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윤아영은 묘한 얼굴로 김철민과 대화 중인 남자를 바라본다.
그곳은 광장시장 인근, 청계천을 따라 자리한 흔하디흔한 철물점 앞이었다. 지나가다 보고 두어 걸음만에 곧바로 잊어버릴 평범한 가게, 그 앞 길가에서 남자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세월을 견디고 있는 남자였다. 그러니까 딱 김철민, 연화존자라 불리는 저 위대한 무인이 반로환동하지 않았다면 동년배로 보일 연배.
오고 가는 정겨운 대화만 들어 봐도 저 두 사람이 오랜 안면이 있는 친구 사이라는 건 알 수 있다.
“김철민, 너! 이 망할 놈의 자식!”
“오랜만에 봤다고 너무 격하게 반가워하는 거 아니야?”
“반가우니까 한 대만 맞자, 이 개자식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연화존자의 멱살을 잡고 한 대만 때리자 애원하는 모습이 실로 그렇다.
나이가 무색한 팔뚝과 어깨를 감안하더라도 연화존자를 잡고 대거리를 하는 걸 보면, 그걸 또 웃으며 받아 주는 걸 보면 저 둘의 인연이 보통 친분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이 나쁜 놈아! 그렇게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하더니,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엉? 죽어도 한국에 안 돌아올 거라며? 그럴 거라며?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
“하하하. 사람이 이렇게 의외성이 있어야 인생이 재미있는 법이지. 너처럼 자식에 손주 손녀까지 한가득 낳아 재롱 보는 게 아니면 이 나이에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니미. 하여간 말이라도 못하면, 개같은 놈 같으니.”
온몸에 힘이 빠져 가게 앞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에 도로 주저앉은 남자는 대한민국에서 검강을 버틸 명검을 만들 실력을 지녔던 마지막 장인의 아들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윤아영은 한다. 고수가 쓸 만한 무기를 만드는 건 요즘 시대에 굉장히 드문, 어려운 재주였으니까.
강호가 몰락하면서 무너지고 축소된 게 무림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수많은 기인이사와 의협지사들, 또 위대한 신공절학들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신병이기의 시대 또한 저문 지 오래.
냉병기를 만드는 장인들의 피해는 개중에서도 가장 몰락의 폭이 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림의 다른 분야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수준은 떨어지고 지향점은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내공심법 대한 수요 자체는 여전하다 못해 늘어나는 추세이지 않나?
거기에 무림의 이름을 날렸던 의가들 같은 경우엔 오히려 위기를 기회 삼아 제약 회사 등 의료계로 진출, 예전보다 번성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옛 강호를 잃어버린 세상은 검강과 같은 고절한 수법을 버틸 명검을 만들어 낼 기술을 잃어버렸다.
총과 화포의 위력 아래 오래된 모루와 망치는 녹이 슬어 찾는 이 하나 없는 퇴물이 된 지 오래. 21세기 들어 진정한 명검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통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중국 공산당에서 수천 년 역사의 기술이 남아 있다 광고하며 비싼 돈 주고 팔아먹는 물건들이 있긴 하지만, 신빙성은 없다고 봄이 옳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그만한 실력을 지닌 장인이 문화혁명 시기를 무사히 넘어갔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있었더라도 하방 당해 홍위병한테 학대당하다 죽었을 게 뻔하다. 사실 문화대혁명까지 갈 것도 없이 대약진 운동 때 마을 단위로 실행하던 토법고로 때문에라도 기술의 명맥은 모조리 끊겼겠지만.
애들 먹는 분유조차 가짜가 팔리는 중국산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여 남은 건 오직 옛 선각자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이 남긴 걸 찾아 헤매는 게 전부이니, 20세기 이후 현대사회에 옛 고인들의 신병이기는 진짜 무인들의 손에 쥐어지기보단 오직 콜렉터의 주머니를 터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무림에 문외한인 윤아영조차 연화존자가 무기를 구하러 간다는 말에 호기심을 느꼈을 정도인 것이다.
옛 유명 무림인이 쓴 검이 소더비 경매에서 200억에 팔렸는데, 그 정도면 싸게 팔린 거라느니 하는 뉴스가 보도되곤 하니, 명검 제조 능력이 실전됐다는 걸 보통 사람들도 알 수밖에 없지.
