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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34화 (34/175)

#34화

육군 참모차장이 곧바로 참모총장이 되는 경우는 최근 드물었다.

물론 장성급의 진급이란 일명 관운, 즉 현 정권의 지향성과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참모차장은 자신이 여기까지라며 체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북 유화적인 정책을 주로 펼치는 현 여당의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인사로 분류된 것이 컸다. 참모차장의 입장에서는 그저 군인다운 생각과 발언을 견지했을 뿐이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진급 길은 막힌 거나 다름없었던 것.

그래서 연화존자의 말에 순간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큰 욕심이 났고, 그만큼이나 큰 경계심도 덜컥 들었다.

하여 되묻는다.

“날 국가무공원의 허수아비로 세워 놓고 조종이라도 하려는 셈이오?”

“하하하하.”

그 말에 연화존자는 크게 웃었다, 재밌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격정적으로.

대답이 정답이다.

“하하. 말씀을 들으니 외부에 비치는 제 이미지가 어떤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만, 전 멀쩡한 사람 괴롭혀서 몰락시키는 취미 없습니다.”

김철민이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 한 모금 들이켠다,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하며.

자칫 하다간 군 지휘 계통 전체에 영향을 끼칠 커다란 칼춤을 춰야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연화존자에게조차 있었던 것.

앞선 설명은 그러니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 사람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사실이다.

믿고 갈 사람이 오죽 없었어야지. 깡패 새끼들, 범죄자 놈들 때려잡는 거야 아무런 부담이 없었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군대에까지 그런 식으로 손을 뻗는 건 부담스럽다.

군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내부에서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자에 대한 존중은 내 영혼에 새겨져 있습니다. 만약 제가 국방부에 영향력을 투사하겠답시고 돌아다닐 거였으면, 왜 가장 흠결 없는 장군님을 보자고 했겠습니까? 여기 있는 자료를 들고 가서 아무한테나 흔들어 대기만 해도 꼬리 잡고 흔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요. 쓸데없이 시간이랑 회의비만 낭비하는 회의, 진작 때려치우기까지 했을 겁니다. 열 필요도 없었어요.”

스스로 대한민국 정파인이라고 생각하는 김철민은 악한들을 미워하고, 삿된 것을 증오한다.

“편하게 가려면 진작 그렇게 갔겠지요. 제가 어려운 길을 좋아하는 변태는 아닙니다만, 민주사회를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룰은 지켜야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부정부패에 찌든 군인을 조종하는 걸 첫 번째 방안으로 꼽을 리 없었다.

돌아가는 길일지언정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하는 법.

국가무공원이 출범하며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같이 일할 사람,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찾던 그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전 그냥 올바른 사람이 위로 올라갔으면 하는 겁니다. 기준을 나름 객관적으로 잡아서요. 더불어 그 사람이 우리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조하기까지 한다면,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겠습니까?”

속마음을 들킨 장군은 뜨끔하여 변명을 시도해 본다.

“왜 내가 국가무공원의 의견에 동조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저런… 장군님, 저 무림인입니다.”

턱도 없는 시도다. 연화존자는 이미 다 알고 왔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행세 깨나 하는 것들 다 즈려 밟은, 꽤 실력 있는 무림인이지요. 이 말인즉슨 상대방의 심장박동 수가 분당 몇 회에 어떤 박자로 어떻게 뛰는지, 피부에 땀은 얼마나 흥건한지, 숨소리가 화가 나서 거친 건지 기분 좋아 거친 건지, 하나하나 다 잡아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가능한 일이오, 그게?”

“못 믿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살아 있는 거짓말 탐지기 수준은 된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정 미덥지 못하다면 어디 한번 장군님의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부터 되새기는 시간을…….”

“그만! 그만!”

그제야 참모차장은 눈앞의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새삼 떠올린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정재계와 야합한 서울의 조직폭력배들을 해체시키고, 자신을 죽이려던 재벌가에 복수하고, 아무도 잡지 못했던 극악무도한 강호의 범죄자들을 잡아들인 남자.

