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이준형 하사는 첫 면접 때 자신을 괴롭고도 시원하게 만들었던 기분이 연화존자의 내력임을, 그것이 진짜 시험이었음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국가무공원의 시험에 합격하고 가족들과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기고 복귀한 뒤, 함께 식사를 하던 동기와의 대화를 통해 파악한 사실이다.
“저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아니군요?”
“그래. 나도 온몸이 따가워 죽을 뻔했다니까?”
고작 삼십 명밖에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개중에서도 특히나 친화력이 좋은 사람은 있는 법이다. 가령 지금 이 하사 옆에서 함께 식사 중인 배정현 중사가 그렇다.
서른 명의 시범 부대원 중 가장 넉살이 좋은 게 배정현이었고, 이 하사와는 특히 가족 이야기를 하며 더 친해진 편이다.
마냥 좋은 이야기만 나눈 건 아니다. 그의 5살 된 아들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병원비가 한두 푼이 아니어서 국가무공원에 지원하게 됐다고.
누구라고 사연이 없겠냐마는 어린 딸이 있는 이 하사와 특히 더 통하는 지원 동기였다.
“면접장에 앉아서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맞게 온 건가 싶어서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마랑 가슴 쪽이 미치도록 따가운 거야. 그래서 소리 지르고 일어날 뻔하다가, 우리 아들을 생각하며 겨우 참았다니까?”
“저도 따갑고, 간지럽고 그랬습니다. 딸아이 생각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근데 그게 우리만 그런 게 아니래. 내가 그때 경험이 하도 신기하고 그래서 다 물어보고 다녔는데, 합격한 사람들 전부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과 면접의 결과를 보며 그것이야말로 1차 면접의 합격 조건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아마도 기감이라고 불러야 할 것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을 골라낸 게 아닐지, 면접관 자리에 앉아 있지 않던 연화존자가 굳이 면접장에 앉아 있던 건, 바로 그러한 감별을 위함이 아니었던지.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의문이 해소되자 가뜩이나 맛있던 밥이 더 꿀맛으로 느껴진다.
“그나저나 여기 밥 진짜 맛있지 않아?”
“그렇습니다. 부대에서 먹던 짬밥하곤 완전 다른데요?”
이 하사의 답변에 배정현 중사가 목소리를 낮추며 뜻밖의 사실을 알려 준다.
“다 이유가 있어. 그 사건 기억해? 왜 전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던 재벌 2세가 트럭으로 밀어서 운하신권님하고 연화존자를 죽이려 했던 사건?”
“예, 기억하죠. 그걸 어떻게 기억 못 하겠습니까? 제 와이프도 국가무공원에 지원한다니까 그 사건 얘기하면서 말렸던걸요?”
“여기 조리장님이 그때 운전수였다더라.”
“네? 진짜요?”
깜짝 놀란 이 하사의 반응을 보며 배정현 하사가 주절주절 수다를 떤다.
“어. 원래 잘나가는 음식점 운영하다가 코로나로 잘 안 되는 바람에 이혼하고 택배 하셨대. 그러다 전처랑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전처는 죽고, 애는 혼수상태가 돼서 병원비가 밀렸다더라? 그때 나쁜 놈들이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하게 됐다 하더라고.”
“아……”
그 말을 들으니 새삼 마음이 복잡해지는 이 하사였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을 요리사로 쓰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자식 이야기가 이번에도 남 일 같지 않다.
그 자신이 국가무공원 파견에 지원한 걸 생각해 보면 말이다. 과연 딸아이가 없었어도 이곳에 지원했을까?
어림도 없지.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이 없이 젊은 두 사람만 있었다면 국가무공원으로의 파견을 선택했을 리 없다.
그렇기에 마음이 쓰인다. 평소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던 조리장이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미처 몰랐는데, 새삼 달라 보인다.
자신도 그런 판국이니, 애가 소아병동에서 몇 년째 나오지 못한다는 배 중사는 마음이 더 쓰일 것이다.
“그러니까 연화존자 저 양반, 대단하지 않냐?”
