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67화 (67/175)

#67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대규모 내공심법 보급이 드디어 시작된다.

그것은 예비 양성 과정을 거쳐 최종 테스트에 통과한 이들로 구성된 국가무공원의 정식 조직, ‘진기도인단’의 존재를 언론에 밝힘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피시술 인원은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의 자원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연화존자가 직접 임독양맥을 타통하여 구성이 완료된 진기도인단이 엄중한 경호와 지도 속에서 지원자들의 육신의 내력의 흐름을 유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엔 칠익회가 보유한 내공심법 중 취할 만한 장점들을 모아 만든, 시범 부대의 운용을 통해 완성한 무명공이 사용된다. 앞으로 전군에, 나아가 경찰과 소방관 등의 국가조직에 보급되어 기본공의 역할을 수행할 기초 심법의 이름은 처음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많은 준비를 했지만 마냥 수월하게 진행된 일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진기도인 중에 정숙을 유지하지 못한 인원들이 피를 토하거나 혼절하는 일 등이 왕왕 발생하며 일부 우려를 사기도 했으니까.

어찌 되었건 간에 군대도, 국가무공원도 처음 해 보는 일 아닌가?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이었고 위험한 상황도 빈번했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개중 어떤 상황도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결과다.

그건 연화존자와 칠익회가 있기에 가능했다. 무공과 내력에 대한 공부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울러 경험마저 풍부한 이들이 모인 이 조직은 그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소중한 인명을 지켜 냈다.

하긴. 죽을병에 걸린 사람도 살려 내는 놀라운 절대고수를 보유한 판국에, 이 정도쯤이야.

특수전사령부뿐 아니라 육해공군의 여러 장성이 모여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불안감에 걱정하는 자가 없었다면 거짓일 테지만, 이 역사적인 광경을 참관하며 눈빛을 빛낸 것이 대다수.

이것이 성공으로 귀결된다면 그 이득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는 이제 군 내부에서 일반적이게 된 지 오래다.

시범 부대의 테스트 결과가 공유되며 각 군의 비약적인 전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있다. 가령 공군의 경우, 전투기 조종사들이 내공심법을 익혔을 때 갖게 될 육체적 능력 향상에 기대감이 크다는, 그런 식의.

육군과 해군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일이 정말로 잘, 제대로 풀린다면 군대의 규모를 지금과 같은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유지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내공심법의 보급은 인구 감소의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도 했다.

나라의 출산율은 기록적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더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징집할 수는 없다는 것, 군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 이대로 가서는 말라 죽어 최소한의 의무조차 수행할 수 없을 거란 건 불보듯 뻔하다.

그간 남의 일처럼 외면했던 사실을 이젠 인정해야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뭐라도 해 볼 수밖에 없다는 걸 군 내부에서도, 국가도, 국민도 안다.

그러니까 일부 헛된 시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국가무공원의 정책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할 수 있을 터.

국회에서 연화존자 김철민을 청문회장으로 소환할 거라는 소식이 알려진 건 특수전사령부의 지원자들에 대한 진기도인이 얼추 끝났을 때쯤의 일이었다.

김철민을 국회 청문회장으로 부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지역구 3선, 양수민 의원은 정작 바라던 청문회가 이루어졌음에도 그리 편치 못한 마음이다.

본인과 몇몇 의원이 당파를 초월한 연합을 통해 마련한 자리이긴 하지만, 국가무공원을 건드림에 있어 자신만만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익히 본 것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국가무공원, 정확히는 김철민이라는 강호의 무뢰배와 그 부하들이 날려 버린 것이 몇이었나?

국회의원, 재벌, 국제 범죄자, 사이비 교주 등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친 게 연화존자라 불리는 작자였다. 후환조차 남지 않게, 철저하게, 과감하면서도 파괴적으로.

국가무공원은 지금껏 깔끔하게 방해물들을 치워 왔다.

