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지원이 생각보다 저조했네?”
국가무공원이 임시로 쓰고 있는 광화문 정부 청사의 임시 회의실에서는 시범 부대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과 모집 과정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다.
휴가 간 인원들의 복귀 이틀 전까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각하다.
부대원 선발을 무사히 마쳤건만, 걸림돌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참모차장이 대장으로 진급하여 참모총장으로 영정하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장군들이 수두룩하게 날아갔고 비리 관련 수사도 진행 중이라 군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시범 부대원 모집이 태업에 가깝게 방치될 수밖에 없던 군 내부 사정이 오늘의 첫 번째 주제.
그럴 수밖에 없다. 국가무공원이 준비한 내공심법을 시범 적용할 파견 부대를 구성하는 건 정말이지 지난하고, 지루하고, 지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넌덜머리가 날 만큼.
“여기저기서 브레이크를 걸고 있습니다. 진기도인단을 양성하고, 시범 부대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다행히 대규모 방산 비리에 엮인 장군들이 여럿 낙마했음에도, 그로 인해 흔들렸던 군 내부 분위기 자체는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다.
쓰리스타로 끝날 예정이던 참모차장의 영전 덕으로, 군 내부 두루두루 평판이 좋았던 그가 진급하며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다독인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적어도 육군 쪽은 그랬다. 비리 규모가 남달랐던 해군 쪽은 한참 난리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 규모를 못 본 체 넘어갈 수도 없는 일.
아무튼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 육군의 수장이 된 건 분명 긍정적인 상황이지만, 그 외의 나머지 상황이란 국가무공원에 그리 우호적이지가 않다.
“군 내부에서 말이 나옵니다. 신생 조직에서 본인들 밥그릇을 위해 국가무공원에서 군을 흔드는 거 아니냐고요.”
“대통령도 전처럼 수용적이지 않습니다. 슬슬 제동을 걸려는 듯이 스탠스가 조금 미묘합니다.”
“방산 비리 건으로 소송이 길어질 기미가 보입니다. 증거를 인멸하고, 주요 증인들에 대한 회유의 움직임이 보이더군요.”
지긋지긋한 일들이었다.
혈야쾌조를 체포하고, 이어서 동방요선과 다도선객을 잡은 국가무공원에 정재계는 침묵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이제 본인들의 치부가 들통난 데에 불만이 많은 군내 인사와 함께 슬금슬금 반격을 준비하는 모양새.
시간이 지나 국가무공원의 힘과 영향력이 더 커지면 곤란하다는 감상을 공유하는 걸로 보인다.
“뭐, 이해 못 할 건 아니지. 잘못한 내 새끼 야단쳐도 본인들이 야단쳐야지, 밖에서 뭐라 하면 기분이 팍 상하는 게 사람이거든. 또 우리 대통령님께서야 임기가 2년 남았는데 온갖 일들이 빵빵 터지니, 마음 편할 수가 없으리란 것도 이해는 해. 모가지 날아간 장군들도 다 여당에서 원하던 인선이었잖아?”
책상 위로 손가락을 두드리며 하는 연화존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다음 나온 분노엔 공감한다.
“근데 여당이 동의했건 야당이 동의했건, 남의 새끼건 내 새끼건 상관없이, 내가 다른 것도 아니고 방산 비리, 군납 비리 저지른 놈들 잡아다 찌른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됐다는 거야?”
연화존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어이가 없다.
“다 국가에 해를 끼치는 해충 같은 인간들만 솎아 내자는 거였잖아? 나라에서 군인 대우 이따위로 하는 것도 모자라 윗대가리들이 그렇게 해 처먹었으면 할 말이 없어야 정상 아닌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국가보안법은 엉뚱한 데다 쓰는 게 아니라 이런 때 써야 되는 거 아니냐고. 방산 비리만큼 반국가적 행위가 어딨다고?”
연화존자가 군납 비리, 방산 비리를 터트린 건 다른 게 아니었다.
그는 저런 자들이야말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이기적인 종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인간이야 종류도 여럿이라지만, 개중에서도 국방에 대해서는 관용이 불필요하다고 연화존자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치의 양보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국가무공원이 너무 커져서 군을 좌지우지하는 걸 견제하겠다는 것 정도는 오케이. 그 밖의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는 받아 줄 수 없어. 우리 시간 없어.”
내공심법 보급은 질질 끌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추진력이란 게 필요한 법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되는 데로 하기엔 이 일은 국가무공원의 중요한 핵심 사업이다.
그렇다고 게눈 감추듯 설렁설렁 대충 할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낭비할 필요 없는 시간을 페이퍼 작업과 알력 싸움으로 버릴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주변국에선 반응이 어떻지?”
이 세상엔 대한민국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에 그렇다.
“얼마 전 CIA 쪽에서 한국 지부장 편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저런 말이 많긴 했지만, 결국 긴밀한 협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공심법을 얼마에 팔 거냐는 소리군. CIA로 연락 온 걸 보니, 리베이트라도 해 줄 기세인 것 같은데?”
“정보부에선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으로 돌아간 다니엘 김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수의 채널을 통해 국장님과 만날 다리를 놓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누가 세계 최강 대국 아니랄까 봐, 연락도 요란하게 돌리네.
“만나 주는 거야 어려운 일 아니지. 근데 만나고 싶으면 공식적으로 요청하라고 그래, 뒤에서 찔러보지 말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가 미국이래도 국가무공원 쪽에서 아쉬울 일은 없다. 무공을 가지고 있는 건 이쪽이며, 돈이나 다른 것? 아쉽지 않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대화와 협상을 원하는 미국은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일본 쪽에선 저희 쪽으로 인력을 잠입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도둑질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걔네는 그런 걸 보면 진짜 음습한 면이 있다니까.”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일본의 사정을 이해한다. 여기는 공식적으로 나설 수도 없는 처지거든.
