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예고도 없이 이루어진 북한-마교 거력패부의 무력 도발과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응은 극동아시아에 극한의 긴장을 불러왔다.
대한민국 군 전체와 주한 미군에 비상이 걸렸고,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주일 미군마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연화존자에게 패배한 무극검마가 무공을 잃은 제자를 안고 피한 뒤에도 한동안 경계 태세는 내려가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추가 도발이 있을지 모르기에, 한국과 미국의 수십 만 군인들이 대기하던 상황.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엔 세계 각국이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명분 없는 비대칭 전력 투사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었는데, 표현의 뉘앙스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 제법 흥미롭다.
은근히 북한을 두둔하는 것이, 굳이 이름을 밝힐 필요도 없어 보이는 일부 국가부터, 북한의 도발을 비난하지만 별 이익도 없이 끝까지 가는 것은 원치 않는 세계 여러 정상들의 입장 차를 지켜보는 건 일견 재밌는 일이 될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대한민국은 바깥에 존재하는 남들의 반응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국내는 이미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혼란하다.
-북한의 폭력 행위를 규탄한다!
-북한의 도발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DMZ에서의 모든 군사적 무력 대응을 삼가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권 또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논평에 온도 차가 있다. 시민 단체와 언론 역시 마찬가지.
시끄럽게 된다. 광화문을 점거한 각기 다른 시위대가 주장하는 바는 그 숫자와 계통만큼이나 다채롭다.
북한을 규탄하는 상식적인 반응부터 북진해서 통일을 이룩하자는 과격하기 짝이 없는 선동도 모자라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미군을 추방하자는 구호까지.
도로를 점거한 채 연일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고 깃발을 흔든다.
뉴스를 가진 모든 채널에선 끝도 없이 사건에 대한 분석과 주장들을 혼재하여 흘려 보냈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는 무간지옥이었고.
최종 결과만 놓고 봤을 땐 대한민국에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다.
이번 도발은 굳이 따지자면 북한의 실패라 봐도 무방할 정도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국지 도발을 감행한 북한 쪽 인원 중 살아남은 건 무극검문의 고작 두 명이지 않나?
나머진 사망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로 남쪽으로 끌려오기까지 했으니, 승리했다 봐도 과언은 아닐 테지.
기만책에 당했음에도 크게 선방했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와 무림의 대체적인 평가라 하겠다. 대중의 생각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실제로 일부 북한에 선이 있는 채널에선 이번 사태의 결과로 북한 최고 존엄이 격노, 화염방사기 사형을 집행했다는 흉흉한 소식마저 들려온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평화롭게 되었냐면 물론 아니지만.
우리 군인 아홉 명이 죽었다. 하나같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청춘을 바친 젊은이들이었다.
나라를 지키다 죽었으며, 포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마교도에게 학살당했다. 개중에는 시신이 도끼로 난자된 몇몇마저 있어 수습마저 힘들었다.
공분케 했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오빠, 누군가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개중 국가무공원의 대처는 논란의 중심부에 있었다.
-거력패부와 맞서 싸운 국가무공원의 결정에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는가?
군 통수권자의 명령도 없이, 우리 군과의 협의도 없이 돌입한 연화존자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북측 인원 대부분을 사살했다지만 과정에서의 문제 소지가 없는 것인가? 너무 급했던 건 아닌가? 실수가 있지는 않았나?
결국 우리 장병의 희생이 있었는데, 대처와 준비가 적절했던 것이 과연 맞나? 군과의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나? 왜 무극검문의 인원은 살려 보냈는가? 설마 거래가 있던 것은 아닌지?
흥분한 여론은 연일 출렁대서 국가무공원의 설립과 활동을 비난하는 자들마저 나올 정도였다.
-북한의 위협을 심대화시키는 국가무공원의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
-라는 주제의 시위가 새로이 서울 도심에서 열리기까지 했을 정도.
주장의 골자는 대략 이렇다. 국가무공원이 무림인 전력을 확충하며 북한의 무력 도발의 가능성을 높여 가는 바람에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태의 원인인 국가무공원을 폐지 또는 축소시켜야 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며 비난하는 장마당 터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겠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우려를 이해합니다.”
색이 바랜 금발의,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의 백인은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을 대화의 서두로 잡았다.
첫마디로 이해와 존중을 입에 담으며.
“저희 미합중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존중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우려가 생길 수 있는 법이죠. 결국 민주주의란 건강한 토론과 의견의 상호교환 속에 성숙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연화존자를 대신해 자리에 나온 청해마도는 저 말을 쉬이 믿지 않는다.
믿음도 상대를 봐 가면서 줘야 하는 법이었다. 직업을 보아도, 삶의 궤적을 살펴보아도 통 믿을 수 없는 경력을 가진 게 저 남자였기 때문.
이 외국인이 미합중국의 공무원이란 사실이 문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저 남자의 현 직장이 문제지.
“그렇기에 백악관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한미 공조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에 대해 건설적인 협력 의사를 타진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솔직한 본심이라고 할 수 있죠, 미스터 송.”
“…그렇습니까?”
대답을 하면서도 생각하는 것이다.
믿을 놈이 없어서 어디 CIA 아태국장을 덜컥 믿겠냐고. CIA가 어떤 역사 속에서 지금껏 존속해 왔는데.
한국말이 유창하다는 것이 그에 대한 믿음마저 유망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하. 물론입니다. 저희 정부는 한국과의 혈맹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물론 저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이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된 건 맞지.
