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국가무공원이 이루고자 하는 중간목표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각 국가조직에 적절하고도 체계적인 내공심법을 개발하여 보급할 것. 이를 위해 필요한 인력 등을 양성하여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하도록 노력할 것.’
무수히 많은 나라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만큼 많은 나라가 시도했지만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던, 기껏해야 아주 약간의 소소한 성과를 거둔 게 전부인 목표에, 국가무공원은 도달하고자 한다.
정확히는 연화존자의 뜻이다.
김철민에게 있어 내공심법의 보급 문제는 중요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부을 만큼 이 사안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국가무공원 내에서조차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는 의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안과 저작권료 등의 문제를 생각하면 너무 막대한 비용과 인력, 시간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연화존자 개인은 이에 대해 타협이 없다.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만약 내공심법의 군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가무공원을 나가겠다 선언할 정도다.
그에게 있어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종류의 국가사업,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투자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
돌아온 연화존자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다 바쳐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서라도, 지난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멈출 생각은 전혀 없다.
그중에서도 군대가 최우선 목표인 건 그러니까 다른 이유가 아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젊은이들한테 월급 이백도 못 챙겨 주는 못난 나라에 제대로 된 내공심법 정도 되는 보상은 있어야지.’
대한민국이 더 이상 젊음에 기생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그런 체계에서는 아니 된다.
그건 아름답지 못하다, 바로 지금처럼.
나라가 참 양심도 없기도 하지. ILO(국제노동기구)에서 공익 근무 요원이라는 강제징용 제도를 철폐하지 않으면 제제하겠다고 하니, 현역 입대와 공익 근무 중 고르라는 선택지를 주겠다며 야비하게 피해 가는 걸 보고 놀란 그는 기사를 두 번인가 다시 읽어야 했을 정도였다.
이것이 의무를 다하는 국민을 대하는 국가의 품격이란 말인가?
존중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듣자 하니 나치조차 몸이 아픈 사람은 끌고 가지 않았다는데, 대한민국에서 공익 근무로 끌려가는 기준만 봐도 이건 진짜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 취급을 못 받으니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지.’
잡아 올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남의 아들이 되는 이 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지 않았나?
뭐? 군대가 국민의 의무니까 통상적인 임금을 챙겨 줄 수 없다고? 심지어 가산점을 주는 것마저 위헌이라고? 오케이. 그럼 돈 대신 다른 걸 주면 되겠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평생 튼튼하게 살 수 있도록 쓸 만한 내공심법을 익히게 해 주지, 뭐.
군대를 갔다 오면 다른 건 몰라도 평생 도가니 걱정은 없게 해 주겠어. 일반병들은 물론이고 특수부대를 나온 인력들이 하는 것에 비해 돈도 많이 못 받고 전역해서는 무릎이랑 허리 아파서 고생하는 게 마음이 아팠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꺼이 노력해 주지.
‘그러니 이렇게 할 게 많은 날 위해 좀 건설적인 토론을 지향해 주면 안 되니, 이 개같은 똥별들아.’
-라고 연화존자는 묻고 싶었다.
당장 머릿속에 맴도는 해야 할 일 목록이 산더미라 그도 마음이 급하다.
‘어차피 내공심법을 보급하면 유출 문제 때문에라도 병원을 짓고, 의료 인력 모집도 따로 해야만 해. 총 맞은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으려나? 내공을 익히면 신체도 튼튼해지고 힘도 세질 테니, 거기에 맞춰 좀 더 강한 화력을 가진 화기도 개발하고, 그에 따라 전략 전술 교리 교범도 만들어야 할 거고, 그 노하우를 가지고 경찰이나 소방관 같은 특수 직렬에도 차근차근 보급해야 한다고. 헌병 비슷한 것도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자면 외국에 있는 사업체들 하나둘 정리해서 기반을 한국으로 옮긴 다음에…….’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시작도 전에 발목이 잡히니 화가 나겠나, 안 나겠나?
아무리 반로환동했다지만, 시간이란 유한한 필드 속에 전례 없던 막중한 일을 해야 하는 연화존자는 열이 받는다.
