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25화 (25/175)

#25화

같은 칠익회 소속 다니엘 김이 천조국 사람다운 위엄으로 인력과 돈, 심지어 공권력마저 펑펑 쓰며 다도선객을 잡기 위해 움직인 반면, 동방요선 쪽을 맡게 된 준호와 진호 형제는 오붓하고도 단촐하게 둘이서만 움직인다.

익숙한 일이었다. 원래부터 둘이서 움직였다. 아프리카에 있는 칠익회 지부에서도 연차와 실력 면에서 수장격에 해당하는 두 사람이지만, 백업도 없이 움직이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화려하게 전면에 나선 적이 극히 드물다 하겠다. 오죽하면 다른 지부에서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은 이상 두 사람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

그렇다고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두 사람의 활동이 외부로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터.

형제는 수줍음이 많다. 그래서 어둠 속을 헤매는 게 보통이다. 자신들과 비슷한 출신으로 연화존자의 구원을 받고 감화되어 따르는 다른 칠익회 사람들과는 결이 약간 다르다.

무공마저 다른 걸 익혔음이다. 그들은 칠익회 내에서 연화존자가 손을 대지 않은 옛것을 그대로 익힌 드문 부류의 무인.

그런 두 사람은 주로 사냥을 하는 편이며, 이건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의 일종이 된 레저 활동 따위가 아니다.

인간 사냥, 그중에서도 악인 사냥이라고 하면 진실에 근접할까?

그리고 오늘의 사냥감은 대한민국에서 하는 첫 사냥, 이를 통해 도달해야 할 최종 사냥감으로의 징검다리.

대한민국의 악명 높은 컬트 집단 ‘예수부름 선지계시 새 세상’의 열두 지파 중 열한 번째 지파의 제사장, 박정진을 그들은 오늘 사냥한다.

올해로 47살의 박정진은 통칭 ‘새 세상’이라 불리는 유서 깊은 사이비 종교의 세대 교체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전대 중간 지도자로부터 제사장이라 불리는 직위를 공식 행사까지 열어 가며 이어받은 그의 모습은, 이 유서 깊은 사이비 종교가 얼마나 잘 짜여져 있는지, 또 자생력을 가진 조직인지 알게 해 준다.

총교주라 불리는 동방요선의 부활을 목격했다는 열두 제자의 지위를 물려 주면서도 하나의 잡음도 없었던 것.

돈 때문에 부침이 잦아 싸우고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타 사이비 종교와의 비교를 불허하는 견고한 단합력이라 하겠다.

한편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사이비 종교를 압도하는 위상과 힘을 가진 종파의 젊은 간부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세상엔 그를 때려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해를 끼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퍽 적지 않다.

“휴, 어디서 오신 형제분들입니까?”

그리하여 매달 있는 정기 집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박정진은 태연한 태도로 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물을 수 있었다.

어두운 밤, 겁도 없이 내려 질문을 던지는 태도에는 두려움보다 귀찮음이 크게 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가 보다.

“다른 지파의 형제들이 보낸 겁니까? 아니면 제게 다른 볼일이 있으신지요?”

결코 좋은 일로 길을 막은 게 아닐 터이건만, 상대하는 말투만은 점잖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져 온 오랜 목회, 수많은 사람을 말재주로 꼬여내 인생을 파멸시킨 조직의 고위층답게 부드러우면도 듣기 좋은 목소리.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시선조차 제대로 맞추지 않는, 정상이 아닌 듯한 두 불청객의 모습에 피곤한 하루를 보낸 박정진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욕이 절로 나온다.

‘가뜩이나 위에서도 상납금 더 빼오라고 쪼는 판국에, 뭐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새끼들이…….’

어려서부터 사이비 종교를 믿던 부모 밑에서 자라며 인간 정신의 나약함을 목도한 박정진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면밀히 따져 보았다.

그의 어리석은 부모처럼 휘둘릴 것인가? 아니, 그러고 싶진 않았다. 교세도 그리 크지 않은 저열한 무리 따위에 인생을 빼앗긴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긴 싫었다.

휘두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노동에는 대가가 있어야 하며 믿음에도 그렇다. 평생을 착취당하며 살 수는 없지.

다행히 보고 들은 게 있어 자신은 있다. 마스크도 나쁘지 않고, 목소리도 괜찮다. 다소 부족한 연기력은 학원을 열심히 다녀 보충했다.

