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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57화 (57/175)

#57화

삼지일절은 연화존자의 대의에 응했지만, 그 진심 어린 설득에 끓어오르는 두 손 꼭 맞잡긴 했지만 조금 막막했다.

그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백 년 가까이 살며 평생 해 온 건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노숙 생활이요, 산과 들을 지붕과 마당 삼아 돌아다니는 행려병자 노릇.

드높은 무공의 경지와 흉중에 빛나는 의기에도 사회에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는 삼지일절은 무얼 하며 살아왔는지 생각하며 비애에 젖기까지 했다.

이룩한 거라곤 하나 없는 삶이 아닌가?

잔결방이 남았다고는 하나 이전에도 보았다시피 방도들이 사라져도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느슨한 관계인 것이 태반이며, 충성했던 수하들은 기실 나이를 먹고 거동이 더 불편해지며 집에 갇힌 꼴이 된 게 거의 전부였다.

장애인의 시간은 일반 사람보다 빠르게 흐른다. 신체적 나이가 그러했으며, 삼지일절 정도의 고수가 아니고선 예외란 거의 없다.

그리하여 한때 삼지일절 또한 방도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볼까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

독문무공인 음풍파천무부터가 너무 어려운 무공이었으며 가르칠 만한 무공을 달리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

만일 삼지일절에게 시간과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재능과 의지를 추려 제자를 받아 훗날을 기약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무공을 구할 시도라도 해 봤겠지.

하지만 그만한 고수에게도 인생은 제 맘 같지 않았으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무공을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연화존자가 대한민국 전체에 무공을 보급한다고 했을 때 각종 우려가 터져 나왔던 게 아니었던 바.

요즘 세상에선 누구도 쉽게 무공 같은 걸 배우려 들지 않는다. 환경부터가 그렇지만서도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어려운 길을 기꺼이 가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괜히 무공이 부자들의 미용 수단으로 각광 받는 게 아니다. 그건 진기도인이 아니고선 괜찮은 무공을 배우기 쉽지 않은 현실의 반영이었으니, 무림에서조차 자본주의는 득세 중.

부모부터가 무림의 길로 자식을 내몰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사람, 보기 좋은 직장을 얻으라 닦달할지언정 수련과 폭력을 벗 삼아 사는 인생으로 나아가라 누구도 권하지 않는다.

자식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조차 못 마땅해하는 부모가 태반일진대, 무공같이 불확실한 길을 지지할 곧은 심지의 부모가 누가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힘든 일을 한다면 여기저기서 뜯어 말리는 판국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엔 배만 곪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사람이 세상엔 많았고, 몸이 불편하다면 더더욱 그랬다.

삼지일절, 본인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 자신을 따라가겠냐는 스승의 제안에 일제의 수탈로 쫄쫄 굶던 가족을 한번 뒤돌아본 것이 전부이지 않던가?

지금은 아니다. 굉장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제자를 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

무공은, 어쩌면 두 번째 문제일 것이다.

그런 마당이니, 장애를 가진 스승을 어느 누가 달가워할 것이란 말인가? 삼지일절은 옛 원형과 공능을 온전히 보존한 음풍파천무 같은 신공을 지니고도 제자 들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후회가 막급. 회한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연화존자의 도움은 이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곁에서 도울 사람을 먼저 보낸다. 수족 같은 이들이었다.

“진호라고 합니다.”

“준, 호라고 합니다.”

칠익회 아프리카 방면의 수장, 이익과 미신으로 사람 잡아먹는 자들을 태워 죽이는 무공의 고수들이 삼지일절을 보조하기 위해 잠시 적을 옮겼다.

더는 아프리카로 뻗지 않는 칠익회의 날개가 늙은 노고수가 갖지 못한 면을 채우기로 한다.

첫 만남은 무림인답게 시작.

“…패도적인 무공이로고.”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노고수와 연화존자의 제자들 사이엔 옛 무림의 향취가 있다. 그만한 고수들에게는 서로의 무공을 확인하는 것만큼 흉금을 털어놓는 일이 없었던 것.

