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인천의 어느 창고 안, 추레한 몰골의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다.
불도 켜지 않은 음침한 공간이었다. 며칠을 씻지 못한 건지 땟국물이 흐를 것 같은 사내 여럿이 잔뜩 쌓인 포대 자루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말이 없다.
어찌나 조용한지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가만 보니 들숨과 날숨이 가느다랗고 길게 오고 가며 빠져나가는 소음을 최소화한다. 특이한 호흡이었다.
어둠 속 사내들의 표정이란 대체로 무표정했지만, 얼굴과 눈엔 감출 수 없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숨은 사정을 살피면 그럴 수밖에 없다. 본래대로라면 목적을 달성하고 본국으로 귀환해야 했던 이들은 평소와는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인 대한민국 공권력으로 인해 뱃길이 묶였다.
여기 몸을 숨긴 자들은 하나같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에 정 안 되면 헤엄이라도 쳐서 복귀해야 할 처지였는데, 막상 여기까지 몰리니 돌아가는 상황이 모든 면에서 여의치 않았다.
항구의 감시가 평소와 달리 너무 촘촘했다. 늘 뒷북이나 치며 허둥지둥하던 경찰들이 무슨 바람이 든 건지 빈틈없이 순찰 중이다.
한둘 처리하는 거야 문제가 없지만 그랬다간 효율적으로 짜인 순찰 망 여기저기서 개떼처럼 달려들 터.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하는 현재 상황에선 차마 고를 수 없는 선택지라 하겠다.
기존 밀항 루트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들의 동조자를 싹 잡아들이고 탈탈 턴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정확히 포위망을 조여 올 수는 없겠지.
이래서야 조선족 커뮤니티로 숨어드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들을 여기까지 몰아 놓은 이상, 그쪽으로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는 건 안이하다.
그간의 도주가 무색하게 헛된 시도 한 번에 일망타진될 수도 있다.
어쨌든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훤한 대낮이 아닌 야음을 틈타야 할 텐데, 다들 그 정도로까지 수영에 익숙하진 않다.
자칫 잘못하면 방향을 못 잡고 엉뚱한 곳으로 향하다 끝내 힘이 빠져 익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는 일이 이 모양이라지만, 그런 식의 개죽음은 사양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앉아서 모은 다리에 얼굴을 묻는다. 작은 나라에 의해 여기까지 몰렸음이 못내 분해 얼굴이 화끈거린다.
혹 누군가는 머리를 긁고, 누군가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훑는다. 왜인지 모르게 동시에 다들 그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그들 앞에 서 있음이라.
“멀리는 못 갔네?”
낯선 누군가가 도망자들 사이에 우뚝 선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언제 왔는지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했음에도, 그 순간 거기 있게 되었다.
도망자들, 대한민국 검사를 죽일 무기와 폭탄을 사이비 종교 새 세상에 공급하고 국가무공원의 거센 추격을 받던 테러리스트들은, 연화존자를 적으로 마주쳤던 많은 이가 그랬던 것처럼 불가사의함에서 오는 공포로 소름이 돋는다.
그들도 분명 무공을 익혔건만, 기척 하나 들키지 않는 그 솜씨라니.
그러나 감정보다 앞서는 건 지옥 같던 훈련으로 인이 박이도록 새긴 육신의 반응이다.
“흡!”
짧게 숨을 들이켠 사내들이 내력을 일으킨다. 혈관을 찢을 듯 거칠게 끌어올린 내력이 순간 고통을 주지만, 그 대가로 형형색색의 내력이 그들의 전신을 물들인다.
품 안에서 꺼낸 날붙이에 내력을 주입한다. 단검, 송곳, 쇠막대기 같은 것들이 붉고 검은빛을 뿌리니, 그것은 음울한 살인의 빛.
하나 두 명은 붉은색의 검기를, 나머지 다섯 명은 검은색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걸 보며, 김철민은 웃었다.
저 요사스러운 뱀의 혀 같은 흐름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적사와 흑사라… 우리의 친절한 이웃, 짱개 여러분께서 정의의 검사님을 죽이려고 신경 좀 많이 쓰셨나 봅니다. 이런 고급 인력들을 다 보내 주시고.”
