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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63화 (63/175)

#63화

모두가 바빴던 한 달여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국가무공원으로 파견된 시범 부대는 훈련의 막바지에 들어갔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무명공-1은 자잘한 수정을 거쳐 보급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열정적이며 희생적이기까지 한 참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속도였다. 그리하야 이 노력의 대가로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었다.

연화존자는 이 거대한 사업의 기틀을 다진 이들에게 아직도 줄 것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애국심으로 인한 희생? 봉사 정신? 기름진 혓바닥으로 떼우는 기만질이 그는 싫다.

하여 국가무공원은 국방부와의 다음 일정을 조정 중에 있다.

진기도인단 역시 이에 맞춰 최소한의 수준을 갖춰 가고 있었다. 내기를 다루는 공부에 치중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고수 여럿이 이에 대한 지도에 나섰기에, 머지않아 그 이름처럼 구성원 대다수가 진기도인을 해낼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봉의 국가무공원 본청과 문경의 교도소 공사는 절반 정도에 이르렀다. 법무부와의 협상 또한 조용히 이뤄지고 있다.

칠익회 소속 인원과 회사들은 국가무공원으로 결집 중이다. 비밀스러운 부서가 여럿 새로 생겨났고, 해외 칠익회 지부 및 우호 세력과 연결망을 구축하는 작업은 한창.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하기 위해 합류하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그 소속이야 무엇이든 상관없게도 연화존자에 대한 충성심만은 모두에게 여전하다.

국가무공원은 자체 예산권을 움켜쥘 예정이다.

윤아영 검사는 그동안 해 오던 수사와 재판을 뚝심 있게 해내고 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어지럽힌 범죄자들의 재판이 대부분 마무리되어 가는 추세이며, 그간의 활약에 힘입어 뜻있는 법조인들이 국가무공원에 합류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속속들이 밝혀 오고 있다.

하여 긴 세월 드리웠던 연화존자의 상실을 걷어 낸 바 있는 올곧은 여검사는 조만간 다시 활약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녀를 위한, 그녀가 해야 할 더 큰일들이 이 대한민국엔 아직 여럿 남았다.

그사이,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외부 협력자들 또한 세력을 착실히 키워 나간다.

얼마 전, 뜻밖의 깨달음을 얻고 검은 머리가 나기 시작한 대한잔결회의 회장, 삼지일절은 개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조력자 중 하나다.

-장애가 불편함, 그 이상의 비참함이 되지 않게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이것은 신생 시민 단체의 패기 넘치는 홍보 문구 정도로 보였지만, 뜻밖에도 그들이 이루어 가는 현실이 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당가그룹과의 인연, 연화존자의 지원, 거기에 청해마도의 처가인 재벌가의 후원까지 이어지며 풍족한 예산을 확보한 이들 대한잔결회는 그야말로 시장 파괴적인 움직임을 보여 준다.

사회복지 업계의 평균 임금을 20만 원 이상 올렸다. 직접 고용도 모자라 엄청난 숫자의 돌봄 노동자를 고용하고, 전국 곳곳에 돌봄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하며 그렇게 했다.

더불어 일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당가그룹 등에 고용될 수 있도록 심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알선료는 사측에서 부담하는 연결로, 아픈 자식을 둔 부모들은 이 소식 하나만으로도 기꺼이 대한잔결회의 합류와 지지를 결정 짓는다.

당가그룹에 고용된 이들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최저임금 이상이었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반씩 비용을 납부하는 공제회를 따로 만들어 혹시 모를 불행과 퇴직 후의 미래를 대비하기까지 한다.

유래 없는 장애인 고용의 중심에 대한잔결회가 있는 셈.

무림인 출신다운 저돌적인 행보에 250만 장애인들과 그 가족은 물론이고 시민 단체와 종교계마저 술렁인다.

이처럼 대한잔결회가 공적 영역에서 파격적이었다면, 당가그룹은 재계에 충격을 선사한다.

다 떠나서 앞서 말한 장애인 고용의 규모와 이에 따른 지출만 봐도 그랬다. 저게 이익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의 움직임이긴 한가?

