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84화 (84/175)

#84화

윤아영의 팀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착 관계에 있는 부패의 사슬을 하나하나 끊어 나갔다.

유민우 순경의 제보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러한 종류의 제보가 거기서 끝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 사회에 바르지 못한 결과는 생각보다 많았으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불의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제보가 끊이질 않았다.

세상에 나쁜 놈들은 많아 국가무공원이 출범하며 교도소부터 지은 것이 일견 이해가 갈 정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악인의 존재에 분노하여 맞서 싸운 이가 그래도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이.

옳은 일을 했음에도 되레 조직의 배신자가 되어 버린, 타협을 모르고 세상의 이익과 불화하며 싸운 사람들이 대한민국엔 아직 많다는 생각을 윤아영은 했다.

잡아 넣을 놈들이 너무 많아서 하는 상념이었다. 나쁜 놈들, 그 나쁜 놈들과 싸우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세상에 많으니, 자연스레 드는 생각.

그러나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제 본분을 다한다. 그녀를 어지럽게 하던 잡다한 생각들을 내려놓은 채, 해야 하며 하고자 하는 일을 성실하고도 철저하게 한다.

수사는 멈추는 법이 없다.

한편 최익현은 이러한 윤아영의 수사에 협조하며 자신이 왜 그녀의 팀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윤아영에 대한 불신 혹은 국가무공원의 방향에 대한 혹시 모를 회의감을 제거하기 위함이란 것을.

칠익회를 국가무공원 내부의 동떨어진 섬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연화존자의 안배임을 그는 알았다.

준호와 진호, 다니엘 김 등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 조직이 진정 잘 굴러갈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이 신생 조직의 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인가에 대한 의심이 윤아영과 함께 일하며 서서히 불식되기 시작했으니까.

이 조치가 필요한 일임을 또한 알아챈 것이다. 다른 곳 출신들은 몰라도 칠익회에는 이런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칠익회는 거칠고 위험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태생이 그랬고, 그들의 삶이 그랬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곳이 그랬다.

저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에서조차 제대로 된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무력 집단으로, 버림받았던 삶을 연화존자에 의해 구원받아 성장한 무림인 집단으로 살아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구성원의 거의 전부가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동질성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이 나라가 조국이라는 생각이 희미한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

칠익회를 떠받치는 정체성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 동질성, 민족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스로를 연화존자의 아이들, 언젠가 불비불명을 멈추고 날아오를 천하제일인의 날개가 될 거름과도 같다고 제 자신을 여기는 자들이 칠익회였다.

그러니 과연 연화존자는 연화존자였다 하겠다. 칠익회의 저변에 깔린 심리를 깨닫고 서서히, 자연스럽게 통합책을 제시한 셈이었으니.

그리고 내실을 다지는 이 작업이 비단 칠익회에만 필요한 건 아니었다.

“커헉.”

어느덧 완성된 국가무공원의 지하 수련장에서 도복을 입은 남자가 바닥에 나뒹군다. 턱끝까지 차오른, 탄식에 가까운 호흡을 내뱉으며 데굴데굴 굴러 장외로 떨어진다.

“많이 늘었네.”

“크, 크어.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보인 모습에 비해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은지 벌떡 일어나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 대상은 대련장의 중앙을 점거한 채 뒷짐을 진 연화존자.

미증유의 기류가 흐르는 위압적인 모습으로 그는 서 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전에 비해 고수의 기세란 것이 칼처럼 흐르는 모습.

쓰러진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에 앉은 채 두 사람의 지도 대련을 지켜보던 국가무공원 인원 중 누구도 연화존자가 언제 손을 뻗고 회수했는지 눈으로 본 이가 없었다.

“이 친구가 마지막이었나? 그럼 전부 올라와라.”

하여 마주 보기조차 두려울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나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어렵게 시간을 낸 연화존자였다. 아까워서 어디 뒤로 빠질 수나 있을 것인가?

그런 나약한 사람이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못했을 터.

두려움을 이기고 우르르 올라온 서른 명 안팎의 인원의 출신은 다양했다. 기존 국정원 블랙요원 출신부터 현천문 출신, 국가무공원이 출범한 이후 이뤄진 영입 과정에서 들어온 인원들과 예비 진기도인단. 심지어 현역 군 특수부대 파견 인원까지.

