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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96화 (96/175)

#96화

주형태는 국가무공원에 운이 좋아 들어올 수 있었다.

주변 친인들은 물론이고 본인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거기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역시 주변에 사람을 잘 두고, 줄을 잘 서야 해.’

주형태가 국가무공원이라는, 사명감과 야망을 동시에 갖춘 경찰이라면 필히 도전해 보고 싶은 신생 조직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명백히 동료를 잘 만난 덕이라 할 수 있는 일.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형태의 직장 동료인 한 사람이 꽤나 정의로운 인물이었던 게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런 사람이어서,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이 자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경찰로서 솔선수범하고 몸을 갈아 가며 일하는 그가 주형태는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의로운 사람이 더러운 사회 안에서 빛을 보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들어맞았다는 거였지만.

그의 동료는 윗선에서 묻어 버린 권력형 비리에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들이받고 개인적인 수사를 지속하다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대기 발령을 당했다.

어찌 보면 예정된 결과였다. 경찰 고위급들이 여럿 엮인 바람에 무리하여 관련자들의 입을 막아 버린 사건을 일개 형사가 까발리고 있으니, 관련자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테지.

하여 여기까진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고 안타까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동료와 주형태가 제법 친한 사이였다는 것. 나아가 의기투합하여 함께 수사에 나섰다는 것.

처음엔 그럴 생각이 없었음에도 파트너로 일하며 어울리다 물들어 ‘어, 어’ 하는 순간 권력 비리를 파고드는 정의 경찰이 되어 버린 주형태 또한 대기 발령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여러 차례 묵과하기 힘든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모진 놈 옆에 있다 돌 맞는다는 것이 딱 이 짝.

하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일까?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면서도 모두 잡아내는 것인 걸까?

돌연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며 나타난 무림인들이 국가무공원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세우고 부패한 자들을 처단하며 나라를 바꾸기 시작했다. 또한 동시에 올바른 내부 고발자들과 접촉, 영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경찰 조직 내에서 외면당하는 걸로 끝이 났을 두 사람의 팔자도 수직 상승, 운명이 바뀌어 버린 바.

주형태와 그의 직장 동료, 현승원은 국가무공원의 부름을 받았다.

‘멍청한 선택 같은 걸 하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이 중요하고 말고.’

주형태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신념이라는 걸, 양심이라는 걸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국가무공원의 검증을 통과한 뒤 아예 경찰에서 퇴직. 입사한 직후 주형태와 그의 동료 현승원은 새로운 조직과 신분에 맞는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무공에 대한 트레이닝이 주를 이뤘다. 완숙의 경지에 이른 진기도인단이 그들에게 무명공을 진기도인 했고 이를 바탕으로 내공과 신체를 활용하는 법을 새로 배웠다.

밑바닥부터 말이다. 주형태와 현승원 모두 체대 출신이자 전직 경찰로 몸 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체대생의 운동과 무공을 위한 운동은 방향성과 강도가 사뭇 다르더라.

목숨 걸고 운동하던 어린 시절보다 국가무공원의 교관들에게 받는 훈련이 무서웠고, 그런 잡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쯤에야 두 사람의 훈련은 끝이 났다.

이후로는 곧바로 임무 투입.

“이 위에 있대?”

“어.”

두 사람에게 딱 맞는 일이 맞춘 것처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그런.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선우 경감 있나?”

“어디서 오신 분들이시죠?”

분분히 일어나 두 사람에게 물어오는 사람들, 앉아 있지만 시선을 떼지 않는 경계심 어린 얼굴들은 따지고 보면 주형태와 현승원의 경찰 선배이자 동료.

물론 국가무공원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이야기이며,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다.

“국가무공원에서 나왔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끈 채 사무실 안을 휙 둘러보고 나온 대답에, 경찰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안 좋아진다.

근래 돌고 있는 소문과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 관계로 잠시 참고인 조사 좀 진행하고 싶은데요.”

