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면접장은 삭막하지만 밝았다.
사오십 명은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방에 커튼을 활짝 열어 놓아 떠도는 먼지마저 눈에 들어올 만큼 채광이 좋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휑하여 허전해 보이는 것도 사실.
“그쪽으로 앉으시죠.”
사람이 많지 않아 더욱 그런 감상을 준다. 앉아 있는 면접관은 총 여덞 명. 정장 차림에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그들의 대다수는 젊다.
그리고 계급, 나이 상관없이 한데 섞여 방 안으로 들어온 이준형과 다른 아홉 명의 피면접자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것은 최근 올라가고 있는 국가무공원의 위상과 함께 면접관 자리에 앉지 않은 단 한 사람이 만들어 내고 있는 내부의 기묘한 분위기 때문.
‘저 사람이 연화존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양복 차림의 정갈한 모습이건만, 이 자리에서 가장 유명하고 높은 지위일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어두운 색의 면바지에 셔츠를 입고, 창틀에 앉아 온몸으로 햇살을 즐기고 있는 그가 바로 국가무공원의 실질적인 수장, 연화존자 김철민이었으니까.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으니 만큼 알아본다. 그가 맞다.
혈야쾌조, 다도선객, 동방요선. 흔히 대한민국 검경의 3대 수치라 불리던 최악의 범죄자들을 일소하며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확 사로잡은 자를 몰라보기도 힘들다.
국가무공원 파견 부대 면접에 참여할 거라는 예상을 내심 하는 사람도 이미 많았다. 지금, 그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지만 정작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한가로운 태도는 기이하다.
연화존자는 들어온 면접자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작은 책을 읽고 있다.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면접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당혹스럽지만, 정작 그들을 제외하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면접을 진행하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
면접관 중 하나가 외운 것 같은 소개를 읊는다.
“먼저 국가무공원 파견 부대에 지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파견 부대의 경우 국가무공원과 국방부 간의 협약을 통해 일종의 시범 부대로 운용될 예정이지만, 차후 상황에 따라 정식 부대로 완편, 발족할 가능성이 큽니다. 더불어 이번 파견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내신 분들께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을 예정이오니, 이 점 염두에 두시고 면접에 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여기, 왼쪽에 계신 분부터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법 많은 것이 걸린 면접은 한꺼번에 열 명이나 면접장 안으로 부른 것치고는 싱거웠다.
각자 1분 제한으로 자기소개를 한 후 평이한 질문들이 이어졌는데, 주로 군으로부터 받은 이력서의 사실관계 확인 여부를 묻는 정도여서 ‘이 정도면 굳이 여기까지 부를 이유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면접자들이 하게 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저 유명한 무림인, 김철민은 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아예 관심도 없어 보여 기분 나쁜 사람도 있을 정도.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
정확히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한 사람.
‘이거, 이거 왜 이러지?’
면접장으로 들어온 직후부터 이준형 하사는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을 받아 참기 어려웠다.
그것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기분, 혹은 부담감으로 인한 긴장과는 완전히 다른 육체적인 느낌.
왠지 모르게 간질간질하여 불개미 떼가 온몸을 깨물면서 천천히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어 남몰래 군복 사이에 손을 갔다 대 보지만,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기분까지.
가장 미치겠는 건 이러한 불쾌감과 함께 영문 모를 시원함이 함께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뜨거운 김이 나오는,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얼음 막대기로 여기저기 쿡쿡 찔러 대는 것 같다면, 이것에 가장 가까울까?
누가 들어도 이상한 상황이라 이 하사는 차마 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할 건가? 간지러워서 면접을 못 보겠다고? 이 기회를 이렇게 놓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결심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상 반응이 온 게 아닌가 의심하며 참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애써 인내하려 해 보았지만 불쾌감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기까지 해서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했을 정도.
연화존자의 입이 열린 건 이 하사가 더는 견딜 수 없어 쓰러지기 직전의 그때였다.
“이준형 하사님, 괜찮으십니까?”
고개 한번 돌린 적 없으면서 이름을 정확히 호명하는, 면접장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열린 연화존자의 입에 이 하사는 정신이 번쩍 든다.
멍한 얼굴과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면접자들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면접관들은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자신은 땀에 절어 있었다.
이마와 얼굴 등에서 흐른 땀이 온몸에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이 옆에 휴게실로 가셔서 잠시 씻고 가시죠.”
“아, 아니요. 그럴 수는…….”
“괜찮습니다, 오세요.”
보던 책을 그대로 덮은 연화존자가 손수 이 하사를 부축한다. 면접자들 사이에 놀라움과 질시, 두려움 같은 것들이 퍼지지만 당사자인 이준형 하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씻은 듯 사라진 기이한 감각으로 인한 개운함에 정신이 먹먹했기 때문이다.
“놀라셨죠?”
멍하니 걸음을 옮기던 그에게 연화존자는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아까의 무관심이 거짓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다정하다.
다음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들긴 했다.
“씻고 쉬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준형 하사님께서 지닌 재능이 이렇게 뛰어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좀 과했군요.”
“…재능이요?”
“네. 이 하사님에겐 꽤 괜찮은 소질이 보입니다. 괜찮으시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준형 하사는 방금 전, 알 수 없던 느낌이 눈앞의 남자와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개미, 개미가 걸어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뜨거운 것들이 제 전신을 뜯어먹는 느낌이었죠.”
“나쁘기만 했나요?”
“조금은 시원했던 것도 같습니다.”
“제 생각보다 더 괜찮은 재능이군요.”
