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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02화 (102/175)

102화

중국 공산당의 현 총서기는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아버지가 당 고위 간부라는 타고난 혈통 덕을 톡톡히 본 편이었지만, 그것이 아무런 능력 없이 운과 배경만으로 중국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서운 암투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계파 간의 합의를 통해 주고받던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추를 홀로 독점하고자 하는 야심가. 그것도 거의 성공에 다다른 자를 무능력하다고 칭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살벌하다 못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권력투쟁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지금에 이른 결과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제 자신을 숨긴 그였다. 과거 소심하고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던 그였지만, 스스로를 감춘 뒤 실권을 잡아 반부패 운동을 통해 경쟁자들을 거듭 숙청해 내며 개헌마저 이루어 낸 야심가이자 독재자는 곧 꿈을 이루기 직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중국 공산당의 야심가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난세일수록 야심은 불타기 마련이다.

가령 지금, 당의 지도력을 의심하게 하는 참담한 사태를 일으킨 집단의 일원 중 하나와 접촉하며 극심히 고뇌 중인 남자 같은 이들이 존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런 미친 놈들…….’

그는 중국 공산당의 고위 귀족이나 다름없는 남자였다.

남자의 아버지 또한 다른 간부들과 같은, 대장정 시절부터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한 명실상부한 당의 고위 간부.

그런 부모를 둔 남자 역시 당의 간부가 되어 권력을 향해 경주하는 건 야망과 생존을 위해 당연한 일이었는데. 남자의 삶을 평가해 보자면 중간중간 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잘 극복하다 못해 꽤 잘해 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다른 건 몰라도 문화혁명 때 온 가족이 모진 핍박을 받으며 하방해야만 했을 때, 그때 홍위병의 괴롭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자살한 형에 비하면 확실히 참을성 하나만은 일찌감치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테지.

그 정도는 되니 내면의 야심을 숨기고 총서기의 권력 독재화에 협조하며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 아니겠나?

하지만 그런 남자에게도 눈앞의 하찮은 인간은 견디기 조금 어렵다.

‘미친놈…….’

오늘 만남의 위험성에 대한 긴장, 부분 부분 알려져 전체가 파악되지 않은 상하이의 혼란,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조건 등등.

이 모든 것에 대해 속으로 거듭거듭 욕지기를 삼키는 중이다.

어쩔 수 없다. 잘생긴 외모에, 보고서에 적힌 게 사실이라면 위구르족 혈통을 타고난 덕에 가지게 된 유려한 외모에, 지난 경력을 살펴보면 그 짧음에도 돋보이는 영민함이 있는 앳된 외모의 젊은이가 은은한 미소로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툭 내뱉고야 만다. 더는 인내심을 발휘하기 아까웠다.

“죽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가?”

그것은 의도하고 나온 말이 아닌 무의식에 가까운 말이지만, 결코 거짓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

거부하기 힘든 이권이 아니었다면 진작 그리했을 것이었다. 애초에 중국 영토에서 저 젊은이, 자신의 이름을 구현이라고 밝힌 그를 살려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저 빌어먹을 애송이와 붙어먹은 미지의 놈들이 상처 입힌 중국의 자존심과 물적, 인적 피해가 대체 얼마인지 추산조차 두렵다.

뺏을 게 고작 목숨뿐이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 설득할 말을 제대로 준비했어야 했을 거다. 지금이라도 당장 끌어내 공개 처형 해 버릴 수도 있어.”

공안을 피해 한국으로 도망갔던 범죄자. 그리고 억지로 무공을 익히게 했던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다니던 범죄자.

그리고 정체불명의 초고수까지.

“아니지. 아니야.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만들 수도 있어.”

지금까지의 결과를 살피건대, 이들 셋은 분명 쉬이 볼 수 없는 실력자가 맞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저들이 지금껏 이룬 일들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세상엔 무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가령 전문가의 능숙한 손길이 필요한 실무에 대한 일들 같은 것들이.

무공의 고수이자 범죄자 혹은 그에 준하는 비밀을 감춘 세 사람을 중국으로 밀입국시킨 뒤 상하이의 유력자들을 섭외한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안을 유지해 가며 새로운 사람들을 포섭하고 충돌을 유도.

돌이킬 수 없는 망신과 피해를 입히기까지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말.

“살을 저미고, 뼈를 갈아 가며 살려 둘 수도 있다, 이 빌어먹을 놈들! 대체 네놈들은 누구길래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무엇보다 내공심법의 대가로 받은 것들을 쓸 수 있는 깨끗한 돈으로 세탁하는 솜씨가 저들이 범상치 않은 조직이라는 걸 알게 했다.

결과가 말해 준다. 중국 당국은 장 노인 일당에게 흘러 들어간 돈을 추적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장 노인과 두 범죄자는 자신들이 행한 진기도인의 대가로 현금만을 받지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껏 알려진 것과 같은 수익을 올릴 수도 없었을 터.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는, 채권을 비롯한 건물 및 각종 권리에 대한 증서라는 수단을 제외하고 깨끗한 현금만으로 장 노인 일당이 제시한 가격을 맞출 수 있는 자가 저 부유한 상해에조차 몇이나 있을지.

그러니 뒤에서 이들을 서포트하는 조직이 있다는 걸 모를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돈의 민낯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이제 너라는 꼬리를 잡았으니, 너희가 어떤 놈들인지 하나하나 붙잡아 면상을 확인…….”

“위원님은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건방지고 아직 정체를 밝혀 내지 못한 조직의 일원, 스스로를 길잡이라고 말하던 구현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일인 독재, 아니 일가(一家) 독재국가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지기에는 기묘할 정도로 평온한 얼굴이라 꺼림직한 기분이 몰려든다.