하여 다시 그간의 은거를 후회한다. 좀 더 빨리 나설 걸, 좀 더 계획적으로 살 걸.
좀 더 열심히 정의롭게 살 걸.
내공심법을 만드는 일부터 그렇다. 사병과 부사관, 장교가 익히는 내공심법의 단계를 분리해서 진급하여 계급이 높아지면 상위 심법을 익힐 수 있도록 체계를 잡는 것만 해도 머리가 빠질 일인데, 이런 쓸데없는 자리에서 시간을 뺏기니, 원.
“하기 힘든 일을 되게 하려는 것보다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걸 보니, 군인이 아니라 공무원인가 봅니다, 다들. 안 되면 되게 하라…….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진짜 많이들 하는 소리 아닌가? 장군씩이나 되시는 분들이 군인 정신이 부족하신가 봐요?”
나라에 돈이 없거나 능력이, 역량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대한민국이 너무 잘사는 나라이며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저력 있는 나라지. 세계 10위쯤 되는 경제 대국이 돈이 없다, 가난하다 하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 보면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지 않아?
다만 돈 있는 놈들은 소수라는 거? 돈을 사회 공동체 유지에 쓸 생각이 별로 없다는 거?
공동체 정신은 무너진 지 오래라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좋고 나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젊음을 저당도 아니고 강탈당한 채 길바닥에 버리는 젊은이들을 위해 최저 시급도 못 맞춰 주는 나라가 아름다울 수는 없는 거라고, 김철민은 생각하고 있다.
삼사십 대 미혼율만 봐도 나라가 개판 나고 있다는 건 따로 말할 필요도 없는 일.
받아 마땅한 정당한 대가를 국민의 의무라 후려치며 정부가 삥을 뜯는 게 현실이란 걸 부정할 길이 없다.
어디 양아치 깡패 새끼도 아니고.
“그런데 지금 니들 눈에는 군에 내공심법을 보급하는 이게 선택의 문제 같나 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 생각이 갈리니, 쓸데없는 회의비 품의만 올리고 있지.”
나오는 말이 고울 리 없다.
“니들? 이봐요, 당신 지금 말이 너무 심한…….”
“심한 건 내 말이 아니라 당신들의 직무 태만이란 생각이 안 듭니까? 나라가 평화롭다는 생각에 철저히 절여져 있는 데다 자기는 피해 보는 일이 없으니 이건 뭐, 눈이 약간… 수채구멍 같은, 그런?”
연화존자는 화가 났다. 빈정대는 말투와 공손함을 잃은 태도는 이를 증명한다.
그럴 만하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가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그런 환상 속에 살고 계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현실 인식 처참하네, 진짜.”
“뭐야? 너 이 새끼, 말하는 게…….”
“나? 말하는 게 뭐?”
연화존자는 짜증이 솟구쳤고, 저 태평하기 짝이 없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이미 대한민국에, 대한민국 군대에 유감이 많았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생겨나는 중이다.
안 그럴 수도 없다. 군의 현실을 생각하면 저쪽에서 먼저 내공심법을 요청해서 전폭적으로 협조해도 부족할 판국인데, 이건 무슨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여유가 철철 넘치는구만.
“예의가 없는 건 국가 경쟁력을 기생하며 갉아먹는 주제에 죄책감 없이 배가 따뜻한 너희 장군들이지. 안 그래?”
이런 폭언은 상상하지 못한 장성들은 하나같이 어버버하며 입을 열지 못한다.
하지만 김철민의 입은 청산유수. 유감이 많은 무공의 고수가 보이는 구력(口力)은 끊김이 없다.
“난 말이야, 당신들 생각이 더 이해가 안 가. 당신들은 스스로가 이해가 가나? 국민의 아들들을 이 년 가까이 빌려 오는 주제에, 아무런 사회 공헌도 하지 않고 늙은 돼지처럼 축 늘어져 있는 이 꼴에 진심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보다 매서운 건 폭력적으로 넘실대는 눈빛과 날이 선 마음가짐이었지만.