이에 반발하던 자 중 성한 자를 찾기 어려웠으니, 그 과정에서 국가무공원은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며 여론의 지지를 한 몸에 모으는 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동방요선 같은 자들마저 소식을 들을 수 없을 지경이니…….’

국가무공원과 맞서 패배한 자들은 소식마저 끊겨 근황조차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만큼 얼마 전 완공된 무림인 전용 교도소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이제는 해체되어 흡수된 현천문의 전 문도들이 교정직으로 있는 그곳에서, 무림인 범죄자들이 가혹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소문 아닌 소문만이 떠돈다.

국민 여론은 이에 격한 찬성만을 보낸다, 범죄자 놈들이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는 게 진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서.

교도소 과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어 머지않아 시행될 흉악범 및 음주 운전범의 무림인 전용 교도소 수용 결정은 이러한 여론에 기반하여 내려졌다.

더불어 한국 진출을 선언한 세계적인 기업 조직인 당가그룹의 국가무공원에 대한 지지는 뼈아팠다. 실제로 김철민을 청문회장으로 부르기 위해 동료 의원들의 동의를 받는 게 어려웠던 건 오롯이 그 덕분이었으니까.

괜히 김철민과 국가무공원에 밉보였다가 당가그룹이 진행 중인 사업에서 지역구가 배제될까 두려워하는 의원들이 많더라.

역시나 끊을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4년짜리 계약직에 있어, 가장 두려운 건 청천벽력 같은 계약 종료.

이것만 보아도 나라의 절대 권력을 매김해 가는 국가무공원을 서서히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도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걸, 허울 좋은 명분뿐이란 걸 본인이 더 잘 아는 양수민 의원이었다.

“…그러면 국가무공원 측에서는 지난 북한과의 충돌에서의 대처에 미흡함이나, 불법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겁니까?”

이 청문회는 사실 양수민과 그의 동료들의 의사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민심 무서운 줄 그라고 왜 모르겠는가? 돈을 펑펑 뿌리는 당가그룹의 사업에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드는 게 요즘 대한민국 정치판이었고, 돈 귀한 줄 모르는 정치인은 정치가 자리를 놓아야 하는 법.

이건 제 밥줄을 끊는 것과 진배없어, 거부하지도 않고 출석해 당당하게 앉아 있는 김철민에게 날 선 질문을 던지면서도 양 의원은 배가 살살 아팠다.

“북한-마교가 개입한 불법 도발의 결과로 우리 군인이 죽었습니다. 국제 협약을 명백히 어긴 그 현장에 국가무공원 소속 김철민 씨가 있었고요.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이에 대한 의혹이 너무나도 많아 일일이 세어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무런 해명도 없이 침묵하는 것이 지금, 이게 과연 옳은 태도입니까?”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온 막후의 후원자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이런 트집 잡기로 만날 사이는 아니었단 걸 스스로도 잘 알았다 하겠다.

“김철민 씨뿐 아니라 국가무공원, 나아가 우리 군 모두 이에 대해 철저한 해명을 통해 의혹을 모두 밝혀야 할 것 아닙니까? 더는 강호인이 아니라 국가조직에 속하게 되었다는 자각이란 걸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지금이야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며 김철민과 국가무공원을 압박하고 있지만, 본래라면 이럴 일도 아니었다. 하더라도 국방부에 성을 내며 닥달을 했을 테지.

북한의 거력패부가 GP를 습격했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벌인 걸 국가무공원의 발 빠른 개입으로 최소화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막말로 눈 뒤집힌 마교도 놈들이 저지른 사고가 이 정도에 그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의 수준이지, 이번 건은.

어찌 되었건 북쪽에 살아 돌아간 놈이 거의 없기도 했고.

전쟁을 입에 담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일어나는 걸 경기 일으키듯 싫어하는 직업을 가진 이로서 그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 생각은 한다. 전원 사망과 대부분 사망은 뉘앙스가 달라 수습의 여지가 있는 편이거든.

국제 관계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최선.

