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윤아영은 요즘 자신의 업무가 무엇인지 헷갈리며 애를 먹는 중이다.
다른 것보다 국방부와의 업무 협의를 가장한 다툼, 분쟁, 언성의 드높임 등이 벽에 막히며 그녀로 하여금 한계라는 걸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면이 커졌다.
일종의 무력감에 가까운 이 감각은 언제나 굳건하던 그녀에게 굉장히 드문 일이었지만, 최근 추구하는 목표를 헤아려 보자면 그리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 썩어 빠진 군대를 바꿀 수 있을까?’
왠지 모르게 쑥스러워 남들 앞에서는 절대 입 밖으로 못 낼 이야기지만, 근래 윤아영의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이와 같은 생각들이 대다수.
좋지 않은 것을 좋게 바꾸고 싶다.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고 싶다.
암울하고 또 오래되어 단단히 굳어 버린 현실과 결부된 생각. 군대라는 조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밖에 없는 이 당연한 생각은 사실 윤아영의 오래된 욕망이기도 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군대에서 죽었다. 사고사였다… 고 한다.
그것이 윤아영의 어머니가 홀로 딸을 키워야 했던 이유였지만, 그녀의 가족은 이에 대해 따지지 못했고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
오직 전해 들었다. 군대는 핏덩이나 다름없던 윤아영과 아직은 젊었던 그녀의 어머니에게 고압적이었고, 순직자 가족에게 보여야 할 마땅한 대우는 실종되었다.
군에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다고만 했지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사고였다고, 불운한 일이었다고만 말하며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묻고 넘어간 게 전부였다.
그래서 한정숙 씨의 이야기를 듣고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한정숙의 아들과 달리 그녀의 아버지는 보훈 대상자조차 되지 못했다.
잔인한 군인 독재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자라나면서 가끔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내와 갓난둥이 자식을 두고 죽어야 했던 젊은 아버지를. 그리고 그렇게 죽은 군인을 깨끗이 잊어버린 국가와 사회의 민낯이라는 것을.
윤아영이 뒤늦게나마 검사가 된 것엔, 아버지와 국가의 지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성공에 대한 갈망, 정의에 대한 강박,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집착은 사진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던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고자 하는 일종의 보상 심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전 한정숙 씨의 가족을 덮친 또 다른, 하지만 겪었던 것과 거의 같은 형태의 비극을 보며 윤아영은 자각한다.
자신이 더는 이 더러운 현실, 군대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한편으론 김철민 씨와 다른 국가무공원 사람들이 나를 더 믿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
인생은 동전의 양면 같아 그녀의 불운이 누군가에게는 이해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운하신권은 지나가듯이 말했다. 아버지를 군에서 잃은 윤아영의 배경이 그녀의 모든 걸 설명해 주진 않아도 적어도 납득하여 신뢰하게 해 주었다고.
저 사람이 보여 주는 정의와 굳셈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으로 알게 해 주었다고 말하는 운하신권의 눈빛에는 믿음이 어려 있었다. 험난한 길을 함께 갈 수 있을 거라는, 나이와 배경을 떠나 믿을 수 있는 동지를 얻었다는, 그런.
그동안엔 국가무공원이 보내 온 이러한 믿음에 잘 부응해 왔다고 나름 자부했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군대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나쁜 놈들, 죄 지은 놈들을 잡아다 조사하여 감방에 집어 넣는 것과 이 일은 성질이 약간 다르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였다. 옳고 그름의 문제인 것은 맞지만, 그보단 근본적인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하는, 그런.
그만큼 군대라는 조직은 변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무공원에서 아무리 내공심법을 쥐어 주며 압박하고 바꿔라, 바꿔라 해도 너희는 외부인이라고 외치듯 견고하게 변할 기색이 하나 없다.
하긴. 생각해 보면 온 세상의 모든 군대가 그렇다. 개혁에 포용적인 군대가 어디 있겠나?
그럼 군대가 아니지.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하는 똥별들과 간부들은 많았고, 하나회 이후 금지되었던 사조직마저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요즘이었다.
대통령이 지시하고, 공군 참모총장이 지시해도 뭉개며 대충 넘어가다가 또 사고가 터지고 하는 곳이 군대라는 걸 윤아영은 실감하는 중이다.
누구도 한정숙에게, 그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할 생각도, 책임질 의향도 전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홀로 앉아 윤아영은 생각한다. 뭘 할 수 있을까? 군대를 좀 더 괜찮은 곳으로 바꾼다는, 대한민국을 전보다 나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연화존자의 목표와 일맥상통하는 이 목적을 무슨 수로 달성할 수 있을까?
그녀가 할 수 있을까?
방법은 무수해도 실행이 염려되는 고민이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자리에서는 많이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검사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를 개혁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건 검찰청의 일이 아니다. 국가를 대신해 기소와 재판을 진행하는 직분은 이에 적합하지 않다.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잘못을 징치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룰,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낡은 시스템을 갈아엎고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뒤떨어진 것들을 당기고 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변화가 필요한 것이었고, 이를 깨달은 그녀에게 때마침이라 할까? 위와 같은 고뇌와 연관된, 그래서 망설임을 갖게 만드는 초대가 얼마 전 왔었고 윤아영은 이제 막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긴 고민 끝에 대통령의 초대를 수락했다.
현 대통령과 국가무공원의 사이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오묘한 사이가 된 것도 꽤 시간이 흐른 일이다.
처음 연화존자, 운하신권 등과의 만남은 훈훈했다. 지지율이란 것에 민감한 직업을 가진 대통령에게 오랜 숙원, 대한민국 무림계를 공권력으로 끌어들인다는 건 제법 매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무공이란 힘의 효율이 떨어진 시대라고 하지만, 많이 찢겨져 나간 지식과 힘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쓸 수 있는 방도는 무궁무진했다.
