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주로 탈북민으로 구성되어 평택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마약 조직이 국가무공원에 의해 일망타진됐다.
얼마 전 죽은 러시아 출신 마교도와 커넥션을 갖고, 그에게 북한에서 가져온 약을 전달하던 혐의가 가장 먼저 적용된 결과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나쁜 놈들로 구성된 탈북자 마약 조직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들이 한 나쁜 짓은 그보다 조금 특별하다.
무려 정찰총국이 진두지휘한 대남 용공 분자 양성 세력이라는 또 다른 신분이 그렇다. 그 안을 파헤쳐 해 온 일, 하려던 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면 마약을 팔아 활동 자금을 마련하는 건 차라리 부수적일 정도.
속칭 빙두, 얼음 따위로 불리는 북한산 최고급 필로폰을 판 돈으로 대한민국 내 북한 우호 및 추종 세력을 만들고, 인물을 포섭하는 등의 업무를 해 왔음이 압수 수색 결과 밝혀지니, 이 정도면 가히 대남 여론전의 중추 세력이라 조금 부풀려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까지 하다.
심지어 도주와 격투 끝에 죽어 버린 조직의 두목은 무려 정찰총국 소속 대좌의 신분으로 국군으로 치면 대령급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이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입국했다 실행 직전 사로잡혔던 암살자가 북에서 대좌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고.
그리고 이 리인순이란 실명이 알려진 간첩 용의자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속여 왔다.
그는 평소 산동성 웨이하이를 기반으로 하는 무역업에 종사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을 오고 가며 최상급 필로폰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일을 수행한, 마공을 익힌 정찰총국 소속 군인이다.
김일성과 동거동락한 전대 문주라는 역사 덕에 북한 군부 내에서도 선택받은 소수나 익힐 수 있다는 유서 깊은 마교지파, 거력패부의 무공을 익히기까지 한 걸 보면, 정찰총국 내에서도 꽤 실력 있고 출신 성분 좋은 엘리트임이 분명했다.
정찰총국에서 칼을 갈고 내려보낸 간첩이란 건 그만큼 명약관화한 바. 국정원조차 이자의 존재를 몰랐음이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사실 이쪽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이 용공 조직과 거래를 했던 죽은 세르게이, 그의 신분이었지만.
국가무공원은 후속 조사를 통해 마약상 세르게이가 소비에트가 무너진 뒤, 마교가 사분오열 되며 사라진 걸로 알려진 마교지파 살령지문(殺領之門) 소속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했다.
그 말인즉슨 옛 냉전 시절, 자유 진영의 모든 정치 지도자를 공포에 떨게 했던 가공할 살문이 천마격살 후 마교내전에도 멸문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말이었으니.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세계가 발칵 뒤집어질 일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런 놈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도록 월급 도둑 노릇을 제대로 한 국정원, 아울러 마약 판 돈을 좋다고 받아먹고 북한에 우호적인 운동을 펼친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자 중 하나였다.
북한산 간첩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약을 팔고, 그 돈으로 대북 유화적인 여론을 조성하라고 내버려 둔 셈이니,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이란 말인가?
너무도 믿기 힘든 사실들의 조합이라 진위 여부에 대한 무수히 많은 의문이 쏟아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궁금증을 나은 질문은 이것.
‘어째서 이들의 활동이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나?’
대북 정보력에서만큼은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국정원의 정보망에 어떻게 걸리지 않을 수 있었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최근 탈북자가 늘어나며 검증에 약간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죽은 세르게이와 이번에 사로잡힌 정찰총국의 남파 조직 간에 직접적인 거래가 없었기 때문에 동향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료들을 분석하고, 잡아들인 자들의 진술을 받고 비어 있는 퍼즐을 맞춰 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이들은 평택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무역 회사로 위장한 살령지문의 지부를 러시아에 거래처로 두고 신용거래를 하며 수사망을 피했다.
평택의 회사를 통해 밀수한 북한산 마약을 받은 세르게이가 중고차 물량을 보내며 조직에 거래에 이상이 없음을 보고하면, 그곳에서 북한으로 돈을 세탁해서 보내거나 달리 필요한 물건을 보내는 식으로.
더불어 이를 실행한 러시아 회사는 미국의 대북 제재 리스트에 올라오지 않은 깨끗한, 하지만 살령지문의 마지막 잔존 세력이 운영하는 회사였던 바.
