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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59화 (59/175)

#59화

“…현재 시범 부대의 운영 자체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무공원에선 무명공-1을 진기도인으로 전수받아 전력화 중인 시범 부대에 대한 보고가 연일 한창이다.

그야말로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국가무공원은 이 일을 질질 끌고 싶은 생각이 없어 숨 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대한민국에 해야 하며, 하고 싶은 일이 어디 한둘이던가? 군에서 운용할 내공심법을 개발하여 전략 자산화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기초적 과업이다.

남은 수많은 일을 위해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회의를 위한 회의만 줄창 연다는 건 아니다. 국가무공원의 인원 대다수는 무림인이며, 간결한 직관성은 강호인의 분명한 미덕일 터.

페이퍼 작업은 최소화한 채 실질적인 조치와 보고만을 올리도록 했다.

오늘 회의 역시 그렇다. 연화존자와 운하신권, 청해마도. 거기에 흑응과 양성 중인 진기도인단까지.

국가무공원 최고 핵심 인원 전원이 참석한 회의이자 일종의 수련장에서, 연화존자는 묵묵히 보고자의 말을 듣고 있다.

말하는 이의 낯빛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내용이 제법 긍정적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압박감, 심리 분야가 아닌 실질적 의미의 압박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무공을 익힌 인원을 배제했기에 무명공-1로 인한 변화를 객관적으로 산출해 내는 게 가능했습니다. 가장 중점에 두었던 체력을 비롯한 근지구력, 반사 신경의 뚜렷한 향상과 빠른 성취를 관찰할 수 있었고요. 첨부한 그래프를 보시면…….”

그것은 바로 장내를 가득 채운 내력 때문.

회의장 안 모든 사람은 연화존자와 운하신권, 청해마도의 강력한 내공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버티고,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는 단련을 하기 위함이다.

이런 식의 기감 수련에 익숙한 흑응을 제외하곤 다들 버거워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듭 말하듯 이들은 시간이 없다.

“당연히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부대원 전원에게서 빠른 신체적 능력의 향상을 확인했습니다. 적어도 효과와 속도 면에서 크게 흠잡을 데 없다는 것이 저희 실무진의 판단입니다.”

진기도인단이 이 회의에 참석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 또한 익혀 내공의 길을 열어 줘야 하는 무명공-1에 대한 사실들을 숙지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결국 그 또한 무위가 받쳐 줘야 가능한 일.

진기도인을 하기 위해 내력을 다루는 실력과 감각이 향상되어 한다는 이야기고 그러자면 세 명의 절대고수가 의념을 담아 장악한 공간 속에서 버티고, 이겨 내는 것만 한 훈련이 없었다.

연화존자는 장담하기까지 했다. 이보다 더 큰 기연도 없을 거라고.

칠익회 인원들이 하던 훈련이다.

진기도인단 자신들부터 느끼고 있기도 하다. 기진맥진한 가운데서도 점차 크기와 단단함을 늘려 가는 단전을 체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최초의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습니다. 목표치를 하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 회의 때는 이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 말조차 잇지 못하던 이들이 무사히 보고를 마치는 것도 모자라 국가무공원의 세 고수가 제시했던 목표치의 하향을 입에 담는 것을 보라.

이보다 더 큰 장족의 발전을 목격함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유는?”

이에 연화존자는 담담하게 묻는다. 일체의 감정은 배제한 채, 냉철함을 유지한 채.

국가무공원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이기도 했고, 또 그의 내력으로 회의장을 채우고 있기도 하다. 자칫 마음이 어지럽다간 다른 이들에게 큰 부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의기상인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는 이런 점이 불편하다. 남들과 있을 땐 마음가짐조차 다스려야 한다는 것.

“최초의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면 군과 경찰, 소방에 각기 다른 기초 심법을 제공한다는 걸 이야기하는 건가? 이걸 왜 바꾸자는 거지?”

“효율의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입안한 계획을 바꾸자는 말에 화가 난 걸 억지로 참는다는 건 아니다.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생각으로 내린 판단이라 생각했는데, 효율이라?

