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처음 구출된 아홉 명 이후로도 염전 노예 스물 한 명이 추가로 구출되었다.
이 소식은 대중들에게 미담으로 전해졌다. 다니엘의 경호를 위해 진입했던 PMC 호위 인력의 결정적인 제보로 임금 체불과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던 피해자 여럿을 구할 수 있었다고.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단순히 부유한 미국인 사업가를 경호하던 중에 일어난 일로, 다도선객이라는 악질 범죄자로 인해 예민한 상태의 호위들이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을 한 걸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각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슬슬 말이 나오는 참이다.
이거 미국 측의 수작 같은 게 아니냐는, 다니엘 김이 사실은 미국 하원 혹은 결의안 통과에 영향을 끼친 자들의 사주를 받고 뭔가 획책하러 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 의심은 제법 합리적이어서 많은 사람을 혹하게 했다. 가령 한국과의 무역에서 손해를 보는 기업가 집단에서 꼬투리를 잡아 방해를 하려는 게 아니냔 의혹들.
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 가깝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피해자에 대한 보호만은 국가무공원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민등록증도 뺏긴 채 짧게는 십 년, 길게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금 되어 있던 사람들이 신분을 회복했다. 아울러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긴급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나라로부터 받아야 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신청 중이라고.
가해자들은 전부 구속됐다.
여기엔 예외가 없다.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컸다. 예전, 비슷한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들여다본 윤아영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진행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최선을 다해 구속영장 신청을 했다.
그 사이 다니엘과 남미 팀은 다도선객의 은거지를 추렸다.
후보지는 세 곳. 다도선객의 행각에 대한 증언과 정황 증거는 차곡차곡 쌓였고,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빨리 잡아야 될 것 같은데, 이거.”
후보지 중 어디가 은거지인지 현 시점에선 확실하지 않았지만, 다도선객이 인근 섬과 주민들을 심리적,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아마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범죄 수익을 흔들며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다도선객 본인은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걸로 보아 십오 년 전의 교훈을 잊지 않은 걸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정력적인 범죄 행위의 제보로 보아, 지난 부상 자체는 많이 회복한 모양.
그 정도 고수라면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헤엄쳐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니엘과 남미 1팀장은 최악의 경우를 우려한다.
이것이 신빙성이 없다거나, 과도한 상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애초에 다도선객(多島鮮客)이란 별호 자체가 섬 사이를 오고 가는 물고기처럼 물속에서만큼은 신출귀몰하기 짝이 없어 붙은 별호이지 않나?
무공을, 그것도 수공(水功)을 전문적으로 익힌 무인이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가뜩이나 중국 쪽과 연결점이 있다고 의심되는 상황이라, 최대한 빨리 후보지를 압축하여 작전에 돌입하기로 한다.
계획을 수립하고 무기를 점검한다.
이렇듯 다도선객의 토벌은 훈훈한 미담으로 포장되어 은밀히 진행되었지만, 동시에 이루어지던 다른 작전, ‘예수부름 선지계시 새 세상’에 대한 공작은 충격과 공포로 요란하게 전해지고 있는 편이다.
일명 ‘사이비 종교 부역자 연쇄 자수 사건’은 세간을 뒤흔든다.
‘…동방요선은 말 그대로 요사한 늙은이입니다. 신도들의 돈을 갈취하여 대한민국뿐 아니라 해외 곳곳에 부동산을 구매해 왕처럼 살고 있습니다. 세금이요? 그런 걸 낼 인간이면 저런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을까요? 이미 예전에 운전면허가 말소된 주제에 차고에 처박아 놓은 외제차가 몇 대인지.”
‘백 년 가까이 산 노괴물 주제에 여자를 밝히긴 진짜 발정 난 수송아지처럼 주책없습니다. 아, 글쎄 예쁜 여신도가 있으면 무조건 자기가 건드려야 된다니까요? 그러지 않았다가 나중에 걸렸다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어우, 가끔은 치매에 걸려서 뇌가 썩고 성욕 하나만 남은 것 같아요.’