오늘 반찬으로 나온 생선, 평소 부대 조리병들이 너무 많은 양을 급하고도 대량으로 조리하느라 말라비틀어진 채 배급하던 것과 다르게, 속이 촉촉한 생선구이를 씹으며 배정현은 감탄한다.
“협박받았건 아니건 간에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을 식당에 취업시켜 준 걸 보면 배포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하긴, 그러니까 장군들 모가지를 날려 가며 기어이 이런 부대를 만들기까지 했겠지.”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그 무서운 범죄자들을 때려잡은 것만 봐도 그렇죠.”
배 중사의 감탄과 기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 조리장님 딸, 교통사고로 인공호흡기 끼고 오늘내일 했던 걸 몰래 찾아가서 완치시키기까지 했다더라고.”
“정말요? 그게 가능합니까? 혼수상태였다면서요?”
“달리 무슨 방법이 있었나 봐. 조리장님 딸이 연화존자가 다녀가고 난 다음 날 의식을 찾더니, 이제는 걸어 다닌다더라. 이 얘길 하며 자기한텐 생명의 은인도 이런 생명의 은인이 없다며 울먹울먹 하더라고.”
“아무리 무림의 고수라지만, 그런 게 가능하다니. 참, 진짜…….”
이 대화를 하며 씁쓸하게 웃는 배정현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 같아도 같은 처지면 백 번, 천 번 울지. 우리 애도 그렇게 나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배 중사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연화존자가 자기를 죽이려던 트럭 운전수에게 기회를 주고 딸마저 치료해 주는 관용을 보이긴 했지만, 그것과 같은 걸 요구할 권리가 자신에게 생겼다는 말은 아니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현대 의학을 뛰어넘는 치료로 연화존자가 어떤 대가를 감수했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치료를 이루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판국에 경솔하게 나설 수는 없었다. 이제 막 친분이 생길 듯 말 듯한 처지엔 더더욱.
치료는커녕 괜한 적의를 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간의 행보를 통해 연화존자의 배포와 비전을 어렴풋이 짐작한다지만, 기본적으로 무림인은 괴팍하다.
비논리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다른 사람들.
물론 기대 정도는 해 볼 수 있으리라. 시범 부대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뛰어난 성적과 성과를 낸다면 그때는 연화존자의 자비를 바라더라도 큰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이랬던 배정현 중사의 예상은 빗나간다.
“배 중사님, 아드님이 백혈병이시네요?”
휴가 복귀 후 컨디션 관리를 위한 가벼운 운동만 하는 날들이 삼 일째. 그제야 진기도인이 시작되었고, 배정현 중사는 삼십 명 중에서 첫 번째로 진기도인을 받게 된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낸 연화존자는 배 중사의 아픈 손가락을 언급한다.
“네, 맞습니다만… 혹시 그게 무슨 문제라도?”
“문제죠, 심각한 문제입니다.”
배 중사의 신상 명세가 적힌 서류를 덮은 연화존자가 배 중사를 빤히 보며 단언한다.
“자식이 아픈데, 아버지가 어떻게 공무에 집중할 수 있습니까?”
“네? 그게 무슨?”
이제 와서 자신을 쫓아내려는 건 아닌가, 그럴 거면 진작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따지려던 배정현의 말은 다음 말에 목 끝에서 멈춘다.
“이번주 주말에 시간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모레쯤 되겠네요. 와이프분 놀라지 않게 미리 귀띔해 주세요. 혹시 모르니 애한테는 비밀로 하시고요.”
“서, 설마…….”
“직접 봐야 알겠지만, 치료가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만약 제 능력으로 안 된다면 병원비는 일체 지원하도록 할 테지만, 우선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세상에… 그게, 그게 정말이십니까?”
“마음에 걸리는 게 없어야 앞으로 있을 훈련, 좀 더 수월히 견디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 나이까지 결혼도 못해 애는 없지만, 어른도 아니고 애가 아픈데 부모 속이 편할 리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자리에 일어선 채 굳었던 배 중사가 예상치 못한 말에 주저앉는다.
