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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00화 (100/175)

#100화

중국 인민해방군이 움직인다는 걸 감출 수는 없다. 일반 인민들에게는 알리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게 인터넷 검열을 통해 삭제하며 지우는 거야 충분히 가능할 테지만, 적어도 당의 고위층이 군의 움직임을 몰라서는 아니 된다.

그들은 당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오로지 당의 명령만을 듣고, 들어야 하는 집단.

자연히 제 몫을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한 밀고자가 밝힌 소란, 그간 상하이 기득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소란들이 보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고 이는 베이징을 뒤집어 놓기 충분한 사실들의 연속이었다.

시작점과 종착점에 위치한 건 오직 분노, 또 분노였다.

‘감히 당의 눈을 속이고 사익을 편취했단 말인가?’

악독한 범죄자들과 결탁, 당의 품 안으로 들어와 마땅한 것을 사사로이 이용했으니, 이 사태의 결말에 용서라는 단어는 없으리라.

이게 단순히 대한민국 국가무공원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 모든 무공은 중원에서 발원되었다.’

위 문장이야말로 무공이라는 기술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 세상의 ‘진정한’ 무공은 모두 당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 땅에서 나온 것이기에, 현재 세계 각국이 사용하고 있는 내공의 기예는 중국 인민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중국 공산당은 펼치고 있다.

자못 당당하게 말이다. 문화혁명으로 그 놀라운 유물과 유적들, 오랜 기간 내려온 조상의 지혜를 산산조각 내 놓은 덕에 다른 나라에 있는 걸 몽땅 자기 거라고 웃기는 중공이지만서도, 최소한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고 있다.

아마 천하공부출소림이란 말로 유명한 소림사를 불태우다시피 하며 무승과 학승 가리지 않고 때려죽이지만 않았어도 어느 정도 동조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어쨌든. 이러한 논리와 주장을 통해 주로 공격받는 대상은 정파 무공이 온존한, 언젠가 합병해야 할 대만과 연화존자 이전에도 이미 비교적 무림의 정기를 잘 보존한 편이던 대한민국 무림계.

중국은 항상 말해 왔다. 한국은 도둑 국가나 마찬가지라고. 중원의 혼란을 틈타 훔쳐 간 무공을 마치 제것인 것처럼 누리고, 쓰고, 자기 꺼라 우긴다며 심심할 때면 격렬하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건 정례 행사나 마찬가지.

그러니 국가무공원에서 탈출한 자국의 수배범이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무공을 훔쳐 밀입국했는데, 그걸 당에 보고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나눴다는 건 용서 받을 수 없는 반동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여 분노한 주석은 사건의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오라고 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며, 가장 확실한 수단을 동원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군대가 움직이는 중이었으며 또 따로 당 소속 무림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베이징의 고위층들은 확실한 마무리를 원했기에 어지간해선 움직이는 일 없는 구주팔황 중 무려 육황과 팔황이 움직이는 바.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고작 국가안전부의 실험작 따위를 잡으라고 우리를 보내다니.”

본래대로라면 무공이 강하긴 해도 당의 하수인에 불과한 무리들에 구주팔황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만, 외부로 비춰지는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이 이름을 유지했다.

공포란 어찌나 효율적인 수단이던지. 구주팔황의 이름을 걸고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이렇듯 허드렛일, 청소질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제 나름의 권위 같은 것들은 필요하다.

“뭐 도리 있소? 잡으라면 잡고, 죽이라면 죽이는 게 우리 신세 아니오?”

육황의 불만 어린 말투에 팔황 역시 툴툴거리며 받는다.

구주팔황 내의 순서에 다른 기준은 없이 오직 실력만이 존재하기에 서로 간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육황과 팔황은 제법 사이가 좋은 편.

이번 상하이로의 출동에 두 사람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건 그래서이다.

“가는 동안 눈이나 붙입시다. 얼마 안 있으면 도착이라 쉴 시간도 많지 않소.”

“하여간 다들 무슨 생각인 건지…….”

구주팔황 중 여섯 번째와 여덟 번째는 이 임무가 마뜩잖다.

그것은 첫째, 오고 가는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별 가당찮은 자들을 사로잡는데 동원되었다는 생각 때문.

