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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56화 (56/175)

#56화

대한민국에 대한 당가그룹의 대대적인 투자, 그에 더해진 당가그룹의 회장 독군 당군명의 귀화 신청 예고는 장안의 화제와 함께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화제가 된 면에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긴 하다.

무궁무진한 기대감마저 어려 있었지. 왜 아니겠나? 해외 기업으로는 사례가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 거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그것도 대한민국 전역에 고루 하겠다는데 좋지 않다면 그것도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자고로 사업과 발전은 남의 돈으로 할 때 즐거운 법이기 때문이다. 제 돈 들여 뭘 좀 하려고 하면 실시간으로 비어 가는 잔고에 밤잠을 설치겠다만, 그 돈을 남이 내준다면 빚이라도 일단 기분 좋은 게 사람의 심리.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경제문제가 절대적 단일 기준에 가까운 가치관인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뭐, 어디든 아니겠냐마는 말이다. 당가그룹에서도 그걸 잘 알기에 숫자로 찍어 누르는 것일 테지.

당가그룹은 그룹이 자랑하는 요식업뿐 아니라 화장품과 제약 공장을 만들겠다 발표했고 지사를 설치하겠다 했다.

거기에 더해 그룹 산하 총기 및 무기를 생산하는 금속가공 및 정밀 부품 계열사는 국내 기업과 협업, 10년 내 완전 이전을 목표로 한다는 장기 계획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 고루 투자하겠다 밝힌다. 실제로 당가그룹은 대한민국을 제2의 본사로 삼겠다는 포부를 공공연히 할 정도.

그 외에 얼마나 많은 추가 투자와 사업 이전이 있을지는 현재 시점에서 불투명했지만, 이미 이 정도만으로도 당군명은 대통령을 한번 만나 오찬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미묘한 긴장감의 요소는 이보다 다양하고, 은밀하며, 합리적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역시나 오래되어 유명한 당가의 악명.

옛 사천당문의 무림에서의 명성뿐 아니라 이후의 스토리 역시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수백 년 독공의 명가가 국공 내전의 여파로 몰락, 필사의 도주를 감행한 뒤 유럽의 동양계 난민으로 전락했었음에도 끝내 거대 그룹으로 거듭났다는 고난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무림 명가에 귀감이 된 지 오래.

혼란의 중국 근현대사 속에서 혈족과 무공 대다수를 잃고 가문의 명성을 위해 애쓰다 좌절도 했었지만, 결국 떨쳐 일어나 지금의 성세를 이룬 당군명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살아 있는 신화로써 널리 퍼져 있다.

그 화려한 부활 뒤편에 묻은 잔혹하고 음울한 뒷이야기 역시도.

유럽 각지에서 당가그룹의 성장을 견제하던 기업가, 마피아, 정치인들이 연이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누구도 이것이 당가그룹의 용독이라는 점을 증명해 내지 못했지만 암묵적으로는 그렇다고 여긴다.

사천당가가 무공을 되찾은 것이 분명하다고. 독공의 명가는 옛 솜씨를 되찾은 것이 분명하다고.

중원에서 가장 독을 잘 다루는 혈족들이 옛 기예를 복원했고, 현대사의 고난 속에서 갈고닦아 농축된 독심은 더욱 독해졌다고 사람들은 여기고 있었다.

이들 그룹 산하에 세계 최고 수준의 화학 기업과 강력한 민간 군사 기업(PMC) 여럿이 있다는 사실은 소문의 신빙성을 뒷받침했다.

과연 당가의 이름을 달았기 때문일까? 아프리카와 러시아 등지에서 주로 활약하는 이들 PMC는 현지에서 흉흉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 두려운 존재다.

특히 중국 쪽 인력과 부딪치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방해에 나선다는, 통상 가격을 훨씬 밑도는 저가 수주마저 일삼는다는 진위 여부 불확실하지만 아무래도 믿고 싶어지는 첩보마저 있을 정도.

그러니 당가그룹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이라면 이들이 한국으로 오는 것이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의 우려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노인네가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옮기고, 그룹의 투자가 이루어진다 한들 생각하시는 부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절륜한 독공의 영향인지 다소 혼탁한 눈동자를, 그럼에도 빛내며 독군(毒君)은 장담한다.

