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43화 (43/175)

#43화

그것은 일주일에 걸쳐 이루어진 진기도인이었다. 평균을 내자면 하루에 네 명 이상.

이러한 진기도인의 과정을 지켜본 인력들, 내부적으로 이미 진기도인단으로 명명된 조직에 속한 국가무공원의 고수들은 오로지 경이로움과 존경심만을 담아 연화존자를 우러러 본다.

보게 된다. 볼 수밖에 없다.

“무엇을 보았나?”

무림의 통례로 보았을 때 말도 안 되는 속도였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도 이러한 속도로 진기도인을 해낼 수는 없었다. 그것도 완벽에 가깝게, 낙오하는 이 하나 없이.

사형수들을 죽여 장기는 팔고 사기는 흡수해 고수를 찍어 낸다는 흉흉한 소문의 중국 공산당은 물론이거니와, 검황이 죽은 대만 정파의 절대자라는 도제와 권성조차 이만한 속도와 규모로 진기도인을 행할 능력은 없다.

각국의 고수 양성 과정은 베일에 쌓여 있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자들에게도 이것이 가능했다면, 그랬다면 지금 세상에 고수라 불릴 만한 자들이 두 배는 족히 많았을 테니까.

내공이란 그리 쉬운 힘이 아니다. 이 미증유의 힘이 그토록 순순했다면, 다른 모든 종교와 학문이 그랬듯 과학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을 내어 줘야만 했으리라.

대저 강철 같은 의지와 흩어지는 일 없는 집중력으로 타인의 혈맥을 뚫고, 내공의 길을 여는 건 어지간한 고수조차 엄두 낼 수 없는 지극한 상승의 공부.

위험하기까지 한 행위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진기도인을 받는 자뿐 아니라 진기도인을 하는 이 또한 낭패를 보기 십상인.

하지만 일주일 동안 무려 서른 명에게 진기도인을 실행한 연화존자는 아프긴커녕 쌩쌩하며 평온하다.

이 순간, 사뭇 진지하여 평소의 가벼운 태도를 버리기까지 했는데, 그것은 고통이나 힘겨움 때문이 아니다. 단지 국가무공원의 핵심이 될 예비자들, 모든 계획의 기초가 될 진기도인단을 교육하는 이 시간에 오롯한 것이 전부일 뿐.

그 우뚝 선 건재함만 보더라도 연화존자의 내공 통제 능력이 하늘에 닿았음을 알 일이다.

“내가 시범 부대원들을 진기도인 하는 걸 목격하며, 그대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더불어 그는 훌륭한 스승이자, 풍부한 경험을 갖춘 교관이기도 했다.

당장 시범 부대원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하여 의지가 꺾이지 않게 만든 것만 봐도 말이다. 연화존자는 그것이 잔재주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필요에 의해 했을 뿐이라며 평소답지 않은 겸손을 보였지만 다들 알고 있다.

만약 연화존자가 확실한 무언가를 제시하지 않았다면, 개중 몇몇은 진기도인의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고 실패했을 거란 걸.

이건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확률을 높여야 하는 일이란 걸.

“진기를 도인할 때 연화존자의 내력이 피시술자의 육신을 감싸는 걸 보았습니다.”

“옳게 보았다. 나는 그로써 진기도인에 의한 손상을 최소화하고, 정해진 경로로 가야 마땅할 내력의 누수를 막았다. 하지만 이 방법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지.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연화존자가 진기도인에 있어 특별할 정도로 대단한 솜씨를 발휘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그는 진기도인의 경험이 많다. 하늘 아래, 땅 위 그 누구보다 숱하게 많은 진기도인을 홀로 행했다.

세계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대상으로.

“내력의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르게 보았다. 기실 나 정도 되는 내력과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 적게 보아도 한 갑자 이상의 내력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지. 그나마도 한 명의 진기도인을 끝내고 나면 지난 세월의 수련과 적공이 위태로울 터. 능숙하지 않은 자라면 족히 칠 주야는 대주천으로 다스려야 후유증이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부호들에게 연화신공의 첫 걸음을 진기도인하며 쌓은 실력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연화존자라 해도 이번과 같은 신묘하고도 신속한 솜씨를 보일 수 없었으리라.