혈마제라는, 지닌 바 실력 비하면 지나치게 비대한 별호를 가진 국가안전부의 실험체와 대한민국에서 도망친 범죄자는 구주팔황의 이름값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것들.

그에 더해 이름도, 내력도 알려지지 않은 장 노인이라는 신비의 고수라니. 그걸 우리 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다 어리석은 자들의 멍청한 짓거리이지.’

‘이번엔 또 어떻게 바보들을 속였으려나?’

중원 무림의 정기가 쇠퇴하지 않았을 때도 무공을 속이던 사기꾼들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강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놓고 물 위를 걷는 척하던 철장수상표를 사칭하던 이야기보다 기상천외한 속임수가 무림에는 많았다.

실제로 구주팔황에 속하기 이전에도 당의 사냥개로 비슷한 사례들을 여럿 접해 봤던 두 사람은 이것이 그럴듯한 사기극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바.

세상엔 사람을 속이는 무궁무진한 방법들이 있으며,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내면의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약간의 단서만으로도 제 스스로 덜컥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한민국에 연화존자가 아닌 실제로는 다른 고수가 하나 더 있으며, 그가 국가무공원의 무공을 실제로 만든 신비고수라니.

가도 너무 간 이야기 아닌가?

설령 그 장 노인이라는 자가 상하이의 반동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난 고수라 할지라도 구주팔황 중 둘을 홀로 감당할 수는 없는 건 명약관화한 일.

그럼에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당이 가진 무공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자전마공과 시혈마공을 익힌 두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고, 거기에 구주팔황이 될 예비부대를 딸려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의 입장에서도 꽤나 큰 출혈이었다. 구주팔황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이들이 지닌 이름값보다도 직접적인 이유, 한번 출동해 내력을 소모하고 나면 반드시 보충이 필요하기 때문.

이번 작전으로 또 얼마나 많은 생목숨이 희생되고, 죽은 자들의 시신이 모독될지 모를 일.

육황과 팔황에게는 그저 귀찮고, 고통스러운 일일뿐이었지만.

-쿠쿵

그렇게 마무리 짓게 될 거라 생각하며 상하이 근처에 돌입해 마지막 휴식을 취하던 두 사람의 생각이 바뀐 건 전조도 없이 갑자기 장갑차를 때린 거대한 충격 이후의 일.

“…이거?”

감았던 육황의 눈이 번쩍 뜨이며 보라색 안광이 사방을 밝힌다. 자전마공의 화후가 극에 달한 탓에 나오는 현상.

그 옆에 있던 팔황의 눈에서도 녹색을 띤 내력이 줄기줄기 흘러나오니, 공산당이 자랑하는 두 고수 모두 뜻밖의 사태에 놀랐음이라.

그럴 수밖에. 방금 전, 뭐가 그들을 공격한 건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는데.

“아아악!”

“습, 습격이다!”

“미친… 막을 수 없어.”

바깥에선 수하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지만, 뒤집힌 장갑차의 문이 막힌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무섭도록 소름 돋는 건 총소리와 고함소리 같은 것들이 어우러진 상황 속에서도 습격자는 헛기침 하나 내지 않는다는 것이며, 극도로 발달한 청각이 잡아내는 공격 측의 인원은 오직 하나.

단 한 사람에 의해 당의 최정예 무인들이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지고 있었다.

이에 육황과 팔황의 시선이 교차하고, 두 사람의 손에 수강이 솟아오른다.

장갑차를 안에서부터 자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가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왔나?”

두꺼운 장갑차의 한쪽을 강기로 잘라내고 튕기듯 몸을 던져 바깥으로 나온 두 고수의 눈에 보인 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버린 수하들과 그 사이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한 사람.

“네놈이 혈마제… 아니야, 아니군.”

정체를 알 수 없다.

“혈마제 따위가 네놈 정도 수준일 리 없다. 그랬다면 도망갔을 리 없어. 설마 그사이에 기연이라도 얻었다 해도… 그래. 그처럼 정순한 기운을 품었을 리 없다.”

“장 노인이라는 자의 정체가 너인가? 분장을 했던 건가?”

그들이 향하던 목적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눈앞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당의 행사에 당당히 반기를 들고도 멀쩡한 가공할 실력을 고려하면, 저자가 장 노인이라는 신비고수라는 가정은 제법 그럴싸하다.