삼지일절과 준호, 진호 형제는 삼 일 밤낮 동안 재주를 겨뤘다.

삼지일절의 쇠목발이 음유한 내력을 머금고 준호와 진호 형제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종횡하며 반인륜적 종자들과 싸우고 연화존자의 이름을 드높였던 역전의 용사.

감당하기 힘든 고수를 맞이했다 하여 기가 죽진 않는다.

이보다 힘든 싸움은 살면서 많았다. 하물며 비무임에야 물러날 일 없지.

맹렬하고 집요한 열양지력이 담긴 두 쌍의 손이 음풍파천무에 맞섰다. 뼛속까지 얼리려는 거력에 맞서 타오르는 집념과 분노로 형제는 맹렬하게 싸웠다.

그로써 겨룸이 끝났을 때, 세 사람에겐 신뢰라는 것이 생겨났다.

손을 섞어 보니 그렇게 된다. 어떤 것들은 말이 아닌 겪어 봄으로써만 알게 되는 법.

마침 삼지일절과 준호, 진호 형제 모두 세상으로부터 핍박받은 처지 아니었던가?

장애를 이유로 파양 당해 멸시와 고난을 겪었던 두 사람과 무림의 고수임에도 가혹한 세상에 맞서 마음을 꺾어야 했던 잔결방의 방주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종류의 불편마저 짊어진 이들을 돕자는 것 아닌가?

물러설 이유가 없다. 마음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저희가 음지, 에서 활동하겠습니다. 방주님께선 밝은 곳에, 서 사람들을 모아 주십시오.”

“내 기필코 자네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네.”

하여 준호와 진호 형제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에 나선다.

달이 뜬 밤, 악인들이 잡혀 온다. 감투와 명분을 방패로 그 뒤에 숨어 제 이익만 돌보던 자들. 단체를 이끌고 있지만 사실은 거기에서 비롯될 잿밥에만 관심 있어 구성원들의 이익엔 별 관심도 없이 밥그릇만 챙기는 타락한 이들이 형제에게 연일 잡혀 온다.

태워 죽이지는 않았다. 다만 삶은 고통이라는 진리를 몸서리치게 새겨 줬을 뿐.

수많은 시민 단체의 집행부가 제 죄를 고백하고 자진 사퇴하게 된다. 잡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

연화존자가 보낸 두 번째 사람은 그럼에도 혼란했던 이들을 포섭할 방법과 함께 왔다.

“당가의 여식이 삼지일절 어르신을 뵙습니다.”

당가그룹의 상무이사인 당청영이 삼지일절을 찾아온 것엔 분명한 필요와 목적이 있었다.

그녀는 잔결방에 선물을 가져왔다. 대한민국 시민사회에 누구도 준 적 없던 큰 것을.

“저희가 세울 공장의 10프로 정도를 사회적 기업으로 채울 예정이어서 이를 논의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방주님.”

겸손하고도 공손한 당청영의 저 말이 가져올 파급력을 삼지일절은 알고 있다.

“저희 회사의 식사, 청소, 그 외 단순 제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채울 예정입니다. 그 자리를 뽑을 권한을 잔결방에. 아, 이제는 잔결방이 아니군요. 대한잔결회에 위임하고자 하는데, 어떠신지요?”

거부할 이유는 없다. 아니, 이 정도라면 막연했던 마음에서 벗어나 의욕마저 샘솟는 기분이다.

그것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공략하는 절묘한 한 수였다.

아픈 자식을 둔 부모들은 원한다. 당신들이 세상을 뜨더라도 자식이 독립할 수 있기를, 홀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현실이 쉽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던가? 세상은 그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하여 차갑기까지 하던가?

당가그룹의 사회적 기업 설립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장애인 본인이 월급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른다.

심지어 그게 전부인 것도 아니었다.

“아울러 저희 회사 소속 장애인분들을 위한 공제회를 설립할까, 합니다.”

“공제회?”

