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58화 (58/175)

#58화

이준형 하사는 홀로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극비리에 미군으로부터 대여해 온, 비싸고 귀한 몸인 ENVG-B 야투경이 우거진 숲속 나뭇가지와 이파리에 긁히고 부딪치지만, 또 군장에 결속된 탄알집과 권총 등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뽐내지만, 미친 듯이 뛰는 두 다리를 멈출 여유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팀에서 혼자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부대원 중 가장 먼저 전원 사망 판정을 받는 불상사를 피할 수 없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지. 아무리 혼자 남았어도 말이야.

오늘은 주간, 야간 훈련이 있는 수요일. 평소에도 매주 일몰을 기점을 두 시간 동안 입에서 단내가 나게 뛰는 훈련이긴 했지만, 오늘은 그 시간이 좀 빠르게 찾아왔다.

그래도 바싹 마른 그 한숨이 이제는 그리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최초의 진기도인 이후 이어진 집중 관리 덕에 스스로의 힘으로 소주천을 이룬지도 어언 다섯 달. 이 하사의 신체적 능력은 예전과의 비교가 무색할 만큼 강건하다.

물론 이러한 발전에 내공심법이 전부가 아니긴 했다. 그래 봐야 육 개월도 되지 않은 내공 수련이 아니었던가?

내력을 쓸 수 있게 된 것뿐 아니라 규칙적이고도 엄격한 식단, 현대적 이론에 기반한 육체 트레이닝, 수치로 구현한 기록으로 관리됨에도 결코 놓지 않는 마인드셋의 중요성까지.

국가무공원 시범 부대는 세심한 관찰 중에 있다. 전군에 내공심법을 보급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의 실현을 위한 실험들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것이 기록되고 분석 중이다.

이준형 하사를 비롯한 시범 부대원들 모두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과 달라진 게 월급과 복지 같은 처우에만 있던 게 아니었던 것.

물론 시간이 길어졌다 뿐이지, 끝내 지치고 피로하여 쓰러지는 매일이 변함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퓽. 퓽.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귓가를 스쳐 가며 멀어진다.

피할 수 있던 건 순전히 육감에 의존한 운. 만져 보진 못했지만 살짝 닿은 것 같기도 했다. 귀가 조금 따가운 걸 보면 말이다.

그 지독한 동기 사랑에 이 하사는 달리는 와중에도 부르르 떨었다.

‘시뮤니션 탄이어도 가까이서 맞으면 아프다고, 이 빌어먹을 인간들아! 자기들도 다 맞아 봐서 알면서!’

어쩌면 알고 쏜 걸 수도 있으리라. 최대한 실전에 가깝게 훈련하는 건 시범 부대의 기조 아니던가?

사실 분통을 터트리는 중인 이 하사 또한 반대 상황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다 아프면서 성장하는 법이지. No pain, No gain.

하여 망설임 없이 쏜 인간이 누구인지 찾아내서 꼭 자신의 사랑 또한 보여 주겠다며 이준형 하사는 이를 갈지만, 그건 나중의 일.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다.

오늘의 훈련에서 적군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작위로 섞여 확정된 5명의 조원들을 제외한 훈련장의 모두가 여기서는 가상의 적으로 규정된다.

매주 그런 건 아니지만 진행은 대체로 이런 식. 극한의 환경 속에 놓여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훈련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피아 식별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공심법을 익힌 군인은 어떻게 생존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하여 결론 짓기 위해, 이렇게 섞고 섞은 각종 실험과 시범 부대라는 이름에 걸맞는 희한한 짓거리를 매주 반복한다.

팀원 구성과 숫자를 매주 바꾸고, 전국에 토지를 확보하여 조성한 훈련장을 순회하여 교차함으로써 지형 숙지의 우위를 제거해 버리고, 매번 훈련에 임하는 무장 상태 등의 조건을 달리하는 등등.

오늘은 그나마 야투경에 소총, 권총까지 시뮤니션 파츠를 붙여 야무지게 챙겨 줬다. 하지만 그건 모두가 정말정말 두려워하는 한 가지 조건 때문에 마지못해 건네준 어드밴티지.

‘교관들이 쏜 건 아니겠지. 그 인간들이었으면 피하지도 못했다.’

