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혈마제를 뒤쫓던 추적자의 이름은 김동연. 약 이십여 년 전 참혹한 존속살인을 저질렀으나 곧바로 잠적, 지금껏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던 장기 지명 수배자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사라졌다.
“…내 아버지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익히라고 했으니까.”
“무공?”
“네.”
“어디서 난 무공인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전 무공이었습니다.”
“무공의 이름은 뭐지?”
“천지극뢰(天地極雷).”
뇌기를 다루는 무공이 어떤 연유로 집안에 남은 건지 수련한 당사자조차 몰랐지만, 어쨌든 김동연의 집안에서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은 사실이었다.
아울러 동시에 경원시 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뇌기라는 힘의 본질이었던 것이니, 가두고자 하면 갇혀 있긴커녕 요동을 치며 수련자의 몸과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천지극뢰를 익힌 자들은 하나같이 예외 없이 모두 미쳤다.
미쳐 버렸다. 광증이 찾아와 야인이 되어 산과 들을 떠돌다 죽은 이가 숱할 지경.
하여 김동연 이전 아버지 대에서는 익힌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익히기만 하면 분명 같은 수준의 무인을 압살하는 위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통제할 수 없는 광기를 얻어야 하는 이 무공을 김동연의 집안은 고이 간직해 왔다.
어차피 무림이 몰락한 시대 아니었나? 꼭 무공이 아니어도 세상엔 가질 수 있는 힘이 많다.
하여 굳이 밖으로 보이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던 상황이 급변한 건 어느 친분이 있는 무림인이 김동연에게 무학에 재능이 있다며 무공을 배울 걸 권유하면서였다.
“아버지는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조상님이 남겨 주신 무공을 익힐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기이한 예감에 사로잡힌 것이지요.”
김동연의 아비는 그에게 무공을 익힐 것을 강요했다.
당사자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없는 강력한 푸시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광증과 광기는 무공이 아니라 이 빌어먹을 핏줄에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어찌나 강압적이었는지 치졸할 정도였다.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것도 모자라 부인에게도 이를 강요할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혼을 했을 정도였고, 무공을 익혀야 한다며 학교도 보내지 않고, 용돈과 먹을 것을 통제했다.
“일찍 죽은 내 할아버지가 항상 자식들을 모아 놓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자식들의 재능이 부족해 물려준 것도 제대로 익히는 놈이 없으니 죽어서 조상님을 볼 낯이 없다고. 그게 한이 된 것인지 내 아버지는 물론이고 친가 쪽 어른들은 아버지의 학대에 가까운 강요를 은연중에 동조마저 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외가 쪽에서는 말리지 않았나?”
“내 아버지 쪽 사람들이 더 돈이 많고 성공했습니다. 어머니 또한 말이 이혼이지, 쫓겨난 거나 다름없고요. 날 지옥으로 밀어 넣은 채로 내 아버지는 재혼만 두 번 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생이별과 자신에 대한 학대까지는 어찌어찌 버텼던 김동연이 무너진 건, 그가 무공을 익힐 때까지 어린 동생을 괴롭히며 학대하는 아비의 모습에서였다.
“내가 무공을 익히지 않으면 동생을 괴롭히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고작 열 살, 내 동생은 일곱 살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하며 김동연이 알게 된 건, 적어도 아버지의 지인의 지인이라는 그 무림인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김동연의 성취는 진실로 뛰어났다. 집안의 조상 중 누구도 올라가지 못했다는 천지극뢰의 4단계에 이십 대 초반에 도전하였으니.
아울러 조상님들의 기록 역시 옳다는 걸 알았다. 곧바로 통제할 수 없는 광기, 다 죽여 버리고 자신도 죽어 버리고 싶은 미친 것 같은 기분이 서서히 차오르다 어느 날 펑 하고 터져 버렸으니까.
광증은 그렇게 찾아왔다.
“아버지를 죽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즈음의 기억들이 드문드문합니다. 머리에 뜨겁고 따가운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는 게 생각나는군요.”