미국만큼이나 내공심법 보유에 예민한 나라인 일본은 국가 단위의 내공심법 보유를 금지하는 평화 헌법의 조항 때문에 공식적으로 나설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이 일본 정부가 번듯한 무공 하나 없는 반푼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내공심법을 소유한 자들이 공무원이 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개인과 개인의 거래로 유포하는 것 역시도.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그런 식으로나마 일본 정부는 외국의 무공을 구했다. 극우 세력은 사무라이 검법의 복원을 평화 헌법 폐지만큼이나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건 현 시점에서 정신 나간 자들의 능력 없는 주장이다.
현실은 버블 경제 시절에도 쓸 만한 무공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웃 나라에서 무공에 대한 획기적인 시도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게 영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일단 파악만 해 놔, 당장 죽이지는 말고.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의 중국 친구들은 어때?”
이 질문엔 회의장에 잠깐 웃음기가 어리기도 했다.
“발작 중이죠.”
이 말은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한 사실적 표현이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무공원의 활동에 대해 노골적인 언짢음과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뭐랬더라? 평화를 사랑하는 이웃으로 대한민국의 비대칭 전력 확충에 우려를 금치 못하겠다고 했던가? 한국이 중국의 전통인 내공심법과 무공을 도둑질했다면서?
인민일보에 실린 그 기사를 보고 다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세상 뻔뻔하기도 해라.
“사파의 거두답게 우리가 꼴 보기 싫은가 봅니다.”
“얼마 전 충돌한 일도 그렇고요.”
애초에 세상의 중심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공산당답게 대한민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전통이나 좋은 게 있으면 본인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게 디폴트이긴 했다.
평소에도 대한민국 무림계에 대한 질시를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대만과 함께 정파로 분류되는 세력들이 온존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중국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무공이 탐이 난 건지 모르겠지만, 저런 식의 우기기가 낯설지 않은 것이 사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들이 산 채로 잡히고, 대한민국에 뿌리내렸던 조직이 일망타진당하며 공산당의 국가무공원에 대한 감정은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무공원 측도 감정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자기들이 먼저 찔러 놓고 억울하다는 건가? 보아하니 앞으로도 별 같잖은 이유로 미워할 것 같은데, 그럼 진짜 미워할 이유를 만들어 주자고.”
웃으며 말한 연화존자가 전부터 생각해 놨던 한 가지를 입에 담는다.
“칠익회의 거래처 중에서 중국에 들어가 있는 회사도 여럿 있지?”
“그렇습니다.”
“그쪽을 통해 은밀히 사람을 구해 봐.”
“사람이라 하시면……?”
“무공에 재능 있고, 중국의 현 체제에 불만 있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
그 말에 지시를 듣고 있던 수하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어렵습니다, 국장님.”
일반적인 공무원 조직이 아니기에 어려움에 대한 말은 금방 나온다.
“무재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거야 어떻게 될 것도 같지만, 후자의 조건들을 충족하는 건 중국의 사회 감시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 떠나서 체제에 대한 불만을 그 안에서 낼 수가 없잖습니까? 생각이야 다들 굴뚝 같아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사는 사회가 중국 사회인데요. 괜히 꼬리만 밟혀 문제가 될 확률이 큽니다.”
이 타당한 우려에 대해 연화존자는 말한다.
“통일 대한민국의 적이 어디일 것 같아?”
그에게는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다.
“지금이야 당연히 북한이지. 정부에서야 정권 바뀔 때마다 말이 바뀔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 무공에선 이거 하난 확실히 해야지. 마교와 북한은 절대적으로 우리의 적이라는 거.”
마교가 소비에트에 합류하며 저지른 패악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정파의 후예를 자처하는 연화존자에게는 그렇다.
소비에트 산하 마교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무극검문처럼 거기에 협조하지 않은 자들도 있다지만, 그건 정말 소수.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며 권력을 강화했고, 이제는 북한에 자리 잡아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그들을 용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영원히 북한-마교랑 투닥거릴 수는 없어. 그 이후를 생각해야 되지 않아?”
하지만 연화존자에게 마교와 북한은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머지않아 격퇴시킬 무언가였다.
“통일은 더 이상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어. 괜히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끼는 6자 회담이 성사됐던 게 아니지. 뭐, 다들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 되는 걸 꺼려 하는 건 한결같이 똑같지만.”
그러니 북한의 몰락, 그 이후도 준비해야 했다.
적어도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 컨트롤 가능한. 그래,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했다.
“러시아 쪽은 칠익회가 따로 움직이고 있어. 마교의 잔당들을 처리하며 도움이 될 만한 걸 수집하고 있지. 미국과 일본은 아무래도 우리의 내공심법을 원하는 것 같군.”
“그 말씀은?”
“팔자고.”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말한다.
“돈만 주면 못 팔 것도 없지. 하지만 싸게는 안 팔 거야. 그래도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 정도 되는 가격이면 팔 수 있어.”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믿을지…….”
“난 그놈들을 믿는 게 아니라 이 거래에서 사기 치면 반드시 단죄할 나를 믿어. 그런데 중국은 아니야.”
그런 그에겐 생각이 있다.
“중국 공산당은 뭘 해도 못 믿겠어. 거기에 아무리 나라도 그 거대한 나라를 나 혼자 어떻게 할 수는 없지. 그러니 조력자들을 키워야 해. 마침 얼마 전 명분도 확보했잖아? 중국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길 원하니, 먹히지 않으려면 공격할 수밖에.”
거기까지 말하곤 빙긋 웃으며 회의를 마무리한다.
“일단은 시범 부대부터 멋들어지게 양성해 보자고, 군인들 눈 돌아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