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윤아영 검사의 바쁨은 슬슬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물밀 듯이 밀려오던 재판들이 하나둘 종결되어 가며, 마음 한편에 여유라는 걸 담을 수 있게 된 요즘이다.
대법원이라는 끝에까지 가야 진정 종결될 사건들이 몇 개 남긴 했지만, 그것들은 말 그대로 남아 있기만 한 것들.
1심과 2심에서 났던 결론이 대법원에서 뒤집힐 일은 없을 거라 자신하는 터라, 달리 뭘 준비하고 말 것도 없다.
재판 결과를 뒤집을 논리도, 증거도, 증인도 죄 많은 자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작성해야 할 건 다 작성했고. 서류 다 보냈고. 법률 검토도, 자료 보완할 것도 다 했고.’
그녀의 직장 생활 동안 유례없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제시간에 출퇴근하며 꾸준히 하는 건 국가무공원 내부에서 요청하는 관계 법령 검토 정도? 그나마도 최근 입사한 인원들이 늘어난 덕에 전과 달리 그리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국가무공원의 급부상은 윤아영에게 가해지던 업무적 부하를 이런 식으로 줄여 주었다. 강호 무림인들로 이루어진 신생 국가조직의 역할과 의도에 의문을 가지던 이들은 많았지만, 근래 이런저런 일들로 인식이 좋아지면서 채용이 제법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중이다.
괜찮은 사람들이 여럿 일하고 싶다며 찾아올 정도였고, 개중에는 이제 막 법조계에 발을 들인 정의로운 햇병아리와 경력 면에서 윤아영과 비교도 안 되는 완숙함을 자랑하는 선배도 여럿 있는 바.
이는 대다수의 일을 혼자 처리하던 얼마 전에 비하면 확실히 한숨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러자 참으로 웃기게도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이제 또 어디 나쁜 놈들을 잡으러 가야 하나?’
미친 듯이 일하며, 그러니까 나쁜 짓 저지른 놈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법의 처벌을 내리기 위해 한창일 때는 말 그대로 쉴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정작 새로 생긴 무림인 전용 교도소 등에 모두 집어넣고 나니 ‘다른 일거리 어디 없나’ 하며 자기도 모르게 찾고 있는 윤 검사다.
이것은 직업병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검사여서 그런 게 아니라 국가무공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윤아영은 생각해 본다.
예전엔 이렇게까지 열정이 있지 않았거든.
‘수도권 쪽 조직폭력배들이야 얼추 정리가 되었다지만, 지방에는 아직 좀 남아 있는 걸로 아는데 그쪽이나 한번 파 볼까? 점점 시끄러워지던데.’
의무감으로 버티고 버티던 전과 달리 일할 맛이 나는 최근은 즐겁다.
무엇보다 수사와 재판 말고 다른 걸 생각 안 해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하등 쓸데없는 것들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법 안에서의 평등만 이루면 되는 국가무공원으로의 파견은 그녀에게 잘 맞았다.
눈치 볼 것 없이 죄 지은 데로 기소하면 그만이니 직업 만족도가 높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공무원의 사명감이란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은 아닐지.
뭐, 그렇다고 모든 게 다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서도.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외부 압력과 더불어 위험했던, 목숨을 잃을 뻔한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전무후무한 테러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던 터였다.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선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그 덕분에 재밌는 인연도 만나고, 흥미로운 경험도 하고 있다.
가령 교과서에도 나온 역사적 인물, ‘최후의 기사’ 알렉산드루 칸타쿠치노 같은 사람이 그녀를 경호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그렇다.
“오늘 달리 일정이 있나?”
“없습니다. 사무실에 계속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이런 대단한 사람을 고작 자신의 경호로 돌리는 게 과연 외교적으로 올바른 일인가를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김철민에게 설명을 듣고 나니, 차라리 자신과 함께 다니는 게 이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미국의 합법적 간첩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지 않나? 실제로 최후의 기사는 대한민국에서 미국 외교관 대우를 받으며 머무르고 있다.
생각보다 까탈스럽지 않고 소탈해서 국가무공원의 다른 내공 사용자들과 결이 사뭇 다르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한동안 다른 일은 없는 건가?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한가해 보이는군.”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일할 준비는 해야죠. 다른 일도 아니고 공무원이 월급 받고 놀 수는 없지 않습니까?”
칠익회 출신이나, 현천문 출신이나 할 것 없이 국가무공원의 모두는 윤아영을 인정하며 친절하고 공손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보이지 않는 벽이란 것이 세워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철민의 직속 수하였던 이들에게는 폭력을 벗 삼아 살아온 이들 특유의 서늘함이, 현천문 출신의 사람들에게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투명한 막 같은 게 있어 언제나 상기하게 한다.
자신은 그저 연화존자가 영입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란 걸. 그날의 놀라운 우연, 운명의 장난 같은 사건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라는 걸 그들의 태도가 주지시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힘들어도 밝은 세상에서 살던 검사님과 힘든 것만이 장애물이 아닌 강호의 무뢰배들은 태생이 다른 거라고.
말만 않을 뿐이지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으로 느끼게 하는 무언의 어떤 것들.
“국가무공원이 출범하며 수도권 쪽의 범죄조직은 활동이 주춤하지만, 지방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지방의 여러 무림 문파가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 그런지 혼란하더군요. 아마 다음 수사는 그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망명자로 오래 살아서 그런 걸까? 최후의 기사에게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면이 있어 어느새 보안 사항이 아닌 가벼운 업무 이야기 정도는 쉽게 나눌 사이가 되었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오래 산 삶의 태도가 저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외부자의 올바르며 바람직한 태도.
알렉산드루에게는 기품, 점잖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고 말과 행동에서 묻어나는 교양이 귀족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알려 준다.
