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44화 (44/175)

#44화

연화존자의 폭언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전통 무예를 보존하고, 수호하며, 계승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왔다 자부하는 조선전통무예보존회의 협회장이 보인 분노가 가장 빨랐다.

“떼쟁이라니! 지금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끊기는 절박한 위기감에 몰려 결단을 내린 우리를 보고, 감히 떼쟁이라 칭하다니! 그건 지금 국가무공원의 공식적인 의견인 거요?”

구렛나루와 이어진 턱수염도 모자라 틀어 올린 상투와 도포 자락까지 부들부들 떠는 협회장의 분노는 극심해 보인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 무림계를 걱정하여 모인 이들을 멸시한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바요! 그런 모욕적인 언사는 참을 수 없소! 아무리 그대가 무공의 고수고, 또 정부 측 사람이라지만 무림의 전통과 한민족 역사의 존엄성마저 훼손할 수는 없는 거외다!”

“실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협회장님.”

연화존자는 떼쟁이라는 한 단어에 저토록 많은 멸시의 뜻이 담길 수 있기나 한 건지, 본인이 말해 놓고도 미처 몰랐다.

하지만 그런 그를 제외한 나머지 협회 사람들은 세상 이처럼 옳은 말이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격렬하게 동조했다.

그도 모자라 조선전통무예보존회의 협회장의 요구를 깔끔한 정장 차림의, 모인 이 중 꽤 젊은 축에 속하는 전국무공인협회의 장이 이들의 노여움을 능숙하게 받아 올리기까지 하는 바.

그걸 보면 한 사람을 상대하는 합공의 기술이 꼭 손과 발에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더불어 국가무공원이 지금 진행 중인 내공 보급 사업에 대한 전격적인 재검토를 요구합니다. 어떻게 이런 중차대한 일을 진행하면서 유관 기관 및 관계자들의 사전 청취와 청문회도 없이 밀어붙일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식의 밀실 야합의 관행은 민주주의 아래 사라져야 합니다.”

“맞지, 맞지.”

“혹시 시간을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옛날 군부 독재에 협력하던 화교들이 설치곤 했던 뭐 그런 때로 말이에요.”

“자기들끼리만 쑥덕거리고 정책을 진행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야?”

이에 동조하는 외침으로써 바람을 잡는 사람들이 뒤따랐고, 이 소동을 진정시키는 이성적인 중재자 역할을 맡은 대한무림회 회장의 발언 역시 이어진다.

“어허, 이 사람들. 그래도 국가무공원의 국장님이 오셨고 오늘의 자리를 대중들에게 알릴 기자님들도 불러 놨는데, 이 소란이 다 뭐랍니까? 다들 진정하시고 국가무공원 쪽 관계자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다. 이렇게 떠들어서는 대화가 될 것도 되지 않는 법이에요. 차근차근 합의점을 찾아야지요. 어찌 되었든 다들 대한민국 무림을 위해 힘쓰는 분들 아닙니까?”

연화존자는 잘 짜인 연극이라는 감상에 나오는 헛웃음을 겨우 참는다.

이런 걸 생활 연기라고 하는 건가? 한두 해 짬밥으로는 어떻게 나올 수 없는 내공인데.

오늘 할 얘기는 물론 진짜 내공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다만, 그래도 미리 짜 놓은 판세가 제법 흥미롭다.

재밌다는 감상이 감정마저 좋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다들 귓구멍이 좀 막히신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해 드리지. 나는 오늘 이 자리가 전국 무림 떼쟁이 장기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뭐, 뭣이!”

“다시 한번 말씀해 드립니까, 떼쟁이 여러분? 본인들 불리하고, 싫은 걸 대충 사람 모아 드러누워 소리 치면 철회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 안쓰럽다 못해 좀… 슬프기까지 하네요.”

잠시 간의 황망함 뒤 다시금 터져 나온 우렁찬 소란 속에서, 연화존자는 자리에 앉아 손으로 턱을 괸 채 저들이 일을 키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생존권, 생계, 일명 먹고사니즘. 그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상 어디에서나 무엇보다 신성한 목구멍.

저들이 연화존자를 적대하는 건, 국가무공원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있는 건 위와 같은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

국가무공원이 출범하며 있었던 정책 발표에서 기존 국가 공인 문파 제도를 단계적으로 철폐, 보완하겠다 한 것이 저들의 위기감을 자극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 취업 한파가 아니라 취업 절대영도 같은 시절에 공무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국가 공인 문파라는 타이틀은 영업에 너무나도 중요했던 것.

