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당가그룹의 한국 진출 책임자이자 그룹의 직계인 상무이사 당청영의 습격 소식은 뉴스에 단신으로 다루어졌다.
드러내 놓고 다닐 일이 아니긴 했다. 대한민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그룹의 일원이 한밤에, 그것도 내부자와의 공모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방식으로 공격당한 걸 밝히고 싶어 하는 정부 당국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당가그룹의 지역 개발에서 소외된 조폭 나부랭이들이 공격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안전한 치안에 대한 엄연한 흠집이다.
정부 차원에서 심심한 사과의 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과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서, 누가 일을 저지른 건지 모르는 판국에 괜히 엮여 피를 보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해선 안 된다.
물론 당가그룹에서도 이 일을 공론화시키는 건 그리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겠다. 당청영을 습격했던 습격자 중 멀쩡한 자가 없는 거야 자기 호신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상세가 심각해도 너무 심각해서 대중들에게 밝히기 꺼림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독공과 암기의 명가라는 말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처가 남았다.
고로 조용히 사과를 받고,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을 때 협조받는 차원에서 정부와의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정부와의 일은 그렇다.
“…죽이거나, 납치하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그, 그렇습, 습니다. 그, 그, 그, 겁, 겁만 좀, 좀 주려고… 아아악!”
당군명은 자신의 손녀를 해하려던 자를 노려본다.
손녀에게 제압당해 사지가 부러진 남자는 지방 무림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해결사라고 했다. 나이가 젊은 무림인들이 흔히 그렇듯 별호 같은 건 따로 없지만, 그쪽 업계에서는 나름 쓸 만한 실력이라 당가그룹을 위협하는 이번 일에 고용되었다고.
뭐, 앞으로는 그런 쪽 일에 종사하는 일은 없겠지만. 자신이 손만 들어 올려도 두려움에 떨며 비명이나 지르는 심약한 인간이 되었는데, 폭력을 팔아먹고 사는 건 아마도 힘들겠지.
부러진 팔에 깁스를 한 남자를 보며 독군이 떠올린 건 이 정도 생각뿐. 별 감흥은 없어 다음 질문을 던진다.
“널 고용한 놈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라.”
앞선 당청영의 섬세한 심문으로 이미 명단이 확보되긴 했지만, 당군명은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나는 알아야겠다.”
감히 누가 당가그룹을 건드렸는지에 대한 분노보다는 어떤 놈이 감히 연화존자의 뜻을 방해하고자 손을 쓴 것인지, 그것이 괘씸하다.
그리하여 만신창이가 된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을 유심히 듣는다.
당연히 의뢰자들, 당가그룹의 사업 확장으로 손해를 본 지역 유지와 단체가 자기들이 누군지 직접 밝힌 건 아니었다. 아무렴 아무리 어설픈 조폭 따위에게 일을 맡겼다 한들, 당가의 직계를 건드리는 일의 위험성을 그들이라고 몰랐을까?
사로잡힌 남자가 위험한 일을 함에 있어 안전장치를 마련했을 뿐이다. 만약 토사구팽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면, 혼자 죽지 않기 위한 비장의 수단.
그런 면에서 보자면 유능하다는 평가가 그리 틀린 것도 아니라고, 당군명과 자리한 이들은 생각한다.
손짓으로 다친 자를 무른 당군명이 배석한 이들을 돌아본다.
“어찌할까요?”
그의 물음에 자리한 노인, 대한잔결회의 회장 삼지일절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한다.
“장애인 단체 중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을 우리가 맡도록 하지.”
당청영을 습격하도록 사주한 이들 중에는 대한잔결회에 반발하는 기존 단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가그룹이 뿌리는 돈의 수혜를 받지 못함에 불만을 가졌다. 실제로 당가그룹과 대한잔결회가 손을 잡고 함께 사업을 진행하며 대부분의 단체는 운영 동력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어차피 대부분 집행부에서 진행한 일 아닌가? 그동안에야 표면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없어서 그대로 뒀다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됐음에야 놔둘 수 없지. 기존의 방식대로 처리하여 물러나도록 하거나, 단체를 해산시키도록 하겠네.”
삼지일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당군명이 그의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이미 몇 번인가 마주쳐 안면이 있는, 여전히 오싹하여 살기에 가까운 기운을 숨기지 않는 준호와 진호를 보며 자신이 할 일을 입에 담는다.
“기업 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조용한 방 안, 한쪽에 놓인 크고 깊은 어항의 물고기들을 보며 당군명은 한가로이 입을 연다.
이때의 그는 냉혹한 기업가, 그 자체다.
“힘들게 사람 상해 가며 싸울 필요 있겠습니까? 얼마 전, 연화존자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그룹의 자금을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한 제한이 사라졌으니, 그룹 산하 기업들을 동원해서 잡아먹도록 하지요.”
삼지일절은 당군명이 뭘 할지 상상이 간다. 적대적 M&A는 물론이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식의 공격을 능히 하고도 남을 거란 걸.
그래도 그 정도면 온건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당가의 방식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연화존자께 이 이상 부담을 드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듣고 있던 준호와 진호 입장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부담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독군의 성미를 아는 그들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많이 양보한 거란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동원된 조직폭력배와 무림 문파들은 윤 검사가 수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손을 보탤 것도 없을 테지요.”
가뜩이나 지방의 조직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윤아영은 이 일을 계기로 수사 팀을 꾸려 내려갔다.
그러니 당군명이 물어볼 건 남은 한 사람.
“연화존자께선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부터 두문불출 중인 연화존자에 대한 궁금증이다.
“마교지파 묵혈성의 신물을 손에 넣으신 뒤로 통 뵙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미국으로 떠난 최후의 기사의 출국 자리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셨지요?”