노련한 말솜씨와 점잖은 태도가 돋보인다. 과연 무림과 재계, 양쪽의 밑바닥에서부터 잔뼈가 굵은 거물.

“우리 당가그룹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기까지 합니다. 이 늙은이의 무림에서의 허명과 무공을 걸고 맹세하지요.”

“어째서입니까, 회장님?”

어느 용감한, 사실은 미리 입을 맞춘 기자 하나가 당군명의 호언장담에 이유를 묻는다.

“우리 당가의 모든 걸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푼 이가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이오.”

순간 회견장의 기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은 알싸한 내음을 맡은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회견장에 있는 공기청정기 여럿이 맹렬히 돌아가는 일 따위는 없었기에 착각이라 여겼지만, 무공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맡은 것이 독군 당군명이 뿜어낸 의념, 내공의 잔향 아니겠냐고.

“연화존자, 그분의 고국이 대한민국이기에 우리는 투자를 결심했소.”

그 경지를 짐작할 일이다.

한편으론 경애마저 깃든 목소리에서 연화존자에 대한 존중을 알 일이다.

“김철민 씨와의 인연이 있으셨던 겁니까?”

“물론이오. 물론이외다. 그게 아니라면 이 늙은이는 물론이고, 우리 당가의 혈족들이 굳이 한국어마저 배워 가며 이날을 준비했겠소?”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긴 그의 얼굴엔 지난 세월의 회상이 가득했으며, 다시 입을 열 때는 격동이 그득하다.

“이 우둔한 늙은이가 한때 스스로의 부족한 능력을 모르고 선대의 무공을 복원하겠다 나섰다가 주화입마에 들어서는 바람에 무공을 잃었던 걸 다들 잘 알 것이오.”

그럴 법한 일이다. 당가 사람들에게 연화존자의 존재는 다시 없을 기연으로, 갚을 길 없는 은인이었으니.

독군 당군명에게 감정의 깊이는 깊다.

“중원 본토에서 탈출해 유럽에 자리 잡은 우리 당가의 혈족들은 고생들이 참 많았소. 이루 말도 못했지. 함부로 무공을 휘둘렀다가는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었거든. 하여 먹고살기 위해 신분을 숨긴 것도 모자라, 평생의 적공을 흩어 낸 뒤 칼과 도마를 잡아야 했소. 그나마도 화후가 높았던 이들은 미처 빼내지 못한 독기가 몸에 남아 날품팔이 따위로 생활을 감당해야 했단 말이오. 노부는, 그 와중에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무공만을 수련했소. 그런데 하루아침에 주화입마로 무공을 깡그리 잃었으니, 이 늙은이의 심정이 어땠겠소?”

당시를 회상하는 당군명의 눈이 우울함을 띤다.

“죽고 싶었소. 팔과 발가락을 잘라 내며 목도 같이 잘라 죽어 버리고 싶었소. 그럼에도 죽지 못했던 건 그건 비겁한 회피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소. 더는 쓸모 없어진 몸뚱이라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이외다.”

하지만 과거의 우울함은 한 사람을 입에 담으며 극적으로 전환된다.

“그때, 연화존자께서 이 늙은이를 찾아오셨소.”

사라진다. 방금 전까지 보여 주던 어두움과 차분함, 강력한 무림의 고수이자 고작 이십 년이 조금 넘는 세월만에 거대 기업을 일군 사업가다운 중후한 풍모까지 모두 자취를 감춘다.

한 명의 존재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 바뀐다.

“날 내려다보며 말하셨지, 곧 다시 무공을 익힐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지 않았소. 그리고 곧 후회했소.”

오직 한 명의 찬양자만이 존재한다.

극적인 변화였다.

“그분의 손길이 망가진 단전을 고치고, 그분의 시선이 잃어버린 무공을 복원하니 어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겠소이까? 천하의 절대고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눈을, 심지어 그 와중에도 자비롭고 관대한 그 마음씨를 의심하던 이 늙은이의 소견머리를 어찌 자책하지 않을 수 있었겠소?”

무공을 익힌 자들은 저렇게 성격이 휙휙 바뀌는 걸까? 아니면 익힌 것이 독공이라는 유용하지만 경원시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생긴 정서적 특징인 걸까?

모를 일이다. 다만 당군명은 제시할 뿐이다.