“세 가지 기초 심법을 진기도인단 전원이 모두 익히고, 그것을 따로따로 진기도인하는 것보다 한 가지 기본공만을 진기도인하는 것이 보다 나은 방식이란 결론에 저희 실무진은 도달했습니다.”

보고자가 잘 정리된 PPT를 올려 개선의 근거를 발표한다.

“어차피 군인, 경찰, 소방관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무공으로 채울 수 있는 요소들은 공통적입니다. 육체적인 요소에선 근력, 지구력, 폐활량 등이 있을 거고 정신적인 면에선 냉철함과 판단력 같은 걸 줄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세 직업군별로 나누는 건 차후라면 모를까 기초적인 단계에서는 불필요합니다.”

“어차피 말단에서 필요한 건 비슷하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진기도인을 한다 해도 개중에서 제대로 무공에 입문할 만한 재능을 가진 건 5퍼센트 정도 될 거라 들었습니다, 국장님.”

“맞아. 재능이 없는 상태로는 괜찮은 내공심법으로 진기도인을 받아 봤자 건강이나 조금 좋아질까? 잔병치레는 확실히 없어질 테지만, 그게 다지. 돈 태우기 딱 좋게.”

사실이었다.

진기도인으로 내공을 느끼고, 길이 열렸어도 그것을 유지하는 이는 내력심법의 효능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 인구의 5프로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이 재능이었다. 내력의 감각을 유지할 만한 재능을 타고날 것. 물론 극한의 의지로 이를 이겨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또한 자질의 영역.

그래서 정부 차원의 내공심법 보급이 지지부진한 면도 있었다. 가뜩이나 진기도인을 할 수 있는 고수가 드문 세상에 그 정도 확률을 감수하고 국가사업으로 벌일 배짱이 민주주의 아래 정치인에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연화존자 같은 이가 있지 않고서야 말이다.

“연화신공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라 확률 자체는 그보다 오르지만, 전체적인 효과라는 면에선 미미할 테지. 뭐, 개인적으로 국민 건강 증진도 굉장히 사회간접자본 축적에 기여하는 바라고 생각하곤 있지만.”

“예, 역시 대한민국을 생각하시는…….”

“아부는 됐고. 그럼 각 직업군별로 다른 특징은 어떻게 채우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지만 역할에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면이 있는데, 군에서의 문제가 시급합니다.”

이어진 보고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선 현재 무명공-1로 불리는 내공심법을 기본공으로 삼고 전군에 보급하는 걸 1차 목표로 삼습니다. 이때 군인이라 함은 징집된 사병과 지원한 부사관과 장교 전체를 일컫습니다.”

“그리고?”

“사병들의 경우엔 무명공-1만을 익히게 하고, 부사관과 장교들의 경우엔 간부 전용 내공심법을 제공했으면 합니다.”

“따로 분리하는 이유가 있나?”

“인력 수급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꽤나, 현실적인 이유였다.

“병사 월급이 오름에 따라 간부 수급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간부 월급에 대한 부분이야 저희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지급하는 무공에 있어서의 차급은 확실히 있어야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나?”

“임관 전 간부 훈련 중에 무명공을 지급하고, 임관 후 1년에서 2년 사이에 간부용 무공을 지급하는 게 어떤가, 합니다.”

보고자의 말에 다들 생각에 잠긴다. 실무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론에 대하여.

질문들이 쏟아진다.

“경찰과 소방관 쪽은 어떻게 하지?”

“경찰의 경우에도 무명공-1을 보급하고, 대신 강력계 등 험한 임무를 맡는 쪽에 따로 무공을 보급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방관의 경우에는 사실 열양지력을 지닌 무공이 가진 부작용도 그렇고, 대성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차라리 장비 개발 등으로 지원함이 어떤가 합니다.”

운하신권의 물음에 대한 답이 이랬고.

“공군이야 그렇다 쳐도 해군의 경우는 어떻게 할 건가?”

