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다도선객의 은거지는 결국 압축되어 드러났다. 열정적이면서도 은밀한 탐문 끝에 얻은 범죄 부역자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다니엘 김과 아직은 국가무공원 소속이 아닌 칠익회 남미 팀장은 ‘예수부름 선지계시 새 세상’을 치기 전에 다도선객의 위치를 알아낸 걸 다행으로 여겼다.
대규모 진압 작전을 펼치는 사이비 종교 쪽과 마찬가지로 이쪽도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산적한 까다로운 문제가 여럿이다. 그중 가장 큰 건 화기를 이용해 다도선객을 때려잡을 거라는 국가무공원의 계획에 대한 극심한 반발.
국가무공원의 설립에 적극 찬성했던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다도선객 체포 작전은 기획되어 있었다.
내력이 아닌 화력.
더 크고 아름다운 화력.
‘아무리 다도선객이 위험한 범죄자라고 하지만 총기도 아니고, 박격포라니! 포탄이라니!’
대통령은 깜짝 놀라 이렇게 외치기까지 했다. 보안을 위해 최고 통수권자에게 허락을 득하고 움직이겠다는 국가무공원의 계획은 이쯤에서 틀어질 뻔했다.
역시나 범죄자의 인권을 위해 모자이크와 모자, 외투와 수건 등의 초상권 보호를 제공하는 나라다운 반응이다.
극악무도한, 수십 년 가까이 대한민국 서해 바다에 숨어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자라지만 총과 폭탄으로 사로잡는 건 인권의 문제가 아니겠냐며,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공무원이 된 지 얼마 안 된 국가무공원이었지만 대통령이 왜 저렇게까지 날뛰는지 이해는 했다. 새 세상 같은 사이비 종교 나부랭이 놈들을 때려잡는 작전만 해도 대통령의 고심이 크다 하지 않았나?
윤아영을 향했던 테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테지.
정확히는 대규모 진압에 나서는 것과 더불어 흑응의 저격으로 마무리하는 걸 꺼렸다고 한다. 구설수와 정적들의 비난을 두려워했다고.
딱히 인권을 생각하고 하는 반대는 아닌 것 같다. 정말 인권을 생각한다면 다도선객의 범죄 행위에 말려든 희생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진작 무슨 수를 썼겠지. 저렇게 덮어 버린 서류철 꼴로 모른 척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반면 본래 칠익회 소속이었던 자들은 저 경기와도 같은 반응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무기를 놔두고 힘들게 왜?’
총을 쏘거나, 폭탄을 쓰는 건 반인권적이고 내력을 담은 주먹으로 목을 분질러 버리는 건 인권적인 거냐며 혼란스러워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
그만큼 칠익회는 화력 투사에 익숙하다. 경험이 있다. 많기까지 하다.
김철민이 새로운 무공을 만들면 가장 먼저 바꿀 곳으로 대한민국 군대를 꼽았던 게 괜한 이유가 아니다. 칠익회에겐 확실히 자신 있는 분야다.
총기를 비롯한 각종 화기들이 무림인이라는 것만 믿고 까부는 녀석들에게 얼마나 큰 교훈이 될 수 있는지, 전 세계를 누비며 경험한 지 오래다. 살다 보니 싸울 일이 오죽 많았어야지.
심지어 잘 쓰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인력이 특수부대 출신 혹은 관련 교육을 이수한 뒤 실전을 쌓았다.
물론 칠익회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전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무림인 집단이 맞다. 단순히 싸움박질만 잘하는 게 아닌, 가르치기도 잘하고 가르칠 것도 많은 극강의 대종사, 연화존자가 수장이다.
그러나 무공‘만’으로 겨루는 것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칠익회, 그런 그들조차 인정하는 건 말 안 듣는 놈들한테는 역시나 총알이 최고라는 진실이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21세기의 전통일지도.
내공 사용자도 총을 맞으면 죽는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무기들이, 효율적인 수단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안 쓸 이유가 없지.
당장 좀 배웠다 싶은 무림인조차 수류탄이 눈앞에서 터지면 감당하기 어렵고, 어설프게 무공을 익힌 놈들조차 그 작고 싼 투투탄 한 발 제대로 박아 주면 삶이 끝장난다.
사람을 죽일 때 이만한 게 없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무림인에게 있어 무공보다는 총이 오히려 더 흔적이 덜 남는 편이지 않은가?