아, 그래. 물론 귀족다운 오만함이라 불러야 할 것들이 없었냐면 그건 또 아니지만.
“건전하지 못한 쓰레기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군. 주제를 모르는 미천한 것들.”
범죄자들에 대한 그 뿌리 깊은 경멸을 엿보며 윤아영은 돌연 궁금해진다.
양차 세계대전 시기와 냉전마저 모두 겪고 지금에 이른, 지상의 마지막 기사일뿐 아니라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 낸 그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끊어진 기사단의 명맥을 비로소 이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희망찰까? 아니면 어떤 면에선 끌려 가고 있는 제 처지를 한탄하고 있을까?
쓸데없이 궁금할 뿐인 질문이었지만, 그 답은 아무래도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저게 뭔가?”
알렉산드루의 말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따라가니, 청사 입구에서 일어난 실랑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 요란하다. 차 안에선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둘러싼 정복 입은 사람들과 그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소리는, 악다구니는 아직 내력이 귀에까지 미치지 못한 윤아영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잠시 살펴보고 가시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차를 멈춘다. 정부에 대한 항의의 시위가 하루 이틀이겠냐마는 왠지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서 내리니 어렴풋하던 광경이 눈에 잘 들어온다. 나이 든 여인, 아마도 환갑에 가까울 나이의 여자가 종이에 쓴 무언가를 들고 꽉 움켜쥔 채 쫓아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묵묵히, 하지만 강하게 버티고 있다.
척 보아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입고 있는 옷은 허름했고, 머리는 부시시했으며, 얼굴의 주름은 이보다 깊을 수 없다.
눈빛은, 모르겠다. 무슨 감정의 눈인지 윤아영은 선뜻 알아보지 못한다. 저 여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절망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한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다만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결의가 보인다. 여인은 그래 보인다. 오직 그것 하나만을 잡고 밀어내려는 사람들로부터 쓰러지지 않겠다 버티는 모습이, 입을 꾹 다문 채 온 힘으로 견뎌 내는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여러 명이 한 사람을 핍박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두고 볼 수 없는 무언가다.
“그만들 하지.”
어느새 몸을 움직여 소란을 정리하는 알렉산드루의 솜씨는 능숙하다. 요즘 들어 더 열심히 익히고 있는 연화신공 덕분인지, 늙은 여자를 쫓아내려는 청사인원들을 양손에 잡고 그대로 들어 한쪽에 줄을 세워 버리는 알렉산드루의 손길에서 윤아영은 하나 어긋남을 찾을 수 없다.
연화존자 정도는 돼야 웃으며 버틸 솜씨에, 늙은 여인을 둘러싼 포위는 순식간에 풀리고야 만다.
그리고 윤아영은 이제 볼 수 있었다. 쫓겨날 뻔한 여인이 품에 꼭 쥐고 놓지 않고 버티던 종이박스 팻말에 적힌 문구가 무엇인지.
‘국가가 죽인 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라.’
삐뚤빼뚤하지만 더없이 깊게 눌러쓴 분노를 보며 윤아영은 자신의 한가함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저것을 본 이상, 더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건 예감이었다.
아들을 잃은 여자의 이름은 한정숙이다.
그녀의 아들은 스물 한 살에 일병으로 군대에서 죽었다. 입대할 때만 해도 건강했던 아들은 급성 백혈병에 걸려 진작에 이상 징후를 보였지만, 부대에서는 그런 그녀의 아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군은 한정숙의 아들을 돌보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이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 등으로 의무대를 찾은 그녀의 아들에게 두드러기 약 정도나 처방한 게 전부였고, 밤새 구토를 해도 근무를 세우고, 훈련을 이유로 온몸에 멍과 반점이 가득한 아들을 병원으로 보내 주지도 않았다.
증상이 심각해져 사단급 의무대에 갔을 때는 원복시키까지 했다. 병상이 다 찼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국군병원으로 이송된 뒤, 대학병원으로까지 이송됐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는데 뭘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녀의 아들은 그렇게 죽었다. 손쓸 여지도 없이, 너무도 쉽고, 허망하게.
한정숙의 아들이 말도 안 되는 과정 속에서 죽은 일에 군의 잘못은 명백하고 엄연하다. 부대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입대한 지 몇 달 만에 죽은 아들에게는 분명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방치만 했다.
그러니 엄연하지 못한 건 그렇게 죽은 스물한 살의 젊은 군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국방부와 보훈처의 결정.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한정숙의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걸 거부했다. 그녀의 아들이 죽은 것에 군의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유공자는 아니라고 한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대한 법률 4조 5항. 그녀의 아들이 국가의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 수행이나 교육 훈련 중에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회신했다.
국가유공자 대신 보훈 보상 대상자로 지정하겠다며, 자못 친절하기까지 하다.
-당신의 아들은 군인이었지만 국가 수호와 관련된 업무로 죽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재해 사망 군경으로 보훈 보상 대상자로 지정될 예정이십니다.
한정숙은 이 결정을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분노 이전엔 의아했다. 나라의 부름으로 국가를 지키기 위한 군인으로 징집되어 죽었는데, 아들의 상태를 방치하는 군의 잘못으로 죽었는데, 이게 어떻게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녀의 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한 게 아니란 말인가? 군에서 하는 훈련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과 관련이 없다면, 대체 군대의 뭐가 국가의 수호와 관련이 있단 말인가?
내 아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이 아니었다는 소리인가?
데려갈 때는 그리도 가차 없더니, 문제가 생기니 돌아보지도 않고 헌신짝 버리듯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국가의 아들이라더니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한정숙은 그 답을 받지 못해 거리로 나왔지만, 누구도 그녀의 아들에 대해 답을 주지 않았다.
국가무공원으로 이 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