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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03화 (103/175)

103화

상하이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에 대해 총서기의 책임을 묻는 공개 비판이 언론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것은 이례적인 사태였다.

중국 사회의 정보 통제 속에서 제대로 된 진실을 모르던 인민들은 어리둥절함을 느꼈지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바가 있는 자들이라면 숨 죽이며 추이를 살폈다.

초유의 사태에 아연해했다. 설마하니 이런 식의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하이의 유력자들이 국가 반역 행위를 했고, 인민 해방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기로서니 어찌 당금 중국의 최고 권력자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일은 이루어졌다. 하늘의 그물과 황금방패조차 이를 묵과하는 것처럼, 완벽하던 사이버 방호막조차 간헐적으로 뚫리고 놓쳤다. 절대 권력에 반발하는 또다른 이들의 비호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

그렇게 상하이 사태의 전말은 세세하고도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다. 마치 누가 의도하기로 한 것처럼.

여론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총서기는 격분, 관련자들을 색출해 처벌하고자 했지만 이 일을 기획한 자들이 그러한 시도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닌 바.

대비는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자뭇 충격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총서기의 독주를 막지 못하리라는 사실 인식에 따른 절박함은 대연정과 함께 과감한 설득을 가능케 했으니, 계파를 가리지 않고 손을 잡은 당의 고위 간부들은 일부 군인들과 지역에서 협조하던 재야 무림인은 물론 당 소속 내공 사용자들을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총서기는 깨닫는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가는 상하이가 아니라 베이징에서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이란걸.

이제 적은 사방에 그리고 가까이 있는 셈이었다.

지난 세월 이루어진 권력의 공고화가 가져온 반동이었으니, 총서기는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데 분통을 터트리지만.

별도리 없는 기습.

예정된 투쟁은 철저하면서도 과감하게 이루어졌다 하겠다.

그사이 상하이와 장 노인, 아니 연화존자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지금보다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겠소?”

장 노인으로 분한 연화존자는 허리를 굽히고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화 중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고풍스럽게 장식된 방에는 그를 제외하고 두 사람이 앉아 경청 중이다.

사실 모를 일이긴 하다. 장 노인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며 급하게 달려온 상황에 대한 여독을 풀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느 때보다 중공이 흔들리고 있소. 천재일우의 기회요. 다시는 오지 못할 상황이라, 이 말이외다.”

연화존자 앞에 앉은 자들은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젊은이. 이목구비와 얼굴의 선이 닮은 것이 아무래도 조손이 아닌가 짐작한다.

고집스레 다물고 있는 입매와 굵은 눈썹, 남자다운 코, 다부진 턱과 잔털 하나 비져 나오지 않은 짧은 머리카락이 진중한 인상을 주는 두 사람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구름과 바람이 수놓아진 푸른 비단이었고, 허리춤에는 맞추기라도 한 것 같은 고동색 검집의 장검을 매달고 있다.

정갈한 옷매무새였다. 마디가 툭 튀어나온 손가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손바닥에는 고된 수련의 흔적이 역력, 수없이 지고 떼진 굳은살이 눈길을 끈다.

무림인이 분명했다.

“국민당에 비참하게 쫓기던 대장정의 시기보다, 참새를 잡아 죽이고 사람을 죽여 가며 살인율을 유지하던 예전보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위태로운 게 중공의 현실이라 할 수 있을 거요. 적이 사방에서 노리고 있으며 거듭된 패배가 그러함을 가리키고 있소. 그렇지 않소?”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젊은이나, 그 말을 들으면서도 말 없이 마주 앉아 찻잔을 들어 올려 입가로 가져가는 노인이나.

말할 것도 없이 무림인이었다. 무림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사태가 얼마나 갈지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는 장 노인의 말에 침착하게 반문했다.

거기엔 젊은이의 혈기와 함께 욕심에 눈이 멀지 않는 침착함이 있었고 동시에 경계심은 갖되 자신감은 잃지 않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저들은 패배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결정적인 순간, 끝내 승리를 거머쥔 자들 아닙니까?”

“중공이 두려우신 게요?”

