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61화 (61/175)

#61화

베이징의 모처.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들이 침묵으로 한데 모여 있다.

같은 당에 속해 있어도 언제든 권력투쟁에 나설 수 있는 사이인 그들이기에, 오늘의 고요함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실상 그리 좋은 일로 모인 것도 아니다.

표정이 다들 안 좋다.

속사정을 보면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최근 당의 일에 사사건건 방해를 하고 나선 소국의 한 무림인에 대한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나?

그래도 대국의 체면 때문인지 본론부터 시작하는 법은 없다.

“…북한 쪽은 좀 어떻소?”

자리에서 가장 높은 이, 본래대로라면 세 개 파벌이 돌아가며 차지했어야 할 주석의 자리를 독점한 권력자의 질문에, 누군가 조심스레 답한다.

“정찰총국 내에서 큰 숙청이 있었다 합니다.”

“큰 숙청?”

짧게 말하는 주석의 말 안에 큰 언짢음이 있음을 알기에,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보고 안 할 수도 없는 일.

이것은 감출 수도 없는 일이다.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남한에 대한 도발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찰총국과 거력패부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흐음… 책임이라.”

“자신 있게 나선 거력패부 쪽 인원은 전원 사망. 남한의 사기만 올려 준 셈이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얼마 전부터 일어난 북한 해커에 대한 사냥으로 손해가 막심하지 않습니까? 막대한 외화를 벌어 온다며 애지중지하던 최정예 해커 부대가 절반은 족히 날아갔고, 돈세탁 브로커들까지 잡혀 간 바람에 묶인 돈만 수억 달러입니다. 명시적으로 누구의 사주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솔직히 누가 지시하여 실행했는지야 뻔한 일이니 유아무야 넘어갈 수 없다고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여긴 것 같습니다.”

여기서 손해가 막심하다는 게 비단 북한만 그런 건 아니었다.

북한이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 및 기업 집단 등을 해킹해 얻은 부정한 수익을 세탁해 주는 곳이 바로 중국 공산당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대한 주석의 승인이 필요하여 오늘의 자리를 요청드렸습니다. 북한의 자금을 세탁해 준 당의 일꾼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사라진 그들로부터 혹 정보가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당의 비자금 흐름이 외부로 노출될 수 있습니다. 옮겨야 합니다.”

“흐으음…….”

이는 여러모로 이득이 쏠쏠한 사업이었으니, 모인 자들이 연화존자가 시행한 음지에서의 보복에 이를 가는 것도 일견 이해가 갈 만한 일이다.

북한의 해킹은 그들에게 있어 아주 좋은 불로소득이자, 중화를 공격하는 서방 세계에 대한 제법 괜찮은 공격 아니었던가?

거기에 더해 공산당이 굴리던 비자금을 세탁하던 자들이 북한의 돈도 관리하고 있던 탓에, 보복 과정 중의 납치로 멈춘 대외 공작이 한둘이 아니었던 바.

골치 아픈 게 보통이 아니었음이니, 화가 머리끝까지 날 법한 일.

게다가 연화존자와 중국 공산당의 악연이 그것뿐만은 아니기까지 했다.

“…그 연화존자라는 작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시오. 이름이 김철민이라던가? 그자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 아니오?”

이 말에 나서는 건 앉아 있는 다른 이들과 확연히 결이 다른 누군가.

어딘지 모르게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는 반로환동을 한 무림인으로 현재……”

-탕! 탕! 탕!

그러나 자신 있게 나선 남자의 말은 책상을 내리치는 주석의 분노에 돈좌된다.

“내가 지금 그놈의 빌어먹을 무공 수위 같은 걸 물었어? 그 자라 대가리 같은 놈이 대체 왜 당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설명해 보란 말이야!”

참았던 분노가 불을 뿜는다.

당연했다. 연화존자는 그들의 전략 바깥에 있던, 상정할 수 없는 존재.

