 및 농수산물의 미국 수출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여기에 국제사회에서의 개망신은 덤.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안겨 준다. 설마하니 동맹국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히 중국에 가해진 위구르족 강제 노동 방지법과 비교될 만하다 했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역사회에 옭아 메여진 오명을 벗길 수 있도록 적극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 김의 존재는 바로 이 즈음에 알려진다.

언론은 그를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는데 성공한 한국계 혼혈아로 소개했다. 미군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를 두었지만 버림받아 만 두 살이 되기 전에 미국으로 입양됐다고.

이후 양부모의 학대라는 아픔에도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그래, 21세기 아메리칸 드림의 모범적인 예시라며 추켜세우느라 무척 바쁜 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요즘이다.

여기에 거짓이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대중에게 소개된 다니엘의 삶에 거짓은 없었으니.

지옥 같던 양부모 가정에서 탈출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미군에 입대,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뒤 컬럼비아대에 진학한다.

졸업 후 여러 이름난 사모펀드에서 빠르게 경험을 쌓은 뒤, 곧바로 자신의 투자회사를 설립했고, 매년 인상적인 수익율을 올리며 월가에서는 이미 알아주는 투자가로 인정받았다.

각계각층의 인맥이 대단한 걸로도 유명했다. 군 시절 인연과 대학 동문은 물론 미국 내, 특히 뉴욕의 아시안계 정치인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으며, 그 밖의 재계 인사들과도 적지 않은 친분을 자랑하는 유망한 젊은 투자가가 바로 다니엘 김.

그러니 미 하원 결의안이라는 폭탄을 맞은 지역사회에 잃어버린 친모를 찾고 싶다며 그가 찾아왔을 때,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협조했을지는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제 친모가 이 지역 출신이라는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물론 다니엘이 군대와 대학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던 것이 연화존자 김철민의 배려와 후원이라는 점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졸업하자마자 투자회사를 만든 것 역시 세금 문제로 골머리를 잡던 돈 많은 예비 무공 구매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 역시도.

그만큼 투자회사 설립은 미 국방부와 국세청을 제외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방법이었다.

연화존자로부터 진기도인을 받은 미국의 부호들은 이 비공식적 의료 서비스의 대가로 다니엘 명의로 된 투자회사에 투자금을 넣었다. 이 방법은 미국의 부호들에게는 세금을 좀 더 적게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칠익회에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우호적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대금은 지불하면 끝이지만, 투자금은 운명 공동체에 좀 더 가까운 면이 있지 않은가?

사실 김철민의 마음에 쏙 드는 지불 방식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정직한 납세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그런 개인적인 호오에도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제법 구체적이다.

‘미국의 집착이 오죽 집요해야지.’

김철민에게조차 그의 무공을 노리는 미 정부의 귀화 요청은 부담스러웠거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 되었음에도 이백 년이란 짧은 역사에 존재하는 자격지심, 국가 차원에서 보유한 신공절학이 없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미 합중국은 뛰어난 무공의 흔적만 보아도 눈을 불을 켜고 추적하는 게 이젠 습관처럼 굳어 버렸다.

오죽하면 연합군이 점령한 일본에서 ‘검법’을 내놓으라는 강력한 요구에 사무라이들이 참지 못하고 모조리 할복을 해 버렸을까? 아무리 외국인 쇼군으로 군림하며 다음 대선을 노리던 맥아더의 독촉이 심했어도 말이다.

다른 어떤 내공심법도 그런 식의 극단적인 소멸을 겪지는 않았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이 이민자의 나라도 꽤 괜찮은 무공을 여럿 보유하게 되었지만, 집착은 되레 더 커져 연화존자와 칠익회는 이런 식의 보호 장치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사소한 문제들이 몇 번 있었지만, 얻은 이득에 비하면 말 그대로 크지 않았던 바.

미국 내 영향력을 관리하는 다니엘 김의 기여는 그렇기에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절대.

당장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그간 쌓아 온 미국 내 인맥과 영향력을 총동원한 미 하원의 결의안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수월하게 곳곳에 흩어진 여러 섬들을 샅샅이 뒤질 수 있었을까?

대규모 무장 세력을 의심 없이 푸는 건 정말이지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많은 좋은 친구가 어머니를 찾고자 하는 제게 격려를 북돋아 주셨지만, 행선지를 듣고선 우려를 보이시더군요. 제가 잘못될 경우 투자에 악영향을 끼칠까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 경호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 물론입니다…….”

군청 관계자와 외교부 관계자는 호화롭기 그지없는 크고 작은 개인용 요트 여러 대를 구해 바다를 누비는 다니엘의 재력에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다니엘이 탈 배는 아니다. 예전부터 다니엘의 경호를 맡아 왔다던, 실은 이 또한 연화존자의 소유인 경호 전문 PMC 인원들이 쓰기 위해 현지 구매한 배다.

과도하게 보이는 경호 인력에 대한 핑계는 당연하게도 미국 하원조차 없애 버려야 함을 천명한 다도선객의 존재 때문.

