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국가무공원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갔다.
온갖 사건들이 많았음에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연화존자 김철민의 출현, 현천문의 흡수와 대통령의 인가, 서울상공인모임회에 대한 연계 수사 및 기소, 다도선객과 동방요선의 체포 및 범죄 조직 해체, 공식적인 부산 증산방의 합류와 그에 따른 국내 무림계의 동요.
그 와중에 일어난 검사 테러 사건과 거기에 도움을 준 중국계 조직의 소탕까지.
이와 같은 일들을 거치며 이 대한민국에 없던 신생 조직은 체계와 규모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쉽게 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건이 많았다는 건 구설수와 논란이 많았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다도선객과 동방요선을 잡는 과정에서 일어난 다소 폭력적인 진압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건, 감성적인 투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잘 보여 주지 않는 적나라한 인생의 현실이었으니까.
인생의 어떤 일들은 폭력과 협잡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우중충한 민낯을 받아들이는 게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겠다.
안온하고 작은 자신의 세상이 보기 거북한 광경으로 마음에서부터 흔들리는 걸 원치 않는 유권자들에겐 못내 불편했을 광경이 맞긴 하지.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서 총화기 테러를 당한 여검사를 보고,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이런 일을 만들었다고 떠드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을 국가무공원의 모두가 했다.
‘저러니까 공무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하기를 싫어하는 것 아닌가?’
기껏 목숨을 걸고 화재를 진압했더니 소방 헬기 프로펠러 때문에 불이 번졌다는, 사람 살리려고 있는 힘껏 CPR 했더니 갈비뼈가 골절된 걸 보상하라는 류의 후안무치한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는 비난이었다.
범죄자를 인도적으로 잡기 위해 몇 명쯤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는 잡을 일 없으니 괜히 구경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며 아무렇게나 떠들어 대는 것인지.
아마 본인들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말의 의미를 안다면 저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 본인이 직접 그 현장에 있게 된다면?
나약한 자들의 비판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하지만 서울상공인모임회뿐 아니라 다도선객과 동방요선을 잡아들인 것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악독한 범죄 조직을 차례로 그리고 거의 완벽하게 소멸시킨 국가무공원의 활약에 대다수의 시민들은 지지를 보낸다.
국가무공원이 손을 댄 일에 따라붙는 변명이란 없으니, 이제 갓 출범한 조직치고는 일 처리가 제법 깔끔한 터.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동시에 했다는 게 쉽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미 하원의 결의안까지 이끌어 냈던 염전 노예 사건은 다도선객 토벌 중 체포한 지역 범죄자들에 대한 가차없는 처벌로 마무리된다.
윤아영의 장담처럼 사람을 노예로 부린 염전주들은 전부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살게 됐다. 여기엔 예외가 없었고, 형사재판이 끝난 후 민사재판 역시 신속히 진행될 예정이다.
결말에 죄의 무게 말고 다른 것은 얹어지지 않았으니, 이번 판사들은 그래도 말이 되는 판결을 내렸다 하겠다.
판사의 양심일지 아니면 밝힐 수 없는 속사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다.
덤으로 다도선객에 협조했던 자들의 여죄 또한 밝혀 냈으니, 미국 측에서도 이러한 한국의 노력을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두가 행복한 결과였다. 사람이 아닌 것들은 못 그러겠지만, 상관없지.
사이비 종교, 새 세상의 경우에는 완전히 몰락했다. 동방요선의 비참한 꼴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 컸다.
꾀병 따위 부릴 것도 없이 무릎 아래가 붕대로 감겨 휠체어를 탄, 얼마 전 비슷한 꼴로 전락한 혈야쾌조처럼 폭삭 늙어 나타난 동방요선을 목도하며 ‘예수부름 선지계시 새 세상’의 신도들은 오열했다.
저것은 우리의 재림 예수가 아니라며 눈물만 주룩주룩. 꺼이꺼이.