“지난 세월에서 배운 게 있을 뿐입니다, 선생님.”

그것은 뼛속까지 베인 명가의 기품, 조급할 수 있고 경계할 수 있음에도 언제나 잃을 수 없는 기품이라는 것이 절절한, 태도의 발현이어서 연화존자마저 조금은 감탄하게 했다.

“역사가 증명하여 가르칩니다. 오만하여 일을 그르치느니 신중하되 확실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지난날에서 배웠습니다. 국민당이 외부의 지원과 강대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우리 정파 연합이 월등한 전력과 힘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도망쳐야 했던 건, 결국 오만하여 상대를 경시하였음을 압니다.”

수치가 될 만한 역사를 입에 담는 젊은 후기지수를 보니, 섬에 갇혀 고루한 늙은이들 사랑방이라 욕하던 게 무색하다는 반성이 들 정도였으니,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연화존자에겐 실로 드문 일.

저런 젊은이를 길러 냈으니, 과연 이러니저러니 해도 창천의 주인은 여전히 푸르게 고고하구나.

“그 위태로움을 길게 가져가고자 두 분을 초빙한 거 아니겠소?”

상하이 사태라 불리는 일련의 상황을 주도하는 자의 말을, 두 조손 중 손자, 강호 동도들이 청명검이라는 별호로 불러 주는 남궁현은 경청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른 기회가 올 거라고 장담할 수 없소. 아니, 안 올 거요. 저 미국조차 힘겨워 하는 게 작금의 중국이니 말이오.”

확실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호재는 호재였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세가에서 유력한 다음대 후계자인 자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의 조부가 함께 온 마당에 그걸 내세울 생각은 없지만.

“중공은 지금의 사태에 당황했소. 그렇지 않겠소? 최초의 공세와 얼마 전 있었던 두 번째 공세를 막아 낸 뒤에 이어지는 후속 조치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씩 웃는 장 노인 모습의 연화존자가 하는 말처럼, 중국 공산당은 상하이 사태에 대한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처음 있었던 구주팔황과 인민 해방군 동부전구의 전멸에 이은 두 번째 진격이 실패하며 도드라졌다.

“우리 친구들이 중앙에서 제대로 활약해 주고 있다는 건, 꽁꽁 싸맸어야 할 인민 해방군의 치욕이 널리 알려진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처음보다 뼈아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엔 장 노인 일행의 분전이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당가그룹의 조력과 상하이에서의 진기도인으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조력자 그룹이 토벌을 맡은 군대의 삼분지 일을 회유하는 데 성공했으니, 졸지에 국가 반역자가 되어 걱정만 늘어놓던 상하이 내부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당의 중앙이야말로 무능의 극치 아니겠냐고. 이걸 겁낼 필요가 있겠냐고.

“그래서 우리는 적의 적과 손을 잡기로 한 거요. 타이완 정부도 관심이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정파 연합이라면 분명 이 일에 흥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

이 즈음에서 늙은 장 노인의 모습으로 연화존자는 웃었다. 서늘하면서도 활기차게, 즐겁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우리의 예상이 확실히 맞았소. 무려 검제께서 직접 오셨으니 말이오. 아니 그렇소?”

연화존자의 말을 노인, 검제 남궁명이 받는다.

“확실히 흥미가 있는 일이지.”

그의 아버지이자 전대 남궁세가주였던 검황이 천마와의 격전 속에서 죽은 지 어언 오십여 년. 도제와 권성을 이어 대만 정파 연합의 최고수라 불리는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연화존자를 똑바로 본다.

“중원을 지배하는 빨갱이 새끼들 모가지를 따는 일에 어찌 흥미가 돋지 않을까?”

거칠고 직설적인 말에 연화존자는 그만 늙은이 입으로 젊음의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도제와 권성이 자신들의 뒤를 이을 것이라 확언했고, 대만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체의 주인인 그가 이토록 험한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그로톡 빨갱이가 싫으신 분이 사업은 어찌하셨소?”

“자본주의가 뭔지 모르는군.”

엄청난 재산, 특히 세계 점유율 1위의 반도체 회사의 설립부터 중요한 역할을 맡아 지분 상당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무림의 고수는 연화존자의 질문을 일축한다.