확실하며 가성비도 좋다. 다도선객 정도의, 그것도 수공의 고수를 바다 근처에서 상대하는 상황이라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모두가 다 소중한 인력인데, 저만한 고수를 상대하며 위험하게 작전을 수행할 필요가 없다. 다도선객은 섬을 요새화 했다. 다행히 그 대가로 섬에 민간인이 극도로 적으니 저항을 분쇄할 만큼 화력을 집중하여 타격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만약 무공을 익힌 사람 전부가 화약과 폭발마저 이겨 내게 하는 만능의 기술이 있었다면, 무공이 사람을 죽이는 수단이 아니라 미용과 건강의 수단으로 각광받는 21세기는 오지 않았으리라.
수많은 무림 세력이 간판을 내리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연화존자부터도 저토록 막대한 부를 쌓지 못했을 터.
그래. 정말로 엄청난 고수들이라면 단독으로 군대를 상대할 수도 있긴 할 것이다.
정면에선 무리일지 몰라도 잠입하여 군 통수권자를 암살하고 몰래 보급품을 불태우는 식의 게릴라전을 벌이는 건 현대전에서조차 각광받는 무공의 효능.
전 세계 군대가 하나같이 익히기 쉽고 효능 좋은 무공을 탐하는 건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부 특수부대 한정으로 어느 정도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종류의 특수전에서조차 현대적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공을, 내공을 익히고 총을 들면 훨씬 사람을 잘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다. 재능을 극단적으로 타는 문제와 신뢰성 있는 내공심법을 구하기 힘들다는 보급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아울러 전역자로 인한 저작권 및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대규모로 보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도선객을 체포하는 오늘 밤은 그 사실의 증명이다.
극악의 범죄자를 체포 혹은 제거하는 동시에 국가무공원의 계획이 헛된 꿈이 아니라는 증거를 얻기 위한 작전.
-펑! 퍼펑!
작은 섬을 사방에서 둘러싼 배 위에서 60미리 박격포가 불을 뿜는다. 어선으로 위장, 근처 해역을 지나던 중 갑작스레 전개한 일제사다.
국가무공원 내에서 현천문과 칠익회의 대두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며 위기감을 느낀 국정원 출신 요원들이 포수 역할을 자처했다.
전원 내공 사용자로 구성된 그들은 이번 작전에서 가장 기피되던 임무를 맡았지만, 이도 나름 중요한 임무였다. 작전이 끝난 후 무공이 포탄을 쏨에 있어 어떤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데이터 수집이 이루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기습으로 서전을 여는 임무 자체가 중요하기도 했다. 괜히 엉뚱한 곳에 쏘는 일이 없도록 인원들 전부가 경기도 북부 군부대에서 교육과 실습을 하고 오기도 했지.
그리고 이 준비는 효용이 있었다. 다도선객의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연신 쏟아붓는 포탄으로 인해 흙먼지와 파편으로 뒤집어졌으니.
반격은 없다. 애초에 반격할 수단이 없다.
다도선객이 스스로를 믿었음이다. 공포로 인근 해역의 주민들을 지배하다시피 한다는 자신감. 혹 자신도 모르게 체포 작전이 전개된다 해도 총기 사용이 제한되는 대한민국의 범죄자답게 기껏해야 소총 따위를 들고 올 거라는 안이함.
자신의 무공이면 무슨 수를 써도 몸 하나는 뺄 수 있을 거라는 자만까지.
이것이 영 틀리기만 한 건 아닌 게 대한민국의 어떤 조직이 자국민 범죄자를 잡겠다고 포탄을 저리 쏟아부을까?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미국 하원의 의결안이 아니었다면 은거지에 틀어박혀 옴짝달싹 못할 일도 없었을 테지.
그러니 쏟아지는 포탄 사이를 뚫고 뛰어오른 검은 인영, 필시 다도선객이 분명할 누군가가 분노로 가득해 보이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크아아아악!”
그는 노호성을 내질렀다. 한밤의 갑작스러운 기습이 좀 과하게 효과적이었는지 온몸은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고수의 풍모를 보인다.
내력이 약한 인원들은 다도선객의 고함에 살짝이나마 내력이 진탕 되었다. 다들 어느 정도 무공을 익혔기에, 또 거리가 있기에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오르는 분노로도 감출 수 없다. 어두운 밤임에도 검은 먼지를 뒤집어쓴 가운데 이마의 혈흔이 붉게 반짝인다.