국가무공원이라는 전에 없던 기관을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며 차근차근 제 영역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강호인.

그런 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는 것이다.

“정확히 내게 뭘 원하는 게요?”

이에 김철민은 답한다.

“절차와 합리성에 기반한 선택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 또한 대답을 준비해 왔다.

“국가의 영토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대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나라, 대한민국은 분명 세계적으로 잘사는 선진국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많은 문제가 산재되어 있어요. 그것도 해결될 의지도, 의욕도 없이 방치되어 있고요.”

“그래서 군대에서부터 풀어야 한다?”

“맞습니다.”

옅은 미소로 대답하며 연화존자는 말한다, 회의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국방부와의 회의에서 말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하진 않겠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일 테고.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제안은 하납니다. 군에 내공심법을 보급하는 걸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결론지어 달라는 겁니다. 빠르게 하면 더욱 좋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되도록 되는 쪽으로 긍정적이면 더더욱 좋습니다.”

이에 참모차장은 말없이 잠시 자기 손과 무릎을 내려다보다, 남은 커피를 단숨에 비운다.

“…나는 아직 그만한 권한이 없소, 아시겠지만.”

들을 말은 다 들은 것 같고 이왕 여기까지 온 이상, 속내를 솔직하게 밝히기로 한다.

“김철민 씨 말이 맞소. 대한민국 군대, 문제 많지. 그런데 그거… 다른 사람들도 몰라서 못 바꾸는 걸까?”

감춰 왔던 생각의 속내는 제법 깊다.

“한두 명 잘라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군대 내부의 정치, 군대 바깥의 정치, 외교 문제, 국내 여론, 이익 단체와 시민 단체. 어느 하나 헤쳐 나가기 쉬운 것이 없소.”

“…….”

“한번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길이오. 군복 벗고 나가야 되는 거지. 잘 버텨서 혹 안 미끄러지면, 옆에서 밀어 버릴 거고. 그래야 누군가 올라갈 수 있으니까.”

목이 타는지 얼음을 아작아작 씹는다. 가슴에서 열불이 솟구치는 모양새다.

“그러니 묻겠소. 내가 당신들의 손을 잡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소?”

이글거리는 시선이 이를 대변한다.

“당신이 원하는 이상향, 잘 알았소. 나 또한 그 방향이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아. 거기에 당신들, 국가무공원이 출범 전후로 무슨 일을 했는지 역시 잘 보았지. 그렇지만 내게도 확신이 필요해.”

군 생활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였던 누군가의 가슴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당신과 함께라면 대한민국 군대를, 아니 내 사랑하는 조국을 바꿀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이에 답하는 연화존자의 응답은 빠르고 간단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하는지를 보시면 놀라서 겁이 날 정도일 겁니다. 곧 보여 드리지요. 일단… 나라를 좀 먹는 반국가 범죄자들부터 처리합시다. 나라를 팔아먹어 호의호식하는 놈들부터요.”

“오늘 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군.”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은 굳게 손을 마주 잡았다.

며칠 후 대한민국 언론을 뒤덮은 헤드라인은 대략 다음과 같다.

[고질적인 방산비리, 또다시 터져.]

[어디까지 썩어 있나? 부재한 안보 의식 속 제 잇속만 챙기는 업자와 지휘관들.]

[장군님의 수상한 재산 증식? 그 밝힐 수 없는 비법은?]

[대한민국의 아들들은 엉터리 군복에 허술한 무기, 장군과 비리업자 아들들은 외제차에 명품까지!]

대한민국 방산비리의 역사가 하루이틀 일이 아니긴 했다.

단군 이래 최대 군사 비리라는 율곡 사업이 있었고, 유명한 로비스트들, 거기에 계속해서 이어진 기밀 유출까지.

무수히 많은 반국가 범죄자가 국가를 지키는 사업이 자신들 지갑인 줄 알고 빼먹으려 온갖 수단들을 동원하곤 했다. 단가를 부풀리고, 뇌물을 주며 로비하고, 시험 성적을 조작하는 등.