“요즘도 군인들한테 국민의 세금으로 보급이 이루어지니 아껴 쓰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곤 군대가 젊음을 소비하는 방식은 낭비적이기 짝이 없는 것 아니야?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진 젊은이들에게 부끄러워도 한참 부끄러워야 할 것 같은데, 여기 장군님들 생각은 좀 어떠세요? 응?”
감히 생각한다.
너무도 많은 젊음에 이 나라의 군과 정치는 빚을 지고 있다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쌓이고 굳어 이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고.
살기가 방 안을 메운다.
“나라의 젊은 남자들에게 2년이란 시간을 가져왔으면 거기에 대해 제대로 보상을 해 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장군들이나 이용하는 골프장 같은 걸 늘릴 시간에, 장병들의 처우부터 챙겨 줘야 되는 게 장군의 본분 아니야? 수통 같은 걸 아낄 시간에 그런 거부터 챙겨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아까와 달리 장군들은 입을 열지 못한다. 고위 장성들만 모인 자리답게 대부분 국가 공인 문파의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제대로 수련하는 이는, 멀쩡한 걸 익힌 이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연화존자 정도 되는 고수의 살기를 버텨 낼 자는 없었다.
국가무공원 인원 중에서조차 무공이 약한 축에 속한 이들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으니, 그만큼 김철민의 분노는 진하다.
그건 대한민국에 돌아와 국가무공원을 설립하며 목도한 현실과도 관련이 깊다.
외국에서 보던 뉴스 속 활자로는 실감하지 못했던 현실이 이 땅엔 있었으니까.
“군대를 갔다 온 게 조롱이 되고,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조차 무시를 당연시할 동안 대체 정부와 국방부는 뭐 한 거야? 왜 나라를 위해 젊음을 희생한 청춘이 무시받고 있는 거지? 군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왜 비난받아야 되는 거냐고?”
그는 이런 걸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난 이해가 안 가. 도대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납득이 안 돼. 이 나라에서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난 너무 착한 것 같아. 제대로 된 대가도 없이 희생하는 젊은이들을 이렇게 조롱하는데 가만히 있다니.”
그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군대가 잘못을 여러 번 한 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징병된 젊은이들과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끌려간 사람들이 그 사실 자체로 무시당하고, 비난받는 것에 대체 어떤 당연함이 있단 말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뭔가 정말로 많이 잘못됐다.
“위수지역 상인들이 군인들을 등쳐 먹고, 심지어 폭행하고, 배 째라고 하고. 군대에서 다친 사람이 전역하면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 소송 걸고! 병사 숫자가 줄면 조직의 규모도 줄어야 하니까 아픈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모자라 밥도 제대로 안 주고! 그놈의 방산 비리는 끝이 없고! 미친, 뭐? 생계형 비리?”
화가 난 김철민이 책상 위에 손을 얹고,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공 좀 보급해서 전투력 상승 좀 시키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귀찮고 힘들다고 뻔뻔하게 못한다는 말이 많습니까? 시발, 군대가 안 되면 끝나는 곳이었나? 그리고 무엇보다!”
책상 위에 얹은 그의 손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격앙된 목소리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들. 마교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
이어지는 건 오직 침묵뿐.
연화존자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경제력과 생산력에서 열세인 북한은 언제나 비대칭 전력의 확충을 도모하고 있고,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핵 그리고 북한의 마교가 바로 그 수단이었지. 압도적인 다른 수단들에 비해 대한민국 국군의 무공 역량은, 북한에 비해 한참 아래인 게 객관적인 사실이다. 아닙니까?”
어느새 살기는 씻은 듯 씻겼건만 자리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소비에트 붕괴 후 평양에 자리 잡은 최후의 강자존주의자들은 국군의 크나큰 숙제였던 바.
“내가 책임지고 마교도들을 상대할 수 있게 해 주지. 그러니 닥치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을 거요.”
이렇듯 김철민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자리를 떠난 뒤에도 국방부 측 인사들은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보며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혼란 속 연화존자가 떠난 책상 위에선 김을 모락모락 내는 손 모양이 힘 있게 찍혀 있을 따름이었다.
가시지 않은 분노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