“나에게조차 쉽지만은 않다. 시범 부대원들을 진기도인 한 후 매일 밤 소주천을 이루어 연화신공의 내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알겠는가? 그대들도 무림에 몸을 담궜으니 알겠지만, 무릇 세상에 쉽게 이루어지는 건 없는 법이다. 진기도인을 통해 내공을 새기는 일이 시간을 뛰어넘을 힘과 가능성을 줄지언정, 결코 공짜는 아님을 명심하라.”

그리고 연화존자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해야 한다.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는가?”

“저희가 이룩하여 완성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내력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옳다.”

그 경험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가르침은 불가능했을 터였기에.

“나와 그대들이 진기도인을 행할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 중에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나라에 헌신하는 자들만이 광해공(廣海功)의 내력심법을 진기도인으로 익힐 자격을 부여받을 예정이다.”

연화존자가 기틀을 잡고 운하신권과 청해마도가 손을 보태 새로이 창안한 무공은 ‘광해공’이라 명명됐다.

아무리 거대한 강도 결국 바다로 모여 하나가 되듯, 광해공을 익히고 후일 그 어떤 내공심법을 더 익히더라도 충돌하는 일 없이 포용할 수 있도록, 국가무공원 최고수 삼 인의 심득을 모았다.

연화신공의 오행무극도를 바탕으로 창안했지만 그 위력과 축기의 효능은 심히 떨어지니, 이유는 분명한 바.

재능과 노력이 떨어지더라도 좀 더 범용성을 갖출 수 있게 의도적으로 바꾸었다. 광해공을 익힌 자들은 이후 재능과 계급, 직분에 따라 위 단계의 알맞은 심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가령 군인이라면 좀 더 눈이 밝고 체력과 근력이 좋아지는 심법을, 경찰이라면 경공과 보법에 유용성이 있는 심법을, 소방관이라면 불기운에 친숙하여 저항할 수 있는 심법을 익히는 식으로.

물론 모든 과정은 진기도인단에 의해 통제될 것이다. 광해공도, 다음 단계의 내공심법도, 심지어 퇴직 후 내공을 폐하는 일까지 전부.

이것이, 이들이 무림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 모인 그대들은 연화신공의 삼 단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 정도 수준은 되어야 진기도인단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오행무극도의 화기연성(和氣鍊成)을 끝내고, 이를 바탕으로 오행의 다섯 가지 기운을 담을 단전의 그릇을 만들고 그 안을 채우는 것까지를 오행무극도의 세 번째 단계라 칭하는 바.

어려운 길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내가 도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이가 누구인지 역시 잘 알고 있다.

“운하신권 어르신이 계시고, 청해마도가 함께한다. 또 칠익회에 있던 내 수하들 중에도 연화신공을 먼저 익힌 이들이 있다. 그 모두가 여기 모인 그대들의 무위를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시범 부대원들보다 더 공을 들여야 하는 자들이 사실 진기도인단이었다. 그건 달리 바꾸어 말하면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할 만한 수준의 고수를 단체로 양성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으니까.

연화존자뿐 아니라 다른 두 명의 절대고수를 영입하고, 그들이 데리고 있던 제자와 수하 중 가장 재능 있고 실력 있는 자들로 가려 뽑으며, 가진 바 재원을 쏟아붓는 것도 모자라 국가의 지원마저 등에 업고 나서야 엄두를 낼 수 있는 과업.

아무도 가지 못한 길. 상상은 해 보았을지언정 엄두는 내지 못한 일.

그러나 연화존자는 그 일을 꼭 이룰 생각이다.

하루이틀 안에 될 일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학의 길은 인생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기에,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여 대업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꾸준한 인내와 지원,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중요하다.

