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국가무공원 측과 회의를 마치고 나와 복귀하는 대한민국 육군 참모차장의 가슴은 답답했다.
그의 내면을 감싼 안개 같은 흐릿함과 노여움의 정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아마도 다음과 같으리라.
‘전부 이상주의자의 공수표 아닌가?’
연화존자라는 자의 회의를 빙자한 맹렬한 비난을 듣고 나온 육군 참모차장의 기분은 대략 이러했다.
아마 다른 장군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무공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자니… 대체 무슨 문제가 어떻게 생길 줄 알고?
다른 어떤 국가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다. 대대적인 내공심법의 도입과 보급은 압도적인 세계 1위의 군사 강국, 미국조차 실패한 국가사업.
그 미군에서조차 일부 특수부대 등에 소수 보급된 게 전부고 국가무공원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규모는 성공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당장 최근 있었던 국방개혁 2.0이니, 국방혁신 4.0 같은, 연화존자가 주장한 바에 비하면 다소 현실적인 목표들조차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했는데, 무공 보급이라.
감당하기 너무 버거운 계획이다.
물론 무공이 좋은 걸 모르지는 않는다. 장군의 대다수가 진기도인으로 내력을 익힌 몸이었고 당장 참모차장, 본인 또한 현천문은 아니지만 2급 국가 공인 문파 중 가장 괜찮은 곳의 내공심법을 심은 몸이기에, 무공의 효용성이야 아주 잘 알고 있다.
몸이 튼튼해지고, 눈이 밝아지고,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고. 이보다 더 건강할 수가 없어 간혹 보급받은 무공과 체질이 잘 맞는 선후배 중에는 빠졌던 머리마저 다시 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오죽하면 장성급이 되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으로 내공심법을 통한 탈모의 해결을 꼽는 사람도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현실을 생각해야지.
‘지금 군대는 내공 사용자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 소화하여 다룰 역량이 없다.’
그가 생각하기엔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함부로 입 밖에 꺼낼 수 없지만 냉정한 파악이 그렇다.
이건 오롯이 역량의 문제.
가령 나라에 징집할 수 있는 젊은 남성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비상식적인 기준으로 징집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여성들의 징병을 절대로 실행할 수 없는 것도 이런 문제가 아닌가?
이미 70년 가까이 대한민국 젊은 남자들을 징집해 놓고도 제대로 된 노하우 하나 쌓지 못해 아직까지도 온갖 문제가 돌출되는 판국에, 젊은 여성들을 사병으로 징집한다고?
있는 인력조차 제대로 다루지도, 대우해 주지도 못하는 군대라는 집단이 여자 사병들을 퍽이나 제대로 쓰겠다.
물론 정치권에서 그런 종류의 참사, 나라의 운명은 몰라도 본인의 정치 생명만은 확실하게 끝장낼 여성 징집을 통과시킬 리가 없기야 하겠지만.
그러니 군에서조차 무림인 전력의 확충이 가져올 장점보다 어떤 문제를 야기할 지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내력을 익힌 자들 대다수는 통제를 따르기보다는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애초에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굴복한다는 개념 자체가 내공 사용자들에게, 아니 인간에겐 희박하다. 참모차장을 비롯한 장성급 장교들이야 군인이 먼저이고 무공이 나중이라지만, 과연 초급간부들과 사병들은 어떨 것인가?
복무기간이 끝나면 사회로 나갈 사람들이 상부의 통제에 제대로 따를 것인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회에서 무공을 익히고 들어온 이등병이 선임병을, 심지어 간부마저 무시하고 폭행하는 일도 더러 일어나는 것이 사실.
‘누구 하나 사고 치면 진급이 막히는 지금 같은 풍조에서라면 더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
안전한 군인연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휘관들은 질색할 것이다. 그런 불확실함을 안고 부대 지휘를 할 수 없다며 온갖 핑계를 댈 거야.
바로 오늘 회의에서 보인 모습처럼.
부대원 중 누구 하나가 사고 치면 대뜸 보직 해임부터 시키는 현실 속에서 누가 선뜻 무림인 전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자는 데 찬성할 수 있으랴?
