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국가무공원과 세 개 단체가 모여 개최되었던 공청회의 과정과 결과는 세간에 크게 알려지진 않았다.
우선 연화존자에게 개망신을 당한 건에 대해 단체장들 본인이 떠들고 다니기엔 아무래도 떨떠름한 면이 컸다.
그렇지 않나? 평소 국가의 공인을 받은 무림협회의 장이라며 고개 빳빳이 힘주고 다니던 이들이 변변한 대응조차 못하고 낭패만, 허공섭물이라는 고절한 수법이라 하지만 손도 발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당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아무리 영락했다지만 무림의 자존심과 체면이 있다. 직업이 강호인이라면 쉽게 제압당한 사실을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수 없다.
그에 더해 연화존자가 전음으로 속삭인 이야기들도 공격적인 대응을 자제하게 만들었고.
국가무공원은 알고 있었다. 대한무림회, 조선전통무예보존회, 전국무공인협회 등 국가 공인 문파 제도의 TO 대부분을 독점한 이들 단체가 어떤 비리와 어떤 범법 행위를 저질렀는지, 그들이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의 대부분을 미리 파악했다.
연화존자의 수하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대단하기도 했지만, 그간 쌓인 소스가 많은 덕이 크다. 서울상공인모임회 등을 털었던 자료들의 분석이 거의 다 끝나가는 요즘,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 엮인 친밀함의 증거들은 꽤나 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인 자들을 정확히 구분하여 각기 다른 전음을 동시에 보낸 듣도 보도 못한 무공 공부가 그 내용과 함께 뭇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터.
말로만 끝나지도 않는다. 공청회가 끝난 후, 국가무공원은 곧바로 세 개 단체에 대한 압수 수색에 들어갔으니까.
무림 탄압이라고 주장하기엔 국가무공원 쪽에서 미리 준비한 증거와 증인을 방송에 터트려 여론에서의 우세마저 가져왔다. 뭘 하기 여의치 않다.
그래서 수사는 순조롭다. 일부 저항과 증거 인멸의 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시도 정도.
하지만 윤아영 검사가 언제 충원될지 알 수 없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빠득빠득 이를 갈고, 국가무공원을 미워하는 사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골머리를 잡던 그때.
세상 누구보다 연화존자를 미워하는 자 중 하나가 침묵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한의 이상 반응이 처음 관측된 건 연천군 소재 혜와 GOP였다.
북한 쪽 관할 비무장지대 인근의 새벽. 처음엔 여러 개의 연기였지만 세 시간 후에는 육안으로 관찰될 정도의 큰불로 번진 것으로, 종종 있던 산불이다.
이로 인해 북한 쪽에서 진화를 위한 인력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 것이 상급 부대에 보고된다.
관찰된 인원의 숫자가 단순히 산불을 끄는 것이라 보기엔 많았지만, 군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불길이 남쪽까지 내려온다면 모를까, 북한 쪽에서 처리하고 있는 일에 우리 군이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남북 군사 합의 때문에라도 드론을 뿌린다는 일 등의 시도도 불가능한 터였다. 그렇기에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각별히 감시하는, 평소 같은 활동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전부.
평소보다 많은 인력을 동원했음에도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는 거야 열악한 북쪽 사정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수준이었으니, 숫자를 제외하곤 그 외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니까 밤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밤 11시 30분경, 강한 진동이 땅에서부터 반복되어 울린다는 최초 보고가 있었고 그로부터 이십 분 후, 비무장지대 안에서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하하하하하.
이어 GP와 철책선에서 크고 거친 신원 미상 남성의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린다는 보고가 연속해서 올라오고 얼마 뒤, 폭발 지점 근처 우리 GP와의 통신이 모두 끊겼다.
이에 군은 진돗개 둘을 발령했지만, 대한민국 고위층 내부에서는 진돗개 하나 혹은 데프콘 2를 선포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문제로 갑론을박을 했다.
정황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GP를 점거한 게 북한의 마교도라는 거요?”
