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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09화 (109/175)

109화

미국은 절대 선이 아니다. 미국을 옹호할 수 있고 우호적일 수는 있지만, 미국이 절대적인 선이라고 말하는 건 틀린 명제다.

미국에 대해 조금 좋게 말했다고 사상이 글러 먹었니, 어쩌느니 하는 좁은 시야는 달리 따져 보아야 할 별개의 문제지만 아무튼.

여느 나라처럼 많은 실수와 악행을 해 왔다. 자국민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하기도 했고, 우방을 버린 적도 있는 나라.

그 일을 이번엔 청해마도가 당했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을 위해 우리와 거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현 대통령은 만성적인 지지율 하락에 골치를 않고 있다.

이게 온전히 그의 탓만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어서 미친 것 같은 중국발 폐렴의 영향, 전임 대통령이 싸지르고 간 무수히 많은 문젯거리 그리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사회의 부조리를 지금 대통령의 탓으로 모두 돌리는 건 부당한 일일 테지.

하지만 정치에 옳고 그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당장 얼마 전, 연화존자와 칠익회가 엮인 일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지 않나? 기자 암살 때문에 사우디의 젊은 왕세자를 비난했던 미국에서 그놈의 석유 때문에 애타게 만남을 갈구해야 했던 판국에.

“‘바이 아메리칸’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우리에게 약속했던 많은 것을 유보 중입니다.”

한국까지 찾아와서는 미국에 투자해 달라 했고 이에 화답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그것은 청해마도가 설명한 행정명령 ‘바이 아메리카’의 일환.

미국 내에서 생산한 전기차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은 이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놓고 결국 한국 전체로 보면 이득이라고 말하는 건 그야말로 FTA까지 맺은 동맹국에 대한 기만행위나 다름없었던 것인데, 문제는 이 지지율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실행 중인 행정명령의 범위가 바이오 산업까지 확장됐다는 것.

“미국의 제약 회사와 의료 회사들이 우리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마약은 스스로 불러들인 재난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기존의 마약들을 대체하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이 이토록 널리 퍼진 데에는 제약 회사의 양심 없는 로비와 상도덕 따위 개나 줘 버린 자본주의적 이익 추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에야 중국에서 온라인 배송을 통해 미친 듯이 팔아 대고 있어 FBI에서 중국인 마약상에게 수배까지 걸어 버린 상황이지만, 대기업 제약사들의 로비로 인한 오남용도 만만치 않았던 바.

애초에 펜타닐 규제를 일개 민간 기업에 맡겼던 것부터 미친 짓거리였다. 심지어 이 사태의 주범이었던 자들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내긴 했지만 오히려 그 막대한 피해 규모 때문에 법적 책임을 벗는 씁쓸한 결정이 내려졌을 정도.

그만큼 미국의 의료 체계란 자본주의의 화신, 그 자체였고 그런 만큼 엄청난 규모가 될 것이 뻔한 신규 분야에 먼 곳에서 온 아시안들이 발을 들이는 것에 확실하고도 노골적인 견제를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마약 치료라는 분야를 우리가 선점하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자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그래?

“네. 심지어 약을 파는 갱단들을 시켜 주변을 습격하려 드는 정도입니다.”

물론 청해마도를 비롯한 한국에서 온 인력의 상당수가 무림인이긴 했지만, 이 아름다운 자유의 나라에서는 총기가 대한민국의 치킨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바.

무림인이라 해도 부담스럽고 위험을 느낄 판국에 한국에서 온 인원 중 무림인이 아닌 인원들은 연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고, 이는 비단 이방인 입장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기존에 미국에 살고 있던 인원들도 위험을 느끼긴 마찬가지.

“저희야 시큐리티를 고용해 인원 보호에 나섰다지만, 한인 사회에 피해가 있습니다.”

보복 혹은 위협은 유무형의 형태로 다가왔다.

