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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01화 (101/175)

101화

순간의 기습으로 상황을 정리한 연화존자와 달리, 천지극뢰와 혈마제는 악전고투에 돌입한다.

“크하하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였다.

어쩌면 악전고투라는 이 단어는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써야 할 단어가 맞을지도 모른다.

“크크크, 병신들 같으니.”

저 미친 광소만큼이나 미친 광경, 맨몸의 한 사람이 군대를 향해 돌진했음에도 밀리는 건 자신들이라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말이다.

장갑차에 탄 채 이동 중이던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소속 군인들은 애초에 불안한 마음이었다.

상부에서 제대로 된 목표를 알려 주지 않은 채 상하이로의 출동만을 입에 담았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들, 추측과 억측 사이를 오가는 무수한 많은 이야기가 횡횡했던 것.

물론 일반 병력의 동원은 시내 및 도로 봉쇄 등에 그칠 것이며 실질적인 처리는 구주팔황과 그 수하들이 할 생각으로 보안을 유지한 것이었지만, 근 몇 년 사이 있었던 대만과의 험악한 사이. 나아가 그동안 쌓인 미국의 경고 등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잘 각인되어 있었다.

다급하면서도 급박한 움직임에 설마 정말 선제공격이라도 감행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대두되었다.

그랬었다.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건 중원에 이름을 날렸다 사라진 대마두의 귀환이었지만.

“좀 더 발악해 봐라, 이 멍청한 새끼들아! 장비 나갔다고 장님 다 됐구나! 하하하하!”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에서 주눅 들었던 모습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처럼 혈마제는 날뛰고 있었다. 붉은 안광을 줄기줄기 흘리며, 군인들을 상대로 파도 같은 강기의 다발을 쏟아 내며 광소하는 그의 모습은 지난날, 공산당의 언론 통제로도 가릴 수 없던 대량 살인마의 위용.

훈련받은 군인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내공 없이 일반인인 부대원들은 이에 속수무책.

전부 기본적인 부대 운용 자체가 붕괴했기에 일어난 상황이다.

“이거 정말 신나는구나! 크크큭.”

여기에는 천지극뢰의 맹활약이 기여했던 바.

“…미친놈.”

조용히 뇌까리며 뒤를 받치는 천지극뢰가 수뇌부를 공격, 부대 내 전자기 장비를 무력화시키고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혈마제가 고수라 해도 이런 날뜀이 가능할 리 없었다.

이것이 연화존자가 혈마제와 천지극뢰를 갖은 반대에도 중국 본토까지 데려온 이유였다. 국가안전부의 실험으로 생명력을 태우며 막대한 양의 내력을 갖추게 된 혈마제도 혈마제지만, 극히 보기 드문 뇌기를 다루는 무인인 천지극뢰는 현대전 장비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바.

연화신공을 만들어 익힘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을 다루다시피 하는 연화존자보다도 더 천지극뢰의 뇌기에 대한 이해는 깊었고, 이는 소수의 인원으로 중국 본토를 뒤집어엎겠다는 계획을 세우던 국가무공원에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이러한 사실의 나열이 연화존자가, 국가무공원이 두 사람을 소중히 다뤘다는 건 아니지만.

“하하하! 더 발악해 봐라, 이 새끼들아!”

“정신 나간 새끼야, 뒤로 빠져. 총 맞고 눈이 돌아갔냐?”

어깨와 허벅지에 총탄이 박혔음에도 오히려 더 날뛰는 혈마제를 천지극뢰가 뒤로 이끌며 은‧엄폐한다.

한 명이라도 이성을 차리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던 걸 보면 확실히 연화존자의 제안을 승낙하고 끌려간 국가무공원에서의 혹독한 훈련이 보람이 없진 않았다 하겠다.

“놔, 임마! 저 새끼들 명줄을 다 끊어 놔야…….”

“칠익회 놈들 생각 안 나냐? 쉬었다 해, 이 새끼야.”

중국에 온 이후 줄곧 유지하던 침묵을 깬 천지극뢰가 꺼낸 말, 칠익회라는 단어에 혈마제는 피가 확 식었다.

“…젠장.”

두 사람을 훈련시킨 건 이런 종류의 일, 소수 정예 양성 및 운용의 스페셜리스트인 칠익회가 맡았다.