여기 모인 사람들은 국가 공인 문파 제도가 사라지면 전부 피를 보게 될 사람들이다. 국가 공인 문파 제도 아래 1급 문파는 현천문이 유일했지만, 그렇다고 2급과 3급 문파들의 생활이 변변치 못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거든.

오히려 수요와 공급이란 측면에서 보면 이쪽 시장이 더 크다. 현천공은 아무래도 접근성이 좀 떨어졌다.

운하신권은 다른 문파들처럼 자격증을 남발하지 않았다. 애초에 문파를 세운 목적부터가 경제적 이득에 있지 않다.

양질의 무인을 국가에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이 사이의 간극은 꽤나 컸다.

“혐오의 언사를 철회하시오!”

“그럼, 제 말이 틀렸다는 겁니까? 아닌 것 같은데.”

“이 사람이 그래도!”

방식이야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진짜’ 무림인을 키우기 위해 수련과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던 현천문과 달리, 대다수의 문파는 자격증 장사를 한다.

그래. 차라리 학원이라 부르는 게 옳다. 경찰 혹은 소방관이 될 때 가산점을 받기 위한 자격증 학원.

국가 공인 문파에서 수련을 했다는 수료증을 받으면 경찰이나 소방관 임용 시험 시 가산점을 준다. 국가 공인 2급, 3급 자격증에는 점수 혜택이 있으며, 가격은 꽤 나간다.

2급 자격증은 4개월에 660만 원, 3급 자격증은 6개월에 880만 원으로 입관비 및 도복값은 따로. 산하단체 일괄 가격이며 제휴 카드 결제 시 무이자 5개월 가능.

1급 자격증이야 당연히 현천문에게만 부여 자격이 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2급과 3급 자격증 TO는 전통문화의 수호와 저변 확대라는 명목하에 대다수가 세 개의 단체에 귀속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2급 자격증 TO는 대한무림회에, 3급 자격증의 TO는 조선전통무예보존회와 전국무공인협회가 양분했다. 그 외의 나머지 소수는 실력으로 뚫어 개별 허가를 받은 곳들.

여기 자리한 세 단체가 엄청난 이익 단체들이라는 소리다.

“우르르 몰려와서 생떼 부리는 이게 꼴불견 아니면 뭡니까, 그럼?”

“뭐야? 당신 말 다했어?”

수준에 이르지 못한 현대 무림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산산이 조각 나서 옛날이라면 무공이 아니라 건강 체조로 불렸을, 수준 낮은 기술들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

도시마다 하나씩 있다는 무관들이 대부분 저런 곳들로, 근래 각종 투기 종목 체육관마저 산하단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전국무공인협회 덕에 국가 공인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곳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진지하게 무공을 익히기보다는 속성으로 자격증을 따기 위한, 취준생들을 위한 장소다. 마치 토익 학원이나 공무원 학원 같은, 역사의 흐름과 발전 앞에 많이 무력해진 무림의 대다수가 향한 건 저런 종착지다.

그러니 국가 공인 문파 제도가 사라지면, 여기 모인 대다수는 현판을 내려야 하는 게 사실이다. 현천공 정도가 아니라면 막상 익혀 봤자 쓸데도 없는 게 대부분 아닌가?

성심을 다해 오래 익히면 무병장수할 ‘수’도 있겠지만 4개월, 6개월 익혀 놓고 그런 것까지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그러기엔 너무 바쁜 현대 사회지.

그렇다고 현천문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1급 문파인 현천문에서 수학하는 게 임용 시 가산점이 비교도 못 하게 큰 건 사실이지만, 현천문에서 수료증을 받으려면 최소 3년 이상 수련하여 단전까지 이루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취준이라는 입장에선 볼 땐 명백히 과잉 투자.

그렇기에 국가 공인 2급, 3급은 효능 대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경제적인 자격증이라고 불리곤 했다.

“아니, 아직 다 안 했지. 내 귀한 시간을 써서 여기까지 왔으니, 그동안 못 했던 말 좀 하고 가려고.”

고로 충돌은 국가무공원의 출범 때부터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다. 국가권력의 무림 잠식. 이에 대한 우려와 의심을 대한민국 무림에 몸 담은 이들은 끊임없이 표출하곤 했으니까.