그들은 마치 영업이익이란 단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했던 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도록 당가그룹은 움직인다.

대한민국 소재 총기 회사와 협업을 하면서는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했다. 이 경우는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다. 회사의 창업주와 전대 회장이 연화존자와 인연이 깊다는 소문이 드는 강소 기업이었으니, 여기까진 무형의 이득을 위해 그런다며 이해를 할 수도 있었지.

하지만 노동자를 위한 직장 환경 조성을 하겠다며 아낌없이 돈을 푸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들다.

그간 누구도 저렇게까지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공장을 지으며 아파트와 공원, 학교와 병원을 함께 지었다. 공장에서 일할 근로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서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장애인 노동자들 역시 포함이며, 이동권 보장을 위한 많은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했다.

그에 더해 폐수와 대기 정화 시설을 만들었다. 단 한 톨의 오염 물질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틈 하나 없이 공을 들여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었다.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들을 초대했다. 사진만 봐도 부러울 정도로, 당가그룹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들도록.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당가그룹에서 일하는 건 이토록 좋은 일이야. 위치가 어디든 해봄 직한 일이라고.’

한국을 제2의 본사로 삼겠다는 말이 거짓부렁은 아니었나 보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튼튼하고, 깨끗하고, 혁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공간들이 유럽에서 온 중국 난민 출신 재벌가의 손에 대한민국에서 일구어지는 걸 보고 있자면 말이다.

심지어 요식업으로 성장한 그룹답게 직원용 식당이 여느 호텔 뷔페 부럽지 않을 정도였으니, 의심 많은 이들은 마치 화려한 가운데 독을 품고 있는 독버섯 같다며 겁도 없는 혹평을 해 대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매혹적이었다는 소리였다. 간혹 비난이란 유명함의 대가이기도 했으니.

당가그룹은 이것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했다.

이제 사람들은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한다.

사회 전반에서 행패를 부리던 무림인 범죄자들이 줄어들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조직폭력배들과 위세 등등하던 사이비 교주, 섬과 섬 사이에 숨어 있던 범죄자를 소탕하며 본보기를 보여 준 덕인지,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북한-마교마저 말이다. 저 악독한 거력패부조차 연화존자를 감당하지 못해 침묵 중이다. 여러 언론사에서는 현재 북한 사회에 엄청난 규모의 숙청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지.

국가 공인 자격증을 독점하며 폭리를 취하던 무림인 단체는 해체됐다. 국가무공원은 적어도 무림에서만큼은 자격증을 위한 자격증은 없을 거라 선언했다.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진 시위와 주장을 펼치던 시민 단체들은 줄어들었다. 더 이상 명분 없는 파업 따위에 출근길이 괴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 전체에 고용이 늘어났다. 당가그룹의 채용은 투자 금액만큼이나 대대적이었으며, 주로 장애인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 계획이 여러 분야에 진행 중이고, 또 예정되어 있다.

다만 군대에 내공심법을 보급한다는 계획만큼은 아직까지 확신이 없긴 했다.

그건 솔직히 너무 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대다수.

돌아가는 걸 보니 뭔가를 할 것 같기는 한데 최초의 발표대로, 돌고 있는 소문대로 될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대한민국 군대는, 대한민국 군대이지 않나?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이 엄청난 일들을 연속으로 실행했고, 성공하기까지 하여 기대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이 나타남에 따른 결과라는 걸 사람들도 이젠 안다는 사실이다.

연화존자. 그가 출현하며 대한민국의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절세 고수 한 명이 대한민국을 홀로 바꾸고 있다. 그것은 물론 일신의 재주가 하늘에 닿고 가슴에 품은 의기가 불을 뿜은 것일 테지만, 그럼에도 놀랍다.

그리고 이 놀라움이 비단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호의적이냐면 또 아니지만.

“만나서 반갑소, 미스터 킴.”

나이가 무색하게 곧은 허리와 단단한 아귀힘으로 악수를 청해 오는 미 대통령의 표정은 밝지만, 주변의 분위기란 그렇지 못해 삭막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통령.”