마약을 파는 갱단들이 청해마도와 그의 부인이 맡은 의료 재단을 견제하는 건 복합적이다. 일부는 이 새로운 의료 재단이 호언장담한 진기요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또 일부는 오히려 약을 맘 놓고 할 수 있을 거라며 반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형태의 의료 재단의 활동으로 중독의 사슬이 끊어져 고객이 줄어들 거라는 불안감이 큰 갱들도 많았다. 가뜩이나 최근 바다 건너 중국의 국제우편 애호자들과의 경쟁으로 예민하던 이들에게 부추김의 목소리는 먹히기 쉬웠던 바.

내공 사용자는 습격 못 해도 한인들이 운영하는 편의점과 세탁소 등은 손쉬운 방화와 절도의 대상이 된다.

개중 큰 사업체를 운영 중인 사업가들에 대한 견제는 보다 은밀하여, 주 정부와 지역 공무원 등을 매수, 규제를 들먹이고 소송 등을 걸며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바.

“덕분에 재미 교포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이에 한인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문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

칠익회 미국 지부의 지부장 노릇을 하고 있는 다니엘 김마저 거물급 고객 여럿을 정리해야 했을 정도였다.

일부 고객들은 국가무공원과 한국의 대기업이 미국에서 신사업을 벌이는 게 자신들의 손해라고 생각해 관계를 청산하고자 했다.

그 과정이 깔끔하지 못한 건 당연했고 갈등은 깊어졌으니, 지난날 미 하원을 움직이던 때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지난한 일.

이런 일에 힘을 써 줘야 할 미 대통령은 지지율 핑계나 대며 뒷짐만 지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상점을 습격하는 갱단들이야 잡아다 두들겨 패 준다지만, 그것도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면 쉽게 풀어 주지 않고 어떻게든 구금해 잡아 놓습니다.”

현재 미국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으려 한다. 미국의 부를 해외로 빼돌리려고 한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선동일지는 앞의 말들로 충분하리라.

이 듣기만 해도 답답한 상황에 대한 연화존자의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늙은 대통령께서는 양심이 좀 없으시네.”

한국으로 보내 온 보고서에선 읽을 수 없었던 청해마도의 고생이 절절하게 느껴져 연화존자는 미소로 위로했다.

“분명 우리에게 받아 가고 있는 게 있을 텐데.”

이런 상황임에도 웃긴 건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내공심법 교류는 진행 중이라는 사실.

“최후의 기사는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알렉산드루가 나서지 않았다면 상황은 심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반로환동과 연일 모집 중인 기사단, 가칭 ‘자유의 수호자들’이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의 도움 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덕분에 호감을 가진 이가 적지 않았다.

만약 그런 도움도 없었다면 견제는 노골적이었으리라. 아마 다니엘 김이나 청해마도가 잡혀 가는 일마저 일어나지 않았을지.

“우리 젊어진 영감님만 양심이 있고 말이야.”

언론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후의 기사가 백악관에서 난동에 가까운 소동을 벌이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이에 백악관에서 사람이 찾아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그 조금이 얼마만큼의 조금일지 말을 전하는 그 사람도 모르는 모양새.

연화존자는 말로 해결할 단계가 한참이나 지났다는 걸 미국에 와서 알았다.

“그럼 이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좀 보여 주도록 해 볼까?”

하여 그는 의형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고 그래도 실행했다.

시작은 가까운 곳에서부터였다.

* * *

골목길 초입, 벽에 그려진 요란한 그래피티 사이를 지나가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지역 갱단의 일원들이 하얗게 눈을 빛내며 바라본다.

“요새도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나?”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아시아인을 보며 조직원들은 말없이 총부터 꺼내 겨눈다. 얼마 전 내려온 지침이다.

최근 인근에 동방의 신비한 힘을 다루는 놈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파벌 중 일부가 그들과 대립 중이니 괜히 말 섞지 말고 위협하며 물러서라고.

이건 나름 현명한 지침이어서 그동안에는 불필요한 충돌이 일어난 적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 임시적이고 끝이 보이는 평화는 오늘로써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게 아닌가 싶었다.

자신을 겨눈 총구를 보며 씩 웃어 보인 남자가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어느새 코앞에 서 있었으니까.

“Shit!”

욕설과 함께 권총들이 불을 뿜지만 어지러이 벽과 바닥에 박히며 불꽃만 피울 뿐, 화약 냄새 사이로 쇠 냄새를 닮은 혈향은 맡아지는 법이 없다.