국가무공원이 내력의 대중화, 전 국민이 내공심법을 익히는 나라를 목표로 한다는 게 알려졌을 때 이들 단체의 산하 문파들이 얼마나 큰 답답함을 느꼈을 지, 가히 상상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니 국가 공인 문파 제도를 손 본다는 발표에 경기를 일으키며 이렇게 구경꾼들까지 모아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웬만하면 기자들 내보내고 얘기하시죠?”

“누구 마음대로! 국민에게도 알 권리라는 게 있는 거야!”

“또 밀실에서 타협하려고? 우리는 민주주의적으로 이 일을 해결하길 바라는 사람들이오!”

연화존자는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거슬렸지만 아무래도 불러온 쪽에서는 본전 생각이 나는지 기세등등하게 거부한다.

“그래? 그럼 뭐, 좋습니다. 허심탄회하게 다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아, 그전에 먼저.”

그 대답이 웃겼는지 피식 웃은 김철민이 돌연 입을 다문다. 이에 어떤 이들이 따지려고 했지만, 이내 장내에 떠도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침묵.

갑자기 퍼렇게 얼굴이 질린 자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세 개 협회 협회장들은 물론이고 이 안에서 제법 힘 좀 쓴다는 문파의 주인들이라면 하나같이, 예외 없이 다양한 색상의 낯빛을 선보인다.

그러곤 다급하게 입을 연다.

“기, 기자님들?”

“왜 그러십니까?”

“저기… 불러 놓고 이렇게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우리끼리 얘기 좀 먼저 하겠습니다.”

“뭐요?”

그러곤 상황이 연화존자의 말대로 돌아간다.

“사람을 불러 놓고 이러기가 어딨습니까?”

“협회장님, 이런 식으로 하시면 곤란하죠. 방금 전까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무림의 변화가 얼마나 시민사회에 큰 파장이 있을지, 다들 아시잖아요?”

글밥 좀 먹은 이들이 타당하기 짝이 없는 반발을 하지만, 정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이런 사건이 너무 자주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국민들의 피로함이 클 것이고… 에, 또… 아무래도 국가 안보와 또 연관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뭐라고요?”

“그러시지 마시고… 잠시 이쪽으로…….”

오고 가는 약속이 있었다. 머지않아 기자들이 전부 회의장을 떠난 걸 보면 알 수 있다.

“자, 그럼 방해꾼들은 다 나가셨으니까, 본격적인 이야기 좀 해 보실까?”

뭔가를 약속받은 기자들이 자리를 뜬 뒤, 국가무공원 측 사람들이 핸드폰 전파 차단기를 꺼내 틀고 구역을 나눠 기막을 쳐 외부와 차단한다.

그것을 신기하게 보는 자들이 많다. 기막을 처음 보는 자들도 있다.

“자, 그럼 뒤늦게 제 소개를 좀 하겠습니다. 이름은 김철민이고, 강호에선 나를 연화존자라고 부릅디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좀 쑥쓰러운 별호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걸.”

빙긋 웃으며 그는 말한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국가무공원이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해.

“국가 공인 문파 제도는 완전히 해체되어 새로운 제도로 개편할 겁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존의 제도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기존의 목적이라니, 무슨 소리요?”

“국민들에게 무공과 관련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 공인 문파 제도를 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업 성과를 돌아봤을 때 이 정도면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낭비라는 판단을 우리는 내렸습니다.”

“그게 뭔 말 같지도…….”

-쾅!

“닥치고 들어, 아직 내 말 안 끝났으니까.”

탁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주변을 장악한 연화존자의 기세에, 다들 입을 다문다. 그리고 깨닫는다.

방금 전의 소란은 그가 들어 줬기에 가능했단 걸.

연화존자의 말은 신랄하다.

“처음 오면 가부좌 틀고, 내공 구결 대충 알려 주며 하루를 보낸 다음, 이튿날부턴 오전엔 명상하며 시간 떼우죠? 그러고 오후에는 무슨 체조같이 실전성 하나 없는 걸 몇 달 가르쳐 주고 돈 빼먹고. 아니, 그게 도둑놈이지, 다른 게 도둑놈인가?”

강렬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본다.

“여러분, 제가 장담합니다. 앞으로 그런 걸로는 대한민국 무림에서 죽어도 못 살아남습니다.”

결국 참지 못한 누군가가 탁상을 세게 후려치며 일어나 고성을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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