“나는 내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 쉽게 내치지 않습니다. 아울러 이 시범 부대의 성공에 목숨 걸었고요. 방해될 요소는 모조리 제거할 겁니다. 그것뿐이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고마워 마세요, 나 좋자고 하는 거니까. 그럼 이제 진기도인을 시작합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진기도인을 시작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호법을 선 국가무공원의 고수들과 참관하는 인원들 모두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지만, 시범 부대원 모두의 눈빛이 그보다 더 큰 반짝임으로 빛나고 있다.
배 중사에게 건넨 연화존자의 제안이 이들로 하여금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연화존자가, 국가무공원이 그들에게 줄 것이 단순히 오른 월급과 주거 안정에만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더불어 진기도인의 순간은 시선을 돌릴 수 없게 아름다웠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광경과 느낌으로.
국가무공원에서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뛰어난 기감을 지닐 것을 선별 기준으로 삼은 건, 그렇기에 다른 게 아니다.
저 광경에 매혹당하길 원했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 시범 부대의 능률을 끌어올리길 원했다.
진기도인의 효율 때문이기도 하다. 내공에 예민한 체질일수록 진기도인의 성공확률은 올라가기 마련.
새로이 만든 내공심법의 효능과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건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없애는 것과는 다른 싸움이다.
“소리 내면 전부 허사입니다. 위험해져요. 참으세요.”
진기도인 중임에도 입을 여는 대단한 재주를 보이며 연화존자가 다시금 경고하는 건 그래서다.
전군에 내공심법을 보급하기 위한 시범 부대는 압도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국가무공원의 발목을 잡으려는 자들의 방해를 이겨 낼 수 없을 테니까.
배정현 중사의 등에 손바닥을 얹은 연화존자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퍼져 나온다. 그의 유형화된 내력이 대기 중의 파도처럼 요동치며 주변 모두에게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와중에도 연화존자의 표정은 평온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단정하게 튼 가부좌는 흔들리지 않으며, 단단하게 뻗은 팔과 단전에 올려 원을 그린 손은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보여 주는 듯하다.
배 중사의 경우는 다르다.
새빨갛게 달궈진 얼굴과 몸에서 끊임없이 열기가 뻗어 나온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마에선 줄줄이 땀이 흐르고, 몸 곳곳에선 혈관이 울긋불긋 튀어나와 꿈틀대 무서운 모양새다.
감당하기 힘든 거력이 그의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한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기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외면할 수 없게.
“이런… 이런 광경이 있을 수가…….”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성처럼 요즘 세상에선, 저 예전 무림의 황금기에도, 쉽사리 볼 수 없는 모습을 이들은 목격한다.
그것은 거대한 내력의 파도였고, 배 중사가 겪고 있는 격통의 원인이다.
혈도를 뚫으며 타고 도는 내력의 용틀임에 배정현 중사의 입가로 죽은 피가 흐른다. 막힌 혈관을 억지로 뚫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취도 없이 바늘을 밀어 넣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현대 과학과 의학으로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미증유의 힘이 배정현 중사의 몸에 가야 할 길을 새겨 넣는 중이다. 극심한 고통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굴복하지 않는다.
한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포기할 수 없다. 바로 직전에 무슨 소리를 들었나? 제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들은 참 아닌가?
아이 대신 차라리 내가 아프길 남몰래 기도했던 날들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턱이 부서져라 악문다.
항암 치료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무력함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경이로운 인내심으로 끝끝내 침묵하다 진기도인이 끝나고 나서야 혼절한다.
이 하사는 실려 가는 그를 보며 저 참을성이 무엇으로 가능했던 것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또한 가족을 위해 이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또한 이겨 낼 수 있었다. 진기도인의 고통을, 세맥이 열리고 내력의 길이 뚫리는 고통을 배 중사와 같이 버틸 수 있었다.
끝나고 혼절 직전엔 기대되기까지 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후에 펼쳐질 남은 날들의 모든 것들이 그는 뿌듯하고 설렜다.
시범 부대원 서른 명 중 낙오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