전혀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 외양만 빼면 말이다.

“그래 보이나?”

여유로운 태도로 두 고수를 돌아보는 남자에게선 젊음의 활력이 느껴진다.

토막 난 시체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자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인 자라고 생각하면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

의심이 샘솟는다. 저런 자가 노인을 가장할 수 있을까?

“너는 누구지?”

끝까지 감을 잡지 못하는 물음에 남자, 연화존자는 싱긋 웃고 내력을 끌어 올린다.

그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왔음에 기뻐하며 예의 그 오색찬란한 내력을 전신에 두른다.

“연화존자? 이런, 세상에!”

“어떻게 네가 이곳에?”

답하지 않는다.

연화존자와 그 일행은 설마 구주팔황까지 여기에 동원되는 운이 따라 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아예 가정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듯 잘라먹기 좋게 한둘만 보낼 거라고 과한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

“어떻게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차피 조만간 곧 볼 사이 아니었나?”

언젠가 연화존자를 죽일 칼로 쓰일 자들이 배달이라도 하듯 도착했다.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연화존자가 먼저 공수를 취한다. 바닥에 흥건한 피와 시체들을 피해 신묘한 보법을 밟으며 순식간에 다가와 양손으로 팔황의 가슴을 후려친다.

부지불식간의 습격이었지만 팔황은 자신이 왜 말석이나마 구주팔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어딜!”

그는 양손을 교차하여 연화존자의 일격을 받아 낸다. 시리다 못해 시큼한 독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옴과 동시의 일이었다.

시혈마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는지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시기(屍氣) 어린 내력이 줄줄이 흐르지만, 그걸로도 약간 부족했다.

“우웩.”

검붉은 피를 토하며 뒤로 주저앉았지만, 그쪽을 끝낼 틈은 없다.

공격받은 동료를 보며 분노한 육황이 보라색 강기를 두른 채 연화존자의 후미를 노렸으니까.

“흐아아압!”

한순간의 습격으로 함께 온 부하들을 모조리 도륙한 것도 모자라 가벼운 인사 같은 한 수로 팔황을 무력화에 가깝게 만드는 걸 보며 육황은 깨달았다.

승부는 단숨에 날 것이며, 지금 승세를 잡지 못하면 답이 없다는걸.

하여 연화존자를 향하는 그의 모습은 거대한 보랏빛 칼날과도 같은 바.

뒷일을 고려하지 않는, 실은 고려할 여유 따위 없는 무모한 공격을 펼치게 된다.

그렇게 대체 몇 사람의 생목숨을 집어삼켰는지 모를 패도적이면서도 악기(惡氣) 가득한 내력이 연화존자의 미간을 노리지만, 연화존자에게는 의문이 많다.

‘고작 이런 것들로 나를 노린다고 했던 건가?’

그가 느끼는 구주팔황의 수준이란 저 옛날, 천마의 목이 베이기 전 맞부딪쳤던 만인도 북궁평 정도. 아니, 그보다도 못하다.

마교지파 극살도문의 문주였던 그에게는 최소한의 기예랄 게 있었지만, 이 둘에게선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막대한 내력을 일신에 지니고 있고 강기마저 뽑아내고는 있지만, 그 형태와 구성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오직 내력, 하나만을 목적으로 삼은 것일까? 이쯤 되면 강기를 유지하는 게 장할 정도.

“허억.”

“이런 허접쓰레기를 익히고 있으니 남의 것을 탐하게 되지.”

칠색홍예수의 기예와 충돌하자마자 거대했던 보라색 내력이 순식간에 흩어져 잦아드는 걸 보며, 연화존자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릇 삿된 것은 바른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무학의 이치가 이토록 자명할 수 있을까? 제 노력과 깨달음이 아닌 방문좌도의 비틀림으로 얻은 힘은 연화신공 앞에 눈 녹듯이 사라지니.

쓰러져 피를 토한 자들의 몰골은 구주팔황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했고, 소슬히 불어오는 바람만이 있는 그곳에서 연화존자는 생각한다.

상대해야 할 자들이 이 정도라면 좀 더 과감하게 나서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른 일행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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