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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66화 (66/175)

#66화

알렉산드루 칸타쿠치노를 윤아영 검사의 호위로 붙인 것에는, 곧 있을 내공심법 보급에 뒤따를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게 여럿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최후의 기사를, 정확히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

냉혹한 국제 관계 속에서 감상적인 믿음 또는 근거 없이 막연하게 잘될 거라는 생각만 가지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한쪽의 힘이 부족하고, 또 더없이 예민한 기술을 다루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국가무공원의 처지란 게 그렇다.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그렇다고 지상의 마지막 기사가 지닌 고결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거래 대상은 무려 미국, 세계 최강대국. 차마 방심하기도 어렵다.

자국민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한 전적이 있는 나라이며, 적성국에 무기를 팔아먹고 그 돈으로 다시 마약을 팔아 남미를 인세의 마굴로 만든 책임이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역사로 증명한 나라가 저 아름다운 나라 아닌가?

이러한 사실들의 나열이 미국이 악의 소굴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그곳 또한 선하고 악한 인간들이 많이도 모여 사는 어떤 나라라는 걸 연화존자는 안다.

어쩌면 세상 모두가 그런 법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함부로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이지. 대놓고 의심하는 것도 하수이지만, 경각심 없이 마냥 있는 것도 멍청한 짓이야. 사람 마음이 어떻게 바뀔 줄 알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무형의 압박을 양손을 교차해 원을 그리며 해소한 연화존자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훈련조차 쉽사리 밖에 보일 것이 아니라는 상념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지 못했다지만, 여전히 세계 최상위 클래스의 내공 사용자인 알렉산드루라면 이것만 보고도 무언가 단초를 얻을지 모르는 일.

어찌 함부로 보일 텐가? 꼭꼭 숨겨야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이자, 차기 국력의 핵심이 될 무명공을 발전시킴에 있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다.

명백한 미국의 감시역을 옆에 두고 마음 편히 일할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윤아영 검사에게 최선의 경호가 필요한 것 또한 맞긴 했다.

‘전처럼 무식하게 나오는 놈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건 맞아. 귀찮은 놈들이 오죽 많아야지, 원.’

얼마 전, 보건복지부와 여가부에서 별 상관도 없는 윤아영 검사를 찾아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 평범한 검사인 그녀를 찾아오는 자들이 근래 부쩍 늘었다.

여기서 찾아온다 함은 위협보다는 포섭 비슷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폭탄과 총격으로도 막을 수 없는 여검사는 이제 귀찮게 하는 것밖에 남지 않아 가까이는 국내의 정재계, 관료 집단부터 멀리는 국가무공원의 행보에 관심이 많은 해외의 방첩 조직까지 여러 곳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윤아영에게 접근하는 요즘이었다. 씨알도 먹히지 않긴 했지만, 꽤 번거롭다.

실제로 얼마 전, 윤아영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해 오던 꽃집을 국가무공원 근처로 옮길 수밖에 없었을 정도.

이미 한번 테러를 겪어 보기도 했기에 안전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종종 미 대통령의 경호마저 맡기도 하던 알렉산드루 칸타쿠치노의 존재는 신뢰 문제를 제외한다면 제법 기꺼운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윤아영을 미국 쪽으로 회유하거나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후의 일이다.

‘스스로 맹세한 걸 어기는 사람은 아니라지?’

바닥을 훑으며 올려 차는 발차기를 발바닥으로 받은 뒤 밀어 버린다. 그러곤 연화존자는 알렉산드루에 대해 아는 것들을 떠올린다.

그가 최후의 기사라 불리는 것이 단순히 유럽의 오러연공법을 간직한 마지막 하나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는 것 따위를 말이다.

그가 가진 힘보다는 지난 수십 년간 보인 신의와 인내, 명예에 대한 증명이 그를 마지막 기사로 불리게 만들었다는 걸 연화존자 또한 들었다.

수많은 유혹이 있었음에도 루마니아에 남은 자신의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희생한 미국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면서 지금껏 영원한 현역으로 남아 있던 사내 아닌가?