그러곤 곧바로 치열한 내부투쟁에 돌입했다. 그것은 주인 없는 권세, 막대한 재산 때문이었다.
그간의 단결력 충만했던 모습과 달리 여타 신실하지 못한 거짓 신앙의 형제들이 벌이던 모습과 매우 흡사한 형태로 조각조각 난다.
다도선객은 총상과 절단상을 치료받느라 모습도 드러내지 못해 자료 화면만 무성하다. 사실 강인한 무림인의 육체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을 일.
어떤 사람들은 다도선객이 벌써 죽어 버렸으나 폭탄과 총기를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시끄러운 일들뿐.
이에 반해 조선족 커뮤니티를 휩쓸고 간 중국 국가안전부 부역자 색출은 조용히 묻힌다. 이건 드러내 놓고 떠들 일이 아니다.
중국 대사관의 소소한 항의가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터진 폭탄과 총기를 누가 구해 왔는지 밝히고 싶지 않은 건 중국 측도 마찬가지.
그리고 이들 모두를 수용할 국가무공원 산하 무림인 전용 교도소가 얼마 전 공사에 들어갔다. 무공을 익힌 범죄자들을 따로 수용하겠다는 이 계획은 앞선 일들과 달리 별다른 잡음 없이 진행 중이다.
‘무림인 범죄자들은 그들이 지닌 범죄 수단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반인 범죄자들로부터 격리해야 할 강력한 필요성이 있다.’
국가무공원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딱히 트집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정석적인 주장이었다. 실제로 범죄를 일으킨 무림인의 십분지 일 정도가 교도소에서 야매로 무공을 배웠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렇게 도봉의 국가공무원 본청과 문경시에 자리잡게 된 무림인 전용 교도소의 공사가 한창이던, 많은 것이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여름.
국가무공원 측에서 요청한 국방부와의 협업을 위한 회의가 연일 격론 속에서 진행 중에 있었다.
통합 국가 무공 시스템을 위한 토대를 세우는 작업이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
분명 찬란한 여름 햇살이건만 어째 자리에 앉아 하는 짓들을 보고 있자니, 김철민은 마음이 불편하다.
육체적으로 불편한 건 아닌 것 같다. 장군들이 모이는 회의실이라 그런지 의자도 편하고, 책상의 높이도 적당했으니까.
강인한 무림인의 육신은 세월을 이겼으니, 노련한 강호인인 그가 현재 몸이 불편할 이유란 존재하지 아니한다.
음료마저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내 왔는지 시원하기 그지없고, 에어컨은 시원하다 못해 내공 없이는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돈 아깝다고 자주포에 에어컨도 안 달아 주는 시대착오적 집단이니만큼, 이 정도면 손님 대접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문제는 정신의 언짢음이라는 결론인데…….
‘헛소리하는 저 입을 막아 버리고 싶다.’
깨달음은 금방 온다.
거들먹대는 장군들의 모습을 보며, 연화존자는 저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그가 잘하는 폭력적인 방식의 침묵 유도 방법 몇 가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 내공심법도 군 보급 체계에 맞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떠들어 대는 사람의 직책이 뭐라더라……. 별이 세 개인 걸 보니 대충 엄청 높은 양반은 맞는 것 같은데, 하는 말은.
볼품없이 나약하며 구차하네.
“좋다고 막 도입하기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지요. 허허.”
이러한 판단이 김철민,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며칠째 도돌이표 되는 난색에 국가무공원 인원들의 낯빛이 거무죽죽하니까.
아마 한 대 두들겨 패고 싶다는 생각을 자제하느라 그럴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김철민, 본인부터 그런 충동이 벌떡벌떡 솟구치거든.
“이 내공심법이라는 게 말입니다. 군의 입장에서는 관리가 불안하고, 사후 처리가 쉽지 않습니다. 혹 주화입마라도 와서 광증이 온다던지 아니면 검증되지 않은 내공심법이 의식에 영향을 끼쳐 작전 수행 및 부대 관리에 악영향을 끼친다던지, 하다못해 무공이 약한 상관을 존중하지 않는 식의 하극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다 고려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만약 사병들의 무공이 간부들보다 강해졌을 때 통제가 과연 먹히기는 할 지…….”
