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의 유민우 순경이 윤아영에게 털어놓은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려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필요했다.
최소한 대한민국엔 알려진 바 없는 이른바 뉴 페이스가 말이다. 시간과 자원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안전하고도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와 같은 비밀스러움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마침 칠익회 소속으로 얼마 전 한국에 입국한,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몇 있었다.
당사자의 의견과 별개로.
“아, 제길. 이게 아닌데.”
칠익회 동유럽 지부장이자 얼마 전 살령지문 사냥을 완수하고 한국으로 들어온 최익현은 애꿎은 술잔을 잡고 투덜거린다.
평소 감각을 예민하게 갈고닦아야 한다며 금주, 금연을 실천하는 그에게 내면의 복잡함과 결합한 한국 소주의 맛은 쓰디쓰다.
“이건 진짜 아닌데.”
그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할 거라고 예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러려고 내가 그 고생을 하면서…….”
“부장님, 너무 그러시지 말고 술이나 드쇼.”
그 모습이 볼썽사나웠던 걸까? 안타까웠던 걸까? 함께 이 작전에 투입되어 옆에서 고기를 굽던 동유럽 지부 인원 중 하나가 결국 핀잔을 던진다.
칠익회 모두가 연화존자에 대한 존경으로 모인 형제 같은 이이기에 할 수 있는, 격식 없지만 진솔한 조언이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고기 맛있게 구워 드릴 테니, 드시고 얼굴 좀 피십쇼.”
“내 얼굴이 어때서?”
“완전 못 생겼소.”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운 고기를 가위로 잘라 손수 앞접시에 얹어 주며 달래는 부하 직원의 솔직한 말에 최익현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진다.
“부장님은 좀 웃어야지 그나마 볼만한 얼굴이란 말이오.”
“지금은 어떤데?”
“어디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은 상이오. 아니, 튀어 나온 악귀도 때려잡을 상이올시다.”
이에 함께 자리한 다른 지부원들이 한두 마디를 보탠다.
“그분께서 직접 명하신 일 아닙니까? 검사님 말씀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십시다.”
“좋게 좋게 생각하세요, 부장님. 얘 말대로 부장님 얼굴 좀 피시고요. 보고 있자니 제가 다 무섭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김에 받은 휴가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사람인데, 휴식이 필요한 건 맞잖아요?”
실제로 최익현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의 얼굴에선 큰 불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지난 수 개월간의 추적, 마교지파 살령지문의 잔존자들을 처리하는 일은 고단하면서도 긴장된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긴 세월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던 마교의 암살자 문파를 쫓는 것은 쉽지 않았고 신경 써야 할 경쟁자들 또한 존재했다. 쉽지 않았다.
하여 너무도 조여져 있던 정신이 오늘 먹고 마시며 나름 풀고 있으니, 다들 나쁘기만 한 일이라곤 여기지 않는 것이다.
비록 할 일이 있긴 해도 말이다.
하지만 칠익회 소속 무림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런 거 아니었나? 칼날 위, 어디에서 춤을 출지 모르는 그런 일들.
세상이 논리적이고 마땅히 그러해야 함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괜히 특수부대에서 가혹한 훈련을 통해 인원을 선발하는 게 아니다. 마주쳐야 하는 현실이 그보다 비논리적이고, 잔혹한 법.
다만 그러함을 잘 알고 있음에도 최익현의 마음엔 들지 않을 뿐이다.
“연화존자께서 큰일을 하시는데, 이러고 있자니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다.”
이건 투정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기에 나오는 합리적 불만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와 동급인 칠익회의 다른 인원들, 준호와 진호 형제라든지 아니면 다니엘 킴 등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의 불만이 마냥 하는 소리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으리라.
그와 그의 팀원들이 지닌 능력을 생각하면 이건 그야말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
그렇지만 반론은 준비되어 있다.
“연화존자께서 어련히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고기를 굽던 수하가 묵묵히 말한다. 아까와 같은 핀잔은 싹 뺀 채로 연화존자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반박할 수 없다.
“바뀌고 있는 이 나라를 보십시오. 군대를 좀 먹던 똥별들의 목을 치고, 나라를 팔아 제 배를 채운 것들을 싸그리 쓸어버리시지 않았습니까?”
잘 구워진 고기를 싹둑 잘라 내는 그 동작처럼, 대한민국 군대 내부의 비리들은 하나둘 잘리며 척결되고 있었다.