이러고도 정말 생계형 범죄가 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말도 안 되는 품질에 바닥이 뜯어지는 전투화를 신형이랍시고 지급해 놓고 살살 신으라고 하지를 않나, 미래형 소총을 개발하겠다며 1,000억을 태워 놓고 여러 가지 잘못과 기준에 못 미치는 품질로 결국 사업에서 철수하지를 않나.

대통령이 방산 비리가 없다고 선언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기밀 유출로 무더기 징계를 받는 바람에 군 통수권자 얼굴에 똥칠을 하질 않나.

언제나 이런 것들이 일부의 문제라고, 의도치 않은 결과라고 변명하곤 하지만. 글쎄, 대한민국에 예비역이 한두 명 있는 것도 아니고 저게 과연 일부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통 모를 일.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다는 말이 왜 농담이 아니라 유행어가 됐는지를, 대한민국의 썩어 빠진 업자들과 군인들이 이번에도 보여 주었다.

체포된 자만 총 오십 여명이었고, 수사를 받은 참고인만 백여 명이 훌쩍 넘어갔다. 개중 전현직 군인은 절반이 조금 안 됐다.

사실 중요한 건 숫자보다 조사받는 자들의 계급일 터.

전직뿐 아니라 현직 영관급과 장성급이 더러 섞여 있었다. 심지어 이번 일로 장성급 여럿이 잡혀 가는 것도 모자라 업무에서 배제되는 바람에 국방 공백에 대한 우려마저 낳기까지 했다.

그래도 수사가 일사천리라는 점에서만큼은 대부분 속시원함을 느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혐의가 확인된 피의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범위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현재로서 말씀드릴 단계가 아닙니다만 방산비리의 특성상 범위가 광범위하고, 또 은밀하기 때문에 보완 수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사이비 교도들에게 테러를 당한 여검사가 멀쩡한 모습으로 뉴스에 나와 브리핑을 하는 걸 보며 또 누군가는 ‘저 검사는 겁도 없이 여기저기 아무 데나 끼어드냐’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번 일, 국가무공원이 군과의 협조를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방산 비리 품목이 문제였다.

-현 시점에서 특정 지을 수 없는 제3국으로 현재 국가무공원으로 흡수된 1급 국가 공인 문파, 현천문의 현천공이 유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국가무공원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무공의 유출에 엄정히 대처하고 있는 바, 보다 철저한 수사로 국익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무공원이 군대 곳곳을 누볐다. 현천문의 무공이 조직적으로 유출되었다는 정황은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유감이 많긴 했다. 이런 게 어디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현천공이 유출됐으니 일벌백계 하자는데 전직 현천문도들이 싫다고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리에 대한 조사는 육해공군 전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조사가 단순히 무공만 강하다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아니었던 바.

국가공무원에서 군 내부 고발자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했다.

검사 윤아영을 영입하며 내세웠던 조건 그대로였다. 출세와 권력이 좋은 줄 뻔히 알면서도 타협할 줄 몰라 고난을 자처하는 사람들. 옳지 못한 일에 눈을 감느니 차라리 크게 소리쳐 외치는 게 마음 편한 사람들을 국가무공원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군 자체의 정화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되었음에 절망하고 분노하여, 불이익을 감수하고 온갖 음해와 진급 누락을 감수하며 끝내 사랑하던 군을 떠나야 했던 내부 고발자들은 이러한 국가무공원의 초청에 기꺼이 응했다.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 오는 고난을 감내한 건 모두 이때를 위함이라 했다.

대통령 또한 여기에 손을 보탰다.

-엄정한 수사로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대변인의 짧은 브리핑이었지만 수사 자체를 뒤집지는 않을 거란 건 확실했다. 보직 해임된 장성들에 대한 후속 인사가 곧바로 이루어졌기 때문.

안보 공백을 두고 볼 수 없다는 핑계였지만, 누가 봐도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제스처에 군대 내부의 불만과 불안은 그만 폭발할 뻔하기도 했다.

아마 대규모 간첩 소탕 작전이 없었다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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