맡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누구를 호종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훈련이 비인간적일 정도로 가혹했던 것 또한 말이다.

혈마제와 천지극뢰는 이전에 훈련받았던 이들, 대한민국 군대 및 여러 국가 조직에 내공심법을 보급하기 전 운영되었던 시범 부대 이상의 훈련을 소화해 내야 했다.

그것은 거친 성정의 혈마제는 물론이고 뇌기를 다루는 사람치고는 참으로 차분한 성정의 천지극뢰마저 견디기 어려운 훈련이었던 바.

오폐수 사이에 이틀 동안 몸을 담그고 꼼짝 않기, 음식물 쓰레기나 다름없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기, 삼 일 동안 잠도 못 자고 쫓겨 다니기, 심정지 상태가 올 때까지 밀어붙이는 극한의 무한 대련 반복하기 등등.

결국 참다못해 혈마제와 천지극뢰는 항의했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묵살되었다.

‘너희가 처하게 될 상황이 이보다 나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실제 상황에서 이보다 악독하고 견디기 힘든 상황은 비일비재하다며, 칠익회 소속 인원들은 담담히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썩어 가는 시체 사이에서 일주일 동안 귀식대법을 펼치며 버틴 일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암살을 수행하기 위해 지상에서 가장 비인도적인 일을 해내야 하는 인내심을 차분하게 말하는 그 표정에, 혈마제와 천지극뢰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참을성은 오늘, 중국 본토에서의 첫 번째 전투에서 발휘되었다.

“…씨발, 아직 많은데.”

천지극뢰는 인민해방군 사이를 돌아다니며 전자기 장비 대다수를 박살 냈고, 거기에는 야투경과 무전기라는 필수 장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소수인 두 사람이 날뛰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지만, 그래 봐야 고작 둘.

총과 화약은 천지극뢰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의 무위를 이룬다면 모를까, 현재 상태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총알엔 눈이 없다.

“이럴 줄 모르고 온 것처럼 말하고 있네.”

혈마제가 미친놈처럼 웃어 대며 무리한 게 단순히 감정에만 있던 건 아닌 셈이다. 최초의 충격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 최대의 충격을 줘야 한다는, 교육에 힘입은 것이었지.

하지만 그 효용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습격의 여파에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빌빌대며 당하고 있지만도 않았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화망을 구성, 두 사람의 자취를 추격하며 반격에 나섰으니 말이다. 혈마제와 천지극뢰는 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고작 둘로 이 많은 수를 커버할 수는 없었다.

“그럼 뭐, 이대로 숨어만 있으려고?”

“…그러다간 뒈질걸.”

하여 혈마제와 천지극뢰는 고민했다. 서서히 포위를 조여 오는 적들에게 무엇으로 혼란과 기만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고, 간혹 용감한 누군가가 접근하려 들면 강기와 뇌기를 날려 격살하며 두 사람은 쑥덕거렸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이야 무전이 마비되며 시간을 벌었다지만, 곧 포탄이 떨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나?

곧 행동을 개시했다. 먼저 튀어나간 건 혈마제.

“이놈들!”

그는 전개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신강기를 두른 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빠르게 뛰쳐나갔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장님은 아니었기에 이 모습이 무척이나 잘 보인다. 하여 총알과 폭탄이 터지고 운 좋은 공격이 그의 몸에 닿기도 했지만, 어쨌든 혈마제 또한 연화존자가 인정한 고수.

“어림도 없다!”

피륙의 얕은 상처만을 가진 채 혈마제는 포위망 돌파에 성공한다.

그사이 천지극뢰는 밤고양이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다 돌연 거대한 벼락이 되어 인민해방군 사이를 휩쓴다.

“아아악!”

“한 놈, 한 놈이 여기로……!”

도깨비처럼 떨어진 벼락에 직격 당한 불운한 군인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전장의 소란에 크게 전파되진 못한다.

그러기엔 너무도 뜨거운 천둥이었고, 다시금 군인들 사이에 뛰어들어 강기를 쏟아 내는 혈마제 쪽 비명이 더 크기도 했다.

아비규환의 참상, 그 속에서 혈마제와 천지극뢰가 노린 건 어딘가 숨은 지휘부.