“돈에는 국적이 없는 법이야. 거기에 물건을 수출해서 우릴 내쫓은 빨갱이 놈들의 돈을 뺏어 온다? 가만 있을 수 없지.”

“뺏어 온 거였소? 난 뺏긴 줄 알았소만. 대만에도 중국 돈 좋아하는 놈이 한둘이 아니던데.”

“뺏었다.”

검제는 차가운 얼굴로 말한다. 공손하게 옆에 앉은 손자와는 다르게 늙은 남궁의 얼굴은 냉혹한 인상을 준다.

연화존자는 그것이 시간이 내린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천마의 손에 아비를 잃고, 휘청이며 무너질 뻔한 가문을 유지하는 것도 부족해 부흥시킨 시대의 거인 중 하나가 치뤘어야 할 대가.

그리고 궁금해진다. 그는 과연 이 사태에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우리 남궁가는 오직 중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지. 아, 혹시 그거 아나? 본가에서 죽은 이들은 매장하지 않고 전부 화장하여 한곳에 보관하고 있다는걸?”

“그렇소?”

“그래. 돌아가신 가문의 사람들은 중원으로 돌아간 뒤에 본가의 선산에 매장할 예정이다. 그때까진 땅에 묻힐 수 없지. 그렇고 말고.”

집착과 광기. 이가 갈릴 정도로 순수성에 집착하며 ‘비인부전’, 이 네 글자를 지키며 살고 있는 대만 정파 연합 소속 가문들은 다들 이렇다고 한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간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나저나.”

그렇다고 이들의 시선이 편협하냐 묻는다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본질을 보지 못하냐면 그건 또 아닐 테지만.

“얼굴은 보고 말하지?”

검제는 날카로운 눈으로 장 노인을, 아니 연화존자를 본다.

속을 투명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 보아도 자네가 제시한 설명은 말이 되지 않아. 나라 하나를 통째로 바꿀 만한 능력을 지닌 절대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그건?”

“그래?”

“그래.”

연화존자는 검제 남궁명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편히 받는다.

이럴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우릴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지. 이 자리를 마련한 게 당가의 그 독한 늙은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하나의 암시였어. 대외적으로 알려지길 국가무공원의 감금을 피해 도망친 자들이 당가그룹과의 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하!”

“힌트를 좀 많이 주긴 했지. 그래도 대만의 보수적인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가 봐?”

“내가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건 맞긴 하지만 빤히 보이는 사실을 무시할 정도로 뇌에 주름이 펴지진 않았네.”

그 뼈 있는 말에 연화존자의 모습이 변한다.

굽었던 허리를 펴고, 하얗게 샜던 머리가 까맣게 물든다. 노화의 증거는 순식간에 사라지며 사진과 영상으로나마 익숙하던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설계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남궁가의 후계자, 청명검은 생각한다. 석유를 깔고 앉은 중동의 왕들 사이에서 은밀히 돌던 신인에 대한 믿기 힘든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보안을 위한 거니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게나. 어디에 쥐새끼와 적들이 있는지 피차 확신할 수 없는 사이 아닌가?”

젊음과 늙음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고 가는 연화존자의 모습에, 과연 기인이사가 아니냐 생각하던 검제는 질투를 느낀다.

그의 젊음이 아니라 저 무공의 수위가 부러웠다. 자신에게도 저와 같은 힘이 있었다면 가문의 숙원을 진작 이루어 냈을 텐데.

그렇지만 요동치는 내면을 다스린다. 평생의 수련으로 이룬다.

지금 떠들어야 할 건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뭘 원하는 거지?”

본토로 돌아가고 싶던 대만 정파 연합의 염원을 안고 온 처지였다.

당혹스러운 정세로 인한 중국의 혹시 모를 도발과 내부의 동요를 틀어막기 위해 도제와 권성이 직접 오지 못했지만, 권한만은 충분히 받아 왔다.

“어디까지 보고 있나, 자네?”

많은 것이 담긴 물음에, 연화존자는 제안한다.

“우선 실력 좀 볼까?”

무림인으로서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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