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06화 (106/175)

106화

상하이 사태는 예측 불가능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연일 언론에선 상하이의 반역도를 때려 죽여야 한다고, 쳐 죽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충실한 애국자들은 호응, 당장에라도 탱크를 몰고 상하이로 진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당은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참람하기 그지없는 반란자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인민을 당혹시킨 가장 큰 요인은 진압에 대한 소극적 태도였다. 두 번의 돈좌 끝에 중국 당국은 인민해방군의 추가 파견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것은 총서기의 절대 권력에 금이 간 틈을 놓치지 않은 권력투쟁의 여파와도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만약 현 상황에서 출동을 명령해도 일선 부대에서 거부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하게 된 게 컸다.

천안문 때와 같은 항명을 무릅쓰기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

그럴 경우 현 상황에서 갈등과 함께 권위의 상실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신중하고도 조심스레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당금 중국의 절대 권력자에게 찾아온 전례 없는 위기 아니던가?

단순히 군대를 움직이는 문제에서만 소심하게 굴지 않았다. 당의 간부들 전체가 마치 팔이 닿지 않는 등 한가운데에 종기라도 난 것처럼 예민하게 굴며 제 행적을 숨기기 급급했다.

의문스러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덕분이다. 정체 모를 살인자들, 하지만 명백한 목표 의식이 있는 암살.

한 간부는 지방 출장을 갔다가 현지처의 침대 위에서 죽었다. 제 물주가 죽은 지도 모르게 벌거벗은 채 동침 중이던 현지처는 아침에 일어나 총에 맞은 오리처럼 꽥꽥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탓할 필요는 없다. 누구라도 한 사람분의 피를 있는 대로 쥐어짜 방 전체에 뿌린 듯한 광경 속에서 눈을 뜬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죽은 자의 모습은 피를 먹고 사는 흡혈귀가 식사를 위해 이빨을 꽂았다가 맛이 없다고 먹다 뱉은 모양새 같았다, 그것도 껍질을 제거한.

그 기묘한 죽음이 자연스레 무림인의 개입을 상상하게 했다.

또 다른 죽음 역시 그렇다. 마찬가지로 당의 주요 직책을 맡은 남자는 자신의 욕실에서 죽었다.

이 죽음은 고작 삼십 분 사이에 일어났고, 끔찍한 결과로 도출되었다. 씻으러 들어갔던 이가 늦게 나온 건 둘째치고 도저히 견디기 힘든 악취가 흘러나와서 사람들이 문을 따고 들어가자 마주한 건 부패하여 피부가 녹아 버린 흉측한 죽음.

이 역시 무림인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말이 돌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흉수로 지목된 건 중국 국가안전부. 개중에서도 그들의 수장인 청혈백사였다.

기이한 방식의 죽음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죽은 간부, 두 명 모두 상하이 사태를 기점으로 총서기의 집권에 반발한 인사들이었던 탓이 크다.

당연히 그런 일을 벌이지 않은 청혈백사와 그를 따르는 국가안전부 소속 무림인들은 황당할 지경.

“이 사태에 대해 뭣들 할 말 없나?”

청혈백사는 평온한 표정으로, 하지만 속으론 꽤나 짜증이 난 상태로 침묵하는 수하들을 돌아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고요한 방의 분위기에 다시금 짜증이 치솟지만, 겉으론 평정을 유지한다.

수하들을 닦달해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처음부터 그런 자들을 수하로 남겨 둔 것도 있었다.

판단은 자신이, 실행은 부하들이. 유능하면 계속 쓰고, 무능하면 치우며 유능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배제한다.

이러한 원칙이 수십 년간 이어졌기에 눈치만 보는 수하들을 이해하며, 아울러 이 기회에 전부 갈아 치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무능한 놈들.’

있는 걸 가지고 분석도 못 하는 멍청이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자격이 없다.