윤아영 한 명의 안전 정도는 기꺼이 보장해 주리라. 그것이, 약속이었으니까.

믿어도 좋다.

“흐읍.”

그러니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은 할 일을 먼저 마무리하기로 한다.

호흡을 멈추고, 내기를 모아 주먹을 내지른다. 수련장을 가득 메운 연화존자의 압박이 거세게 흔들리며 파도처럼 밀려간다.

굳건히 뻗어 내는 연화존자의 주먹 앞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버틴다. 일종의 진의 형태를 이루어 서로를 보완하며 연화존자와의 대련을 지속하던 이들이 노도처럼 밀려오는 오행무극도의 내력에 힘을 내어 맞선다.

이에 가만 보던 연화존자가 나아간다. 앞으로 단 두 발자국. 제 집 거실을 거니듯 편안한 태도로.

그러자 자리한 모두가 흔들린다.

그래도 실패는 아니다. 오늘은 아니다. 금방이라도 튕겨져 나갈 듯, 보이지 않는 기운에 출렁이며 흔들렸지만 쓰러지는 이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얼추 된 것 같군.”

연화존자는 비로소 때가 되었음을 안다.

“오늘내일 푹 쉬고 내일모레 보도록 하지. 그날, 여기 있는 인원들의 임독양맥을 타통하겠다.”

그 말에 겨우 버티는 게 전부이던 인원들의 눈이 커지고.

“그간 고생했다.”

소리 없는 희열이 사방을 메운다. 간단한 칭찬을 남기고 등을 돌리는 연화존자의 어깨 너머로 탈진하듯 주저앉는 이들의 기척이 여기저기 느껴진다.

이해한다. 쉽지는 않았던 게 맞지. 대한민국에 내공심법을 보급하겠다는 고난에 가까운 계획을 위해 고행에 가까운 수행을 해 온 이들이 아닌가?

반쪽짜리 무인은 고되고 위험할 연속적인 진기도인을 감당할 수 없다는 연화존자의 지론에 따라, 매 순간순간이 도전이던 날들이었다.

칠익회와 현천문 내에서도 오성과 재능이 가장 뛰어난 이들을 고르고 골라 내고도 오늘에서야 최소 조건을 이룬 셈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미리 상정한 기간에 딱 알맞은 시기.

예비 진기도인단은 곧 ‘예비’라는 두 글자를 뗄 수 있게 되리라.

임독양맥의 관문에 도전하여 성공하기만 한다면.

‘잘할 테지.’

그리고 연화존자는 걱정하지 않는다. 연이 닿는다면 그 길에 닿을 것이요.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내일이 아니라면 또 다음이 있을 뿐.

무학의 길을 궁구함에 끝은 없어, 오직 수련과 참오만이 있음을 극에 달한 무림의 고수는 알고 있다.

하여 그런 그를 번잡하게 하는 건 오직 세속의 일.

진기도인단의 완성과 함께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남았다.

“전부 모였나?”

땀을 대충 닦고 들어선 연화존자를 보며 미리 모여 있던 또 다른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린다.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담아.

“총원 41명, 이상 없습니다.”

“앉지.”

그렇게 연화존자는 얼마 전 임무를 종료한 국가무공원 파견 부대원들을 돌아봤고, 자리한 시범 부대원들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그 신뢰 가득한 눈빛들을 본 연화존자의 한쪽 가슴이 뻐근하다. 그가 지금 말하려는 제안은 어쩌면 저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것일 수도 있기에.

그것이 악의를 가지고 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한 일이고 어쩌면 당사자들도 원하는 길일 수도 있지만. 양심의 가책이란 것이 젊음을 되찾은 무림의 고수를 쿡쿡 찌른다.

그의 입에서 나올 제안은 목숨을 요구하는 것과 진배없기에.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의 헌신 덕에 무명공의 개발과 보급의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의사를 밝히고 싶군.”

그렇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굴러 속도가 붙었고, 고작 여기서 멈출 생각 따위 추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나약한 척하는 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속이는 기만밖에 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게 맞다.

