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한정숙의 이야기를 들은 윤아영은 고민했다.
이 사태를 접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국방부와 보훈처의 결정을 그녀가 뒤집을 수는 없었다. 오래되어 바꾸기 힘든, 거기에 거대하여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문제를 그녀 혼자 어쩌기는 힘들다.
책임과 권한이란 측면에서부터 그렇다. 검찰 소속으로 국가무공원에 파견 중인 그녀가 국가유공자를 지정하는 문제에 무슨 수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변호사가 되어 소송을 걸어 재판으로 맞서 싸운다면 모를까, 현 상태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한정숙의 가족을 덮친 비극은 합법과 불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 부조리의 문제였고, 시민 의식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법률의 모순이었으며, 바뀔 생각을 않는 구태의 현존이다.
만약 그녀가 검찰청에 머문 상태였다면, 여기에 대해 안타까움으로 공감하여 분노하며 위로하는 게 전부였을 것이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니까 국가무공원, 얼마 전 군에 대규모 내공심법을 보급하는 일에 착수했고 또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조직에 몸 담고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윤아영이라는 검사는 개입하기 힘들지 몰라도 국가무공원이라는 조직은 입장이 좀 다르다.
내공심법 보급이라는 전무후무한 실험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군인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정숙을 만나고, 그녀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곱씹은 지 며칠. 윤아영은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한 뒤 김철민을 찾아갔다.
국가무공원에는 이 일에 개입할 힘과 명분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말 같지도 않은 모든 짓을 고쳐야 한다는 당위성은 그녀가 보기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했다.
“미비한 군 내부의 의료 체계와 불합리한 보상 체계를 합당하게 바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국가무공원의 내공심법 보급은 효율이 떨어지다 못해 무의미한 일까지 될 거예요.”
내공심법의 보급이라는 대한민국 군대의 혁신적 변화를 이끄는 기관으로서 국가무공원은 군의 영역에 많은 부분을 걸칠 근거를 마련했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엔 그렇다.
아무리 천고의 재능을 가진 무인이 완벽에 가까운 내공심법을 만들고, 진기도인을 할 수 있는 고수를 양성하면 뭘 하나? 군대라는 조직이 썩어 제대로 구성원의 역량을 저해한다면 말짱 도루묵인데.
그렇기에 군인에 대한 처우는 사업 성폐의 핵심 중의 핵심. 애초에 그들이 공유했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 자명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좋은 내공 심법을 지급해 봤자 정작 이를 받아 다루는 인원들의 사기와 자긍심이 떨어져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한, 젊다 못해 어린 청년이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었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것이 아까워 변명이랍시고 내놓은 게 국가 수호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 국가유공자가 아니라 보훈 대상으로 삼겠다니. 군인이 부대에서 죽었는데, 그게 할 소리입니까?”
윤아영은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분명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다치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외면함으로써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는 것. 인터넷에 떠도는 한 아버지의 인터뷰처럼 데려갈 땐 국가의 아들, 죽으면 남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걸 여실히 보여 준다는 것.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일이 터지면 감출 생각조차 없으며 책임지고 고칠 생각은 더더욱 없다는 것.
“바꾸자면 이것부터 바꿔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러한 윤아영의 주장을 들으며 연화존자는 생각한다.
이 문제를 이렇게 빨리 직면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그 또한 이것이 처리해야 될 일이라고 여기곤 있었다. 이미 그는 국가가 젊은이들을 다루는 방식에 분노한 적이 있다. ILO의 권고를 이미 막힌 바 있는 꼼수로 피하려 하고, 국가의 청춘을 징집한 뒤 아무렇지 않게 낭비하는 게으른 책임감에 치밀어 올랐던 화는 여전히 가슴에 남았다.
하여 그것이 그를 움직이게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 나중의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군대는 너무도 크고, 거기에 딸린 병폐는 뿌리 깊다.
연화존자가 바꿀 것이 군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와 국가무공원에는 선행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국가무공원을 세우는 것부터가 그랬다. 나라를 좀 먹는 쓰레기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아직도 있었으며 변화를 싫어한다.
지금이야 그 강건함에 눈을 깔고 조용하지만 언제든 약세를 보이면 이를 드러내며 물어뜯으려 들리라.
보통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증오는 그보다 심각하다. 이념 갈등은 뿌리가 깊고 복잡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며, 천하제일인이 분명할 무림인인 그조차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가 없다.
폭력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기를 쉽게 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누구를 죽이고, 부숴서 될 것이었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진작 그래 버렸을 터였다. 없애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쏟아질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확실한 결심을 했을 테지.
천하를 피로 물들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평화와 번영이었다면 연화존자는 필시 다짐을 했겠지만, 오래된 강호의 격언이 말해 주듯 복수는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다.
그가 겪은 강호가, 세상이 그랬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규모와 조직을 갖춰 세상의 방식으로 나서려 했던 것인데.
역시나 그러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생각해 놓으신 게 있습니까, 검사님?”
윤아영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우선순위를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잘못된 걸 고치려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던 게 아니었는지 김철민은 반성해 본다.
그리고 떠올린다. 실의에 빠져 아무 의미 없이 살아지고 있던 자신을 일깨운, 그의 가슴에 불을 당긴 사람이 눈앞의 여검사였다는걸.