진짜 면접은 자기소개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도.
빙그레 웃은 연화존자가 다른 것들을 또 물어온다.
“집안에 무공을 익히신 분이 계십니까?”
“증조부께서… 6‧25전쟁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가전 무공을 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증조부님께서 그럼?”
“참전 유공자이십니다.”
대답을 하며 이준형 하사는 입맛이 썼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술에 취하면 늘 우리 이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아냐며, 손자인 이준형을 무릎에 앉힌 채 말씀하시곤 했다. 뼈대 있는 무림인 집안이 독립운동을 하며 어떻게 몰락했는지, 그럼에도 제법 이름난 무인이셨던 증조부께서 6‧25전쟁 때 어떤 활약을 하셨는지, 구구절절 사연은 길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선택한 군인의 길이었다. 국가무공원 파견에 지원한 것도 어찌 보면 집안의 역사를 알기에 더 흔쾌히 나선 것이기도 하고.
연화존자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것이 마냥 헛된 기대는 아니었나 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연화존자는 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두 사람은 나눈다.
“이준형 하사님, 씻고 나오시면 추가 안내가 있을 겁니다.”
“…추가 안내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면접이라는 소리죠.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대기하던 다른 인원에게 이 하사를 인계한 연화존자는 다시 면접장으로 돌아갔고, 이후의 일은 그의 말대로 진행되었다.
씻고 나오니 개인용품 일체가 준비된 개인실이 배정된다. 거기까지 안내한 국가무공원 측 진행 요원은 이틀간의 휴식 후, 체력 테스트가 있을 테니 푹 쉬라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
면접 당일이 되자 이 하사는 충분한 휴식이 왜 권고되었는지 알게 된다.
“스쿼트 최대 중량을 측정하겠습니다. 준비되시면 트랩바를 잡고 그대로 드시면 됩니다. 10kg씩 무게를 올리겠습니다.”
“달리기 기록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측정합니다. 하나는 100m 기록, 하나는 2km 기록입니다.”
“수영 기록 재도록 하겠습니다. 구비된 수영복으로 환복 후 이동하시겠습니다.”
두 번째 면접은 체력 테스트였다.
평가는 절대평가였지만, 단순히 기록만 가지고 합격 여부를 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가장 젊은 사람부터 가장 나이 많은 사람까지, 모두 동일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건 맞았다.
1차에서 걸러진 면접자 중에서도 약 삼십 프로 정도가 통과했다. 이 하사는 거기에 포함될 수 있었다.
쉽지는 않았다. 그만둘까, 때려치울까. 그런 생각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했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다. 이보다 더 큰 당위성이 어디 있는가?
연화존자의 격려 아닌 격려 또한 떠올리며 힘을 냈다. 재능이 있다는 그 말, 연화존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소질이 있다는 말은 이준형 하사로 하여금 적당히를 잊게 만들었다.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통과하지 못했을 만큼 빡빡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건 체력 테스트가 끝나고 이튿날에 있었던 필기 테스트.
서술식이라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침투 작전 중 부상자가 생길 경우 고려해야 할 사안과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지휘관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논하시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시겠습니까? 아니면 거부하겠습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런 선택을 내린 이유와 함께 뒤따라올 불이익의 극복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오.]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 아는 바와 생각하는 바를 상세하게 적으시오.]
[본인이 생각하는 혹은 경험한 군 조직의 문제점을 적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시오. 단, 범위와 규모는 폭 넓게 제안하여도 무방합니다.]
하루를 꼬박 써서 이루어진 시험이었다. 시간 제한은 오후 6시 전까지. 빨리 작성하면 먼저 제출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대부분은 그 시간을 전부 썼지만.
사흘 후 결과가 나왔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인원은 총 삼십 명.
그런 그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는 이 역시 연화존자만큼이나 대한민국 무림에서 명성이 있는 사람이다.
“어려운 심사를 통과한 여러분에게 축하와 반가움을 전하오. 국가무공원장의 자리를 맡고 있는 강태형이라 하오. 아시는 분도 있을 테지만 강호에선 운하신권이라 불리는 늙은이오.”
그간의 경력과 나라에 대한 공헌으로 국가무공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는 운하신권은 평소처럼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것이오.”
선언한다.
“이는 결코 과언이나, 허언이 아니오. 왜냐하면 여러분이야말로 다가올 새 시대, 내공심법이 보편화될 미래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첨병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얼마 전, 동방요선을 때려잡고 연화존자와 청해마도와 함께 새로운 내공심법 체계의 기틀을 잡은 운하신권은 상기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연화존자가 돌아왔음을 가장 크게 실감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우리 국가무공원은 궁극적으로 전 국민이 내공심법을 익히는 시대, 전 세계로 대한민국의 무공을 수출하는 시대를 이룩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소. 그리고 그 첫걸음을 군대에서 시작하고자 하오.”
누가 있어 이런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국가와 시대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는 놀라운 시도를?
아무도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은 문제들에 이토록 과감하고, 대범하게 나설 사람을 운하신권은 알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이 무궁무진하나 그 말을 모두 쏟아 내자면 사흘 밤낮을 떠들어도 모자랄 터이니, 이만 줄이겠소. 우리는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니 말이외다.”
하여 가슴이 벅차기까지 하다. 상상을 실현시키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생각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운하신권의 늙은 심장이 나이를 잊고 뛰고 있다.
젊었던 그때처럼.
어쩌면 그때보다 더.
“일주일의 휴가 후, 진기도인을 시작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