방산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단 하나의 선처 없이 감옥에 갔고, 막대한 추징금과 벌금이 부과됐다. 생계형 비리가 늘어났다는 헛소리 따위, 이제 먹히지도 않는다.
군 조직 내에 존재하던 부조리, 무사안일을 원하는 태평한 태도 역시 내공심법의 보급이라는 문제에 부쳐 하나둘 바뀌고 있다.
여기에는 처벌과 감시도 큰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국가무공원의 예산이 군으로 투사된 것이 컸다.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는 법이어서 국가무공원에 귀속시킨, 연화존자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재산과 지금은 공기업으로 전환된, 소유했던 기업들에서 나오는 돈이 군대를 움직이고 바뀌게 만들었다.
전투력 유지와 민주사회 내에서의 역할의 균형추를 잘 찾아가는 중이라 하겠다.
하여 국가무공원 내부에서는 이를 통해 병무청과 보훈처를 바꾸려는 계획마저 짜고 있다.
21세기에 이 큰 나라에서 강제 징집에 가까운 짓거리를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고, 나라를 위해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이들에게 마땅한 대우를 해 주지 않는 건 더더욱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물론 이것이 단박에 모든 것을 정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결과로 만들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하루아침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건 아무리 연화존자의 무공이 강력하고, 또 개혁의 의지가 강력하다 해도 불가능했다.
전 세계, 그 어떤 군대도. 또 어떤 조직도 내부의 문제를 가지지 않은 곳은 존재할 수 없으니, 단숨에 모든 걸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과 다르게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은 생겨나는 중이었고, 최익현은 그곳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꿈에 부풀어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그 또한 어쩌면 희망 사항이었으리라.
“그런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부장님.”
가게를 가득 채운 일반인들의 눈과 귀를 의식하며 최익현을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지부원의 눈길은 서늘하다.
“그런 양지에서의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잖아요. 잘 아시잖습니까?”
“흐음…….”
옳은 말이었다. 그들이 동유럽에서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말이다.
그들은 칠익회 소속으로 마피아들을 사냥하여 수익을 올리던 팀이다. 이 과정에서 당가그룹과 제갈 패밀리와는 긴밀한 협조를 나눴고, 또 각국의 치안이 감당하지 못하는 범죄조직들을 은밀히 처단하여 범죄 수익을 거둬들이던 것이 이들의 주된 업무.
칠익회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격투 및 격살은 물론이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추적과 탐색에 이들 역시 특화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다른 조건과 맞물려 오늘의 일을 맡게 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맙시다, 부장님. 세상은 이렇게 넓고 연화존자의 뜻은 크고 높은데, 우리 같은 놈들이 할 일이 앞으로 왜 없겠습니까?”
“…존나 현명한 새끼.”
그렇게 한 잔을 또 따라 들이켠 후, 최익현은 일어난다. 그러곤 기다리던 목표물에 다가간다.
팀원들이 그런 그의 등을 보고는 시간을 가늠하며 괜찮은 때라고 생각한다.
가장 적절한 사냥의 시간이었다. 배도 적당히 채웠고, 취기도 조금 올랐고, 무엇보다 목격자와 CCTV에 자연스러웠지.
나중에 그를 찾을 수 없을 터임에도.
“야.”
그런 최익현의 앞에 온몸에 문신이 적나라할 정도로 드러난 흉맹한 모습의 무리가 앉아 있다.
거구에 억세기까지 한 얼굴을 하고 있는 최익현이 살짝 얼굴이 붉어진 채로 다가와 다짜고짜 시비조로 부름에도, 상대방 무리에선 긴장감 따위를 보이지 않는다.
그건 그들 역시 한 덩치 하는 것도 그렇지만 척 봐도 최익현의 일행이 자기들보다 적어 보였으며, 무엇보다 이들의 직업이 이런 일에 익숙하기 때문.
위협적인 기색의 최익현을 제외하곤 다른 칠익회 동유럽 지사 사람들은 그리 크거나, 사나운 기색이 없어 보여 안심하기까지 한다.
아니, 방심한다.
“아저씨, 술 드셨으면 곱게 드시고 들어가세요.”
“어디서 운동 좀 하셨나 본데, 괜히 객기 부리다 봉변만 당하고 귀가 못 해요.”