그래서 윤아영은 김철민이 칼을 찾으러 간다고 했을 때 다른 풍경을 상상했다. 심산유곡의 낡고 허름한 건물, 속세와 떨어진 자연인의 삶, 그 안의 뜨거운 열기와 말없이 고집스러운 장인의 모습 같은 그런 것들을.
이토록 가까운 종로 인근의, 지나가며 눈길 제대로 줄 일 없었을 이런 작은 철물점은 미처 상상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보고 있자니, 어디서 들은 말처럼 강호는 역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곳인가 보다.
“담배, 아직도 안 피냐?”
“건강 생각해야지, 몸이 재산인데.”
남자, 정동훈은 김철민의 손사래에 하나 빼 물었다가 윤아영을 보고 집어넣는다.
“그래, 나도 끊어야지.”
그러곤 온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등을 쭉 펴고 한숨을 푹 쉰다.
그런 친구를 보며 즐거워 보이는, 평소에 보기 힘든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을 지어 보인 연화존자는 근황 토크를 시작한다.
“회사는?”
“둘째가 하고 있어. 큰애한테 물려줄까 했는데,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장남이라고 그걸 덜컥 받겠냐? 제 하기 싫으면 평양 감사도 그만인데. 너도 알겠지만 이 일이란 게 재능도 그렇고, 흥미 없이는 못 해 먹을 짓이지. 둘째가 욕심 내기도 하고 재주도 있어 보여서 맡기고, 난 여기 앉아 소일거리나 한다.”
자식 자랑은 어른들의 끝나지 않는 주제였다.
“그래도 첫째 놈이 제 밥벌이 해 먹고 살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며느리도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싹싹하고. 큰애네 애들이 또 제 엄마를 닮아서 어찌나 예쁘고, 애교가 넘치는지. 허허. 요즘 그 낙에 살지, 그 낙에 살아.”
“둘째는 아직 결혼 안 했고?”
“결혼? 어이구, 말도 마라. 회사 물려 받을 땐 그리 이뻤던 놈이 맨 틀어박혀서 이거 연구한다, 저기 투자한다 이러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단다. 괜히 결혼 안 하냐고 했다가 그러면 회사 접냐고 대들어서 본전도 못 찾았어. 나쁜 놈, 그럴 줄 알았으면 안 물려줬지.”
“안 물려주면? 팔게?”
“둘째 놈 결혼만 시킬 수 있다면 그깟 회사라고 못 팔겠냐? 나도 군바리 놈들 되도 않는 소리 지긋지긋하고, 돈이라면 벌 만큼 벌었다. 애만 낳아 봐라, 아주 내가 업고 다니며 키워 주련다.”
돈 벌고, 물건 만드는 재미에 팔려 연애도 안 하고 있다는 둘째 얘기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정동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 말을 듣는 김철민의 얼굴에도 평소와는 다른 편안함이 가득하여 윤아영은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자식이구나, 화목한 가정이구나.
혼자 되신 지 오래인 어머니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넌 결혼… 에휴, 됐다. 내 새끼도 못 보낸 장가를 친구 놈한테 무슨 염치로 말하냐?”
“푸하하. 야, 내가 이제 와서 무슨 결혼이냐?”
“네 녀석이 못 간 거냐? 안 간 거지. 젊어지기까지 했으니 눈 딱 감고 그냥 질러, 임마. 그리고 일전엔 고마웠다.”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 정동훈이 대뜸 고맙다는 말을 한다.
“뭐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왔다 간 거, 쉽지 않았을 텐데.”
김철민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어르신 돌아가시는데 당연히 와 봐야지, 금수 새끼도 아니고.”
정동훈과의 인연 또한 연화존자가 맺은 대다수의 것과 같이 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아버지 대부터 교류가 있었고, 함께 많은 일을 했다. 비록 지금 한쪽은 은퇴에 가깝게 손주 손녀의 재롱을 보며 소일거리하고, 다른 한쪽은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정력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둘 사이에 쌓은 세월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 간 인연이란 결코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어서 인연은 언제나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래도 몰래 절만 올리고 간 게 미안해서 이제야 왔다, 염치가 없어서. 아무리 내가 무림밥 오래 먹었어도 양심은 있어.”
“미친놈, 말은. 그래도 됐다. 몰래라도 아버지 장례식에 진짜 안 왔으면 오늘 너 죽고, 나 죽었어. 그나저나, 검사님이시죠? 얼마 전 뉴스에서 봤습니다. 이젠 좀 괜찮으신가 보네.”
대화의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니, 윤아영이 가볍게 목례한다.