그러니 이번 청문회는 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인 셈이다. 국가무공원의 설립을 애초부터 거슬려 했고, 김철민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그의 후원자들이 양수민 의원에게 바라는 건 이런 거였으니까.

국가무공원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그로 인한 위상과 신뢰의 하락. 이 청문회가 열린 건 오직 이를 위함이다.

“왜 북한-마교의 최고수 중 하나인 무극검마를 살려서 보내야 했는지, 국가무공원은 철저히 해명하십시오. 국민들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왜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였는지, 그 이유를 이 자리에서 거짓 없이 밝히세요!”

열변을 토한 양수민은 이제 기다린다.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현장임에도, 말 없이 자신의 질문을 듣기만 하는 김철민이란 자의 태도와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니까.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그 시선이란.

표정 없는 그 모습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긴장된다.

그것이 비단 김철민, 혼자만의 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또 그렇다.

청문회 당사자인 김철민의 뒤에 앉은 국가무공원 소속 인원들의 태도가 비슷했다. 대체로 표정이 없지만 위축되거나 걱정하는 기색 없이 꼿꼿한 모습.

못내 불안하게 만든다. 무슨 생각일까?

“의원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대북 관련 업무를 아무 데서나 떠들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처음 나온 한마디는 예상보다 평범하다.

“대북 관계가 지닌 특수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련 법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고, 대놓고 공표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외교 문제, 정치 문제 같은 것들이 주로 그렇고 북한에 대해서라면 그 민감도가 남다르니까요.”

이에 양수민 의원은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곧 기묘한 압박감이 그를 감싸 그럴 수 없었다.

연화존자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대외비로 분류된 것들을 제외하곤 모두 언론에 공표된 그대로입니다. 밝힐 수 없는 정보들은 그 수준에 따라 관련자들만이 열람이 가능하게 분류되어서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역으로 저도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가 한 일 중에 혹 잘못된 게 있습니까?”

생각보다 평이하게 대답을 이어 가던 그의 도발적인 질문에, 주변의 긴장도는 순식간에 높아진다.

“북한-마교가 국지도발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군인이 죽었고, 이에 대응을 했습니다. 딱 둘이 살았죠. 대체 여기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여기저기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리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속도가 빨라지지만, 연화존자는 돌아보지 않는다.

다만 말한다.

“제멋대로 군사협정을 어기고 북한의 마교도들이 쳐들어왔고, 격퇴했습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무시하고 우리 군인을 살해했는데, 그럼 국가무공원이 어떻게 했어야 된다는 건지 질문의 진의를 모르겠군요.”

그 태도는 당당했다.

“악의를 가진 이들이 우리 군인을 죽임에 맞서 싸운 것이 청문회까지 끌려 나올 만큼 큰 잘못입니까?”

그의 눈빛에선 어느새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기세라는 것이 주변을 장악한다.

아무래도 그간의 침묵은 지금을 위함이었나 보다.

“가만히 몸 사리고 눈치 보며 닥치고 있었으면 됐습니까? 북한이 무슨 짓을 해도 그냥 가만히 구경이나 하며 민족의 화합을 떠들고 있으면 됐던 겁니까? 그렇게 하면 북한에서 그 가여운 노고를 알아주고 뭐, 평화를 선물하기라도 한답니까? 애석하지만 제가 지금껏 봐 온 북한의 태도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우리의 태도는 별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어느새 턱을 괸 김철민의 입에선 거침없는 발언들이 쏟아진다.

“이게 비단 북한과의 이야기만은 아니란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외교 관계에서는 상호 호혜적 관계를 추구하는 게 아니었는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나라가 일방적인 요구만, 오직 자기들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을 때 거기에 발맞춰 주는 건, 분명 어디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나라를 팔아먹는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이 자신을 여기로 부른 국회의원의 속을 꿰뚫어 보듯 서늘하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주를 받고 움직인 국회의원은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보이는 그 내리찍는 시선과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한마디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