자각한다, 눈앞의 애송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놈들과 조직이 문제라는 사실을.

하여 남자는 일단 듣기로 한다.

그 망설임, 실은 두려움에 보탬이 되는 사실이 하나 있기도 하다. 이 만남,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저들이 지불한 엄청나고도 깨끗한 금액이 참을성을 발휘하는 데 한몫한다.

만남이 끝날 때까지 지불은 유예되기로 했다. 그리 길지 않은 만남이 될 테니, 참을 수 있다.

인내심은 예전에 이미 증명하지 않았나?

섣부른 자는 중국의 정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김일성은 후계자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물려줬습니다. 그게 본인에게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결국 말년엔 자신이 권력을 물려준 아들 손에 유폐되다시피 했던 걸 보면 기분은 좋지 않았을 거 같긴 해요. 하지만 그가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조선노동당의 권력 전부를 주지 못했다면 생의 마지막 걱정거리가 유폐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겠죠. 대충 부숴진 우상 아래 깔린 시체 조각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

“왜 그 있잖습니까? 맞아 죽어서 시퍼렇게 퉁퉁 부은 꼴로 죽은 중동의 독재자들 말이에요.”

“…그래서?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지?”

“오, 저런.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순간 노여운 얼굴을 하는 남자를 향해 구현은 싱긋 웃는다.

장단은 이쪽에서 끌고 가야 한다.

“아직 얘기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요. 급하신 듯하니 한 다리 건너뛰도록 해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조선노동당의 산소 공급기가 되어 동분서주하는, 젊지만 잔혹한 영도자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온갖 여유를 부린다. 허세에 가까운 태도. 의식적으로 불어 넣은 채 빼내는 일 없는 자신감으로 정신을 무장한 채 한 시도 약세를 보이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실제로 그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다. 긴장과 걱정으로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 성공 중이다.

연화존자는 그래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엔 후계 구도에서 제외되어 외로운 외국 생활을 하다 돌아와 결국 권력을 움켜쥔 그를 보십시오. 그 과정에서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둘째치더라고 절대 권력자가 되어 무너진 국가를 한 손으로 움켜쥔 채 버티고 있다는 점만 보자면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이 그렇고 권력이란 게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해내는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을 백두혈통이라 칭하며 신화를 날조하는 그들 집안이 여전히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해대는 구현의 모습을 남자는 못마땅하게 쳐다보지만, 여기까진 계산한 상황.

상하이의 유력자들을 회유하는 동시에 선동하며 싸우는 자신들만큼이나 구현을 비롯한 당가그룹의 조력자들이 할 일이 많다고 연화존자는 말했으며, 당가그룹의 후원을 받은 그룹 내부에서도 이에 동의했다.

이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뭔데 그놈들 이야기를 이처럼 장황하게 해?”

“지금 중국 공산당에 북한의 세습을 따라 할 것 같은,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에 남자가 순간 철렁한 얼굴로 구현을 쳐다봤다. 남자는 상하이 사태와 같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곧바로 수습하지만, 황망한 눈빛은 이미 드러났다.

구현과 그의 동료들이 원하던 반응이다.

바로 이와 같은 두려움을 원했다. 중원에 새로운 황제가 나타날 것 같다는 공포. 그 과정에서 제거될 게 분명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

“저 작은 나라의 형편없는 지도자도 해냈는데, 중국… 중국이라.”

진실 섞인 선동은 전선의 안팎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연화존자는 말했다. 그 구체적인 방안과 내용, 심지어 수단까지 모두 준비한 채로 구현을 보내며 곁들인 스쳤던 말들.

“저는 총서기의 권력욕이 북한의 지도자 일가보다 작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구현의 마음은 서늘하다.

입으로는 냉철하게 계산하여 미리 준비한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깊은 곳에서는 떨리는 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기호지세임에도 성공할 가능성 자체는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 굳건하기 짝이 없는 공산당의 지배가 깨질 것인가? 회의적이다.

그렇게 믿고 있음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당가그룹의 후원을 받아 신분을 유지하고, 공부를 하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와중에도 놓지 않았던 다짐. 공산당의 탄압에 대한 저항 의식이 그 원대하고도 믿기 힘든 계획에 동의하게 한다.

연화존자는 대체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계획했는가?

“그리고 총서기는 그 첫걸음에 나선 참이죠. 다가올 당 대회에서 총서기의 세 번째 연임이 결정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당의 행사가 아니라 황제의 대관식이 될 겁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뒤흔들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단 말인가?

“…네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물론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멸망과 추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구현은 웃었다.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는다. 공산당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비친 선명한 공포와 치욕이 기꺼워 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즉위하면 피바람이 몰아칠 게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13억 인민을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막아야지요.”

그는 연화존자의 계획에 힘입은 씨앗을 뿌린다.

처음엔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다 생각했지만, 계획이 구체화되고 이루어지는 걸 보며 알았다. 연화존자, 그는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거목이며 더 높고 먼 곳을 보고 있음을.

모그룹인 당가그룹이 왜 그를 그토록 숭배하다시피 하는지 알았다.

“이번 상하이에서의 일은 실로 유감입니다만, 저희도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뭘 말하고 싶은 거냐?”

구현, 혼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동료들이 자신처럼 목숨을 걸고 공산당의 고위 간부들을 만나 비슷한 이야기를, 같은 제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

“인민 해방군의 패배를 부른 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 공산당에 모두 잃거나 모두 가질 권력투쟁의 씨앗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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