김동연은 그게 무공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교육과 환경 속에 살지 못한 후유증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아버지를 죽인 것조차 제정신으로 한 일이 아닌 죄인은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고 했다.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동생이 날 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죽은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자신을 동생이 끌어안은 채 울고 있었다.
지금껏 이어져 온 길고 긴 잠적은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녀석은 오랫동안 거기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했습니다.”
“어떤 생각?”
“만약 날 숨긴다면 어떤 식으로 숨겨야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고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아버지가 죽긴 했지만 공권력으로부터 형을 숨겨야 되는 처지에 미리 해 봤던 상상들은 도움이 되었다.
명의를 빌릴 사람을 구하고, 핸드폰은 선불 폰을 사용하며, 의료보험이 필요 없는 성형수술을 형제는 어찌어찌 해냈다.
아예 이쪽으로 진로를 틀기도 했다. 가짜 신분을 만들어 주고, 그런 걸 필요로 하는 고객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쪽으로.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많이 까먹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았다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십 년 넘게 도망 다닐 수 있지 않았나?
그의 동생 역시도 영 밝지 못한 일들에 발을 들이게 됐지만, 그래도 형제는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 정도면 호사라고, 어찌 됐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면서.
비록 우연이 겹친, 아니면 음지에서 살아가며 언젠가 맞이했을 비극으로 끝이 나긴 했지만.
“그 이후로 광증은 찾아온 적이 없나?”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은 연화존자는 옳고, 그른 것을 따져 묻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절대고수라지만, 한 가족의 비극에 대해 그가 뭐라고 끼어들 것이란 말인가? 오지랖이다.
그러니 다만 무공에 대해서만 물었다.
“없습니다, 단 한 번도.”
한숨처럼 대답하는 김동연을 빤히 보며 연화존자는 책상을 톡톡 두드린다. 필요에 의한 어떤 계획이 있지만 제안을 던지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이게 맞나?
판단은 곧바로 세워져 금방 입을 연다.
준비한 그대로.
“너의 미래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어.”
혈마제와 김동연을 잡아온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사이, 국가무공원 내부에선 이들에 대한 처리로 갑론을박이 한창이며 논쟁의 불씨는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두 방향으로 크게 갈렸다.
“하나는 마땅히 받아야 할 법의 처벌을 받는 거지. 그동안 미뤄 왔고, 피해 왔던 적법한 처벌 말이야.”
법의 처벌을 받게 하자는 의견은 국가무공원 내부의 많은 상식인의 지지를 받았다.
그만큼 죄과는 명백하다.
혈마제의 경우 중국에서의 일이라고 하나 죽인 사람의 숫자가 세 자리에 달하는 무림인 살인마였다.
아마 중국 측에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테지만, 그런 거야 가뿐히 무시하거나 데리고 있다가 이쪽에서 원하는 도피자를 받아 오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으리라.
김동연의 경우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존속살인이라는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법에 의한 처벌의 당위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다른 하나는 법에 의한 처벌이 아닌 다른 방식의 벌을 받는 거고.”
그럼에도 후자의 의견이 조심스러운 지지를 받는 건 순전히 연화존자 때문.
그가 이 방안을 제시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국가무공원에선 비밀 부대를 만들 거다. 거기에 들어와라.”
연화존자는 혈마제와 김동연을 국가무공원의 비밀 부대에 넣자는 제안을 던졌다.
이는 칠익회 출신들에게는 굉장히 쓸모 있는 것으로, 평범한 도덕률을 가지고 있는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장으로 평가받았다.
“위험해. 죽을 수도 있고, 아니 죽을 확률이 무척 크고, 살아도 아마 멀쩡히 살기 힘들 거야. 제한적인 자유야 누리며 밥도 먹고 살겠지만, 글쎄. 그리 행복한 인생은 절대 아닐걸?”
웃음기 전혀 없이 저런 말을 하니 김동연은 이게 진담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연화존자는 진심이다.
위의 진술 어디에도 거짓은 없다.
“비밀 부대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합니까?”