“파견 부대의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음에도 여러분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건 국가무공원의 이름으로 제안할 것이 있기 때문이야. 전에 얘기했었지? 파견 부대 이후의 보직에 대해 논의할 것이 있다고.”

연화존자의 말에 누군가의 눈에는 긴장이, 누군가의 눈에는 기대가 담기지만 개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평온이다.

믿는 자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곧 완성될 진기도인단의 경호 업무를 맡는 자리야. 정식으로 조직을 만들어 발족할 예정이지.”

두 개의 손가락을 폈던 김철민은 손가락을 하나 접으며 설명한다.

“국가무공원의 핵심 인력인 진기도인단의 경호 전담 조직을 유지할 거다. 현천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무공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

언론에도 몇 번 소개된 일인 만큼 현천문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는 인원들이 여럿 보인다.

“일은 고될 거고, 만만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경호 업무 중에 죽을 수도 있겠지. 그만큼의 보상을 하겠지만, 위험할 거다.”

여기까지 말한 연화존자의 눈이 순간 번뜩이며 빛난다.

“그래도 두 번째 제안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손가락을 접은 그가 다음 제안을 꺼낸다.

“국가무공원에서는 유출된 무공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을 조직 또한 만들 예정이다. 내부에서는… 지적재산권 보호 부대라고 부르고 있다. 가칭이지만.”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침묵은 당연하지만, 걱정할 건 아니다.

연화존자는 오늘 친절하게 모든 걸 설명하려 한다.

“국가무공원이 보유한 무공이 유출되었을 때 투입되어 이에 대한 회수, 비공식적인 보복에 들어갈 타격 부대다. 이렇게 설명하면 짐작하겠지만, 공식적인 조직이 아니야. 타국에 잠입하는 일이 빈번할 수도 있고, 자칫하면 외교 분쟁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어.”

이들은 들을 자격이 있다.

“경호 부대에 속할 경우 업무가 과중할 거야. 추후 미국으로 진출하게 되면 주거지를 옮기거나, 가족하고 떨어져 지낼 수도 있겠지. 하나 지적재산권 보호 부대에 속한다면 조건은 그보다 가혹하다. 필요에 의해 전역 후 민간인 신분으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해.”

이러한 제안을 예상하지 못했던 탓일까? 이어지는 설명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어렴풋이 흐른다.

“국가무공원에서 제안할 것은 이 두 가지다. 만약 원치 않는다면 그것도 괜찮아. 원래 소속으로 무사히 돌아가면 된다. 그런다고 그동안 제공되었던 혜택이 박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혹시 모를 무명공의 부작용 또한 일 년에 두 번씩 정기검진을 통해 케어한다.”

내려앉은 침묵 속에 서로가 서로를 쳐다본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았음에도 나타난 현실은 예상과는 사뭇 달라 다들 순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연화존자는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한다.

“질문이 있다면 기탄없이 하도록.”

서로의 눈치를 보던 이들 중 가장 용감했던 누군가가 조심스레 손을 든다.

“만약… 국가무공원 소속으로 남는다면 어떤 혜택이 있습니까?”

이 솔직한 질문에 연화존자는 화내지 않았다.

국가의 일을 함에 있어 이득을 먼저 생각하냐며 노여워하지 않았다.

그는 애국심에 기꺼이 값을 치뤄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직책과 임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별수당을 통해 파견 부대로 활동하던 것 이상의 급여를 지급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지속적인 무공의 증진을 보장하지. 무엇보다…….”

사람을 씀에 있어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는 것을 경멸한다.

“임무 중 다치거나, 순직하면 그 가족은 국가무공원의 이름으로 책임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조용했던 혼란이 서서히 잦아들며 연화존자의 입에 집중한다.

“누구도 국가무공원에서 일했던 것을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게 하겠다. 어떤 결과로 귀결되든 간에 상관없이, 나와 함께 일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자부심 갖게 만들 거야.”

약속은 그 와중에 나왔고.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약속이다. 받아 마땅한 대우와 함께 명예를 약속한다.”

시간을 끌지 않게 만들었다.

결심에는 그 약속 하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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