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청문회에 임한 김철민의 태도는 잠시지만 많은 논란을 자아 냈다.
거친 태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과격한 모습에 더해진 북한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은 일부의 비난을 샀고, 그로 인한 소란 덕에 비호감의 이미지가 조금은 생길 뻔하기도 했다.
역시 무림인은 어쩔 수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기반한 부정적 이미지가 말이다. 국회의 소환에 응했으면 그에 맞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라는 상식적인 비난부터, 북한에 대한 도발적인 언사로 한반도의 평화를 해친다는 자못 극단적이고 치우친 비난 또한 팽배하기도 했지.
어떤 이들은 북한에 대해 좋은 말 할 거 있냐는 말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건 극성스러운 일부가 눈에 더 잘 띄기 마련인 법.
만약 그와 국가무공원에 대한 청문회를 주도한 국회의원들이 연루된 가상화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면, 논란이 더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가상화폐 처리와 관련하여 수상한 자금 흐름이 포착되어 기사화가 되고, 이것이 일부 정치인들과 관련되었다는 의혹이 결국 사실로 밝혀진다. 여기에는 얼마 전, 청문회에서 김철민을 강하게 압박하던 국회의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관되어 있었다.
하여 국민 여론과 정치권은 이와 관련된 설왕설래로 말들이 많아 소란이 크다. 의혹에 해명하라는 요구에 침묵하는 대다수와 이것은 음모라고, 전부 누명이라 말하지만 반박 자료는 내지 못하는 게 당사자들이 할 수 있는 대처의 전부.
연관된 여러 추가적인 사실이 폭로되기까지 했다. 시중은행이 관련된 거액의 환치기, 오고 간 부정부패의 사슬.
그 혼란 속에 지나간 사건은 묻힐 수밖에 없더라. 저 북한-마교조차 더는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침묵하니, 대중의 관심은 더 큰 불꽃이 튀는 곳으로 자연스레 쏠린다.
국가무공원이 연화존자를 소환한 것에 대해 선택한 대응이 이것이었다. 트집 잡는 자들에게 화살을 돌릴 것.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줄 것.
그렇다고 누명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거짓은 김철민의, 국가무공원의 방식이 아니다. 그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밝은 곳에 꺼내 놓아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이제 북한과의 일, 연화존자의 청문회라는 소란에 관심이 옅어졌다.
그렇지만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고, 무르익어 가던 음모 또한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번에 마주친 연화존자를 향한 적의가 그렇다.
“…중국 쪽에서 나를 굉장히 싫어한다고 합니까?”
연화존자의 질문은 사뭇 장난스러웠지만 그걸 듣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공사가 다망한 운하신권과 미국으로 떠날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청해일도의 얼굴은 평소와 비교하자면 어둡다 해도 무방할 정도.
독군 당군명이 들고 온 비밀스러운 소식이 이 무림의 고수들에게 그늘을 만들었다.
“그렇습니다, 은공.”
이를 전하는 당군명의 얼굴에도 비슷한 수심이 깃든 바.
연화존자에 대한 적의의 형상이 국가무공원의 심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공산당에서 비공식적인 척살령을 내린 듯합니다.”
한때 중원 오대 세가로 불리며 오랜 기간 군림했던 역사의 잔존인지, 아니면 이들 가문이 재건되며 새로이 쌓아 올린 금권이라는 힘의 영향력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나라 최고위층의 비밀스러웠던 회동, 그 상세한 내용은 당가그룹에 명료히 전달되었다.
그룹이 자리를 잡은 이후 생존을 위해 쌓아 온 중원 본토의 인적 기반은 사실을 투명하게 확보했고, 연화존자를 둘러 싼 음험한 적대감을 목격한 당가의 최고수는 그 명징함에 분노로 손을 떨며 이곳으로 왔다.