김동연의 질문에 연화존자는 기꺼이 답한다.
“국가무공원의 무공을 유출하여 익힌 타국 정부 혹은 국내외 조직에 보복 및 섬멸을 하는 걸 주 업무로 하게 될 거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자들을 제거할 거고. 이를 위해 가짜 신분으로 살아가게 될 테니, 널 아는 사람들과 결별한 채 그들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야 해. 설령 죽더라도 순직 처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만약 적국 또는 적대 조직에 사로잡힌다 한들 국가무공원은 절대로 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거야.”
그가 구상하고 있는 비밀 부대,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지적재산권을 지키고 국익을 해하는 자들을 처단할 타격 부대에 대해 생각해 놓은 바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혈마제와 김동연에 대한 처리를 고심하는 회의장에서 불현듯 든 생각이다.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그럼에도 제안한다. 곧 생길 비밀 부대, 아마 첫 임무는 날 따라다니는 게 될 텐데 거기에 참여하라고.”
아무리 연화존자라지만 중국에 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죽는다거나, 위험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천마의 목을 벤 절대고수가 연화존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홀로 몸을 빼는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가 중국에서 하려는 일이 그런 게 아니지 않나?
연화존자가 중국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길어질지,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대비해야 한다.
보조자가 있는 편이 임무의 성공 확률을 높이리라.
“단순한 선택지야.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나를 따라다니며 다른 일을 할 것인가?”
국가무공원의 시작인 무명공을 최초로 익힌 시범 부대 출신들이 비슷한 일을 위해 다시금 맹훈련에 돌입 중이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못해 다른 방도가 없나 찾고 있기도 했다.
그 위험한 일을 어찌 쉽게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죽어도 인정받지 못할 확률이 농후한데.
물론 필요하다면 책임감과 죄책감을 뒤집어쓰겠지만, 설령 연화존자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된다 한들 목숨을 아끼지 않겠지만, 어쨌든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자를, 부모를 뺏는 게 연화존자라고 편한 일은 아니었다.
반면 벌받아 마땅한 죄인들이라면 조금 나을지도.
“…절 어떻게 설득하시려고 그런 말을 합니까?”
한참을 망설이다 질문을 던지는 김동연을 연화존자는 비웃는다.
“하기 싫으면 말아.”
“…네?”
“하기 싫으면 말라고.”
둘밖에 없는 밀실에서 연화존자가 턱을 괸 채 그를 본다. 분명 비슷한 눈높이지만 김동연은 그 시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는 감상을 느낌과 함께 이런 느낌 또한 받는다.
자신이 무척이나 하찮아진 것 같다고.
“국가무공원에 네가 필요한 것 같나? 애석하군. 전혀 그렇지 않아.”
연화존자의 눈에 맺힌 무지개에 시선을 뺏기면서도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난 널 설득하는 게 아니야. 그냥 이런 게 있다고 알려 주는 거지.”
“그럼 내가 왜 당신 말을…….”
말문을 잇지 못하며 순간 화를 내려던 김동연의 입은 다음 말에 막힌다.
“착각하지 마라, 김동연.”
그만큼 준엄했다.
“난 너를 동정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 남의 인생 함부로 동정하고 평가할 만큼 널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어. 그러니 너에게 길을 제시하는 건 오직 나의 필요에 의해서일 뿐.”
손가락을 들어 모든 걸 잃은 남자를 가리킨다.
“그러니 너도 너의 필요로서 구해라.”
흡사 찌르듯이.
“나의… 필요?”
“교도소가 네가 갈 곳이라 생각한다면, 가라. 남은 평생을 무림인 교도소에서 보내겠지만, 너의 인생이잖나? 네가 거기서 끝을 내고 싶다면 마땅히 그래야지.”
노려보듯이.
“하지만 너의 개같은 운명을 전과 다른 마무리로 끝내고 싶다면, 그렇다면 국가무공원에서 구해라.”
설득 아닌 설득을.
“빌어먹을 운명의 끝자락을 다른 것으로 채워 줄 테니.”
천지극뢰의 전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