국가무공원에서는 대한민국 전반에 걸쳐 있는 부패와 비리의 사슬을 척결하겠다는 기치 아래 위아래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군 조직에서 한바탕 커다란 소란과 함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전례 없는 수사의 칼날은 이제 경찰을 비롯한 국가조직, 거기에 기업과 지역사회 등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부 고발자와 공익 근무자는 바로 그렇기에 국가무공원에서 각광받는다.

이러한 종류의 수사 특성상, 믿을 만한 수사 인력의 확보가 절실했기에, 적어도 조직의 타락과 부패를 두고 보지 못하는 자들에겐 기본적 자질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경찰 내부의 압박을 이겨 내는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이러한 생각이 짐작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영장까지는 아직 아니고, 공문 정도는 이렇게 준비해 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굳은 얼굴의 중년인이 결국 일어나 두 사람을 따른다.

주형태와 현승원은 뒤통수로 꽂히는 시선을 느끼지만, 개의치 않는다. 국가무공원으로 적을 옮기며 이미 각오했던 바였다.

윗선의 비리에 관련해 연결 고리로 지목된 김 경감은 아무래도 아닌 듯하지만.

“너희… 경찰이었지?”

경찰차와 같은 모습으로 개조된 차량의 뒷자석에서 그는 말을 걸어온다.

“너희가 이런다고 국가무공원에서 알아줄 것 같아? 이러지 마. 이렇게 한다고 뭐가 나올 것 같냐고!”

연신 뭐라고 중얼거리는 그에게 일체 대답하지 않는 건, 피의자와 말 섞지 말라는 국가무공원의 교육이 유효했기 때문일 터.

무림인 교관들의 가르침은 차갑고 혹독했다. 잘못을 저지른 자와 말 섞어서 생기는 불이익은 온전히 본인의 것이라는 그 담담한 말이 뼈에 새겨질 만큼.

그리하여 결국 제풀에 지쳐 뒤로 몸을 기대는 남자를 보며 주형태는 다시금 떠올린다.

‘나는 운이 좋았어.’

차에서 내린 그를 국가무공원 안으로 인계하면서도 주형태는 예상해 본다. 국가무공원이 없었다면 자기라고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걸.

저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을까?

“무슨 생각해?”

“어?”

“아직 한 군데 더 들러야 돼, 가자.”

축 늘어진 뒷모습을 보며 돌아선다. 하지만 결국 이길 수 없는 세상에 절망하며 추하게 늙어 갔을 거란 상상을 떨쳐 내기 어렵다.

국가무공원이 있어서 그런 삶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거라 안심하며, 다음 피의자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 매일같이 이런 자들을 마주하며 윤아영은 생각한다.

‘김철민 씨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자기가 누구인지 아냐며, 어떤 사람과 친한지 알고는 있느냐는 천편일률적인 대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하는 생각이다.

그녀가 연줄 없는 평범한 검사던 시절부터 이제는 국가무공원의 나름 핵심 인력이 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는 지겨워 앞으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런 말하는 인간치고 멀쩡한 놈 못 봤다.

‘국가무공원을 두고 왜 중국으로 간 걸까?’

그녀 또한 국가무공원 내 고위층으로 분류되는 만큼, 김철민의 중국행과 거기에 담긴 의미야 익히 들었다.

국가의 대전략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중국 공산당을 적대하는 일이야 돌이킬 수도, 돌이켜서도 안 되는 일이란 점 역시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도 시점에 대한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가무공원에는 아직 중심을 잡아 줄 연화존자가 필요하다는 게 윤아영의 개인적 생각.

이는 이 견고하고 막강한 힘을 지닌 조직이 균일한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무공원 내부에서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현천문과 칠익회, 두 파벌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거기에 더해 최근 필요에 의해 받아들인 외부인들까지.