그걸 본 정동훈이 뜻밖의 요구를 한다.
“손 한번 봅시다.”
당혹스러웠지만 무슨 뜻이 있겠거니 하고 두 손을 보이니, 손목을 잡은 정동훈은 한동안 꼼꼼하게 살피는 게 전부.
그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게 안에 들어가 한참 있다 나온다.
“받아요”
들고 온 꾸러미가 한가득이다.
“이게 다 뭡니까?”
“필요할 거요.”
“…….”
“원래 모난 놈 옆에 있다 돌 맞는다고. 철민이 이놈이랑 같이 일하다 보면 그 꼴 보는 게 하루이틀 아닐 거니까, 가지고 다니면 쓸모가 있을 거요.”
통렬한 진실을 내뱉은 정동훈은 칼과 총을 권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나 무림인의 친구는 과연 무림인의 친구.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대신 윤아영은 멍하니 손에 들린 것들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정동훈이 건넨 물건들은 아름다웠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 놈이랑 일하는 분인데, 드릴 게 내가 이것밖에 없네. 나중에 우리 회사 방탄복 하나 보내 드릴게. 그래도 이 녀석이 자기 사람 나 몰라라 하는 놈은 아니니까 한번 졸라 봐요. 칼질하고 총질하는 건 좀 합니다. 내 보증해요.”
하나는 단검이었다. 흑단목으로 된 칼집이 예스러운 광택을 흩뿌리고, 들어 보니 무척 가벼워 부담 없이 몸에 지니고 다녀도 될 만하다.
다른 하나는 회색 건케이스 속 탄창과 함께 들어 있는 군청색 권총. 그것은 기능미의 극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 주는 듯했다.
얼마 전, 연화존자의 진기도인으로 무공에 입문한 탓일까? 홀린 듯 눈을 뗄 수 없다.
“단검 저거, 어르신 물건 아니야?”
“어. 나중에 네가 누구라도 데려오면 주라고 하시더라.”
“총은?”
“내 마지막 작품이다. 참, 내 정신 봐라, 네 것도 가져와야지.”
그 말에 김철민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정동훈은 다시 한번 가게로 돌아간다.
이번엔 좀 오래 걸렸고, 그 사이 윤아영은 재밌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살피느라 바쁘다.
“조만간 단검 쓰는 법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권총은 사격장에서 같이 연습하도록 하고요.”
그 말에 윤아영은 뭔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지며 기가 막히기도 하다.
이 인간하고 엮이면서 내 인생도 멋대로 흘러가네, 검사가 칼과 총이라니.
그 모습을 보며 웃은 김철민이었지만 다음 순간, 그 또한 놀라움으로 눈이 커진다.
“자, 네 거. 모양이 좀 달라졌지?”
친구가 건넨 칼을 말없이 집어 든다.
그의 마지막 기억과 사뭇 차이가 있는 모양새의 집안의 가보를.
이건 상상 못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이야?
갈색빛 수수한 검집과 달리 뽑힌 칼날은 하얗다 못해 푸른 칼날,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은은한 붉은빛이 어렸다.
완벽한 균형감과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예기였지만, 당황스럽다.
기억 속 검은 이보다 크고, 무거웠으며 투박했다.
검날을 녹여 다시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거, 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이다.”
얽힌 사연을 설명하는 정동훈은 끝내 참지 못하고 담배를 꺼내 문다.
“네놈이 다시는 쓸 일 없을 테니 괜찮은 놈 있으면 줘 버리라고 나한테 보냈잖아? 아버지가 뺏어 가셔서는 한참을 들여다보시더니 녹여서 다시 만드셨어. 삼 년은 꼬박 매달리셨지, 아마?”
“어째서?”
“마기를 굴복시켜야 된다고 하시더라.”
그 말에 김철민의 고개가 돌아가고, 그 서슬에 친구의 입에서 담뱃재가 툭 바닥에 떨어진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노인네, 치매가 왔나’ 했지. 뭐에 홀리신 분처럼 작업하시는데, 말릴 수도 없고 미치겠더라고. 나중에 알았다, 마기를 굴복시켜야 된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마지막 한 모금을 빤 그가 허리춤의 휴대용 재털이에 꽁초를 집어넣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똑바로 마주 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완성한 그 검, 이름을 천마도검(天魔屠劍)이라 붙이셨더라, 철민아.”
이에 연화존자는 과거를 회상한다.
천마격살의 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