웃기다며 여유롭기까지 한 것이다. 외지에서 온 것 같다고, 그러니 자기들이 누군지 모른다며 넌지시 비웃음을 던지고.
“뭐래, 이 깡패 새끼들이.”
그러나 최익현은 저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어디 성실히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남의 등이나 쳐 먹고 살려고, 젊은 놈들이…….”
깡패라는 말에 문신한 무리의 표정이 돌변한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온 새끼야?”
질문과 추궁은 그러나 이어지지 않는다.
“새끼야, 묻잖… 억!”
“넌 나한테 물을 자격이 없어.”
최익현은 옷깃을 여미고 문신을 내보이며 다가오던, 대구 지역 최대 조직인 성동파 조직원 중 하나의 목을 잡아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어디 깡패 새끼가 내 이름을 묻나? 격 떨어지게. 내가 너랑 겸상할 짬밥으로 보여?”
“형님!”
“저 새끼 조져!”
제 편이 붙잡히니, 우르르 성동파 조직원들이 달려든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느새 이렇게!”
“이, 이 새끼들! 무공을 익혔어!”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유럽 지부원들이 어느새 코앞까지 쇄도했으며, 더불어 손을 씀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한꺼번에 둘러싼 뒤 금나수를 펼쳐 성동파 조직원들의 손목을 컨트롤해 무력화시킨 뒤, 그대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발로 차는 건 정말이지 한순간.
뿐만인가? 이런 일에 어찌나 익숙한지 무릎으로 등허리를 누른 채 움직이지 못하게 꽉 누르니, 얼굴을 기름기 가득한 고깃집 바닥에 박고 다리만 바둥바둥.
위세등등하던 조폭들의 치욕이다.
“야. 이렇게 허약해 가지고 이 험한 세상 남의 등 쳐 먹고 살 수 있겠냐? 어? 싸움 겁나 못하네, 진짜.”
이 비웃음은 연기가 아닌 진심이었다. 가볍게 손을 써도 변변한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그렇게 나다니며 폼을 잡기는.
뭐, 상대가 칠익회이니 만큼 세상 어떤 집단을 가져와도 비슷한 꼴이 되었겠다만, 최익현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아 할 일의 다음 단계를 밟을 뿐이다.
“짜증 나니까 눈에 띄지 마라, 진짜. 에이, 술맛만 버렸네. 가자, 얘들아.”
그렇게 최익현은 나뒹구는 조직폭력배들을 버려 둔 채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일이 여기서 끝날 리 없었다.
“뭐? 우리 애들이 얻어맞고 왔다고? 어떤 놈들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놈들이었는데…….”
두들겨 맞고 온 조직원들을 보며 성동파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어디에서 온 누구냐, 외지인이냐부터 시작해 평소 관계가 돈독한 경찰 쪽에 연락을 해서 신원을 따려고 시도하는 한편, 애들을 푼다, 어쩐다 하면서 온갖 소란을 부산하게도 떨었다.
그리고 그것이 최익현의 팀이 원하는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로 성동파의 보안이 허술한 틈을 타 사무실로 침투한 칠익회 동유럽 팀은 빠르고도 신속하게 자료의 분류를 마친 뒤 흔적도 없이 빠져나왔고, 며칠 뒤.
성동파의 두목은 영장을 들고 온 윤아영이 이끄는 수사 팀의 방문을 받는다.
“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잡아간다는 거야!”
“폭행, 협박, 살인교사, 횡령, 배임. 일단은 영장에 나온 건 이 정도고. 압수수색 들어갔으니까, 네가 했던 나쁜 짓들이 더 나오겠지?”
그래도 윤아영의 명성이 이제 알려져 있어 되도 않는 뒷배경 자랑은 없다는 게 다행이랄까?
최익현과 그의 팀이 동원된 건 자료를 신속하게 분류하기 위함이었다.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쓰일 수 없기에, 결정적인 증거들은 사무실에 놔둔 채 영장을 받을 정도의 자료만 들고 왔던 것.
이 사실은 이번 수사의 최종 목표가 고작 조직폭력배 두목 따위가 아님을 말해 준다.
“예를 들면 깡패 두목께서 경찰들한테 찔러 준 돈, 정치인들한테 만들어 준 비자금 같은 것들 말이야.”
다 알고 왔다는 그 말에, 조폭 두목의 얼굴은 순간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