출신도, 소속도 제각각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건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와라.”

중요한 건 이제부터 해야 하는 지도 대련의 마지막, 1 대 다수의 대련에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해 맞서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는 사실.

그 조금이란 것도 필시 찰나일 테지만, 안 된다고 맥없이 포기할 사람들이었다면 이 기회를 잡지도 못했으리라.

기회는 잡는 자의 것이다.

“으아아아압!”

시작과 동시에 가장 용맹한 누군가가 기합을 지르며 연화존자에게 쇄도한다. 국가무공원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가능했던, 연화존자의 가르침을 받는 기회를 잡은 이답게 파도처럼 달려드는 기세가 범상치 않다.

손가락을 구부려 매의 발톱처럼 만들어 연화존자의 옷깃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절대고수를 상대로 초근접전을 벌이려는 기개였으며, 동시에 뒤에 올 동료들을 믿고 몸을 던지는 담대함이었다.

연화존자는 이 태도가 마음에 든다.

“하하하.”

그래서였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채로 장심을 뻗어 왼쪽 옆구리를 후려친 건.

각오를 다지고 몸을 던지는 이에게 어찌 허투루 손을 쓸 수 있으랴. 연화존자는 존중을 담아 상대해 준다. 나름의 최선을 담은 정교함으로.

그래도 내공을 크게 실지 않아 몸을 띄워 날려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고통을 참으며 소리치는 게 가능할 리 없을 터.

“오… 른쪽을!”

이렇듯 선두의 교육생은 단 한 수에 무력화되었지만, 그의 뒤에는 남은 자들이 있다.

미리 짠 계획마저 있는.

대여섯 명이 대련장 바깥으로 날아가 아웃 될 위기의 리더를 붙들어 메는 사이, 연화존자의 오른편으로 돌아 달려드는 인원들이 셋.

나머지 방향에서 덤벼드는 자들의 숫자가 더 많았지만, 연화존자의 움직임을 막기 위한 견제의 성격이 짙었다.

오른쪽 셋의 실력이 다른 쪽의 인원들보다 월등하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찰나의 순간, 그들의 신상 명세가 스쳐 지나간다.

‘현천문 출신이 둘에 공군 공정통제사라. 이 세 명이 공격의 창 역할이군.’

다 한 번씩 손을 섞어 봤기에 안다. 작금의 교육생 중 가장 실력이 좋은 셋이었다. 가장 먼저 나서 지시를 내린 인원보다 더.

특히 CCT 인원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운이 좋은 편이기도 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가전 무공을 익혔고, 무명공을 익히며 무공이 증진된 케이스로 보안 딱지가 붙은 비밀 작전에도 여러 번 투입된 엘리트 특수부대원.

그러니만큼 일신의 무위는 현천문 출신 두 명보다 떨어질지언정 지닌 살기가 남달라 연화존자를 웃음 짓게 만든다.

“하!”

최근 웃을 일이 많은 천하제일인이었다 하겠다.

짧게 기합을 넣고 뒤로 살짝 빠져 타격점을 흐트러트린 연화존자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창 역할을 맡은 인원들을 타격한다.

이들이 원하던 거리에서 싸워 준다.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펼치는 이형환위, 그 자체의 모습으로 바로 앞으로 닥쳐 와서는 현천문 출신들의 발등을 밟아 움직임을 봉쇄, 어깨로 가슴을 두들기고 다른 한 명을 잡아 공중에 띄운 뒤 패대기치는 것이 그렇다.

창졸간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하나 남은 군인은 날개 역할의 두 명이 쓰러짐에도 머뭇거리거나 뒤로 빼지 않는다.

멈춘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걸 아는 눈빛에, 연화존자는 씩 웃으며 인정했다. 잘하고 있다고, 싸울 줄 아는 것 같다고.

그것이 연화존자의 무릎에 턱을 맞은 특수부대원의 마지막 기억.

그로써 최초의 계획이 어그러졌음을 안 나머지 인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만, 앞선 모습과 마찬가지로 연화존자는 신위를 보인다.

순식간에 손과 발에 잔상을 남기며 이동하여 하나하나 제압한다. 연화존자의 걸음이 그리 빠르지도 않았건만, 손과 발을 놀리는 모습에 절도와 뒤따를 수 없음만이 있어 더러는 자기가 왜 쓰러지는지도 모르고 바깥으로 굴러가기 일쑤.

