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11화 (111/175)

111화

당가그룹이 대한민국 국가무공원과 합작, 미국으로의 진출을 꾀한다는 관측은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우려였다.

연화존자와의 조우 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룬 당가그룹이었고 그 확장 일보의 행태는 역사로 증명된 바, 미국의 의료업계 종사자들이라면 그들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당가그룹과 국가무공원은 달리 숨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당가그룹이 왜 한국에 그토록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는지, 독군 당군명을 비롯한 당가의 사람들이 국가무공원을 움직이는 절대고수, 연화존자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감추는 것 없이 백일하에 드러내고 다녔다.

그러니 또 다른 한국의 재벌가와 함께 미국 진출을 꾀하려 한다는, 국가무공원을 향한 의심의 색안경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연화존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배후에 드리운 비열한 루머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건 얘기가 다르지.

“일본 쪽에서 손을 쓴 거 같다고?”

“일본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청해마도가 이끄는 중독 치료자 집단을 방해하던 갱들을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짜증나지만 예상하기도 했던 방해자의 존재가 드러났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직접적으로 접촉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금의 출처와 집행한 계좌를 추적한 결과, 미국 내에서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 여러 곳의 주소지가 나왔습니다.”

“몰래 일을 벌였다는 건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로비스트를 동원한 흔적도 찾아냈거든요. 저희 사업에 대한 견제를 위해 상‧하원을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모두의 우방이지만 그것이 셋의 사이가 좋다는 명제를 의미함은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미국인이라면 모를까,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

하다못해 올림픽이나 축구 시합에서도 서로에게만은 져서는 안 되는 사이 아닌가? 그러니만큼 미국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늘어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일본인들이 많으리란 건 참으로 명백하다.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대한 끈질기고도 집요한 방해만 떠올려 봐도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미국 진출에 대한 방해가 있을 거라고 능히 예상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각오했던 바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이해가 연화존자의 분노와 짜증을 가라앉혀 주지는 않는다.

“우리의 영향력이 커질까 봐 당가그룹을 들먹이며 방해에 나섰다?”

“정확히는 먼 미래의 가능성을 크게 부풀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 대화를 하고 돌아온 다니엘이 국가무공원의 합작회사가 향후 미국 의료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계자들의 두려운 분위기를 전한다.

“미국의 의료업계는 내공 사용이 보편화되며 일어나게 될 산업의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을 두렵게 하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와 같은 대규모 무림인 수급이 그들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수준의 차이야 어떻게든 수를 써 보겠지만, 결국 숫자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저들도 알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내공 사용자의 수급은 미국의 의료업계에서 해낼 수 없는 무언가다. 지난 세월, 내공의 건강 증진 효과에 대해 간과하고 있던 게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미 연방 정부 차원에서도 해내지 못한 일을, 아무리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의 의료업계라 한들 별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확신에 가까운 판단을 내린 채 유보했던 게 벌써 수십 년.

최후의 기사, 알렉산드루 칸차쿠치노가 겪어야 했던 지난날의 실패는 여기에 쐬기를 박는 사건이었다. 유럽 최고의 혈통과 실력을 지닌 그가 연방 정부 차원의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아 이루어 냈던 장대한 실패를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확신하기까지 했지.

세계의 어떤 집단도, 국가마저도 내공 사용자의 대규모 양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최소한의 ‘인권’과 ‘보편적인 상식’을 지켜 가면서 이것에 성공한 곳은 아무도 없었다.

기껏해야 내공 사용자 본인이 차린 소수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헬스케어 서비스 정도가 성공했을까?

그러니까 연화존자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소리다.

“하지만 저희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연화존자가 출현하며 대한민국에 국가무공원이라는 신생 조직을 만든 뒤 걸은 일련의 성공은 이러한 편견을 깨부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충격을 넘어 공포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최후의 기사, 알렉산드루를 반로환동 하게 하며 강력한 우군으로 만든 국가무공원의 역량은 내공이란 힘의 활용성에 관심을 갖고 있던 모든 집단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대통령과의 약속을 바탕으로 미국으로 옴에, 이는 위험으로까지 격상된 바.

어쩌면 일본의 협잡질이 아니어도 견제는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마약 퇴치 운동에 집중한다 쳐도, 시간이 지나면 다를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미 연방 정부는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유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단 내공의 유무 등에 대한 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비록 얼마 전 있었던 사우디 왕세자와의 일이 최종 단계에서 어그러지다시피 했지만, 그런 자리를 수월하게 마련했다는 것만 하더라도 이 인맥이란 것의 효용은 어느 정도 증명된 이야기.

하여 이번 ‘바이 아메리카’의 결과 막대한 투자를 결정지은, 동맹국에 대한 처우라기엔 부당하기까지 한 결과에 대해 재협상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말이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었다.

청해마도와 그의 처가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미 대통령의 약속에 대한 상기는 마약 좀비가 거리를 점거하다시피 한 필라델피아의 골목길과 함께 방송을 탔다.

진기요상의 결과로 마약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과거 중독자들의 증언이 담긴 광고 영상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그 치열한 각축장의 한가운데에서 연화존자는 물었다. 그의 제자이자,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 중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장 익숙한 이에게.

대답은 간결하다.

“손을 잡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과거 그들이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집단이었을 때의 일을 되풀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저희가 월스트리트에서 투자회사를 차렸을 때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 그보다 효율적인 방안이 없습니다.”