처음 기습했을 당시엔 찾지 못했다. 내공 사용자를 상대하는 일이니만큼 그러한 류의 기습을 상정했던 것인지, 외관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지금 다시 찾는 건 이것이 상황을 끝내기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상대도 이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

속도를 내기 위해 내력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를 노출한 건 그렇게 자충수가 되었다. 인민해방군 입장에선 딱히 명령받을 것도 없이 적이 누구인지 명확해졌으니까.

“크아아아악!”

그렇게 혈마제와 천지극뢰가 연화존자가 명한 임무 수행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생존 여부를 슬슬 걱정하기 시작하던 그때,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된다.

“아……!”

“아!”

거대한 기운이 느껴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던 두 사람은 다음 순간 펼쳐진 광경에 비명도, 탄성도 아닌 허무함을 느끼며 외마디를 내뱉었다.

거인이 할퀴고 간 것 같은 흔적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크기의 강기가 대지를 쓸어버린 믿기 힘든 광경.

“제법 잘 싸웠는데?”

구주팔황과 그 부하들을 전멸시키고 합류한 연화존자의 일격이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를 덮쳤고 운 좋은 생존자 몇 명만을 남긴다.

이 사실이 중국 사회를 뒤집어엎었다.

* * *

침묵이 내려앉은 커다란 방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화려함과 크기만큼이나 질식할 것 같은 고요함이 내려앉아 있었고, 그 안에 모인 사람의 면면은 거기에 질식한 것처럼 파리한 안색이다.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말이다.

“자, 그러니까 우리는 힘을 합쳐야 된다, 이 말이오.”

숨을 못 쉴 것 같다는 얼굴의 사람들, 상하이 정재계의 부유한 권력자들 앞에서 평이한 어조로 말하는 이는 대외적으로 장 노인이라 알려진, 늙은 모습의 연화존자.

그의 뒤에 시립하고 있는 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혈마제와 천지극뢰였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는 동시에 추레한 모습의 군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소.”

예정되었던 반발은 이쯤에서 터진다.

“이런 미친!”

잘 차려입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엉망, 그 자체인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 노인을 향해 삿대질을 시작하면서다.

“대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평소라면 체면과 위신 때문에라도 이런 모습을 외부에 보이지 않았을, 존경받는 기업가인 그는 자신의 의도와 능력에 상관없이 여기까지 몰린 상황에 대한 패닉을 드러낸다.

비단 그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으니, 어쩌면 쇼크로 가득 찬 상하이 정재계의 대표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인민해방군과 격돌한 것도 모자라, 뭐? 전멸?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못 믿겠으면 저기 포로들한테 물어봐도 좋소만.”

“미친 새끼가!”

그래도 될 것이었다. 미리 준비해 온 총을 꺼내 장 노인, 아니 연화존자를 향해 겨눈 걸 보면 행동력도 있는 편이었으니까.

“너희가 저지른 짓이니, 너희가 책임져! 왜 다 죽자고 난리야? 어? 무공을 팔러 왔으면, 왔으면…….”

그렇지만 총을 겨눴음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습에 분노는 순간 멈춘다.

“이게 우리 책임으로 끝날 것 같소?”

날카로운 진실이 가슴에 박힌다.

“맞소. 우리는 무공을 팔러 왔지. 그런데 그게 무공 외적인 일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장 노인의 시퍼런 눈빛이 귀기 어린 것처럼 주변을 훑는다.

“중앙에서 우리를 잡으러 온 게 우리 잘못이오?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무공을 구매한 당신들이 보안과 안전을 유지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절대적인 기세가 밀려온다. 그것은 최근 내공에 입문하였기에 더더욱 저항할 수 없는 강대함.

“인민해방군을 죽인 게 문제다? 그럼 우리가 죽어야 됐었다는 이야기인가?”

“다, 다… 다 죽일 필요는 없었잖소!”

쥐어짜듯 터진 고함에 이목이 주목된다.

“인민해방군을 전멸시킨 것도, 구주팔황을 없앤 것도 너무 심했소!”

“뭐가 심했다는 거지?”

“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소. 몇 명으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 소!”

맞는 말이었다. 당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절대적인 지배 체계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일은 절대로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거대한 사건 사고가 되어 버렸다.

“잘 알고 있군.”

옳다. 연화존자가 기다렸던 상황과 말이 바로 저것이었다.

“그러니 당신들은 싸워야 할 것이오.”

“뭐요?”

“물러날 곳이 없지 않소?”

내전의 시작을 부르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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