‘재림 예수는 무슨. 무림인이니까 무공으로 비볐겠죠. 코감기에 걸렸다 나아도 암에서 나았다며 구라를 칠 인간이라구요. 제가 죄를 지은 것도 다 그 늙은이가 그런 늙은이인 줄 모르고 순진하게 믿었다가 나중에야 알게 되는 바람에 그런 거라니까요?’
박정진 이후로 네 명, 총 다섯 명의 제사장이 검찰에 자수를 청했다. 새 세상의 간부로서 저지른 죄의 무게가 더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무겁다는 것이 자수의 변명이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 새 세상의 고위급 간부의 자수가 맨손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릇 진술만으로는 신빙성을 가리는데 한계가 있는 법.
증거 법정주의에 참으로 부합하게도 신도 명단과 함께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범죄 증거 일체를 가지고 온다. 그로 인해 자신들도 처벌받을 것이 뻔함에도 망설임이 없어, 사람들의 고개는 의문으로 갸우뚱한다.
동방요선이 주화입마에 빠져 오늘내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마저 나올 정도였다. 쟤들, 침몰하는 배에서 제일 먼저 뛰어내리는 쥐새끼들 아니야?
심지어 위와 같은 인터뷰도 서슴지 않고 해 댔으니 말이다. 동방요선에 대한 이 원색적인 비난은 뉴스에서 내보내기 좋은 예쁜 포장지로 쓰여 해외로까지 수출된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수한 사이비 종교 간부들에게는 이것이 합리적이며,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이 정도의 협조가 아니고서야 준호와 진호에게 만족을 줄 수 없었으니까. 이 정도가 아니고서야 패월삼락공의 발작으로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매시간 겪어야 했을 테니, 다른 선택지는 없다.
칠백 년 전 무림 공적의 수법은 시간을 초월해 훌륭히 재현된다. 실제로 패월삼락이 동명의 내공심법을 기록한 비급의 별책에 적어 놓은 기록인, 인간에게 얼마만큼의 내공을 불어넣어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강도로 고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무림사에 길이 남을 수작이었다.
연화존자마저 참고했다. 한낱 사기꾼 새끼들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지.
‘어차피 너희 놈, 들이 자수한 걸 알면 동방요선, 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려, 고 들 거다. 왜? 네놈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 걸 사이비 교주, 로서는 용인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림인, 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거든.’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야.’
종교 사기꾼 중 누구도 속에서부터 불타는 고통을 버티지 못했다. 실제로 자수한 제사장 중에는 무공을 익힌 자도 있었지만, 그래 봐야 남들보다 겨우 한 시간 더 끙끙댔던 게 전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신도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사이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한 범죄의 증거를 요구했으며, 언론에 대고 동방요선에 대해 천박하기까지 한 비난을 하라는 요구까지.
애초에 무슨 거창한 믿음으로 사이비에 투신한 게 아니라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혹은 변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동방요선의 조직범죄에 간부로서 가담한 게 아니었나. 의리와 신념이 있을 리 없다.
하여 자수자들이 신도 명단까지 홀라당 들어 제출하는 바람에 사회 곳곳은 난리, 여러 곳이 시끄럽다.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인들이야 범죄 혐의점이 없는 한 어떻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사회 고위층, 예를 들어 신분이 공무원이거나 직업 정치인인 사람들은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누가 새 세상의 신자였네, 예전에 추진한 정부 사업이 사이비 종교의 세금을 줄이기 위한 편법이었네 등등. 누가 누구를 죽였고, 어디에 묻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며 수사가 진행되고, 댓글과 댓글이 싸우고,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이 시위를 하니, 포털은 연신 뉴스를 뱉어 내기 바쁘다.
이 소동의 한가운데에서 수사 중이던 윤아영은 개인적인 근심을 얻게 된다.
“경호를 늘리자고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을 여럿 맡았음에도 검찰청에서 있을 때보단 한가한 그녀였다.