미국이 다 잘한다는 건 아니고 비판 받아 마땅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것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대한민국의 현재에 끼친 기여를 깡그리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대한 미국의 몫이 얼마나 큰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는 소리다. 다 떠나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인한 국방비 절감이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 보아도 그렇지 않겠나?
대한민국 국방과 안보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이 나라는 보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회 기반 시설 및 경제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북한과의 대결 구도에 빨려 들어가며 한강의 기적 같은 일은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전쟁 억지력이라는 면에선 이보다 효능 좋은 국가도 찾기 어려운 건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호전적인 순간의 북한조차 미국이 진정 분노했던 9‧11테러 같은 때에는 기꺼이 꼬리를 내리지 않았던가.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현대전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천조국, 미국뿐.
문제는 이곳이 한미연합사령부 혹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가무공원이 쓰는 보안 철저한 사무실이라는 사실이며, 청해마도와 독대하며 협조의 의사를 타진하는 이가 저 악명 높은 CIA의 고위 관료라는 거지만.
의도가 참 빤한 일이다.
“나도 무공을 익힌 몸이라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소.”
청해마도는 담백하게 대화를 이어 간다. 긴 세월, 섬에 은거하며 살아온 이 절대 고수는 정치적 수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청와대가 아닌 국가무공원으로 온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소. 말하시오. 경청하겠소.”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다.
파도를 견디는 바위 같은 사내였다. 정보 계통에서 일하며 날카로움과 음험함을 동시에 지닌 CIA 관료를 상대로 말려들거나 할 리 없는.
연화존자와 운하신권이 이 일을 청해마도에게 맡긴 이유다.
“…국가무공원이 무공을 개발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미합중국은 동맹으로써 대한민국의 전략 자산이 될 그것을 공유하길 희망합니다.”
백악관의 밀명을 받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온 CIA 아태국장은 조심스레 본론을 꺼낸다.
“범위는?”
“대한민국이 누리는 것과 같은 수준.”
“모호하군.”
청해마도는 부산의 경제, 나아가 우리나라 해상 무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방파의 주인이었다.
두문불출하는 와중에도 방파의 가장 중요한 거래엔 어김없이 그가 있곤 했다.
어쩌면 청해마도야말로 국가무공원 최고수 삼 인 중 이러한 종류의 협상에 가장 뛰어난 사람일 수도 있다. 당장 다른 일들을 미뤄 놓고 최근까지 매진했던 일, 경상도와 전라도에 존재하는 무림 세력 대다수를 국가무공원에 우호적인 스탠스로 돌려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해묵은 지역 감정, 각 문파 간 알력 등을 조절하며 국가무공원에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무림의 여론을 돌려놓은 걸 보면, 예상보다 이런 일에 능숙하다는 걸 알 일이다.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만 봐도 그렇다.
“물론 일이 잘 진행된다면야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실무진 협상이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거기까지 갈 수 없소.”
어차피 손에 쥔 쪽은 국가무공원.
무공에 대한 갈망은 미국에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시오.”
미국으로 돌아간 다니엘 김이 주선하여 마련된 자리였지만, 타이밍이 하필 지금인 것은 미 정부 나름의 전략적 판단에 기반한다.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에서 작금의 사태를 국가무공원의 위기로 보고 있는 것이 판단의 근거였다.
여론이 흔들리니, 정치권 또한 동요한다는 사실이 주요했다. 국가무공원의 든든한 버팀목을 자처했던 대통령마저 일련의 사태에 의구심을 품고 있지 않나?
다도선객과 동방요선을 잡으며 보였던 과감하고도 폭력적인 모습도 그렇지만, 이번 사태에서 재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연화존자가 작전에 돌입했다는 것에서 대통령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인다.
통제가 먹히지 않는다는 의심이 청와대를 감돌기 시작했고, 여기에 곁들여지는 정치적 부담까지.
북한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과 보복은 무슨 형태로든 압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었고, 여론 역시 의심한다.
국가무공원의 그간 행보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북한-마교와의 충돌로 아홉 명의 우리 장병이 죽었다. 연화존자의 적극적이고, 기민한 대처로 최소화된 셈이라는 발표가 있긴 했지만, 엄연히 우려와 의심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연화존자라는 인물에 대한 피로도가 쌓였다. 부정적인 인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국가무공원이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도록 만들고, 가능하다면 핵심 인력의 일부를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지.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국가무공원의 대표로 나온 이자는 동요 없이 굳건하기만 하다.
“국가무공원이 개발한 무공을 본국의 전략 자산과 맞교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나름 확실한 카드가 있음에도 CIA 아태국장의 말이 조심스러운 건 그래서다.
“파이브 아이즈에 준하는 지위를 대한민국에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기도 하죠.”
청해마도는 침묵으로 답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수십 년의 고련을 거친 무인의 속내는 쉽사리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CIA 아태국장은 오늘 일이 쉽지 않겠다고 느꼈고, 예감은 체감상 한참이 지나서야 나온 말에 현실이 됐다.
“본 국가무공원 또한 미국과의 협조를 원하고 있소. 하지만 지금 말을 들어 보니 서로가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은 것 같군.”
“줄 수 있는 것이라 하면……?”
“중동 문제에 관심 좀 있으시오?”
청해마도의 이와 같은 암시는 즉각적으로 이해된다.
국가무공원의 최고 핵심 인물인 연화존자. 그의 겉으로 드러난, 지금껏 파악된 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인 재산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것인지에 생각이 미치자, 아태국장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해야 함을 직감한다.
‘이들이 줄 수 있는 건 무공,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쌓은 영향력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더 높은 사람을 불러오시오. 아무래도 대화가 더 필요하겠소.”
미합중국은 이에 화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