“중국 공산당이 은공을 노리고 있습니다. 조선노동당을 압박 혹은 협박하여 은공을 북한으로 유인, 구주팔황을 동원하여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사천당가를 중원 밖으로 쫓아낸 공산당이 그의 가장 큰 은인마저 노리고 있음에, 당군명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정작 당사자는 겁먹긴커녕 흥미롭기 그지없다는 얼굴이지만.
“구주팔황이라… 소문만 무성하지 본 적이 없는 자들이군요. 그들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되려 묻는다, 중국이 자랑하는 광오한 별호의 사파 고수들이 대관절 어떤 무인들인지를.
칠익회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대륙의 가장 위험하지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무림인에 대해 연화존자는 궁금해졌다.
“공산당은 구주팔황의 전력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습니다. 기실 당의 간부들조차 구주팔황의 얼굴 정도나 알지 실력 행사를 목격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여기까지 말한 독군은 이 한마디를 보탰다.
“구주팔황의 무위를 목격하는 건 실각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할 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살인자이며, 무자비한 암살자입니다.”
그래도 독군 당군명이 당의 바깥에 있는 이들 중에서는 공산당을 지키는 최고위 무력 집단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가장 은밀한 비밀마저 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여태까지 본 그룹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구주팔황 대다수는 마공이라 불러 마땅한 사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전마공과 시혈마공이 대표적입니다.”
이에 연화존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할 것이 분명한 무인은 저것이 어떤 종류의 내공심법인지 들은 바가 있다.
“자전마공이라면, 서른을 넘지 않은 남녀의 정혈을 착취하여 연성하는 극악한 마공이고 시혈마공은 시체의 시기(屍氣)를 뽑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주입하여 중화한 뒤 재흡수하는 마공 아닙니까?마교 놈들조차 더럽다며 익히지 않는 사특한 무공이 어쩌다가…….”
견문이 넓은 고수답게 연화존자는 이름만 듣고도 자전마공과 시혈마공이 어떤 것인지 알아맞춘다.
그리고 이 앎은 깊은 불쾌감과 함께 왔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말에도 담대히 미소 짓던 그였지만, 사라져 마땅한 역겨운 무공의 명맥이 여전히 살아 있음에는 노여움이 치솟을 수밖에 없더라.
“…두 마공을 익히게 된 건 중소 분쟁 이후의 일이라고 합니다.”
자전마공과 시혈마공은 중소 분쟁 당시, 친선 교류의 탈을 쓰고 펼쳐진 경쟁 속에 펼쳐졌던 비무에서 중국 측 고수들이 소비에트-마교의 교수들에게 대패한 뒤 권장되었다고 한다.
공산 세계에서의 위신에 망신을 당한 것에 격노, 강한 무력을 획득하여 당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당 차원에서 살인율을 관리하던 시절답게 무공의 재료 수급엔 아무 문제가 없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른 나라였다면 어떻게든 진작 맥이 끊겼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강력한 통제가 건재한 사회였기에, 강한 위력과 속성의 수련이 장점인 사공은 지금껏 이어질 수 있었다.
“마교의 기술마저 참고하고, 수많은 사형수를 이용해 만들어 낸 고수들이니만큼,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이름과 수련 방법 말고 위력에 대해서는 저희도 입수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유념하도록 하죠.”
독군의 경고에 연화존자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가까운 친인들에게는 그 정도론 부족하다.
“진실로 조심해야 하네. 현 시점에서 자네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야.”
“…형님께 무슨 일이 있다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운하신권의 걱정은 진심 어린 것이었고, 청해마도의 우려는 절실했다.
연화존자는 두 오래된 인연을 안심시킨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라고 제 몸 소중한 줄 모르겠습니까? 너도 걱정 마. 가볍게 움직이진 않을 테니.”
그렇게 말한 연화존자가 독군 당군명을 돌아보며 묻는다.
예전에 생각해 두었던 반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중원 본토에서 사람을 찾는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전후 사정이 삭제된 이 질문을 그는 알아듣는다.