더불어 내공을 익혀 꾸준히 수련하면 라식 수술 따위 필요 없이 야맹증을 고친다.
보기 좋은 표적을 놓치는 사수는 없었다는 소리다.
-퓩. 퓨퓩.
모터를 끄고 고무보트 위에서 대기 중이던 칠익회 남미 팀과 PMC 인원들의 총이 불을 뿜었다. 하나같이 다도선객 정도 되는 고수조차 기척을 알아챌 수 없는 은신지공을 익힌 자들로, 이와 같은 고수 사냥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이 정도로 총알이 박히면 충격량 때문에라도 방탄복을 입어도 아프지 않을까?
맨몸으로 맞은 다도선객은 그보다 더 아픈 것 같다.
“카하악!”
흥분하여 기도비닉을 유지하지 않았다는 죄로, 다도선객은 금새 추락한다. 그나마 이 사악한 인신매매범에게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떨어진 곳이 바다라는 사실.
그것이 금방 끝날 수 있던 작전을 조금 더 끌고 간다.
[목표물 서쪽으로 이동 중. 추적 요망.]
다도선객은 곧 자신의 별호를 증명한다. 포탄을 뒤집어쓰고, 온몸에 총탄마저 박혔음에도 순간 엄청난 속도로 헤엄쳐 도주를 시도한다.
이어 급박한 추격전이 이어지니, 쉽게 잡히지 않는다.
과연 십오 년 전 국정원의 추적을 따돌린 솜씨였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저만한 속도라니. 아무래도 지난날의 주화입마는 극복을 한 것이 아닌지.
현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되는 사실은 아니다.
‘멈추면 죽는다!’
다도선객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 생각뿐.
전체적인 상황 파악은 명료하지 않다. 기습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여 이것이 적대적 세력의 기습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의 체포 작전인지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건 저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지, 총과 박격포라니.
‘무림인을 잡겠다고 화기를… 이 미친놈들 같으니!’
다도선객은 지금 자신이 하는 생각이 두 다리가 뜯겨져 나간 누군가가 한 말이란 걸 알지 못했다. 뭐, 알았다 해도 큰 소용은 없었을 테지만.
이심전심을 논하기엔 그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이쪽으론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달 밝은 밤바다에서 이뤄지는 추격전 속, 낡은 배 하나가 다도선객의 앞길을 막으러 다가온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울리지 않게 여유로운 작은 배 위에 있는 건, 조금 젊고 조금 나이든 두 사람.
하지만 젊은 쪽이 배를 모는 모습이란 도주로를 정확하게 막는 능숙한 솜씨였고, 무엇보다 팔짱 사이로 칼을 끼고 있는 중년 사내는 누가 봐도 범상치 않다.
선택의 순간이다.
돌아갈 것인가? 그러기엔 수십 년 동안 물질을 한 그의 감각이 경고한다. 지금 상황에서 직진이 아닌 우회는 심히 위험하다.
이미 부상이 심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물살을 가르는 게 아니라 잠수하여 몸을 숨겼을 것이다. 멈추면 정말로 죽는다.
그렇다면 통과하는가? 이것이 최선이긴 하지만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자신을 보는 칼 든 사내가 심상치 않다.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만, 애석하게도 선택은 그의 몫이 아니다.
배가 똑바로 직진해 온다. 이제 더는 피할 수도 없다. 뒤에 쫓아오는 추격은 이미 턱 끝까지 닿았다.
강요된 대결을 할 수밖에 없지만, 물러나지 않는다. 그 역시 인성과 별개로 칼날 위를 살아온 무인.
있는 힘껏 내력을 끌어올려 부딪치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일 초식, 사어격두(鲨鱼擊頭)를 펼치며.
두 팔을 교차하여 파도를 박차고 뛰어오른다. 마치 상어가 뛰어올라 먹이를 물고 틀어 버리듯, 내외공이 일체화되어 회전하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칼 든 사내가 목전 앞에 다다른 자신을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걸 느끼며, 부지불식간에 떠올린다.
무언가 잘못됐다.
예감은 옳았다.
“으아아악!”
언제 뽑았는지도 모를 칼이 푸른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찾아온 격통.
팔다리가 잘린 수공의 대가가 지느러미 잘린 상어처럼 뱃전을 뒹구니, 붉은 피가 선명하다.
오랜만에 뽑힌 마도가 악인의 말로를 조용히 내려다본다. 지금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그의 의형을 생각하며.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