주석은 대체 왜 자신이 그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놈이 모든 걸 망치고 있어! 그렇지 않나? 북한과의 작은 싸움에서 이익을 본 일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저 소국 놈들이 기세등등하게 미국 대통령을 불러왔다고! 이거야말로 소국 주제에 대국을 우롱하고, 업신여기는 처사가 아니고 무어냔 말이야! 더 환장하겠는 건 뭘 제시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치매 걸린 늙은이는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했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놈이 뭔데? 뭘 할 수 있어서, 뭘 믿고 이 난리인 건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보란 말이오, 다들!”

씩씩거리는 노여움에 좌중이 침묵하는 사이, 마찬가지로 평범한 공산당 간부는 아닌 듯한 노인이 입을 연다.

하얀 장포를 걸친. 백발, 백미, 백염의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뱀을 닮은 늙은이였다.

“추측 가는 바가 있습니다.”

분명 그렇지 않았음에도 쉭쉭거리는 것처럼 말하는 것으로 들리는 노인을 보며 분노를 토해 내던 주석이 애써 진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적으로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사파의 고수로 이름 높았고, 공적으로는 공화국 국가안전부 무림정찰국 국장인 청혈백사(靑血白巳)를 상대로 언성을 높이기엔 아무래도 꺼림직하기 때문이었다.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익히고 있는 사사공의 상위 무공인 혈망지공(血蟒之功)의 주인이기도 한 저 늙은이의 손에 몰락한 당의 간부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는 당의 통제를 받는 사파 무림인 중에서도 가장 거물급이다. 문화혁명 당시 사파 무림마저 휩쓴 하방 열풍을 피해 갔을 정도의 수완가. 비록 중국 공산당이 자랑하는 구주팔황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그 이상의 영향력과 권력을 가진 모사가이기도 한 무림의 늙은 생강.

언제나 숙청의 칼날을 피해 제 자리만은 지켜 내는 재주꾼이었고, 현재의 주석이 지금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공신이기도 했다.

나름의 신뢰가 있는 사이인 것이고, 이는 다음과 같은 가정으로 확인된다.

“저희는 연화존자, 그가 오래전부터 당과 충돌해 온 ‘암막의 적’, 그곳의 수장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암막의 적? 최근 여우 사냥을 방해했다는, 그?”

“그렇습니다.”

부패 혐의로 해외로 도주한 고위 공직자 등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일명 여우 사냥 자체는 2014년부터 시작됐지만, 중국 공산당의 반체제 인사에 대한 추적과 감시의 역사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악의적인 외교 역량을 투사하여 타국 정부에 영향력을 끼치던 것인데, 이때마다 은밀히 당의 행사를 방해하던 세력이 있었다.

공산당 내부에서 ‘암막의 적’이라 불리는 자들이 말이다. 무르익은 중국의 첩보 역량으로도 제대로 된 실체를 파악할 수 없게 파편화되어 있는, 하지만 그럼에도 목표와 목적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미지의 조직이.

그런 그들이 중국 공산당에 반발하여 영향력을 행사한 일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금 한국으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 중인 당가그룹과 이탈리아 마피아로 완벽히 변신한 제갈 패밀리에 대한 작전의 훼방이다.

당가그룹의 경우 거대 재벌로 거듭나는 그들을 당의 인적 자원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동시에 성장을 억제하려던 것이 실패한 것을 일컬으며, 제갈 패밀리의 경우는 삼합회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재계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것이 어그러졌던 일을 말한다.

“중원에 적대감을 가진 게 뻔한 당가의 성장을 방해하고자 회유와 압박을 함께 썼지만, 이를 위해 파견한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들이 하룻밤 사이 떼몰살을 당했습니다. 제갈 패밀리의 경우엔 오랫동안 공들여 키운 이탈리아의 관료와 정치인들이 모조리 실각하며 억제에 실패했지요. 워낙 은밀하고, 급격하게 전개된 일이라 저희 쪽에서도 이를 수행한 자들이 암막의 적이라고 추측만 할 뿐,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은 연화존자라는 자의 소행이었다?”

주석의 물음에 청혈백사가 희미한 미소, 입꼬리만 슬쩍 들어 올리는 웃음 같지도 않은 웃음을 보이며 말한다.

“소국의 국가무공원을 조사하며 첩보를 수집하던 중에, 재밌는 사실 몇 가지를 알아냈습니다.”