극도로 위험한, 분명 존재하나 행적을 알지 못하는 무림인 범죄자의 존재는 총기를 휴대한 경호원들의 수색을 용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미 하원의 결의안이 발표된 상황에서 미국인, 그것도 미국의 내로라하는 부호들이 거금을 투자한 투자회사를 굴리는 다니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땐 정말 외교 분쟁이 터지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경호원들이 배를 타고 지역 앞바다를 매일같이 누빈다. 정작 다니엘 본인은 헬기를 타고 이동함에도.

더불어 기름을 마구 태워 가며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는 다니엘 김의 눈에선 눈물이 마를 일이 없다.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는 해외 입양아의 눈물은 좋은 클릭거리가 된다. 다니엘의 잘생긴 외모, 널리 알려진 성공은 조회 수에 목마른 국내 언론의 좋은 기삿거리가 되더라.

당연히 부추긴 면도 있지만 말이다.

여러 광고 회사를 통해 큰 금액의 광고비가 집행되었다. 이는 인터넷 언론 기자들의 유류비, 식비, 취재비가 되어 뱃멀미를 이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명이나 구했지?”

“일단 확실하게 구해 낸 건 아홉.”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선 이런 방법도 필요한 법이라고, 다니엘은 생각한다. 남미 제1팀 팀장 역시 이에 동의했고.

보는 눈이 많을수록 미담은 확장되지 않겠나? 국가무공원에 대한 호감은 미리 쌓아야 한다, 연화존자의 영광을 위해.

“흐음… 경찰들은 협조가 잘되나?”

다니엘과 남미 1팀장은 오며 가며 안면이 깊다. 지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까이 위치한 덕에 같은 칠익회 소속으로 도움을 줄 건덕지가 많았다.

바로 지금과 같이.

“협조 안 하면 자기들이 어쩌겠어? 연화존자께서 국가무공원을 손에 쥐고 계시고, 그분이 뽑은 여검사는… 일하는 게 우리 쪽이다. 나쁜 놈들이라면 나이고, 지위고, 재산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게, 참 마음에 들어.”

다니엘의 경호원으로 위장한 칠익회 소속 남미 팀은 사람을 찾는 것에 있어 도가 텄다. 그것은 그들이 남미 대륙 전역을 누비며 주인 없는 무공을 찾아 헤맸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사람을 살피며 빼 오는 건 필수 덕목이나 다름없었기 때문.

현재 국가무공원 최고수 삼 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새 무공을 만들 수 있는 데에는, 그와 같은 이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반쪽짜리 비급 한 장을 손에 넣기 위해 몇 개의 카르텔을 지워야 했던지.

자유의지를 구속당한 사람을 알아보는 거라면 자신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가끔 부업 삼아 납치당한 선량한 여행객들을 구출하는 일을 종종 했을 정도.

그랬던 지난날에 비하면 염전에서 노예로 붙들린 이들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실들은 눈빛만 봐도 확신할 수 있는 법 아닌가?

그렇게 다니엘의 안전을 핑계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억류된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 윤아영에게 알려 줬고 그녀는 자신을 영입한 김철민에게 혜안이 있음을 증명한다.

윤아영은 연루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했다.

단언하기까지 했다, 이번엔 전처럼 쉽게 빠져나가는 사람 없을 거라고. 21세기에 이십만 원으로 사람을 사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자들을 기필코 처벌받게 할 거라고.

이번에도 그따위 불량 판결이 나오면 판사의 멱살이라도 잡겠다고. 전관예우 따위 의심조차 안 나오게 목숨 걸겠다고.

약속한다고.

“거기에 얼마 전엔 강등됐던 경찰도 합류했다고 하더군.”

“아, 팀장에서 팀원이 됐다던?”

수년 전, 소금 장수로 분해 염전 노예를 구출했지만 되레 팀장급에서 팀원급으로 강등당하다시피 했던 경찰은 국가무공원에 특별 채용 되었다.

이미 정년을 넘겨 퇴직한 상태였지만 일하는 데 정년 같은 건 두 번째 문제. 납치 사건 전문가의 그만한 노하우를 사장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국가무공원에 합류해 당시의 일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다도선객은?”

그러니 그쪽은 다니엘과 남미 팀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법의 일은 법조인에게, 무림의 일은 무림인에게.

“일단 흔적은 찾았어, 여길 봐.”

남미 1팀장이 지도를 띄운다.

“은거지로 추정되는 섬을 몇 곳 찾았어. 주변 진술도 확보했고.”

“진술이라면?”

“잡아 온 염전 주인 중 몇몇이 다도선객의 존재를 알더군.”

“숨겨 주기라도 하는 건가?”

“적극적으로 숨겨 준다기보단 밉보여서 해를 입을까 두려움이 큰 것 같아. 그러던 차에 아예 잡혀 왔으니 다도선객의 조직을 밀고해서 제 죄를 경감시키고 싶은 것 같고.”

“그래서 그놈이 있는 위치가 어딘데?”

다니엘의 물음에 손가락이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수색의 구역을 좁힐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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