네 마리의 뱀이라는 이름의 사사공(四巳功)은 성취가 높아질수록 내공의 색이 흑, 적, 청, 백의 순으로 올라가는 무공으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들이 쓰는 무공이다.
그 요사한 수련 방식도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내공 사용자의 특성이 없어 색출하기 까다로운, 간첩질하기 최적화된 무공.
김철민과 칠익회가 몇 번이고 부딪쳐 본 무공이다. 그러니 중국 공산당의 개입이 이보다 확실할 수는 없을 터.
손속에 자비는 없음이라.
“일단 얻어맞고 우리의 만남을 시작들 해 봅시다.”
어깨를 찌르려 들던 송곳을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잡아채 앞에서 달려들던 놈에게 던진다. 이마에 박힌 송곳 자루가 떨리기 무섭게 원앙퇴로 뒤에 놈을 날려 버리고, 다리를 회수함과 동시에 벼락처럼 양손을 앞으로 뻗어 내력을 뻗어 낸다.
쓰러진 동료를 제치고 마저 달려들던 자들이 그 한 수에 우르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남은 자들의 날붙이가 연화존자의 몸, 이곳저곳을 스치지만 이미 온몸을 감싼 호신강기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니.
손쉬운 싸움이다, 연화존자가 직접 오기에는 하찮은, 수준 떨어지는 자들.
그렇지만 와야 했다.
‘산 채로 잡아가려면 내가 오는 게 제일 확실하지.’
뒤에서 뒷짐 진 채 헛기침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진 않았다. 듣기 좋은 말과 올바른 말을 하는, 점잖게 편하고 안전한 곳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그런 사람이 김철민은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무림인 아닌가? 실의에 빠져 조용히 살지언정 늙은 선생님이 되기는 죽어도 싫은 그였다.
반로환동은 그렇기에 축복이다. 쓰러져 꿈틀대는 자들의 복부 위에 장심을 얹고 내공을 폐문하며, 김철민은 새삼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무기를 쓰긴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언제까지 맨손으로 드잡이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감상을 아주 잠깐 하긴 했다.
“데려가.”
안의 소란이 그치자 바깥에서 대기하던 인원들이 쓰러진 중국산 스파이들을 데려간다. 연화존자가 친히 내공을 금제했으니 저항 따위 할 수 없을 터.
쉬운 죽음이라는 친절은 없다. 알아낼 게 많다.
도심을 울릴 정도의 막대한 양의 총기와 화약을 구한 것으로 보아,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벌인 대남한 공작의 기반이 얕을 리는 없지 않은가?
파고들어 흔적을 잡아내리라.
이는 서울상공인모임회 토벌 당시부터 존재했던 의심이다. 그 비싼 중국의 무공상회 ‘순천’의 내공심법을 쓰던 조직폭력배로부터 시작된 의혹은 오늘 붙잡은 자들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것에 앞서, 감히 국가무공원의 검사를 건드렸다는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기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 컸지만.
이제 막 출범한 국가무공원을 건드렸는데, 속 편히 무공이나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도 했지만 말이야.
생각난 김에 돌아가는 차를 윤아영이 입원한 병원 쪽으로 돌린다.
가면서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이 불손하기 짝이 없는 공산당 새끼들에게 크나큰 엿을 먹일 수 있을 것인가?
이 정도로 끝내기엔 역시 성에 차지 않는다.
‘짱개 놈들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따위 짓거리를 해?’
중국 쪽에서 국가무공원의 출범을 거슬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세상의 이치.
중국의 보복과 땍땍거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며, 하물며 무공 아닌가? 가뜩이나 대한민국에 여러모로 자격지심과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사파 천국, 중국의 속이 마냥 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졸렬했지만.
‘뭐만 하면 다 자기 거라고 개소리를 늘어놓는 웃긴 놈들. 공묘(孔廟)는 자기들이 불태워 놓고 한국이 공자를 한국 사람이라고 우겨 댄다며 자기들끼리 부들부들 떨기나 하고. 이번 일만 해도 그래. 아무리 검사라지만 무공도 모르는 여자를 습격해? 그러니까 스스로 대국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게 다른 나라의 비웃음이나 사는 거다.’