연화존자가 직접 가르칠, 중국 내부의 비수가 될 인재를 찾는 일은 당군명이 신경 써서 진행하는 일 중 하나였다.
“후보자들이 몇 있습니다만, 검증 중입니다.”
“때가 되면 말해 주세요. 제가 직접 갈 테니까요.”
이에 당군명은 늙은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연화존자를 처음 만났던 그날과 오늘의 격세지감을 떠올린다. 폐인이 된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그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을 때, 그날이 지나고 자신과 당가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단 말인가?
그런 연화존자가 직접 중원을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노회한 무림인이자 냉혹한 기업인인 그조차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어쩌면, 연화존자가 중원에 발을 디딘다면 정말로 어쩌면, 당가는 사천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잠시 했다.
“자, 그럼 그쪽은 믿고 맡기도록 하고… 미국 쪽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이 물음에 청해마도는 담담하게 답한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심함이 아닌 당연함에서 발로한 자신감.
“미국 측도 그렇고, 국내의 무림인들도 그렇고 진기도인단이 본격적으로 출범하여 성과를 내는 걸 보며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내공심법을 전해 주기 전, 국내의 무림인 중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이들을 모아 미국으로 진출, 진기요상을 통해 마약 중독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제법 원대한 목표였다.
대한민국이라는 한정된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이 나라가 전 세계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힘을 가지자는 것이 이 집단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목표였다.
목표가 이렇게 큰 만큼 당연히 어려운 것도 사실.
괜히 국가무공원의 출범 전후로 각 지방 문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닌 것이다. 나고 자란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아무리 가족의 이주까지 보장한다지만 쉽사리 마음먹기엔 보통 일이 아니다.
하여 본래는 국가무공원이 출범하며 정부의 무림 통제에 대한 불안감이 올라간 상황 속에서도, 미국으로 이주하겠다 나서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었다.
국가무공원의 능력에 대해 물음표를 가지고 있던 미 연방 정부가 미지근하게 움직이기도 했었고.
중동에 영향력을 발휘한 건 고맙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느낌이 강했던 것인데, 이와 같은 국내외의 반응은 특전사령부의 지원자들에 대한 1차 진기도인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바뀌었다.
무명공의 안착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국가무공원에 대한 신용이 확 올라간 느낌이다.
“제가 선발대를 이끌고 떠난 뒤 제 아들이 후발대를 이끌고 미국으로 옮겨 갈 예정입니다. 내공 사용자 모집 및 훈련에 나타난 문제는 없고, 미국 쪽에서도 전처럼 뜨뜻미지근하지 않습니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건 아니겠구나, 허황된 목표를 가지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건 아니겠구나, 하는 일종의 확신이 심어지며 지원자가 늘었다.
시작은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타운인 로스앤젤레스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옮겨 가는 이주자들을 위해서도, 아울러 사업의 안정적인 초기 정착을 위해서라도 미국 교포 사회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니엘 김과 한인 정재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준비하고 있다 했다.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자네도 이제 진기도인단의 일을 잠시 멈추게.”
그렇게 안심하는 연화존자에게 운하신권은 이렇게 권한다.
온전한 선의로.
“자네가 외부로 노출되며 공격이 집중되고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게나. 진기도인단은 내 직접 챙기도록 하지.”
이제와 해묵은 권력 다툼 따위를 할 사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연화존자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운하신권이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와 국가무공원, 더불어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할 일이 여기서 끝인 것도 아니지 않나? 머리를 식히고 다음 계획을 준비할 때인 듯하네.”
김철민은 그러한 운하신권이 조언이 옳다고 느낀다.
내공 보급의 첫발을 이제 막 뗀 시점에서 다음 걸음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건 타당했다. 군대 다음으로 경찰과 소방 쪽에서도 일을 해야 할 판국 아닌가?
하여 연화존자는 그러겠다고 했다. 쉬면서 다음 단계를 생각하겠다고.
그러나 휴식은 매우 짧았다.
본의는 아니었다. 언제나 문제는 문제 많은 세상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