“해군은 임무의 특성상 내공심법도 내공심법이지만, 처우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하여 기초적인 수공을 지급하는 동시에 처우 쪽에 개선을 둬야 하는 게 아닌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청해마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그 외에도 많은 물음이 있었고, 보고자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해 연화존자를 흡족하게 했다.

“생각 많이 했네.”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지?”

“진재우라고 합니다.”

이에 연화존자는 박수를 치며 주변을 환기한다.

“진재우 씨, 지금 발표한 게 개선안의 전부인가?”

“가장 시급한 것들부터 추렸습니다.”

“며칠이면 정식으로 보고서 올릴 수 있겠나?”

“열흘이면 충분합니다.”

“확실해?”

연화존자가 장난스레 웃으며 되묻는다.

“나 국가적 사명감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무리해서 일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 향후 십 년, 이십 년의 대한민국을 바꿀 일이니까 시간적 여유는 가지되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고 올리도록 해. 적극 반영하도록 할 테니까.”

“알겠으니까.”

“재우 씨가 책임지고 하라고. 시간 외 수당 빼먹지 말고, 식비도 팍팍 쓰고. 발표 잘하더라.”

“감사합니다!”

우렁차게 인사하는 진재우를 격려한 연화존자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래, 이러려고 사람 모아서 일하는 거지. 독보강호 할 세상이 아니잖아?

그러자 불현듯 얼마 전부터 생각하던, 사회에 기여할 한 가지 방안이 떠오르는 연화존자였다.

“우리 교도소는 언제 완공이지?”

“내년 중순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연화존자의 뜻밖의 말에 시선이 쏠린다.

“이번엔 또 무슨 재미진 생각을 하고 있나, 자네?”

운하신권이 빙그레 웃으며 물으니, 연화존자 또한 씩 웃으며 답한다.

“저희가 짓고 있는 게 무림인 교도소 아닙니까?”

“그렇지. 덕분에 크고 튼튼하게 짓고 있지.”

“그리고 우리나라도 교도소 자리가 부족하고요.”

“자네, 설마?”

연화존자의 말에 운하신권이 뭔가 눈치챈 듯 눈이 커진다.

“흉악범들도 무림인 교도소에 수용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가령 무기 징역수나 사형수, 누범자 같은 사람들이요.”

연화존자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 왔었다.

법이 허용하는 처벌과 실생활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해결하여 국민적 공분을 가라앉힐 방편으로.

“어차피 우리나라는 사형제 폐지 국가 아닙니까? 덕분에 온갖 쓰레기짓을 해도 죽이지도 못하고 밥이나 꼬박꼬박 먹이며 자연사하는 걸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거면 무림인 교도소에 수감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후의 말은 생략한다. 무기 징역수와 사형수들이 극악의 무림인 범죄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떤 생활을 할지에 대한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알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손이 닿는 국회의원들에게 언질을 주지.

“당가그룹엔 제가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치인들도 생색내기 좋다며 좋아할 겁니다. 나름 선물이 되겠군요.”

운하신권과 흑응이 이를 환영한다.

정치인들을 어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달래기도 해야 했다. 뜯어 내고 협박하더라도 줄 수 있는 건 줘야 했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민주주의하에서 뭔가 하려면 척만 지고 살 수는 없다.

대중들도 좋아할 일이라 생각한다.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뻔뻔한 범죄자를 봐야 했던가?

존속살해범 따위가 사형제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판국이었다.

뉘우침을 판사한테만 보이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 강호의 뜨거운 맛을 보여 준다면 싫어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청해마도가 입을 연다.

“형님.”

사적인 호칭으로 부름에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다만 집중하여 듣는다.

“북한-마교 놈들. 이대로 넘어가실 겁니까?”

주제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마교와의 충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에 누군가는 긴장하지만, 연화존자는 웃었다.

제법 사납게.

“아아, 당연하지.”

은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마교 놈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를 거다. 걱정하지 마.”

음지의 칠익회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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