장내는 머지않아 정리된다.

“고생했다.”

연화존자는 쓰러진 이들을 보며 그렇게 말하며 마무리했다. 기분이 불쾌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흡족했다.

아무도 자신과 맞섬에 포기하지 않았음이 기꺼웠다. 그에 더해 협동하여 계획을 짜고, 서로의 전력을 털어놓고 분석한 것까지.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생하셨습니다, 국장님.”

그런 그를 흑응 지윤환이 기다리고 있다. 몸을 닦을 수건과 마실 물, 갈아입을 옷 등을 든 자세가 사뭇 공손하다.

아무리 연화존자를 위한 물품이라지만, 국가무공원의 실세 중의 실세가 하기엔 다소 하찮은 일. 그럼에도 흑응은 기꺼이 기다렸다.

사실 요즘 같은 생활보다 예전이 더 그리울 때도 있을 정도였다. 연화존자 김철민의 개인 비서 노릇이 더 마음이 편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이라고, 지윤환은 여기는 편이다.

다만 연화존자의 뜻을 받드는 것이 개인의 행복보다 먼저이기에 감내할 뿐.

“공사가 다망한데, 어쩐 일이야?”

연화존자의 농담에 씩 웃어 보이는 건 그러니 예전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일 테다.

더불어 연화존자에게서 느껴지는 변화가 기쁘고 벅차기 때문일 터.

“운하신권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애써 침을 삼키며 말을 잇는 흑응은 수건을 건네며 손끝을 떨었다. 그걸 보며 연화존자가 쓴웃음을 짓더니, 이내 기세를 갈무리한다.

요즘 따라 종종 있는 일이다. 얼마 전, 마교지파 흑혈성의 신물을 통해 무위가 상승한 이후로 자기도 모르게 이럴 때가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근래 수련의 강도를 높이고, 국가무공원 인원들을 상대하는 빈도를 늘린 건 이와 관련이 있기도 한 터였으니. 연화존자가 상승한 무위에 따라 틀어진 감각을 바로잡고, 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측면도 분명 있다.

그러니 흑응의, 칠익회란 얼마나 대단한 이들이란 말인가?

태산 같은 기세의 절대고수를 보며 본능적인 공포에 떨면서도 그가 연화존자라는 이유로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말이다.

“…손님이 왔습니다.”

연화존자의 성취가 두려우면서도 기쁜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운하신권 또한 연화존자의 무위가 상승한 것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아쉬움도 있다.

“자네가 또 한 번 부럽군.”

그 또한 연화존자의 요청으로 마교지파 흑혈성의 신물, 묵죽의 암해를 겪어 보았지만 고통과 주화입마의 기미만 있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어찌 부럽지 않을 것인가? 무림인이라면 응당 손톱만큼의 성취라도 오매불망 바라는 향상심이 있어야 하는 법이거늘.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결코 고수가 될 수 없었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손 꼽히는 고수인 운하신권은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충만한 이였다.

“이게 어찌 저 혼자만의 성취겠습니까?”

물론 연화존자는 얻은 심득을 홀로 독점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것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면, 무수히 많은 무림의 고수와 방파들이 선택했던 그 길을 택했다면, 국가무공원은커녕 현천문조차 태동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연화존자는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 운하신권이 익히 알듯이.

“내 기대하고 있도록 하지. 참, 오늘 오신 분을 소개해 드려야겠군.”

사담을 마친 운하신권이 조용히 앉아 그들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던 남자를 소개한다.

적지 않은 나이의 노인이었다. 허리가 꼿꼿하고 눈빛에 힘이 있음에도 지난 세월을 되돌릴 순 없었다. 정갈하게 넘긴 머리카락의 서리는 뚜렷하며, 손가방을 힘있게 쥐고 있다.

무공은 익히지 않았으며, 달리 육체노동에 종사한 몸은 아닌 것 같다. 키는 크지만 말랐다. 정체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소개는 금방 따라왔다.

“주형민이라고 합니다. 외교관으로 일하다 작년에 은퇴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살짝 미소 지은 채로 악수를 건네는 그가 긴장했음을 김철민은 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은퇴한 외교관이 왜 그를 찾아왔는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궁금증은 기습적인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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