미 대통령의 악수를 김철민은 담담하게 받는다. 그와 국가무공원이 받은 홀대에 비하면 무척이나 예의 바른 태도였다.

방한의 마지막 순서인 건 그러려니 해도 일방적인 통보로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면 조금은 화낸 기색을 보여도 무방했을 텐데.

아마 그건 미국 측의 기싸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태도가 아니었을지.

진실이 뭐가 되었든 얼어붙은 분위기는 좀처럼 풀릴 기색이 없다.

“오랜만에 방한이다 보니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내 나이도 많다 보니 젊었을 적의 활력이 꿈만 같군요.”

나름하는 양해의 말에도 얼어 버린 분위기는 풀리지 않는다.

국가무공원 측은 냉막함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 측에서 방한 내내 보여 준 의도적인 무시는 이들에게 참기 어려운 불쾌감을 주었다.

연화존자와의 회담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다른 곳을 방문했다. 미국 본토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국내 재벌들을 방문했고, 대통령과 만찬을 가졌고, 주한 미군을 방문해 먼 극동까지 와서 고생 중인 장병들을 위무했다.

그러고는 대통령의 고령을 핑계로 오후를 통째로 쉰 다음에서야 국가무공원을 찾아왔다.

제법 유치하다.

“그렇습니까?”

도착해서도 노골적인 견제를 감추지 않는 이들을 돌아보며, 연화존자는 되물었다.

미 대통령을 경호하는 시크릿 서비스 인원들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고수들 앞에서 대놓고 총기를 드러내고 있다. 긴장감 어린 얼굴에 땀을 흘리는 이들도 있을 정도.

그들은 무림인의 공포를 아는 것 같았고, 사실 그렇다면 이해는 한다.

딱 이해까지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좋을 수 없다. 사람을 대체 뭘로 보고 저따위 태도인지.

그는, 연화존자가 아니던가?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다.

함께 배석한 운하신권과 청해마도 등은 생각하기도 한다.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한 명의 노인이 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꽤 신빙성 있는 의심을.

얇은 철판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시대착오적인 복장의 노인이 시선을 똑바로 한 채 연화존자를 노려보고 있다.

투구는 쓰지 않았지만 건틀릿과 방패를 살뜰히 챙긴 노인의 얼굴엔 지난 세월이 선명히 박혀 있다. 그가 젊은 시절 이루었을 투쟁의 자세, 해소되지 않은 옛 감정들을 노인은 온존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노인의 이름은 알렉산드루 칸타쿠치노. 루마니아의 유명한 귀족 출신인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오러연공법을 지니고 있는 유일한 기사이자, 전쟁이 끝난 뒤 적화된 조국을 떠나 도미를 택한 지상의 마지막 기사였다.

냉전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이 노기사는 국가무공원에 불만이 많아 보인다.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최후의 기사라 불리며 냉전 시기에 활약했던 유명한 기사에게 내공심법을 거래 조건으로 삼은 오늘의 자리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오늘의 무례가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그 속사정이 연화존자의 눈에 선히 보이는 것만 같다.

알렉산드루가 새로운 젊은 기사들을 양성해 내지 못했기에, 유럽의 기사단은 사라진 것과 다름없어지지 않았나? 수십 년 동안 매달렸음에도 해내지 못한 그 일, 내공심법의 제공을 약속한 국가무공원의 발언에 열불이 날 법도 하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연화존자가 알아 줄 필요가 없는 일이다.

기사단의 명맥조차 잇지 못한 늙은이의 질투 따위를 받아 줄 이유가 무엇인가? 그딴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기엔 연화존자는 너무 바쁘다.

“많이 바쁘시군요, 대통령.”

“이 자리가 그렇습니다. 하하하.”

연화존자가 알기로 이런 일에 있어서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해결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럼 바쁘신 분들을 위해 시간을 알뜰히 쓰도록 하죠.”

눈 깜짝할 사이에 보법을 밟은 연화존자가 회담장의 누군가의 뒤를 잡으려 손을 뻗는다.

“감히!”

노기사의 노호성은 그보다 조금 늦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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