당가그룹이 왜 이렇게 나서는지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하나 연화존자께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소. 그저 인연이 닿았을 뿐이라 하셨지.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으셨고,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으셨소. 그러니 어쩌겠소? 그분이 받지 아니하시니 그분이 나고 자란 곳에 씨를 뿌릴 수밖에.”

오래된 격언을 곁들이며 마무리한다.

“원수는 두 배로 갚아도, 은혜는 열 배로 갚아야 하는 법이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에 갚고자 하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우리 당가의 오래된 가훈이라오.”

위와 같은 기자회견의 내용은 각종 기사와 글, 영상으로 재생산되어 퍼져 갔다.

제목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사천당가의 가훈이 대한민국에서 부활한다! 두 배의 복수만 해도 두려울 지경인데, 열 배의 은혜는 대체 얼마나 대단할지?

-독의 전문가들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밝힌 이가 사실은 한국인? 무림인? 국가무공원? 세상이 놀란 그 정체는?’

-당가그룹의 동아시아 대규모 투자에 유럽이 전전긍긍하고, 중국과 일본이 눈치 보며, 미국이 부러워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장밋빛 그 자체!

이러한 소란은 어느 정도 기획되어 컨펌을 받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당사자의 마음에 그리 들진 않았다.

“…마지막 놈은 좀 심한 거 아니야? 저런 제목을 진짜 사람들이 본다고?”

당청영은 황당하다는 눈빛의 연화존자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봤다.

“국뽕은 자부심의 강력한 동기죠. 백만 뷰도 거뜬합니다.”

“…너도 한국어를 너무 잘 배웠어.”

당가그룹의 한국 진출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았기에 무척이나 바쁨에도, 당청영은 기꺼이 연화존자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는 수고를 감당한다.

연화존자에 대한 호감도 그렇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보안을 유지하며 직접 지시를 받아야 할 주제가 여럿 있다.

“그래도 덕분에 정치인들뿐 아니라 여론도 연화존자께 우호적으로 다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안 그러면 이 부끄러움에 보람이 없는걸.”

북한과의 정면 충돌 이후 대외 활동을 자제하던 김철민은 쓴웃음이 절로 난다.

당가그룹의 기여로 좀 편해졌다는 생각으로.

“덕분에 정치 공세도 줄어들고, 고마워.”

“은공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업 규모에 비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한 당가그룹은 정치인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재벌 그룹이 되는 게 불가능한 세상 아닌가? 거기에 힘의 우위로 상대를 쥐었다 폈다 하는 거, 무림인들이 꽤 잘하는 편이다.

당가그룹은 새로이 들어올 공장과 지사를 어디에 둘지 저울질하며 대한민국 정치판을 뒤흔드는 중이었고, 덕분에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에 대한 정치 공세는 지지부진.

어영부영 흩어지는 중이다.

당가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연화존자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공표한 마당에, 어느 미치광이가 거기에 반기를 들겠는가? 무슨 경제적 불이익이 있을 줄 알고.

그 시도만으로도 표가 후두둑 떨어지리라.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알았다.”

연화존자는 피식 웃었다.

처음 당가를 도왔을 때만 해도 이런 그림을 상상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의무와 책임감에서 해방되어 허망하던 마음에 새로운 무학에 대한 탐구심이 깃들었고, 이에 몰락한 당가를 찾아 작은 호의를 베푼 게 전부.

다른 계산은 없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놀랍지만, 아무튼.

당가의 지독한 복수심은 알았어도 은혜마저 이렇게 집착할 줄 미처 몰랐다. 당군명의 단전을 고쳐 주고, 무공을 복원시켜 준 뒤 약간의 자금과 불이익을 보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만 준 게 다였는데.

알아서 거대 그룹을 일구고는 자처해 칠익회의 하나가 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니, 인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원하는 것은 쉽게 오지 않고, 뜻밖의 것들은 쉽게 오는 세상의 이치란.

“뭐 달리 도와야 할 건 없고?”

“연화존자께선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계시면 충분합니다.”

독공을 익힌 여자 같지 않은 청초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당청영은 말한다.

“잠시 쉬시며 시범 부대와 진기도인단을 돌보시면 일이 끝나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그래?”

“예. 믿고 맡겨 주세요.”

당가그룹은 오직 그걸 위해 왔다. 연화존자의 영광을 위해.

대한민국은 그걸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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