“법을 바꿔야죠.”
그 말을 시작으로 윤아영과 김철민은 이 사안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국가무공원 차원에서 나선다면 무슨 일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그 여파는 어떠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상하면 그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눈다.
그 모습을 알렉산드루 칸타쿠치노가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고, 최후의 기사는 자신이 거래해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 표정에는 희미한 고뇌와 아리송함이 있어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상 마지막 기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윤아영과 이야기를 꺼낸 뒤 김철민은 운하신권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내 국가무공원의 구성원 여럿이 모여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회의 후 실행은 신속했다
시작은 한정숙 씨의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것부터였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착수한 건 국회의원들과 교감하는 일이었다.
국가무공원에는 여기에 쓸 수 있는 수단이 여럿 있다. 가령 서울상공인모임회의 아직 쓰지 않은 자료라던지, 아니면 당가그룹이 쌓아 올리고 있는 지역사회의 영향력 혹은 대한잔결회의 위상 같은 것들이.
무기가 많다고 하겠다. 비단 일신에 지닌 무공의 재주만 국가무공원이 가진 게 아니었던 것.
하지만 주로 후자의 것들이 사용된 게 사실이다. 특히 대한잔결회의 결성 자체가 이와 관련된 이슈에 대비하기 위해 설립된 면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도 한 번쯤 해 봄 직한 일이기도 하다.
정리정돈은 늘 소중한 법.
바쁘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겠다. 사전교감을 통해 입법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언론에 기사를 환기한다
그렇게 한정숙 씨의 인터뷰가 실리고 얼마 뒤, 법조문은 신속하게 수정되고 순직 변경 역시 그렇게 됐다.
이전에 심사를 기각할 때도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이 심사할 때의 체감은 그보다 빨랐다. 결과가 달라서 그렇지.
극한의 고통 속에 살던 어머니는 이 사실이 차라리 허무했다. 아들의 명예를 위해 그토록 강인하게 버티던 힘이 온몸에서 빠져나가 며칠을 앓아 누울 정도로 한정숙은 온 마음과 몸이 아팠다.
그녀의 아들은 죽은 지 오 년이 지나서야 유공자가 되었다. 수없이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이 허망하게 열렸다. 한정숙 씨는 그 시간을 잊지 않았다.
비슷한 고통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안다. 투사는 세상이 만든다.
그리하여 이제 초점은 군인에 대한 처우로 옮겨 간다. 군인에 대한 인식, 열악한 의료 체계와 열악한 환경에 대한 것들이 논의된다.
그 와중에 김철민은 움직였다. 누군가를 처단하거나, 없애거나, 분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는 멀리 갈 수 없다.
“군에, 아니 국가무공원으로 와 달라고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잠시 멈췄던 포섭,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움직일 국가무공원의 행보를 위한 조력자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북한과의 충돌 이후 적대적 여론을 의식하고 몸을 사리며 숨어 있었지만, 이번 만남은 꼭 필요했다.
“항상 바라시던 바가 있음을 압니다. 원하시던 지원, 모두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병원 벤치에서 하는 잠깐의 미팅, 미팅이라기엔 산뜻한 만남이었지만 분위기는 제법 진지하다.
연화존자의 말에도 지친 얼굴의 의사는 선뜻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소비한, 너무도 많은 곳에서 그를 원했지만 정작 무전기 하나 제대로 된 걸 받지 못하는 현실 따위 때문일 터.
그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앞선 실망감이 연화존자로 하여금 직접 오게 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 따위 없을 거라는 보장을 하기 위해, 국가무공원의 주도자는 몸소 얼굴을 보여 왔다.
“당연히 그냥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저희도 원하는 게 분명 있거든요.”
필요한 일이었다.
같은 직업인들이 경원시할 만큼,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명감으로 불타는 의사를 어디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윤아영의 예에서 익히 보았듯이 연화존자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국가무공원의 훈련이 많이 거칠고, 위험합니다. 최고의 의사가 계신 걸 알고도 모른 척하기엔 제가 우리 소속원들한테 양심이 찔려서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 몸 성히 퇴근시켜야죠. 당장 대한민국에 총상을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 입장에서도 꼭 모시고 싶습니다. 그게 전부는 또 아니지만요.”
세상과 불화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 남들이 그게 아니래도 아니다 싶으면 참지 못하고 외면한 채 눈을 질끈 감는 그런 이들을 연화존자는 좋아한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이 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헌신하는 자들에 대한 존중이 있는 나라로, 완벽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부조리와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러니 어찌 기회를 놓칠 것인가?
여기 야박한 세상에 실망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음에, 연화존자가 손을 내민다.
“그런 세상엔 선생님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꼭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고 며칠 뒤, 미리 준비해 두었던 국가무공원 주도의 의료재단 설립 계획이 발표된다.
이렇듯 국가무공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러 가지 일, 사안이 중대한 일들을 벌이며 정신없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투박할 정도로 서둘렀지만 어쨌든 앞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누구도 손대지 못한 것들에 대해 국가무공원은 성역 따위 없다는 것처럼, 그런 건 모른다는 것처럼 밀어붙였으니까.
그들을 싫어하는 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만한 움직임이었다.
무슨 수를 쓰게 만드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