“예. 각종 사회적 다툼에서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적어도 그룹에 소속된 분들은 그런 종류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기금을 조성해서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 역시 대한잔결회에서 맡아 주셨으면 하고요.”

삼지일절은 전율마저 느꼈다, 상상도 못 했던 계획을 연속해서 들었기에.

연화존자의 손을 꽉 잡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밀어준다면 다시 태어난 잔결방의 새 이름인 대한잔결회는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너무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성격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가그룹에서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오?”

삼지일절의 물음에 당청영은 미소 지었다.

당가의 악명과 어울리지 않는 호의적인 웃음이었던 바.

“저희 돈 잘 법니다, 어르신. 제약과 화학이 제법 잘나가고, 그룹의 요식업 프랜차이즈도 재료를 위한 농업 회사까지 가지고 있어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답니다.”

설명이 친절하다.

“말씀드린 걸 전부 해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영업 이익률이 다소 줄어들 테지만, 저희는 주식회사가 아니라서 주주들이 이익이 떨어진다고 이사회 소집하고 할 일도 없습니다. 오직 연화존자의 뜻을 온전할 수 있으니, 아까울 게 전혀 없기도 하고요.”

“그런가?”

“예. 어차피 다 연화존자의 것이었습니다. 편하게 원하시는 데로 하시면 됩니다.”

연화존자의 뜻이라면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는 발언은 당가그룹이 진실로 연화존자의 대의에 동조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이는 얼마 후에 있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당가그룹이 대한잔결회의 고수이자, 잔결방주이신 삼지일절과 친분이 있으시다고요?”

“오래된 인연이오.”

독군 당군명은 기꺼이 얼굴 마담의 역할을 맡았다.

당가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녹색 셔츠를 입고, 가끔은 사슴가죽 장갑마저 낀 채 활발하게 언론에 자신을 노출하여 그룹 회장이 아니라 홍보 담당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

삼지일절과의 인연은 그 와중에 나오니, 골자는 다음과 같다.

‘선대에 이미 당가와 잔결방의 인연이 있었다. 당시 일제를 상대로 싸우는 유격 활동에 무림의 고수들이 종종 동원되곤 했는데 이때 친분을 쌓았고, 국공내전 때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본가가 탈출할 때는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주었다는 말을 돌아가신 집안 어르신들께 전해 들었다.’

이것은 날조였다.

일부 진실이 곁들어진 사실 아닌 진술이었다. 물론 전대 잔결방주가 일제에 극렬히 저항하던 독립운동가였던 것은 맞고, 삼지일절 또한 그런 스승을 따라 만주와 한반도를 오고 가며 수배 당한 처지였단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활동 범위가 당가와 겹치는 일은 없었다. 하여 삼지일절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독군을 몸소 찾아갔지만, 그 차분한 되물음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보다 효과적으로 당가그룹과 대한잔결회의 결합을 대중들에게 인정하게 할 방법이 있으십니까? 그럼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젊은 시절의 삼지일절이었다면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따르지 않았으리라.

절대로 말이다. 그런 거짓말은 삼지일절의 당당하고 곧은 심지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인생에서 이미 보낸 시간이 올 시간과의 비교가 무안할 만큼 많아진 지금.

당군명의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거짓을 말하는 게 저라고 어찌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로써 우리가 해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주십시오, 어르신. 연화존자께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저희를 한데 모은 게 아니란 걸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생각하게 된다. 곧은 마음을 견지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매 남은 것이 무엇인지.

“누군가를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돕고, 함께 가기 위함입니다. 우리 당가그룹은 큰 은혜를 베푼 연화존자를 위해 오욕을 뒤집어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회장님께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 뻔뻔하기까지 한 당당한 태도를 보며 삼지일절은 밤새 고민한다.

무공이 강해도 할 수 없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고, 한데 모으는 것에 대해서.

그러자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곧은 것이 곧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걸.

칠 주야를 무아지경에 빠져 내면으로 침잠했다. 깨달음이었다.

이렇듯 연화존자를 섬기는 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분투하는 사이, 연화존자 또한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깊고 너른 무학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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