설령 지금과 같은 대규모 보급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활용의 용도는 실로 많았지.
하여 연화존자의 제안을 거부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국가무공원의 설립과 발전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현 정권은 점점 국가무공원을 통제하는 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무림인, 그 자체인 것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당황스러움마저 느끼는 중이다. 범죄를 저지른 무림인을 잡겠다고 대놓고 총기를 쓰는 것도 모자라 박격포까지 쏴 대는 모습은 낯설다 못해 황당했다.
그래. 여기까지야 이해할 수 있다 치자. 어찌 되었건 사용 대상이 범죄를 저지른 무림인,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악당들이니 그럴 수도 있지.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국가무공원을 부담스럽게 느끼기 시작한 건 이들이 발 빠르게 나서서 북한과 정면충돌하고, 은연중에 중국을 적대하며, 미국과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과 정치인, 외교 관계자들을 패스 한 채로.
이 사실로 인한 위기감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윤아영과의 약속을 잡게 만들었다.
“…식사는 입에 맞았는지 모르겠네요.”
“잘 먹었습니다.”
무뚝뚝하게 답하는 윤아영에게 대통령은 친근함을 보인다. 계산된 태도였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윤아영은 단순한 검사가 아니다. 국가무공원의 설립과 함께했고 조직 내에서 신뢰받는, 영향력이 제법 있는 사람이다.
시간을 할애해 신경 쓸 가치란 충분하다.
“그래. 요즘 일은 어떻습니까?”
“재판 중이던 건은 마무리 중이고, 그 외에 국가무공원에서 입안하려는 법안들에 대한 검토 정도만 진행 중에 있습다만… 조만간 새 사건들을 맡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지방에 있는 폭력 조직에 대한 소탕을 기획 중에 있습니다. 현재 미국으로 무림인을 보내는 문제로 시끄러운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시작은 평이한 업무 이야기였지만, 두 사람 다 알고 있다. 그건 그냥 식사 전 애피타이저와 같은 거란걸.
그들이 꺼낼 본론은 이런 게 아니다.
“그것 말고도 요즘 하고 계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꽤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던데요? 군대에 대한 일 말이에요.”
“…그 건도 손을 대고 있긴 합니다만, 신통치 못합니다.”
찰나의 머뭇거림과 대답의 자신감 없음을 대통령은 놓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잘되지 않나 보죠?”
“관할부터가 다른 일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윤아영의 대답에 대통령은 살짝 미소 지었다.
이는 그가 하고자 하는 제안의 좋은 핑곗거리였다.
“그럴 겁니다. 군대의 경우엔 재판부터가 따로 하지 않습니까? 국가무공원이 아무리 군대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지만, 검사의 신분으로 끝까지 파고들기엔 아무래도 쉽지 않을 테지요.”
“그렇습니다.”
여전히 무뚝뚝한 윤아영을 옅은 미소로 살피던 대통령은 불쑥 폭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윤 검사님, 정치해 볼 생각 없으십니까?”
당황하지 않는 윤아영을 보며 대통령은 흡족한 동시에 혀를 찼다.
그 정도 눈치도 없었다면 키워 볼 필요도 없는 일이라는 만족감과 함께, 미리 알았다면 달리 결정을 먼저 내리고 왔을지도 몰라 귀찮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 탓이다.
대통령은 조심스레 준비한 말을 꺼낸다.
“윤 검사님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검사보다 정치인이 어울립니다.”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 법이기에.
“범죄자를 기소하여 법의 심판을 받는 일, 훌륭한 일이죠. 숭고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법 자체가 미비하여 처벌 규정이 없거나, 법률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구시대적이라든가, 아니면 일부 집단의 특혜를 반영하고 있다거나 한다면 판검사는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여기까지 말한 대통령이 어깨를 으쓱인다.
“법률 없이 처벌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윤 검사님이 하려는 게 여기에 해당하는 걸 겁니다. 규정이 미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집행기관이 게을러 의욕이 없다 못해 일하기를 싫어하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처벌할 수도 없고, 설령 한다 해도 아주 약한 처벌이나 겨우 가능할 거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미리 준비한 것처럼 청산유수인 대통령의 말에 윤아영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이런 문제는 국회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참 얄밉게도.
“법을 만들려면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인 중에 판검사 출신이 많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윤 검사님의 자격은 충분하다 할 수 있겠군요.”
그 말을 들으며 윤아영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왜 당신은 바꾸지 않았는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 도울 생각은 않고 왜 그녀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건가?
그 속이 뻔히 보여 일순 구토감이 치민다.
대통령이 바라는 게 그런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국가무공원과의 사이에 조성된 긴장을 늦추는 동시에, 뒷배가 되고 싶은 걸 거다. 대대적으로 홍보까진 하지 않았어도 그녀가 어떤 식으로 연화존자와 얽혔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퇴임 후를 대비하는 걸까? 선거 결과에 따라 휩쓸렸다, 솟아났다를 반복하는 소속당 말고도 다른 구멍을 파고 싶은 걸까?
딱히 마음에 드는 태도는 아니었다.
“윤아영 검사의 투철한 정의감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윤 검사님 같은 분이 정치에 몸을 담아야 쇄신이란 게 가능하지 않을까,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검사님이 뜻을 펼 수 있게 돕고 싶군요, 어떠십니까?”
이러한 대통령의 은근한 제안에 대한 윤아영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죄송합니다.”
단호한 그 대답에 대통령은 다시금 설득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날의 오찬은 그대로 끝이 났지만,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연화존자는 되레 이렇게 묻는다.
“왜 그걸 거절했습니까, 검사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윤아영은 그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