‘한밤중에 귀신 같은 솜씨로 침입해 같이 자고 있는 사람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정교하게 죽였다……. 정파 연합이 개입했다는 게 아무래도 사실인가 보군.’

중국 국가안전부 무림정찰국의 수장인 청혈백사이니만큼 주변국 위험인물들과 세력에 대한 신상명세 따위는 모조리 암기된 상태.

그중에서도 유력하게 떠오르는 자들이 하나 있다. 일신에 지닌 무공보다 사람과 세력을 키우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검제의 숨겨진 칼, 남궁가의 검귀들이 바로 그들.

피해자는 혈도가 제압당하여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다. 옆에서 자고 있던 불운한 간부의 현지처 역시 수혈을 짚였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아무 가치 없는 여자야 이제와 딱히 따질 필요 없는 이야기.

중요한 건 그와 그녀가 혈도를 제압 당해 칼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것이리라.

잔인하지만 확실한 전문가의, 고수의 솜씨.

그 정도 실력을 갖춘 이 중 상하이 사태에 개입할 만한 이들이라면 역시나 얼마 전부터 도발적으로 움직이던 대만의 무림인들이 아니겠느냐, 라는 생각을 청혈백사는 한다.

정파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혐오를 배제하더라도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개입했을 때의 이익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대만이 중원 본토에 대한 공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서로를 찌르고 싶어 하지만 찌른 뒤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어 으르렁대는 처지에,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다.

위험할지언정 할 수만 있다면 한번 해 봄 직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존중할 만한 결정이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라는 소리다. 어찌 되었건 중국 내부의 유례없는 혼란이 어디로 튈지 몰라 하며 마음 졸이느니, 차라리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트는 게 안전 보장에 더욱 유리한 일일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개입이 없거나, 늦춰질 거라고 여겼던 건 필시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한 미국의 만류가 있을 것이고, 또 내부의 격론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는데, 뜻밖에 신속한 참여라…….

‘혈마제와 천지극뢰… 그리고 장 노인.’

청혈백사는 그들이 의심스럽다.

정확히는 사태의 원흉, 뜬금없이 나타나 모든 걸 망쳐 버린 자들의 뒤에 진하게 드리운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다.

‘연화존자, 그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자기 집 욕실에서 순식간에 썩어 죽은 피해자가 그런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방법을 알 수 없는 하독이라면 옛 위세를 회복한 독의 명가, 당가그룹 말고 누구를 또 떠올려야 할지, 청혈백사조차 선택지를 꼽기 어렵다.

그러니 당가그룹이 큰 은인으로 모신다는 연화존자를 의심하며 장 노인과 일당들의 진정한 목적과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는 짜여진 각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청혈백사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풀려고 하느니, 차라리 불가능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옳다 여기며.

장 노인이 혹시 연화존자인 건 아닐까? 그에 대한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청혈백사는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점점 진해지기만 한다.

그것이 바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훌륭한 휴민트를 구축한 뱀의 지혜였다. 대외적으로 연화존자는 국가무공원의 다음 스텝을 위해 칩거 중이라 알려졌고 그랬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청혈백사의 본능은 쉭쉭거리며 속삭이고 있다.

여기엔 분명 음모와 부추김이 있다고. 필시 연화존자, 오래전부터 그림자 속에 숨어 당의 행사를 방해해 온 자의 악의가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고.

“연락을 취해서…….”

“국장님!”

그리하여 국가무공원 쪽을 파 보려던 청혈백사의 계획은 의도치 않은 충돌로 무산된다.

“공안국의 자안혈조가 국의 요원들을 습격, 체포해 끌고 갔습니다!”

“…뭐라고?”

“총서기를 반대하는 쪽으로 노선을 정한 것 같습니다!”