세계적인 추세와 그 필요성에 의해 무공이 보급된 일부 특수전 부대에는 지휘관들이 임관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육군 참모차장은 더욱 암담한 기분을 느낀다.
깊이 눌러 놓았던 생각을 떠올린다.
그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속마음에서조차 변명만 늘어놓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
‘군인의 본분이 진급이던가?’
쓴웃음이 난다.
지금껏 한 생각들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쓰리스타의 자리까지 오른 장군의 처세술이라면, 군인으로서 나라를 생각하는 진짜 마음은 조금 다르다.
그는 연화존자 김철민의 말에 옳은 부분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사실 공감하는 편이다, 그것도 꽤 많이.
군대는 바뀌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이 늙어 가고 있다. 젊은이는 줄어 간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결혼조차 않는다.
징집할 수 있는 인원은 줄고 있다. 군인에 대한 대우는 나날이 박해진다.
애국심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너덜너덜한 군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게 남아 있기라도 했음 좋겠다.
군대 자체의 책임이 있다는 연화존자의 비난을 부정하긴 힘들었다. 주구장창 소비만 하는 집단이 이 나라 젊은이들의 젊음마저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참모차장도 평소에 했다.
그렇기에 무공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이 옳다.
머리 숫자가 줄고 있으니 1인당 전투력을 늘려 메꿔야 하는 게, 산술적으로 맞지 않나?
유권자의 눈치를 보며 작은 군대를 지향한다면, 더더욱 외면하기 힘든 문제지. 숫자를 줄이면서 전투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병기의 첨단화와 더불어 인적 자원의 정예화밖에 없으니. 무공보급,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게 맞으리라.
더불어 무공은 제대로 된 대우와 대가를 받지 못하는 젊은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해법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나? 나라에 예산이 부족해 돈으로 못 주니 대신 무공으로 지급하겠다는데, 설마 가산점조차 위헌이라던 법원 판결이 여기까지 딴지를 걸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북한, 북한 마교, 지상 최후의 강자존주의자들.
군인으로서 북한을 이길 수 있냐는 일갈은 모욕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존심 상하는 질문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백두혈통을 떠받치는 저 가증스러운 악의 축이 마교 말고 누가 또 있을 것인가? 냉전을 지나 지금껏 평양 한구석에서 웅크려 있는 평양-마교, 그들이야말로 북한의 세습 정치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인진대.
전 세계를 상대로도 고개 빳빳한, 벼랑 끝 전술의 가장 튼튼한 지지대일진대.
그리고 그런 자들을 상대할 무공을, 내공심법을 주겠다고 일갈하는 연화존자라는 자는 최근 대한민국을 좀먹던 쓰레기들을 일소해 버린 강력한 무림인이었다. 군인이라면, 지휘관이라면 이 제안을 덥석 받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했다. 군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게 맞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반기를 들지 못했다.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묻어갔다.
그 사실이 못내 분하다.
스스로가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이러려고 군인이 되었던가? 장군이 되어서 그 값을 제대로 하고 있나?
자문해 본다, 당신들은 군인이 아니라 공무원 같다는 연화존자의 지적을.
그 끝에 도달한 결론은 여전히 부끄럽다는 인식이다.
이마 위 별의 무게가 오늘따라 무겁다.
그렇게 너무도 부끄럽고 스스로에 창피했던 육군 참모차장은 밤새 뒤척이며 쉽게 잠들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밤은 깊어 수마는 찾아온다.
그리고 방해받는다.
“…누구요?”
잠이 들었던 정신은 공관의 침입자로 인해 깬다. 어둔 방 아래 의자에 앉아 자던 그를 내려다보던 그림자는 방 주인의 질문에 답 없이 침묵으로 응시한다.
상체를 일으킨 그를 보며 천천히 품 안에 손을 넣는다.
참모차장은 그 모습이 오늘 낮에 봤던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자 일렁이는 희미한 무지개가 보이는 듯도 했지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이것이 착각인지, 꿈인지, 진짜인지는 날이 밝아야 알게 될 일.