국가무공원 시범 부대의 교관 역할은 칠익회, 그중에서도 남미 팀이 맡고 있다.

연화존자의 은혜를 받은 칠익회 일원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군 생활을 보낸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팀이었다.

특히 소규모 작전에 있어서의 특출함은 자타 공인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바.

실제로 그들이 걸어온 길이 그랬다. 남미 대륙 전체를 고작 두 자릿수로 커버하며 신분을 숨긴 마교도 사냥, 내공심법도 모자라 잠수함마저 운용하는 부유한 카르텔과의 전투 등의 일을 해 온 것만 봐도, 이 평가가 자의식 과잉은 절대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그들은 최근 십 년간 사망자조차 없던 칠익회 최고의 날개였고, 그런 이들이 국가무공원 시범 부대를 교육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

교육받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아름다운 현실은 아니라 하겠다.

‘악마 같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진짜.’

칠익회 남미 팀은 시범 부대원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인지되어 있었다.

교관들을 상대로 한 훈련에서 시범 부대가 승리를 거둔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국가무공원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처음에도, 자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요즘에도 사례가 없었다.

훈련이니까 이 정도라는 걸 시간이 가면서 알게 될 뿐이다. 적으로 만났다면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틈도 없이 사망했을 터.

걸어 다니는 죽음과도 같은 자들이다. 저런 자들을 잡음 없이 이끌며 완벽한 장악력을 보이는 연화존자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솟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

이준형 하사가 기감을 예민하게 세운 채 열심히 뛰는 이유였다.

‘교관들만 피하자, 나머지야 어떻게 되겠지.’

같은 팀원들이 남아 있었다면 역으로 잡아 먹는 시도라도 해 볼 테지만, 초장에 다른 팀의 매복에 걸려 혼자만 살아남은 상태로는 피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숨는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미군의 최신예 야투경을 개인별로 지급한 걸로 보아, 그와 같은 얌체 짓은 사전에 차단된 것이나 마찬가지.

신중하게 도주로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가능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스스스스

숲을 가르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귀로 듣는 것인지, 아니면 연화존자가 직접 진기도인하여 보급한,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프로토 타입의 내공심법인 ‘무명공(無名功)-1’의 힘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경외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을 가르친 교관들과 국가무공원 관계자들은 이것이 완전하지 않은, 수정 가능성을 열어 놓은 기본공에 불과하다고 했으니까.

본래대로라면 이러한 종류의 내공심법을, 그것도 진기도인하여 익히게 하는 건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미약한 미안함마저 보이더라. 자칫하다간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더 나은 가능성을 막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있다고 설명했거든.

이미지와 다르게 친절한 사람들 같으니. 이 정도만 해도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인데.

물론 연화존자가 있기에, 무공이라는 공부에서 극의에 도달한 천하제일인이 있기에 큰일은 없을 거라는 안심되는 설명이 곁들여지긴 한 상태.

군인의 시간은 국민의 세금이며, 평가는 어느 정도 성취가 오른 상태에서 가능한 것이었다며, 국가무공원은 시범 부대 운영 종료 후를 말하곤 한다.

그 이후에 좀 더 나은 무공을 보급함과 동시에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의사를 묻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집중하자.’

맹렬히 달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맹렬히 달려오는 애증의 동기들이 있다. 혼자 남은 자신을 잡아 공적치를 쌓고 싶은 사랑스러운 자식들 같으니라고.

교관들이었으면 벌써 잡혔을 테니, 뒤에 붙은 인간들이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부대원들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맥없이 잡혀 줄 순 없지.’

살벌하게 스쳐 가는 시뮤니션 탄을 피하며 이준형 하사는 몸을 뒤튼다. 지면을 박차고 나무 위로 올라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이었다. 맨몸으로도 하기 힘든 일을 소총과 개인군장을 달고도 해내니, 문외한이 본다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질 터.

그러나 훈련장 안에 그런 사람은 없다. 있었어도, 이젠 없다.

되레 같은 방식으로 따라오는 동기만이 있을 뿐. 이 하사가 노리던 바였다.

“제길!”

허리를 틀며 방아쇠를 당겨 지면을 박차고 따라오는 동기들에게 탄을 뿌린다. 운이 좋게 적중하여 둘이 탈락한다. 이 정도면 혼자 남은 것치곤 체면치레는 한 셈.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운 좋게 피한 한 사람이 남았다.