한편으론 업계에 대한 확신이 있기도 했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성업할 업종이 종교 사업 아닌가?

심지어 종교 사업, 대체로 면세 사업이다.

그래서 그는 동방요선의 새 세상에 투신했다.

박정진의 판단은 이랬다.

대한민국의 다른 어떤 사이비 종교를 갔다 대도 동방요선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 새 세상은 이 업계 메이저 중의 메이저다.

국정원도 검거를 포기한 강력한 무림인이 교주로 있고, 일제시대까지 올라가는 긴 역사가 있지 않나? 정치권에도 강력한 커넥션이 있으니, 어지간해선 무너질 일이 없을 테지.

그야말로 머슴을 해도 대갓집에서 하라는 격언의 실천이었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밀어 가며, 외롭고 불운한 사람들의 운명을 지옥불로 던져 버리며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저런 개수작 정도는 잦았다는 말이다.

“하… 이거 참. 몸이 불편한 형제들이라 어지간하면 말로 해결할까 했는데. 형제님, 혹시 귀도 안 들리세요? 아니면 뭐, 주둥이가 실, 바늘로 꿰매져 있나?”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이상하게 보이도록 꽉꽉 껴입은 남자는 사시였고, 다른 하나는 살이라곤 하나 없이 빼빼 마른 멀대 같았다.

거듭되는 질문에도 미동도 없이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니, 부아가 치민다. 어디 모자란 놈들이 사람을 우습게 보고. 내가 누군 줄 알고.

열이 뻗친 박정진이 손목의 단추를 풀지만, 옆에 있던 경호원들이 그를 제지한다.

“제사장님께선 뒤에 계시죠. 혹시 모릅니다.”

여기엔 순순히 따랐다.

치밀어 오르던 화가 무색하게 따를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에는 새 세상의 제사장쯤 되는 직위로도 어쩔 수 없는 힘의 격차가 있다.

‘빌어먹을 무림인 새끼들이, 스트레스도 못 풀게.’

그를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경호원들은 전부 그들의 총교주, 동방요선의 제자들이다. 소요신공을 가르친 직전제자 정도까진 아니고, 무공을 익힌 교도 중 선발하여 따로 가르친 정도?

그 정도만 되어도 밖에서 곤란한 일을 겪을 확률은 거의 없다 보아도 된다. 다른 간부도 아니고 지파 제사장쯤 되는 간부에게 내려 주는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동방요선의 사사를 받은 뛰어난 무림인.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검경의 검거 시도에도 도주 정도는 충분히 시킬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니 감시자의 역할도 겸하지 않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동방요선은 욕심 많은 늙은이다. 겉보기엔 인자하여 신비롭기 그지없는 외양이고 배운 것도 많아 말솜씨가 고아하기 그지없지만, 이제 고위 간부가 되어 그 실체를 알게 된 박정진이 보기엔 저건 그냥 쓰레기다.

자신이 비슷한 인간인 줄도 까먹고 배알이 뒤틀릴 정도였으니, 어쩌면 질투일지도.

‘몰지도 못하는 외제차는 뭘 그리 사대는 건지, 진짜. 여자는 또 존나 밝혀요, 영감쟁이가. 추잡스럽게시리.’

저질스러운 늙은이가 어울리지 않는 무공과 재력, 권력과 수명도 모자라 신성마저 탐하는 꼴이라고 박정진은 생각한다.

뭣도 모르는 교도들은 동방요선이란 별호가 오해라고, 이 지상에 다시는 이런 분이 없다, 저런 위대한 분이 대한민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복음이라 외치니, 하!

가련하고 불쌍한 인생들 같으니. 저 욕심 많은 늙은이 따위가 뭐라고 재림 예수니, 어쩌느니. 부활, 그것도 다 같잖은 속임수를 쓴 거겠지. 대범한 구석이라곤 하나 없이 의심만 많고 고약한, 머리 좋은 깡패 무림인일 뿐인데.

그를 비롯한 새 세상 간부들에게 붙여 준 경호원들도 실은 자기 몰래 돈과 사람을 빼돌리까 의심하며 보낸 게 아니냔 말이다.

당장 자신에게 강제로 자리를 물려준 열한 번째 지파의 전대 제사장만 하더라도 반반한 여신도를 교주에게 바치지 않고 몰래 건드렸다가 속옷 하나까지 탈탈 털린 채 쫓겨났으니, 원.