하지만 눈을 떼지 않았기에 침입자가 품에서 꺼낸 종이를 보란 듯이 흔들고는, 책장의 책을 꺼내 주지시키듯 보여 주고 종이를 끼워 원래 있던 자리에 꽂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이윽고 기억은 다시 뚝.
아침이 밝아 눈을 떴을 때, 아울러 새벽에 보았던 얇은 책 사이를 펴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본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서울특별시 XX구 XX동 452번지 카페 팀북투–대화할 생각이 있다면 혼자 오시오.]
초대장이었다.
육군 참모차장은 주말을 이용해 ‘카페 팀북투’라는 이상한 이름의 카페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이런 일에 개인 소유 차량을 이용하거나, 관용차를 쓰기엔 뭔가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껏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시간이 적혀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아무 때나 가도 되는 거겠지만서도 또 혹시 모를 일.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동네에 도착하여 주소를 확인하고 문을 열자, 그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기다리고 있다.
“앉으시죠.”
오직 한 자리만 준비된 넓은 카페 안에 김철민이 앉아 있었다. 마치 자신이 올 걸 미리 알았다는 것처럼, 얼음이 조금 녹은 더블월 글라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아 빨대로 마시고 있었다.
조금 줄어든 컵 안의 커피가 기다림이 길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매일 기다린 거요?”
“그럴 리가요.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회의장에서와 달리 싱긋 웃는 김철민은 그때보다 두렵다. 이것이 굴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란 걸 새삼 깨닫는다.
연화존자는 다리를 꼰 채 소매를 걷어 올린 셔츠 차림으로 방만하게 앉아 있다. 팔을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 위에 올린 그 모습에서 여유가 철철 넘친다.
분위기는 전과 다르다.
“오실 걸 알고 있었을 뿐이랍니다. 저희 직원들이 유능해서요.”
그 말에 뭔가 더 급하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마침 장군님 커피가 때맞춰 나오는 바.
“멀리 오셨는데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시죠.”
참모차장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열기와 흥분을 가라앉힌다. 시원한 단맛이 인상적이었지만 이 순간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다.
“왜 날 보자고 한 거요?”
김철민은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얼굴에는 웃음이, 하지만 눈빛에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무언가가 있어 이 사내의 심정이 사실 며칠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한다.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 이런 말, 잘 아시죠? 군대 유행어잖습니까?”
얼음을 잔뜩 넣은 음료를 방금 마셨음에도 뭐가 그리 더운 것일까? 카페 안에 흐르는 열기에 참모차장은 땀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서류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주변인의 진술을 듣고, 삶의 궤적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나 살펴봅니다. 그랬더니 결론이 딱 나오더라고. 국방부에서 우리가 파트너로 삼아야 할 사람은 참모차장님 정도라는 게.”
“어째서?”
“우선 인품이 좋으시더군요. 되도 않는 갑질 이야기는 없었고, 두루두루 평판이 좋으시고. 미담도 많으시던데요?”
열기는 실제였다. 얼굴이 화끈거려 외투를 벗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정도였으니까.
“육사 후배들은 물론이고 지휘받은 부사관들과 병사들 사이에서도 말씀이 좋더이다. 거기에 다른 분들과 달리 청렴하시기도 하고…….”
연화존자의 손짓에 커피를 날랐던 남자가 예의 그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갈색 종이봉투를 넘긴다.
이마에 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내용을 조금 살피다 눈을 감는다.
그것은 군 내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리의 나열이었다. 거기에 용공 혐의까지.
“다 아는 이름이죠? 그러니 내가 어쩌겠습니까? 멀쩡한 사람은 육군 참모차장님 한 분이니 대화를 할 사람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지.”
대한민국 장성들의 비리 종합 세트에 참모차장은 말문이 턱 막혀 입을 열지 못한다.
“아, 너무 내가 공적인 일만 이야기했나? 개인사도 곁들입시다. 포스타는 어때요?”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잔 속의 얼음은 하나도 녹지 않았다.
하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