달려드는 체형이 눈에 익어 누군지 알 것 같다.

망설임 없이 대검집에서 대검을 꺼내는 모습부터가 말이다.

“하압!”

고무 칼날로 된 대검을 흉흉하게 휘두르며 배 중사는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야투경을 단단히 쓰고 있지만, 못 알아볼 수 없다.

외모나 다른 것보다 열과 성을 다하는 그 태도에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흡!”

타이밍을 뺏긴 이 하사가 멜빵으로 감아 놓은 소총을 재빨리 뒤로 돌리고, 허벅지의 대검을 꺼내 반격한다. 배 중사의 고무 대검이 순간 휘지만, 다시 탄성을 회복하며 똑바로 선다.

그게 무슨 현상인지 잘 아는 이 하사가 이를 악문다.

“배 중사님! 아무리 그래도 내공은 좀!”

“이게 다 국민의 세금인데 최선을 다해야지, 이 하사!”

국가무공원 시범 부대가 분격적으로 돌아가며 배정현 중사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평상시의 쾌활함과 붙임성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좋아졌다. 예전에는 웃는 가운데 어딘지 모를 그늘 같은 것이 있었다면, 요새는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방긋방긋, 인생에 행복만이 가득한 꽃밭 속을 거니는 것처럼 광채가 나며 신수가 아주 훤하다.

하지만 훈련 때만큼은 다르다.

평소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열렬하다. 마치 한 마리의 맹수처럼 날뛰다 부상을 입기도 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열정으로 스스로를 혹사하며 목적을 위해 과도한 열정으로 질주한다.

마치 지금과 같이.

아직 내공 수련이 반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내력을 고무로 된 대검에 밀어 넣어 강도를 높인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 되는 일 아니겠나?

배 하사는 나이와 부대 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재능에도 빠르게 그 일을 해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확실하고도 분명하다.

“연화존자께서 원하시잖나!”

“아오! 누가 팬클럽 회장님 아니랄까 봐!”

얼마 전 있었던 북한과의 전투 이후 줄곧 저 모양이었는데, 배 중사 혼자 저러는 것도 아니었다.

시범 부대 내에 연화존자의 은혜를 받은 이가 그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거든.

부대원들의 아픈 가족들 대다수에 연화존자의 손길이 닿았다. 이후의 요양에 있어서도 관심은 끝나지 않아 연화존자는 개인 재산을 털어 모두에게 최상의 의료적 케어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는 부대원들이 불만을 가졌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지만.

당장 이 하사의 부모님과 처가가 국가무공원의 지원 아래 창업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물론 아무리 그래 봤자 충성심이란 게 아들이 죽다 살아난 아버지만 하겠냐마는.

배 중사를 비롯한 몇몇 부대원은 성과를 원한다는 연화존자의 말에 몸을 아끼는 법이 없었다.

실력을 키워 북한-마교와 싸우겠다는 열정이 흘러 넘치지.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러 이 하사를 노리는 것이 그렇다. 주로 손목을 비롯한 팔과 상체를 노리는 몸동작에는 선명한 목적성이란 게 있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건 사실 상대가 상대이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상대인 이 하사가 자신을 향해 가해지는 모든 공격을 일일이 쳐 내는 것도 모자라 반격하고 있지 않나?

혈통에 잠재된 재능인지 부대원 중 무공에 대한 최상의 숙달을 보여 주는 그였다. 집안 자체가 맥이 끊긴 무림인 집안이었고, 나이도 어린 축에 속해 적응력도 뛰어났던 바.

야밤의 근접전은 말 그대로 불꽃 같은 기세로 이어진다.

그리고 예고 없이 끝난다.

-퓽. 퓽.

“억!”

“악!”

귀신 같은 누군가의 개입으로.

“배정현, 이준형. 탈락. 훈련장 밖으로.”

별다른 장비도 없이 시뮤니션 파츠만 낀 소총을 달랑달랑 흔들며 교관은 떠나갔고, 순간 피가 식은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 보다가 픽 웃는다.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힘들다기 보다는 개운한 느낌, 평소 부대에선 느끼지 못한 완전한 새로운 느낌.

연화존자의 동기부여는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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