다니엘의 확언에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청해마도는 물었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지?”

이에 다니엘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한다.

“먼저 숙이고 들어가서는 제값을 받지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에 질문을 던진 청해마도는 물론이고 연화존자조차 이해한다.

국가무공원은 미국에 무임승차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 대통령의 약속과 연방 정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먼저 지불한 것에 대한 대가였으니, 처음부터 쉽게 보일 필요는 없었다는 다니엘의 말을 이해한다.

“어느 정도의 방해는 예상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이고, 비열할 줄은 몰랐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싸워야 합니다.”

대응 방안은 사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거나 다름없었다.

예상을 하긴 했다지만, 그것이 가만히 한 대 맞고 넘어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저희를 공격한 모든 것에 반격해야 합니다. 다시는 건드릴 생각도 못 하게, 최소한 우리와 척을 져서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머릿속에 심어 줘야 합니다.”

무림인이 어찌 싸움을 두려워할 것인가?

“…직접적인 타격도 상관없는 거지?

연화존자와 청해마도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 * *

국가무공원의 미국 진출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표면적인 대응. 로비스트마저 동원한 언론전에 대해 다니엘의 대응은 심플했다.

‘상대가 쓴 금액의 무조건 두 배.’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미국 내 활동을 반대하는 세력이 지출한 모든 종류의 마케팅 비용의 정확히 두 배를 그는 집행했다.

연화존자는 이를 승인했다. 평소에도 나가는 게 많고 국가무공원을 차리며 제법 소모하긴 했지만, 이런 일에 돈으로 밀릴 수 없는 일이라며 기꺼이 승낙했다.

그 정도 돈은 있다면서.

‘이런 일에 일본 놈들한테 질 수는 없지. 부족하면 훔쳐서라도 채워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질러.’

연화존자의 시원스러운 승낙에 다니엘과 칠익회 미국 지부는 더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상대를 최대한 빨리 끝장내는 게 연화존자의 재산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라 여기며.

그래도 연화존자 혼자만 이 비용을 감당하지는 않았다. 청해마도와 그의 처가, 아울러 소식을 들은 운하신권 등이 개인 재산을 보탰다.

덧붙인 말들은 대동소이하다. 저런 쪽발이 새끼들이, 감히?

말도 못 하게 소모적인 일이었지만, 동시에 말도 못 하게 효율적이었다. 라디오, 방송,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국가무공원에 대한 홍보가 여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전에 없던 친구가 생길 정도.

다니엘이 진두지휘한 이 실행에 미국 내 여러 곳에서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주로 한국과 일본의 감정 싸움을 이용해 돈이나 벌어 보자는,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접근이 많긴 했지만 그것이 국가무공원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거나 진실된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는 소리는 아니었던 바.

특히 마약에 잡아먹혀 가까운 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무릇 싸움이 나면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 드러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국가무공원의 싸움에 협조하는 이들은 다양해서 개중에는 미국의 이름난 실업가도 있었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국가무공원에 대한 탄압은 미국 내 일본계와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다.

‘언제까지 마약 따위에 미국의 미래를 잃어야 하는가?’

시민사회에서 대규모 마약 퇴치 운동이 일어났다.

마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일어난 이 시민운동은 국가무공원의 고수들을 궁극적인 마약 제거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간 미국이라는 나라는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력을 갈아 넣었음에도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동방에서 온 이 신비로운 기술을 지닌 집단과 함께라면 그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거라며, 시민들의 희망을 부추겼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미국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정말 마약을 퇴치하고 싶기나 했던 건지 의심이 갈 정도.

이에 무력감과 패배감. 누군가 노력하고, 어떻게 힘을 써도 세계 최강대국조차 해결하지 못할 거라던 마약중독의 늪. 그 늪을 동방의 무림 고수들이 메울 수 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은밀하고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하지만 믿고 싶고 믿을 만한 소문이 함께했다.

‘중국의 펜타닐 제조 조직이 상하이 사태로 활동을 멈췄다!’

전자 상거래망을 통해 바다 건너 자유의 땅을 중독시키던 중국 내 마약 조직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는 연화존자가 중국을 떠나기 전 신신당부했던 일로 당가그룹과 대만 정파 연합의 고수들이 중국의 펜타닐 제조 공장을 급습하고 조직원들을 닥치는 대로 사살하며 활동이 위축된 것이 컸다.

당연하지만 이 소문이 퍼진 것에는 다니엘과 칠익회 미국 지부 인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애초에 마약 소탕을 위해 시민사회를 후원하는 가장 큰손으로 부상한 것도 이들이 아니었던가?

돈이란 역시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게 해 준다.

아무튼 그러한 고로 미 대통령 역시 새로운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여론의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신의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그의 말에 대한민국의 정재계는 환호를 내질렀다. 또한 국가무공원의 미국 활동 역시 다시 날개를 펴는 지금.

세 명의 복면인이 뉴욕의 뒷골목을 누빈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지 않아?”

연화존자의 웃음 가득한 목소리에 청해마도가 피식 웃었고, 그런 두 사람을 말릴 수도 놔둘 수도 없어 따라온 송철우는 뒤집어쓴 복면 아래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마약 퇴치의 의식적 작용이 아닌 물리적 작용의 최전선에 서기로 결심했으니, 역시나 내외공의 조화를 추구하는 무림의 고수들.

마약을 파는 갱단의 두목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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