“그럼 질문받겠다. 평소 연화신공을 익히는 데 막히거나, 무공을 수련하며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기탄없이 질문하도록.”

그렇게 한동안 문답을 나눈다. 내력의 흐름과 연화신공의 성질, 무위의 상승이 진전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 등을 나누고, 상승의 무리를 논하고 직접 시연하기까지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다음에 이어서 하지. 각자 시간을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오늘은 좀 짧다. 성에 차지 않지만, 짜증마저 날 정도지만 어쩔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약속이 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다들 모여 있다고?”

“그렇습니다.”

“화가 많이 나 있겠네?”

진기도인단의 교육을 끝내고 차에 오르는 연화존자의 굳은 얼굴에 싱글거림이 돌아온다. 굳었던 태도가 부드럽게 이완된다.

운전하는 수하의 얼굴엔 쓴웃음과 난감함이 가득하지만.

“한 시간 정도 늦으셨으니까요.”

“어쩔 수 없지. 진기도인단의 교육은 미룰 수는 없어. 저 친구들이야말로 국가무공원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에 내공심법을 보급할 사람들이야. 어서 빨리 궤도에 올려놔야지. 아무리 나라도 대한민국 국군 전부한테 진기도인을 할 수는 없다고.”

오늘 연화존자는 약속이 있었다.

지금 출발해도 한 시간은 훌쩍 넘게 지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된 김에 아예 약속 장소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까놓고 얘기해서, 걔네는 내가 만나 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운하신권 어르신께선 정부 놈들이나 재벌 놈들 달래느라 바쁘시고, 청해마도 그 친구는 증산방을 정리하고 경상도 쪽 무림 문파들을 다독이며 제 몫을 하고 있으니, 내가 만나는 게 맞긴 하지.”

하지만 이는 의도된 늦음이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받을 만한 짓을 해야지, 안 그래?”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완전히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힘들다는 것을요.”

“그래. 그러니까 가고 있지. 내 귀한 시간을 써 가면서. 세상에 이렇게 쓸데없는데 시간을 써야 하다니, 너무 슬픈 일 아니냐?

확고한 생각이었고, 이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더더욱 확신으로 굳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부터 고성이 오고 가는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연화존자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이거 뭐 하자는 거야? 어? 어!”

“사람을 불러 놓고 이렇게 늦는 게 말이 되는 거요?”

“국가무공원, 이거 안 될 사람들이네?”

경호원들이 문을 열고 연화존자가 그 안에 들어가자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를 향한 삿대질과 노성이 더더욱 커져 주변을 소란스럽게 한다.

과격하다 못해 흉포하기까지 한 기세였지만 놀라진 않았다.

익히 예상했다, 이런 장면을.

“국가무공원이 대한민국 무림계를 말살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모인 자리인데. 늦어도 너무 늦는 거 아니오?”

“이것만 봐도 연화존자, 저자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폭거도 이런 폭거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대화의 의지 자체가 없는 거예요!”

넓은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있었다.

맨 뒤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바쁘게 셔터를 누른다. 난폭한 분위기에도 겁을 먹기보다는 기대되는 바가 있는 얼굴이다.

나머지는 역시나 화가 많이 난 얼굴이 많다. 다들 다른 지역, 다른 단체에서 왔음에도 표정들이 어째 참 닮았다.

아무튼 모인 자들의 정체는 대략 다음과 같다. 대한무림회, 조선전통무예보존회, 전국무공인협회 정도가 가장 큰 단체였고 그 밖에 소소하고 자그마한 산하단체들이 여럿이다.

“대한민국 무림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국가무공원의 횡포가 아니고서야 이러한 폭거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옳소!”

“맞습니다!”

전부 국가무공원으로 인한 변화가 두려워 집단행동을 시작한 자들이었고, 그런 자들을 향해 연화존자가 할 말은 다음과 같은 한마디밖에 없다.

사과 같은 건 아니었다.

“한국 무림계 떼쟁이들은 여기 다 모이셨네.”

소란은 잦아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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