그럴 수밖에. 앞에 있던 아시안, 무공을 익힌 그가 어느새 뒤를 잡고 이런 갱단원들의 오금을 모조리 발로 차 버려 무릎 꿇렸으니.

“이 나라 의료보험이 살벌해서 봐준다.”

인도주의적 감성으로 어디 하나 부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제압을 마무리한 그가 고통에 신음하며 끙끙대는 갱단원들의 품을 뒤진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마약을 회수한다.

“다음에 또 보자, 알았지?”

그러곤 떠난다, 다른 것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이와 같은 행위는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고, 하루만의 일도 아니었다.

패턴은 한결같다. 무공을 익힌 아시안들이 갱단의 영역에 들어서서 그들을 제압하고, 그들이 판매하는 마약을 모조리 뺏어 사라지는 것이 전부.

하지만 이 단순한 행위는 지역 갱단을 뒤흔들 만한 일이었다. 당장 조직원들의 수입이 급감하며 동요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뜻밖에도 여기에 관심을 가진 건, 경찰이었지만.

“당신들, 마약 치료를 하러 왔다더니 사실은 마약 장사를 하려는 건 아닌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경찰이 위의 사태에 관련된 참고인으로 부른 국가무공원 소속 인원이자 청해마도의 아들, 송철우에게 거들먹거리며 묻는다.

흡사 조롱에 가까운 목소리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감님?”

콧수염 경찰은 송철우의 침착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탁자를 내려쳤다.

“이 자식이 날 어디 멍청이로 보고!”

인종차별주의적 욕설들이 가슴에서 튀어나올락, 말락했지만 참는다. 그런다고 한들 무슨 일이야 있겠냐마는 눈앞의 사내 역시 내공이라는 힘을 다루는 자라고 했고, 또 제법 부유하고 나름의 권력이 있는 자라고 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얼마 전,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이들의 책임자가 새로 왔다고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이런 일에 그자가 오지 않은 게 또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뭐. 지금은 앞의 놈에게 집중해야지.

“너희가 갱단을 털어 먹은 걸 모를 줄 알아? 엉? 요 며칠 내내 습격해서 마약을 훔치고 있잖아?”

윽박지르며 말한다. 순순히 불으라고. 다 알고 있다고.

그렇게 앳되 보이는 애송이만 보낸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범죄행위를 소명해 이들을 손봐 주고 싶어 하는 높으신 분들에게 잘 보여야겠다며 흥분마저 했던 콧수염 경감은 송철우의 다음 말에는 그만 당황했다.

“마약을 훔치고 있다라… 경감님이 그놈들 뒤를 봐주고 돈을 받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마약은 사람을 망치는 물건이고, 부패한 공무원은 국가를 병들게 하는 병 아니겠습니까? 누가 더 쓰레기일까요? 둘 다 쓰레기라 딱히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골라 보시죠.”

송철우의 비아냥대는 말에 콧수염 경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폭력을 행사할 뻔했지만, 다음 말에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아내 이름이 엘리나였던가요? 딸들이 그쪽이 아니라 아내분을 닮아 예쁩디다.”

“너, 너 이 새끼! 지금 내 가족을 두고 협박…….”

“협박?”

송철우는 가족을 언급하니 겁먹은 눈을 하는 부패 경찰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 쓰레기는 네놈이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가족이 무슨 죄겠어? 하지만 쓰레기 같은 가장이 갱단한테 돈을 받아 가족을 부양했다는 걸 알면, 그러면 네 부인과 자식들은 널 어떻게 볼까?”

이렇게 송철우는 무사히 풀려 났다. 지역 경찰 전체가 아닌 개개인을 마크해서 처리하겠다는 연화존자의 아이디어는 직접적인 압박을 걷어 내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다니엘 김의 인맥과 제갈패밀리의 해커들을 동원한 불법적이고 광범위한 정보수집은 이렇게 빛을 발했으니, 그 쓰임이 여기서만 그칠 것도 아니었다.

칠익회가 다시 한번 날개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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