박정진 본인에게야 기회가 된 사건이었다지만, 이기적인 쓰레기인 그에게 전임자의 말로는 속 편한 것이 되지 못했다.

듣기로는 새 세상이 사들이다시피 한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노역 중이라고 하던데…….

“아아악!”

이러한 한가로운 생각은 그쯤에서 멈춘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비명만 참혹한 건 아니었다. 고개를 드니 보이는 광경 역시도 비슷하다.

“으아, 으아아악! 살려 줘! 살려 줘!”

“뜨거워! 뜨거워!”

미동도 없이 길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을 치우기 위해 다가갔던 경호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친다.

연신 뜨거운 김과 함께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을 뒤트는 그들의 손은 대답 없던 사시와 멀대에게 잡혀 있었고,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다.

몸의 혈관이 모두 일어서게 용을 써 보지만 소용없다. 급기야 버티지 못하고 자르려 든다. 고통에 먹혀 버린 건지 제정신이 아닌 모양새로 급하게 내력을 모아 제 손목을 내려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붉은 기운에 휩싸여 연신 쇳소리만 땅, 땅, 땅.

상대방의 눈이 어느새 붉게 빛나고 있었다. 대답은 여전히 한마디도 없이, 그러나 움직인다.

제대로 보이지 않고, 피가 튄다. 비명은 오로지 사이비 종교 부역자의 몫.

“크학!”

“이놈들 보통 놈들이… 도, 도망가!”

“아아악!”

피처럼 붉은 궤적이 밤의 어둠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당연히 경호원들도 반격하지만 정체 모를 멀대와 사시는 기이한 몸놀림으로 피하며 연신 손바닥을 꽂는다. 경호원들의 몸에서 잡티가 흩날리고, 장법에 격중된 자들은 하나같이 뱃속에 불덩이라도 또아리를 튼 것처럼 몸을 비틀어 대며 꽥꽥 대다 쓰러진다.

개중엔 몸의 일곱 개 구멍으로 더운 김을 뿜어내는 자들도 있다. 멀대와 사시의 무공이 막강한 열양지력이란 걸 알게 하는 광경이다.

지식이 목숨을 구해 주는 건 아니지만.

이 난리통에서 박정진은 무릎을 꿇고 벌벌 떠는 게 전부다. 주변에 더해 가는 열기와 비명에 도망도 가지 못한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어느새 붉게 빛나는 두 쌍의 눈동자가 그의 앞에 서 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 채,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자수해라.”

“네……? 아니, 이봐요. 잠깐 대화를…….”

“자수해라, 그것만이 살 길, 이다.”

“다, 당신들 누구야……?”

멀대는 고개를 흔든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너, 자수해서 네 죄를, 고백해.”

아까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인 것처럼 더듬거리며 용건을 밝힌다.

“국가무공원으로, 가. 가서, 너와 네가 몸 담은 사이비의 죄, 를 밝혀.”

“이, 이봐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방요선을 배신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다고 말하려던 박정진의 입이, 이번엔 키 작은 사시의 말에 막혔다.

“우리가 익힌 무공은 패월삼락공(霸月三樂功)이라고 한다.”

더듬거리는 옆의 멀대와 다르게 또렷한 그 목소리는 음울하여 아래에 있다.

“이 무공을 창시한 패월삼락은 선천적인 절름발이에 육손이였다고 한다. 그 덕에 괄시를 많이 받았다지.”

박정진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위압감에 입을 열지 못한다.

몸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떨려 온다.

“그러나 그는 재능이 있었고, 기연을 만나 무공을 익혔다. 그렇게 만든 패월삼락공은 달이 밝은 밤이면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뜻인데, 이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나?”

“모, 모르는… 아악!”

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는다. 박정진의 양손을 하나씩 붙잡는다.

뜨거운 기운이 노도처럼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달이 밝은 밤 악인을 죽이고, 불의한 재산을 태우며, 죄인들을 고문하는 것. 이것이 패월삼락이 밝힌 달밤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이제 박정진은 왜 경호원들이 고통에 비명만 꽥꽥 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온몸에 불로 된 구렁이가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

“아프리카에서 사람 잡아먹는 주술사와 인간이길 포기한 군인들을 태우며 칠백 년 전 무림인의 즐거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나?”

박정진은 믿었고, 다음 날 자수했다.

이어 네 명의 제사장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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