대통령은 근심과 걱정, 분노 어린 표정과 목소리로 청와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고위 관료들에게 묻는다.
하지만 이에 정확하고도 확신 어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국가무공원장 운하신권뿐.
“마교지파 거력패부입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냐고 누구도 묻지 않는다.
통신이 끊기기 전에 나타난 기이한 이상 징후에 대해 명확히 설명을 할 수 있는 건 국가무공원장이라는 직책에 앞서 무림의 고수인 운하신권밖에 없다.
“내력으로 기감을 퍼트려 지뢰의 위치를 확인한 겁니다, 안전한 침투로를 확보하기 위해. 땅의 진동은 거기에서 왔습니다.”
평소의 은은한 미소를 거둔 운하신권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마교도에 대해 잘 아는 그이기에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거력패부의 고위급 인사가 동원됐을 겁니다. 사태를 주도했을 테지요. 어쩌면 무극검문 또한 일정 부분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내공으로 지뢰를 탐지한다는 게? 거기에 마교지파 중에서도 거력패부가 주도했다고 콕 집어 말하는 근거가 따로 있습니까?”
“내력은 장비가 부족한 북한에서 지뢰를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거력패부가 나섰다고 예상하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그 행동 방식이 그렇습니다.”
거력패부야말로 북한의 마교도 중에서도 가장 거친 족속들이었다. 대부분의 대남 도발을 맡아 온 호전적인, 마교도 그 자체인 자들.
북한의 강경 노선을 주도하며 대표하는 마교도들.
“거력패부의 광혼공(狂魂功)은 그 내력의 성질이 극히 거칠어 투박합니다. 수련자의 성격 또한 비슷하게 닮아 가게 되지요. 섬세한 작업을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거기에 기껏 지뢰의 위치를 확인해 놓고, 일부러 지뢰를 터트려 폭발시키고, 웃음소리로 상대의 기를 꺾는 행위는 거력패부가 개입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운하신권은 부연 설명 한다.
“북한의 마교도 중 다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늘 인간의 약점을 자극하여 음모를 꾸미기 마련인 환희락락궁과 시대가 이리되었음에도 검 한 자루에 모든 걸 거는 무극검문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거력패부는 이미 전적이 있습니다. 그 무도했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벌인 게 누구였습니까?”
1976년, 북한이 판문점에서 벌목 작업 중이던 UN군 장교 두 명을 기습하여 도끼로 살해한 사건은 마교지파 거력패부의 악명을 전 세계에 알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김일성과 인연이 깊어 북한의 시작과 함께 문파 대부분이 모스크바가 아닌 평양에 머물게 됐다는 이들 마교지파는 이해할 수 없이 거침없고 제멋대로인 성정을 가져, 평양의 공산주의자들과 죽이 잘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하에 벌목 작업에 나선 유엔 장교를 도끼로 찍어 죽인 것도 모자라, 되레 미군 쪽에서 집어던진 도끼를 손으로 잡아 다시 던졌을 뿐이라고 뻔뻔하게 우겨 댔을 정도니, 말 다했다고 봐야지.
이를 생각하면 적어도 낯짝 두꺼운 것 하나만은 이미 평양과 한몸이나 다름없는 바.
당시 더는 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체면을 구길 수 없다 여긴 미국이 참지 못하고 핵미사일마저 준비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전적이 있는 거력패부였으니, 이번 도발도 이해가 안 되지는 않는다. 언제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군사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자들이 북한이고, 마교였으니까.
다만 이와 같은 도발이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악몽 같은 이야기라는 게 문제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평화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합참의장, 북한 쪽에선 연락을 받지 않습니까?”
남북한 핫라인을 통해 시도한 연락을 받지 않느냐는 대통령의 물음에, 합참의장은 극히 어두운 낯빛을 보인다.
“북한 쪽에선 연락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침통함이 회의장을 감돈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이 다들 많다. 그래도 입을 여는 사람은 이번에도 국가무공원장 하나.