통상적으로 밝혀지기 어려운 구조였다 하겠다. 무너진 옛 영광, 소비에트 마교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이로서의 신뢰가 없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신용거래, 각자의 어려운 사정과 크나큰 이익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힘들었을 마교도들만 아는 이야기.
보안이 얼마 철저했던지, 리인순이 실질적으로 소유했던 제3자 명의로 된 회사에 근무하던 직원 중에는 자기 회사가 평범한 무역 회사라고 여기는 이들도 꽤 있을 정도였다.
이제 와 다 들통이 나긴 했지만.
“이인순이 마공을 익혀서 다행입니다.”
김철민은 옆 좌석에 앉은 윤아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일종의 변명이다.
“안 그랬으면 저까지 잡혀갈 뻔했잖습니까?”
“그랬으면 제가 잡았을 건데, 그렇다면 이번엔 순순히 잡혀갔을 겁니까?”
“아니죠.”
옛 생각이 새록새록한 여검사의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에도 유쾌한 걸 보면, 어쩌면 그런 척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죄책감을 가질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는 무림인이며, 정파의 후예다.
마교도? 안 때려잡으면, 손 붙잡고 쎄쎄쎄라도 할까? 마주 보고 인사하며 놀 만큼 친한 사이는 절대 못 될 텐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마교도 체포 중에 죽였다고 잡혀가야겠습니까? 그것도 약쟁이를? 그건 또 못 참지. 마공을 익힌 마인을 상대로 과잉 진압이란 단어가 성립할 수가 있기는 한 겁니까?”
그 말에 윤아영은 이마를 짚는다. 골머리를 앓는 기분이다.
연화존자가 손수 마인의 팔다리를 끊어 냈다는 소식은 대규모 간첩 조직 소탕의 미담에 묻은 약간의 흠결이었다. 마치 새로 산 옷에 거슬리도록 잘 보이는 실밥 같은, 그런.
정작 설왕설래의 당사자인 김철민은 당당하지만.
“마교 놈들은 기본적으로 잠력을 격발시키는 무공을 익히기 마련이어서 빠르게 기절시키지 않고서는 제압하기 힘듭니다. 시간 제한이 있어요. 자기 수명을 태워서 내공으로 바꾸는 수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리인순, 그자도 절 보고 안 될 것 같으니까 거력패부의 기본 심법인 광혼공이 아니라 연혼마공을 끌어올린 걸 보세요.”
“하지만 당신 정도 되는 고수라면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랬으면 그 인간한테 진술 절대 못 땄습니다. 시간 끌면 어차피 죽었고 운이 좋아 봤자 백치가 되거나, 무조건 이 둘 중 하나가 됐을 거거든요. 빠르게 고통을 줘서 마기가 골수까지 치밀기 전에 기절시키는 게 아니면 결과는 그런 식으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게 마인이고, 마교입니다.”
돌아본 연화존자의 눈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 마음에 드는 결과가 아니었을 겁니다. 리인순의 진술을 딴 덕에 살령지문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리인순의 입 말고는 세르게이가 살령지문의 문주, 귀령살(鬼領殺)의 막내 제자라는 사실도, 귀령살 그 늙은이가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무려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종적이 끊겼다는 진술도 듣지 못했을 겁니다.”
지난 세월, 부정의한 현실에 분노하며 북한-마교와의 최전선에서 싸워 온 남자의 눈빛엔 그런 게 있다.
아직 젊고, 마교를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윤아영으로서는 전부 이해하기 힘든 감정들이.
“안 그렇습니까? 아무리 북한에서 온 암살자조차 감탄하곤 하는 인권적 조사의 나라 대한민국이라지만, 그것도 마공을 익히지 않았을 경우에나 베풀 수 있는 관대함이고 절차인 겁니다. 이성이 날아가 버린 채 피와 살육만을 바라는 괴물을 인간이라 부르긴 해야 합니까? 전 그런 것들이랑 같은 종으로 엮이기 싫습니다.”
“국장님, 전 그 사람의 목숨이 귀하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렇지만 윤아영은 늘 그랬듯이 쫄지 않는다.