점점 좁혀 가고는 있지만 거리감은 선명하다. 다 떠나서 연화존자의 그늘 아래 숨어 오랫동안 세계 곳곳을 떠돌았다는 칠익회는 나머지 인원들과 결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연화존자만이 고삐를 잡을 수 있는 맹수다. 개중 여럿과 일해 본 윤아영은 알고 있다.

연화존자라는 네 글자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걸.

‘최익현 씨의 불만이 누구보다 대단하지.’

그나마 국가무공원 설립 초기에 참여했던 이들의 불만은 덜한 편이었다. 흑응과 준호, 진호 형제에 더해 칠익회 남미 팀은 제 할 일을 위해 제 자리를 찾은 편이었으니까.

얼마 전 입국한 칠익회 산하 동유럽 팀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녀와 함께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며 나름 역할을 맡긴 했지만, 그만한 능력자들을 고작 이런 일에 투입하는 건 조금 아까운 일.

‘차라리 이들을 중국으로 데려갔더라면…….’

심지어 연화존자가 동행인이랍시고 중국으로 데려간 건 꼴랑 두 명으로 정상참작이 여지가 있다지만, 어쨌든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

긴 세월, 성심성의껏 연화존자를 보필해 온 입장에서는 소외되었다는 심정을 아니 느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일.

“김선우 씨.”

연화존자는 중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러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을 떠났으니, 남은 자들의 일은 남은 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법.

“당신의 자백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뒤를 봐준 조직폭력배들, 정확히는 이 지역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을 세탁해 준 놈들에 대한 증거는 모두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그러자면 청소를 서둘러야 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시간입니다. 굳이 당신의 진술 같은 건 없어도 기소하고, 재판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이렇게 당신을 부른 겁니다, 김선우 경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비리경찰이 움찔하면서 자신의 입을 바라보는 걸 보며, 더더욱 그래야겠다고 생각한다.

국가무공원의 기틀을 더 튼튼히 다져야겠다고.

“내가 잡아넣을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 나는 그럼……?”

“법이 정한 처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덜 괴롭게 진행하겠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눈앞의 사람 같은 자들을 감옥에 집어 넣는다고 범죄가 사라지겠냐면 그건 아니지만, 적어도 보여 줄 수는 있다.

더는 예전처럼 권력과 재력으로 법의 처벌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며, 최소한 국가무공원은 그런 걸 좌시하지 않겠다는걸.

단순히 보여 주는 것을 떠나 실제로도 그렇지 않나?

윤아영은 이것이 국가무공원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엄격한 법률에 의한 처벌, 사회 기득권의 힘이 미치지 않는 성역 없는 수사의 풍조를 이 신생 조직의 DNA에 확실히 새기는 것이야말로 연화존자가 자신을 발탁한 이유라며 확신마저 한다.

“제가 베풀 수 있는 관용은 이것뿐입니다.”

“그건, 그건 너무한 거…….”

“이 조건이 싫다면 그냥 기다리다 처벌받으시면 됩니다. 불법과 협조하면서까지 시간을 아끼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시간과 인력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타협하지 않는 건 국가무공원이 쉬운 길을 택해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신념.

썩은 것들을 도려내고 밟을 다음 걸음을 위해서라도 그렇게는 안 된다.

윤아영은 대통령이 제안했고, 연화존자가 권유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법을 집행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내는 일에 종사하기로.

정계로 나가고 싶다는 이 결심을 어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말리시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착한 딸 노릇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그런 걸 원했다면 버티고, 이겨 내는 삶을 살지 않았으리라.

“협조할지, 안 할지 이 자리에서 선택하세요.”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검사로서의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깔끔하게 치울 것들을 치우고, 그녀가 생각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김철민이 중국으로 간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처음 그가 자신을 끌어들이며 한 말을 생각하면 말이다.

“다음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기로 한다. 이 이상한 사람들과 전에 없던 조직에 몸을 담으며 자기도 모르게 바뀐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 변화가 그녀 혼자만의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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