“맞네.”
삼지일절은 선선히 답한다.
당군명이 왜 하필 이걸 자신에게 묻는지, 그는 알고 있다.
“연화존자를 마지막을 뵌 게 삼지일절이신 걸 알고 있기에 겸사겸사 뵙자 청했습니다.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연화존자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당군명의 물음은 묘한 기색을 띄고 있지만, 이 자리까지 온 삼지일절이 그 아래 숨겨진 것이 뭔지 모르진 않는다.
저것은 당가그룹의 불만이다.
그만큼 당가그룹은 연화존자의 뜻을 받들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그야말로 지속 가능한 수준의 최소한을 잡아 놓고 있었고, 그동안 쌓은 그룹의 자산을 아낌없이 이 나라 이 땅에 쏟아붓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룹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도 모자라 독군 당군명마저 대한민국으로 왔으니,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바.
그럼에도 최근 연화존자의 뜻이,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궁금하다 못해 조급할 수밖에.
물론 이것이 연화존자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 뜻이 있으리라 믿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뿐이다.
“최근 국가무공원을 비롯한 고수들은 다들 한 번씩 연화존자의 부름을 받은 줄로 압니다. 최후의 기사가 반로환동한 이후로 쭉 한 명씩, 연화존자와 함께 무언가를 했음을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당군명이 하나 남은 손으로 스스로를 가리킨다.
“오직 이 사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와 당가그룹이 불만을, 정확히는 불안을 느끼는 이유였다.
그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
연화존자의 뜻이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삼지일절은 이를 해소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이는 연화존자의 불찰이자, 주변인들의 허술함이 맞네. 내 대신해서 사과하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네.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거든.”
이에 당군명이 서운함과 궁금증을 가득 담아 삼지일절을 쳐다보지만, 한 번 닫힌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겨우 입을 열지만 중언부언. 납득시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연화존자, 그 친구 입장에서는 자네를 배려한 것일세. 자네가 몸도 성치 않고, 또 이전에 주화입마를 크게 겪지 않았나? 거기에 본인조차 이 현상을 이해하기 힘드니 아직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긴 것일 테지. 자네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건 전혀 아니네.”
어찌 설명할 것인가? 마교의 신물이 뱉어 낸 안개 속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기이함을.
“잠시만 기다려 주게. 그가 찾아낼 때까지.”
“연화존자께서는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그 환영 같던 모습을.
“그는 마교의 신물 속을 헤매며 도약의 길을 찾고 있네.”
* * *
소리도, 시야도, 촉각마저도 사라진 어둠 속에서 김철민은 걸어가고 있다.
진짜인지는 모른다. 뿜어내는 암해 속에서 그렇다고 믿고 있을 뿐.
그만큼 이 자리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다. 연화존자라는 허명도, 돈이니 재산이니 하는 신외지물도, 심지어 평생 적공으로 쌓아 올린 내력마저도 희미하여 잘 모르겠다.
그저 기억만이 머물 뿐이다.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한결같이 그렇다.
‘알렉산드루는 이 안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더 높은 경지. 더 완벽한 무의 상태. 이것은 김철민의 오랜 숙제였다.
반로환동을 이룬 후에도, 그 전에도 무공은 어느 순간부터 더 나아지는 일이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하긴 했다. 천마마저 김철민의 손에 목이 베였는데, 누가 감히 무공으로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그 천외천의 능력에도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고, 더 나은 수법을 고안해 낼 수도 없어, 머물러 있기만 해 허무하다.
홍혈천마를 죽이러 간 건 그래서였다. 무너져 내리는 소비에트의 망령을 견고하게 붙들고 있던 마교를 무너뜨리는 게 애국이라는 판단 속에는 숨길 수 없는 개인적인 욕망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지상 최강의 무림인과 맞서 싸우면 뭐가 보일까?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 또한 이제 천마의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적수가 없어 무료하고, 허망하고.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조차 맞서 싸울 이가 있음에 기뻐하며 웃으며 죽고.
그렇게 보자면 천마는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었으리라. 생의 마지막일지언정 누군가 있었으니.
인간 김철민에게는 천마 이후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쳐 줄 맞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아무도.
주변에 즐비한 고수들은 많지만, 알고 있다. 그와 진심으로 싸워 봄 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것은 자만이 아니라 자각에 가깝다. 운하신권도, 청해마도도, 삼지일절도 비슷한 수준일 뿐, 위아래는 분명하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최후의 기사는 떠나기 전에 말했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도 같았다고.’
온전한 내 자신을 바라볼 기회가 설령 마교의 물건에서 비롯되었더라도 어찌 놓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마교의 물건임에도 마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검은 안개를 얼마든지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은 꺼림직하다.
귀령살의 설명에 의하면 이 검은 안개는 전부 누군가의 생명, 그 자체였지만, 글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 난리를 피웠던 귀령살조차 자신은 이 물건에 생명력을 먹이는 방법이란 걸 알지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묵혈성의 마지막 생존자가 남긴 친절한 설명서에도 그런 건 적혀 있지 않았다고.
그 사실에서 연화존자는 기이한 운명을 느낀다.
‘이것은 어쩌면 묵혈성의 안배일지도 모른다.’
교주와도 따로 움직일 정도로 묵혈성에 대해 마교 내부에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의 사태, 자신의 손에 이 물건이 돌고 돌아 돌아온 것을 마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는 상념을 떠올려 본다.
안 될 게 무엇인가? 인생이란 알 수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러니 거듭되는 의심에도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어쩔지 확신은 없어 오직 나아가며 부딪치는 게 전부.
-----아-----.
그리고 마침내 그런 김철민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