정말로 재밌는 일인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방해받은 것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를 숨기고 그러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청혈백사가 이번 사태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느리게 쉬는 숨 사이로 비져 나오는 표정이 그렇다.

이 늙은 무림의 고수는 연화존자와 그 부하들에 대한 감정이 분명 있다.

“국가무공원에 모이는 자 중의 일부가 암막의 적이 남긴 흔적의 부스러기와 일치합니다. 짧은 CCTV와 남은 흔적을 분석한 결과, 그들이 우리가 쫓던 자들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술의 유사성, 그에 더해 공통적으로 보이는 보법과 움직임의 버릇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마시지요, 주석.”

어쩌면 정말로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보이지 않는 적과는 싸울 수 없지만, 보이는 적은 상대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암막의 적, 아니 연화존자로 인해 그간 우리 당은 여러 번 손해를 보았지만, 이제 실체를 드러낸 저들에게 우리 또한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청혈백사는 오늘 이 자리를 대비해 확실히 여러 가지를 준비해 온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건대, 국가무공원의 연화존자는 암막의 적일 때와 행동 방식이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오?”

“그들은 법과 규칙 아래에서 움직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청혈백사는 늙은 생강이 매섭다는 강호의 격언을 증명한다.

“암막의 적 시절에도 민간의 피해를 최대한 지양하며 보안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그들입니다. 이제 공식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며 최대한 법과 여론 사이에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출범 전후로 잡다한 범죄자들을 잡아들여 여론의 지지를 확보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 사실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이용할 생각이오?”

“당의 돈을 받은 소국인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청혈백사의 희미했던 미소가 이 대목에서 짙어진다.

마치 뱀이 혀를 내밀듯 요사한 말을 쏟아 내며.

“포섭된 소국인들을 동원해 여론 작업을 걸 겁니다. 늘 그랬듯이 인터넷에서의 작업 역시 병행해야겠지요. 소국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이를 분별해 내지 못하고 자중지란에 빠질 것입니다.”

청혈백사는 이렇게 호언장담했지만, 주석의 마음이 차는 방침은 아니다.

“그게 전부요?”

고작 그 정도로는 자신의 심기를 거스른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가 되지 못한다는 주석의 내색에, 청혈백사가 크게, 더 크게 웃는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혀가 보이지 않는 붉은 입이 참으로 인상적인 모습이다.

과연 마오쩌둥의 마수에서마저 살아남은 사파의 거두.

“연화존자는 오만한 자입니다. 홀로 거력패부의 도발에 응한 것을 보십시오.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 뻔합니다.”

“하면?”

“북한에 다시 한번 무력 도발을 부탁하겠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 뻔한 국제 분쟁에 대한 음모가 그 입을 통해 나온다.

“연화존자는 필시 홀로 올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경솔하게 행동할 테지요. 그때 당의 고수들을 내보내 요격하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 감히 대국의 행보를 방해하던 소국인은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겁니다. 제 무공 하나만 믿는 강호의 무뢰배에게 어울리는 최후가 될 테지요.”

“흐음…….”

이에 주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다.

“일을 성사시킬 구체적인 방안은?”

“북한이 해커 부대를 잃으며 손해 본 금액을 채워 주겠습니다. 설령 거부한다 해도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탈북민들을 3개월만 잡지 않아도 무너질 나라입니다. 움직일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인원은 얼마나 동원해야겠소?”

“구주팔황, 전원이 있어야 합니다.”

“국장님! 그건…….”

자리한 사파 무림인들이 반발하려 하지만, 주석이 들어 올린 손바닥 하나에 침묵한다.

자못 무력하게.

“그 정도까지 필요하오?”

“연화존자도 문제지만 운하신권이나 청해마도가 있습니다. 혹시 모를 그들의 지원 때문에라도 구주팔황급 고수가 여럿 나서야 확실합니다.”

청혈백사의 단언에, 발언이 제지 당한 보랏빛 기운 감도는 눈동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지지만, 감히 티를 내진 못한다.

주석의 얼굴에 비로소 만족스러움이 맺혔기 때문이다.

“책임지고 진행시키시오.”

“맡겨만 주십시오.”

완연한 뱀의 모습으로 공산당의 뱀이 허리를 조아린다.

음모가 무르익은 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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