아마도 이 사태의 원인일 집단의 수장이다.
“북한이 이런 식의 도발, 그것도 체제 유지력의 핵심인 거력패부의 고위급을 전격적으로 내보낸 건 국가무공원을 의식한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의 눈과 귀가 운하신권에게 집중된다.
그리 호의적인 기색은 아니어서 사태가 끝난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왠지 짐작이 간다.
그렇지만 할 말은 해야 하는 법이며, 해야 할 행동도 해야 하는 법.
우리 장병들이 마교도의 손에 떨어진 상황에서 머뭇거릴 틈은 없다.
“북한은 경제력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에 비해 열세이지만, 비대칭 전력으로 분류되는 무림인 전력만큼은 우세함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런데 본 기관이 출범하고 무공 역량을 쌓아 가는 모습에서 느낀 불안감과 초조함이 이번에 분출된 게 아닌가 합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군사 도발을 감행했다는 겁니까?”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에선 그보다 하찮은 이유로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마침 얼마 전,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 있기도 했다.
“국내에서 암약하던 마교도 조직이 소탕당했습니다. 체포 중 죽은 조직의 수장이 거력패부의 무공을 익힌 정찰총국의 대좌였지요. 북한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훼손당하고, 위기감이 깊어졌을 일입니다.”
“원장님의 그 말씀은 국가무공원이 북한의 도발을 불렀다는 겁니까?”
참석자 중 누군가의 책임을 지우려는 듯한 말에, 순간 평온했던 운하신권의 기세가 일변한다.
“말씀 똑바로 하시지요. 도발을 불렀다니? 그럼 우리가 마교도, 그것도 북한에서 마약을 운반해 파는 조직을 보고도 그냥 뒀어야 한다는 거요? 우리 국민을 병들게 하며 국부를 유출하는 간첩들을 눈 뜬 바보처럼 보고만 있으란 게요?”
날 선 질책에 참석자들은 그제야 운하신권이 누구인지 깨달는다.
“장관님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내 예단치 않겠지만, 대한민국 고위 관료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시오! 북한은 우리의 선량한 이웃이 아니외다. 호의를 베푼다 한들 그대로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작자들이란 말이오.”
무림에 몸을 담으면 생기기 마련인 어쩔 수 없는 마교도에 대한 적의는 둘째치더라도, 대한민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살아온 운하신권이었다.
적어도 북한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음을 인정하며, 철저하게 이성을 중시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이란 이름으로 믿고 싶지만, 역시 공산주의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 믿지 못할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요. 너무 긴 세월을 이 상태로 보내 다들 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한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소이다. 북한의 도발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며, 먼 옛날의 일도 아니오.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아무 때나 쏴 대는 미사일까지!”
그는 씹어 먹듯 이야기한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체제를 다지기 위해 대남 도발을 일삼는 자들이오. 우리 군이 훈련만 해도 미사일을 쏘는 자들 아니오? 그들의 불안함이야 이해는 하지만 그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 북한의 행사가 대한민국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오. 그것이 나라의 녹을 먹는 이가 할 일이라 보고 있소. 국가무공원은 해야 할 일을 했음에 아무 부끄럼이 없소이다.”
가끔 모습을 보이던 청와대 고위급 회의에서 운하신권의 온유한 모습만 보았던 참석자들은 평소 볼 수 없던 강경한 태도에 침묵한다.
북한의, 마교의 도발이 코앞까지 닿은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면.”
그리고 대통령은 묻는다.
“원장께선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한다고 봅니까?”
“단호히 대처하셔야 합니다.”
운하신권은 대답을 준비했다.
“GP의 장병들을 구출하고 저들의 도발을 물리쳐 상황에 대한 오판의 여지를 제거해야 합니다. 더는 이런 식의 도발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줘야 합니다.”
수단 역시도.
“결단만 내려 주십시오.”
운하신권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던 그때, 국가무공원의 최고수는 연천에서 노여움으로 대기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