이 작은 나라에 무슨 고소, 고발이 그리 많은지, 예전엔 사건을 한 달에 삼백 건씩 꼬박꼬박 쳐 내야 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서울상공인모임회 관련 수사를 포함해도 사건 숫자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깊이와 영향력이 남달라서 그렇지. 경호인력을 늘리자는 흑응의 제안은 그러한 변화의 반증.
“검사님 주변을 살피는 자들이 있습니다.”
윤아영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린다.
“…주변이라 함은, 저희 어머니도 포함이겠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흑응의 모습에 두통이 커진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홀로 꽃집을 하며 생계를 꾸리셨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끔은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러니까 변호사로 돈을 정말 많이 벌어서 어머니를 쉬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 지금도 종종 한다. 강호의 무뢰배들조차 감탄할 만한 강골 검사를 키워 낸 홀어머니가 그런 나약한 제안에 코웃음을 치셔서 그렇지.
내 인생과 네 인생을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자식 도움 받으려고 아득바득 키운 게 아니라 하셨지. 내가 자식 덕 보는 거에 환장했음 진작 널 어디 돈 많은 집안에 시집 보내려 안달이었을 거라며.
그래도 이번만큼은 고집을 좀 부려야겠다.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경호 인력 배치를 조정한다.
그동안에는 칠익회의 1티어 병력이라 할 수 있는 남미 팀 일부가 그녀를 밀착 경호했지만, 이제 그들은 윤 검사의 어머니를 보호한다.
어차피 서울 한복판, 정부 청사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큰일을 벌일 수는 없을 거란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며, 윤아영의 경호는 현천문에서 신경을 더 쓰기로 했다.
그 사이에도 수사는 이상 없이 진행했다, 위축되지 않고, 꿋꿋하게.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실제로 윤아영의 눈에도 주변을 맴도는 낯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퇴근길 풍경으로 자리 잡은 노숙자와 신체 어디가 없는 사람들이 여럿.
특히 눈에 들어오는 건 시간 가리지 않고 그녀 주변을 서성이는 목발 짚은 노인이었다. 눈가에 아른거릴 정도로, 자칫 노이로제가 올 정도로 노인은 윤아영의 근처를 맴돌았다.
흑응이 말한 게 저 사람인가? 어디 쪽일까? 해적이나 다름없는 범죄자? 사이비 종교? 아니면 혈야쾌조와 협력했던? 비밀리에 수사 중인 중국 쪽?
그녀를 해치고 싶어 하는 후보자들이 너무 많아 추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를 해치려는 사람들만큼이나 지키려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무림인 전문 기관에서 일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검사라는 자리의 무거움과 함께.
굴복할 수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제 와서 그러기엔 억울했거든.
‘협박 따위에 포기할 거면 진작 편히 살았지.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약한 모습을 보여?’
꼬리를 내리기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마침 이런 생각을 한 순간, 목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의 눈은 맑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노인은 자신을 어쩌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근심이 조금 걷힌다.
하지만 다니엘과 남미 팀이 면밀한 조사를 통해 다도선객의 은거지를 확정 짓고 작전 날짜를 카운트 하기 시작했을 때, 준호와 진호가 일곱 번째 제사장을 자수시키는 데 성공했을 그때쯤.
우려했던 공격이 이루어진다.
윤아영은 차가 뒤집힌 걸 차 천장에 머리를 찧고 나서야 깨달았다.
-투두두둥.
“막아! 막으라고!”
영화 촬영이라기엔 너무나 리얼한 총소리와 소란이었다.
충격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운전석과 보조석의 현천문도들은 기절했는지 미동이 없다. 안전벨트를 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퍽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문을 떼어 내고 자신을 끌어내지만 않았다면, 입을 열고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윤아영… 맞군.”
사내는 시간 끌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신원을 확인한 뒤 곧바로 권총을 겨눈다. 일을 저지르고 재빠르게 처리하려는 것이 용의주도한 놈이었다.
그래도 관자놀이를 때리는 쇳덩이는 모르더라고.
어디선가 무쇠로 된 목발이 날아와 암살자의 머리통을 부순다.
무림인과 일하게 된 여검사는 혼미한 와중에도 그것이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