당장 함께 참석한 운하신권의 얼굴을 보라.
연화존자는 오랜 친분이 쌓인 사이답게 저 살짝 미소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는 손가락이 떨리는 모습이, 분기가 치밀어 올라 주먹으로 후려치고 싶은 걸 참는 거란 걸 알아본다.
더불어 자신도 비슷하게 얼굴이 썩어 있을 거란 걸 안다.
별 수 있나? 오래 살았다고 없던 인내심이 생겨날 리 없는데.
없는 건, 없는 거다.
“이게 마냥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닙니다. 내공심법을 군에 보급하려 시도한 다른 국가, 일선 부대에서 일어났던 문제들입니다. 가까이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례가 있고, 저 미군에서조차 내공심법의 도입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미리 나눠 드린 자료에서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도입에 신중할 수밖에요.”
연신 입을 놀리는 그 얼굴에서 김철민은 공무원 혹은 정치인의 얼굴을 본다.
역시 장성급 정도 되면 정치질 좀 해야 되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치는 별을 달 만하다.
굳이 한 줄 평을 남기자면 다음과 같지만.
‘개소리를 겁나 정성껏 하네.’
군 전체에 내공심법을 보급한다는, 여지껏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국가적 사업을 위한 회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준비한 회의가 아니며, 이야기를 나눈 것도 국가무공원이 출범하며 시작했으니, 몇 달 됐다.
국가무공원은 부대의 성격과 계급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루어질 내공심법을 보급하고자 한다.
국가무공원 최고수 삼 인이 모여 내공심법을 만드는 건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시범 부대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몇몇은 준비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기존 칠익회 인원들이 쓰던, 연화신공에서 파생하여 모두가 익힌 ‘불좌결(不挫訣)이 그것.
엄청난 성능을 지닌 심법은 아니었지만 군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닌 마음 공부다. 신체를 튼튼히 하고, 장기를 바로 서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과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갖게 하니, 칠익회 소속 인원들은 불좌결을 최소 삼 년 이상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상승의 공부에 나서는 바.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말처럼 전 세계를 누비며 했던 온갖 싸움 속에서 효과를 증명한 심법이다.
축기가 조금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예전처럼 칼과 검기로 싸우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느린 성장 속도는 새삼 문젯거리도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이 점이 더 많은 인력을 군에 머물게 하는 유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을 터.
그러니 국가무공원 입장에서는 이 좋은 심법을 주겠다는데도 뻗대는 꼬락서니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득 될 것도 없이 불이익만 많을 것 같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개인적으로든, 군 조직으로든 간섭 받는 게 좋을 리 없는 거야 당연하지만…….’
턱 끝을 치는 한숨을 삼킨다. 불덩이를 가슴속에 우겨 넣은 것처럼 화끈함이 올라온다.
울화는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 이런 식의 견제가 들어올 거라곤 생각을 하긴 했어.’
사회 곳곳에서 국가무공원의 행보를 과격하다고 본다는 거야 잘 알고 있다.
모를 수도 없지. 국가무공원, 아니 김철민 자신이 한국에 들어온 직후 날아가 버린 기득권 세력이 몇인데. 피해 입은 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만든 국정원 자료 유출 사건부터 서울상공인모임회, 사이비 교단, 다도선객의 일까지.
거기와 관련된 모든 세력이 일소당했다. 변명의 여지없이, 탈출의 구멍 없이.
엮이고 싶지 않은 거, 당연하다.
“대한민국 군대는 참으로 여유가 있군요.”
하지만 그게 김철민이 참아야 하는 이유가 될 리 없다. 그렇지 않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같잖은 소리를 늘어놓는 게, 참 여유 있어 보인다고.”
저런 걸 이해하고 넘어갈 거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연화존자에겐 멈출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