이런 것에 쫄 사람이었다면 진작 그만뒀을 터였다. 마침 얼마 전 좋은 핑곗거리가 있기도 했지.
하지만 윤아영은 여전히 국가무공원에 다리 붙이고 있으니, 어쩌면 싫은 소리야말로 그녀가 꼭 해야 하는 일일지도.
“그런 인간의 피를 봄으로써 우리에게 가해질 여론의 압박이 싫은 겁니다. 아시죠? 정치인들 이런 일만 보면 신나서 달려드는 거? 날조를 해서라도 자기한테 유리하게 사건 조작하는 거? 우리가 그런 게 싫어서 어떤 놈들을 잡아넣었습니까?”
이러한 윤아영의 말은 사실이다.
서울상공인모임회를 털고, 다도선객과 동방요선을 두들겨 잡은 국가무공원이 도대체 무슨 자료를 어떻게 들고 있는지 몰라 침묵하던 정치인들은 최근 기다렸다는 듯이 성토에 나섰다.
공세의 때라고 생각하는 벌 떼처럼.
진압 방식이 너무 잔인한다, 국가무공원의 인권 의식이 걱정된다,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와 선량한 국민들이 걱정할까 저어된다 등등.
당연하지만 조선인민국 정찰총국 소속 리인순 대좌가, 조선로동당이라는 반국가 단체가 불법 점검한 대한민국 영토의 주민이니 지켜 줘야 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주장은 공격을 위한 공격.
생기자마자 사회 곳곳을 뒤집어 엎은 국가무공원의 활동에 켕기는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그 검은 속내를 잘 아는 김철민이기에 그런 떠들어 댐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지만.
“UN 무공헌장조차 마공은 금지되지 않았습니까?”
UN 무공헌장은 1992년, 소련이 무너진 후 발표된 내공 사용에 대한 전 세계의 결의로, 개중 이런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그 어떤 내공심법도 인간의 정신과 의지를 나쁜 쪽으로 변화시켜서는 아니 된다.]
먼 옛날, 중원에 한 번씩 나타나곤 했던 무림맹이 맹주령을 통해 마교를 무림 공적으로 삼았다면, 21세기 현대사회는 바로 이 헌장을 통해 마교를 인류의 적으로 천명했다.
의도치 않게 여기에 포함되게 된 일부 사파 무공을 포함해서 말이다. 중국의 사파 무공팔이들이 괜히 인간의 정신을 침식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개정판을 만들어 팔아먹는 게 아닌 법.
한마디로 지금 김철민이 기분 좋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이 UN 무공헌장의 지엄함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마교도를 대상으로 한 체포였다고 하나, 그 정도의 부상을 입혀 놓고도 아무 조사조차 안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기분이 좋지 못했을 테고.’
윤아영은 김철민의 당당한 태도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자신이 어떤 선을 밟고 움직이는지 잘 아는 사람에게 더 말해 무엇하랴?
조언이 아닌 잔소리는 그녀 쪽에서도 사양한다.
“그래도 앞으로는 적절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검사님.”
반로환동으로 외모가 젊어 보여서 그렇지 나이도 자신보다 훨씬 많은 사람인데, 알아서 잘하겠지.
지금껏 연화존자의 말을 듣고 잘못된 게 없지 않나?
그 생각을 하니, 오늘의 저 들뜬 모습이 좀 새롭기도 하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겁니까?”
“쓸 만한 무기를 찾으러 간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 김철민에게 윤아영 역시 되물었다.
“무엇을 하러 가냐고 물은 게 아니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김철민이 무기를 쓰는 걸 보지 못했고, 또 현대를 살아가는 강호인에게조차 병장기가 꽤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알기에, 윤아영은 그의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이해한다.
간접적으로나마 안다. 드라마, 영화, 만화 등에서 무기에 집착하는 무림인의 모습은 종종 보이곤 했으니까.
그러니 저 들뜬 모습을 이해야 한다지만…….
“우리가 갈 곳이 서울 안에 있습니까?”
“그럼요.”
칼을 받으러 간다길래 막연하게 서울 바깥을 생각했던 윤아영은 너무도 금방 차를 세우는 걸 보며 약간이나마 당황하고야 만다.
여기는, 거기잖아?
“칼 구하기에 서울에서 청계천만 한 곳이 없죠.”
그들은 광장시장 근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