확실히 비겁했다. 사이비 종교를 충동질해 서울 한복판에서 정체를 숨긴 채로 테러를 일으킨 것도 그렇고, 테러의 대상이 검사라는 직책을 빼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비무림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 큰 영토와 많은 인구수, 넘쳐 나다 못해 썩어 나는 돈에 어울리지 않게 대국이라 자처하는 이들의 공격 방식은 옹졸하다.
‘그대로 돌려줘야겠는데… 무슨 방법이 좋으려나…….’
차라리 자신을 노렸더라면 이렇게까지 열받지 않았을 것이다. 무림인이라는 자각은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죽음의 위험? 강호인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같은 거지, 일생을 좋은 거만 누릴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대한민국 검사를 건드린 건 좀 다른 문제다.
일단은 한국 안에 있는 중국 쪽 조직을 치우는 게 우선이지만, 그다음에 대한 생각은 확실히 필요하다.
하여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중국에는 칠익회의 지부가 없다.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결과다.
애초에 중국 공산당 치하라 함은 신뢰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사회가 아닌가?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있어도, 결국 당의 권력자들에게 밉보이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곳에 소중한 부하들을 보낼 생각이 김철민에게는 없었다
지킬 게 많고, 가질 게 많은 칠익회는 중국 본토에 진출하지 않았다는 말.
기껏해야 사업으로 연결된 몇몇 인맥들 정도?
그렇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을 싫어하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니, 그 싫어함을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면 수가 생기긴 하겠지.
세상 인간이 다양하니, 열받는다고 폭탄 같은 걸 들고 들이박는 사람이라고 없겠어? 내부의 인민 중에서도 말이야.
‘그 넓은 땅에 의협지사가 없을까.’
언제 한번 중국 출장을 가긴 가야겠다고, 연화존자는 생각해 본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병실의 침대 위에선 윤아영 검사가 잠도 안 자고 일하는 중이었다.
“검사님, 안 자요?”
그녀는 피곤함이 역력한 기색이었지만 침대에 누워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빨리 나아야 복귀가 빨라질 것 아닙니까?”
들어오는 김철민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국가무공원 요원들이 주변을 경계한다.
문을 닫진 않는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은 탓이다. 괜한 구설수 따위는 피하게 밖이 보이도록 한다.
다만 기막을 쳐 소리를 차단할 뿐.
“쉴 틈이 어딨습니까? 할 일 많습니다.”
그래도 그만둘 생각은 없나 보군, 다행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테러로 몸이 성치 않음에도 윤아영은 꺾이지 않은 듯하다. 국가무공원에 흥미를 보이던 수많은 사람이 중국이 후원한 사이비 종교의 테러에 싹 떨어져 나가 관망세로 돌아섰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흔들리는 법 없이 저리 굳건하다.
대견하기도 해라.
“또 한동안 인력 충원 안 될 것 아닙니까? 할 수 있을 때 해 놔야죠.”
그렇게 말한 윤아영이 김철민을 보며 내려간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린다.
희미한, 아주 희미한 미소와 함께.
“그래도 덕분에 회복이 빠릅니다. 의사들도 놀라던데요?”
“그거 1억 달러짜리에요.”
연화존자의 손가락 끝이 정확하게 가리킨다, 윤아영의 육신 내부, 미약한 내력의 씨앗을.
그가 친히 진기도인 한 내력이 기틀을 잡아 가고 있었다.
“그게 돈값 못하는 거였으면 내가 지금처럼 돈 못 벌었지.”
윤아영은 연화신공을 전수받았다.
김철민은 이것이 필요할 거라며 권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혜안이었다. 뛰어나고 안정적인 내공심법 덕분에 일함에 있어 피로도가 확실히 적다.
차가 뒤집히는 와중에 크게 다친 곳이 없던 것도 이 덕분이고.
“그런 것 같군요.”
그럼에도 그와 같은 일을 겪고 완전히 멀쩡할 수는 없다. 안경을 내려놓고 잠시 눈두덩이를 비비는 윤아영은 조금 지쳐 보인다.
“자, 그래서.”
그렇지만 눈동자만은 활활 불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에 마음이 주저앉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더 밟아 보란 것처럼 고개를 빳빳이 드는 법.
저 젊은 여검사가 정확히 그렇다.
“잡을 놈들은 다 잡은 겁니까?”
김철민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럴 리가요? 우리가 함께 조질 인간들이 수두룩 빽빽입니다.”
무척이나.
“우리 일은 이제 시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