청혈백사는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감을 드러내던 공안국의 고수, 자안혈조가 이빨을 드러냈음에 새로운 내부투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그의 골머리를 잡게 만든 건 내부의 적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함대가 대만해협 근처를 순회하고 있었고, 총서기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결집은 눈덩이처럼 불어 가고 있었다. 도저히 다른 데로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격렬했던 날들의 연속.

그 즈음, 대륙의 정세에 불을 질러 버린 연화존자는 잠시 고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고 왔다고요?”

“뭐, 밖으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짧지만 강렬한 외유를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연화존자는 윤아영과 함께 예의 그 장소, 카페 팀북투에 앉아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담소라고 생각하는 건 연화존자뿐. 윤아영은 그가 중국에 벌려 놓고 온 것들을 들으며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리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거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줄 알고 이렇게 돌아온 겁니까? 그리고 애초의 목적이 이런 사태를 부르려고 한 것도 아니었잖습니까?”

따지고 드는 윤아영의 질문을 연화존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는 어느 정도 생각한 게 맞는데요?”

중국에 내전을 일으킬 생각으로 헤엄쳐 건넜다는 말에, 윤아영은 말문이 턱 막힌다.

“당연히 당가그룹의 추천과 조력을 받아 제자를 받으려던 건 사실입니다. 아직도 유효해서 한 명 가르쳐 보기로 했습니다.”

청명검 남궁현은 연화존자의 가르침을 받는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연화신공의 모든 단계를 가르치거나 할 수는 없었다. 남궁가의 다음 주인이 될 처지에 남궁의 무공을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검제는 여겼다. 연화존자와의 끈 그리고 수준과 위력을 증명한 연화신공을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이라고 그는 여겼다.

그 대가로 막대한 투자와 심혈을 들여 키운 최고의 무력 집단인 남궁검귀를 투입한 것이기도 했다. 중간에 있었던 당가그룹의 귀띔, 천마격살의 주인공이 연화존자라는 사실을 알고 은혜를 갚아야겠다며 나선 것도 있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무공.

검황을 잃어버린 적 있는 그들은 새로운 검황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당가그룹의 조력자들은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 실책이 있다면 그게 다인 거 같기도 해요. 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미친 듯이 열정적이고 유능한 줄 몰랐어요.”

김철민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씨를 던진 건 자신이 맞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돌아간 건 당가그룹이 투자한 조력자 집단의 정열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남궁검귀와 몰래 입국한 채 대기 중이던 당가그룹의 히트맨들이 중공의 간부들을 연이어 암살하는 데 성공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돈을 빼돌리거나 아끼지 않고 뿌려 정보를 수집하고, 회유하고 매수하고, 적들의 결집을 방해하는 등등.

공산당의 지배에 반발이 있는 자 중에서도 유능한 자들만을 모아 후원한 당군명의 안배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제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분명히 의심하는 자들이 나올 겁니다. 지금도 하고 있을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내가, 국가무공원이 이 일에 개입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자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당장 미국 쪽에서도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문의해 왔다. 연화존자는 어디 있냐고. 혹시 지금 상하이를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관련이 된 거 아니냐고.

이에 운하신권은 보안을 이유로 대답을 거절했으니, 아마 어느 정도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공식적으로 돌아다니고 해야죠. 마침 그럴 만한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연화존자의 말에 윤아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얼마 전까지 그녀와 일하던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 잘못이 큽니다.”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겠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습니다.”

“그게 왜 검사님 잘못입니까?”

남은 커피를 털어 넣으며 연화존자는 고개를 저었다.

“내 부하들이자 자식 같은 놈들인데, 잘못이 있다면 내 잘못이죠. 잘 가르쳤어야 했는데, 참.”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연화존자는 윤아영에게 권유했다.

“일단 같이 가시죠. 보고를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들어야겠습니다.”

이에 윤아영은 끄덕이며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났다.

최익현을 비롯한 칠익회 동유럽 지사 인원들을 만나러 간다. 연화존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찾아온 일본 대사를 두들겨 팬 사건에 대해 설명하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