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자, 그러니까.”
인공적인 불빛을 찾을 수 없는 주변의 어둠이 에리안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십 대 시절부터 거리의 무법자로 살다시피 하며 두려움이란 걸 모르고 살던 에리안에게 오늘밤의 경험은 충격적인 것이었으니까.
“닥쳐, 이 동양 원숭이 새끼야!”
그 두려움이 그를 더 포악하게 만들었다. 마치 겁먹은 개가 더 심하게 짖는 것처럼.
공포는 에리안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
어렸을 때부터 갖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를 왔다 갔다 하며 백인 우월주의에 심취한 그는 곧바로 갱단을 결성,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지 오래다.
적어도 자신의 영역에서만큼은 누구도 두렵지 않았던 게 에리안이라는 사내였고, 또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종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열성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기에, 비록 복면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손등과 목이 노란 원숭이 놈한테 납치된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두려움이 크다.
“감히 날 건드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네 애비, 애미를 잡아다가 찍어 죽이고… 컥!”
그러나 마음과 현실이 일치되지 않는 일이 인생에선 종종 일어난다.
에리안의 경우 오늘에서야.
“우선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라는 말을 하고 싶군.”
차분한 목소리로 능숙하게 말하는 동양인 놈에게 반박하고 싶지만, 보이지도 않던 아까의 일격으로 코가 내려앉은 에리안이기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피가 그의 기도를 막을 기세로 쏟아져 정신없게 만든 탓이다.
“그래도 미국은 참 좋은 나라야.”
쌕쌕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에리안을 보며 앞에 앉은 동양인은 조용히 말을 이어 간다.
“내 나라에 있을 때는 함부로 손을 쓰기가 좀 그랬어. 뭐랄까…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는 게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지더라고.”
피에 젖은 몰골로 노려보는 에리안의 몰골이란, 교도소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과 폭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상징으로 새겨 넣은 목과 볼의 문신과 결부되어 무시무시할 정도로 험악했지만.
눈앞의 동양인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미국의 장점을 늘어놓는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아무튼 내 조국에선 최대한 온건하게 행동하고 그랬는데, 역시 미국은 자유의 나라야. 공기가 달라서 그런지 분위기 자체가 다르군. 범죄자 놈들은 무척이나 많고, 너 같은 쓰레기 놈들을 여럿 묻어 버려도 아무렇지 않고. 뭐, 그래.”
그 내용만 보자면 찬양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얼핏 듣기엔 그렇다.
“그렇지 않아? 너 같은 빌어먹을 새끼가 길거리 밖을 훤히 활보하는 것만 봐도 이 아름다운 나라가 얼마나 개인의 자유라는 것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지. 놀라운 개척자의 나라 같으니라고.”
복면을 쓴 동양인, 연화존자 김철민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비록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웃음기 어린 어투로 야망 있는 갱단의 두목 에리안을 비웃는다.
“그러니 너 같은 놈들이 설치는 거잖아. 지역을 꽉 잡고 있던 다른 거대 갱단들이 무너지니까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연합을 결성, 새로운 공급선과 유통망을 장악하려는 성실한 개자식들 말이야.”
최근 연화존자는 청해마도와 함께 둘이 움직이며 뉴욕시와 그 주변의 약쟁이 두목들을 박멸 중이었다.
이건 공권력의 투입이 아닌 사적제재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연화존자는 미국인이 아니었고 설령 그렇다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그가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피를 묻히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비록 상대가 크고, 방대하며, 오래되었다고 한들 그는 연화존자.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너 새끼와 너 새끼의 동료들이 새로이 뚫은 공급선이 어디인지, 나는 그게 알고 싶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는 건 그에게 익숙하다.
“아, 그전에 대화가 더 필요한가?”
들을 이 없는 비명이 빈 들판을 울린다.
* * *
평소에도 연화존자는 마약이란 물건을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속칭 ‘얼음’이라 불리는 최고급 필로폰을 팔아 젖히던 북한산 빨갱이들을 잡아 두들겨 패고, 잡아 넣으며 기쁨을 느꼈던 게 아니었다.
아무리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지만 그건 개인의 영역에 국한된 이야기. 사회 전반에 마약이라는 물건이 퍼져서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모든 것이 마비되기 마련이니, 국가와 민족을 나름 사랑하는 그에게 있어 이는 용납이 불가능한 물건.
예전, 도가의 방문 좌도들이 도(道)에 이르는 길을 찾겠다며 연단술을 비롯한 갖은 약물을 쓰면서 무공을 증진시키려던 시도를 보며 가졌던 혐오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 자들이 최근까지도 남아 있어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니,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약팔이들에 대한 증오는 거의 뼈에 사무친 것이나 다름없는 바.
그런 연화존자에게 있어 방해하는 자들과 싸우고 미국에서 제 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떠올린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갱들을 처단하자.’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고 이것은 그가 한국에서 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종류의 일이기도 했다.
사회 암적인 존재들, 건전한 상식과 도덕을 파괴하며 이를 자양분 삼아 제 욕심을 채우는 모든 것에 대한 배격.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즐거운 일들.
이는 청해마도에게도 마찬가지.
그는 그의 의형인 연화존자와 함께 지난날 비슷한 일들을 했다.
국정원, 당시에는 중앙정보부라 불리는 곳에 억지로 붙들려 있던 연화존자 김철민과 함께 남몰래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악인들을 제거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이 절대고수에게는 존재한다.
서울의 봄 이후 이어진 길고 긴 침묵은 이에 대한 회고를 깊게 만들었다. 호시절, 거침없이 무공을 펼쳐 죽여 마땅한 것들에게 올바른 징벌을 내리던 예전에 대한 소회는 남해의 작은 섬에 스스로를 가둔 지난날 더더욱 선명한 무언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옛 기억으로 의기투합했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늘이 내려야 할 벌을 대신 내리자.’
다니엘과 칠익회는 여기에 당연히 동조했다.
거기에는 굳건한 신뢰와 믿음이 존재하니, 연화존자에게 갚기 힘든 은혜를 입었다 여기는 그들은 알고 있다.
김철민, 그가 나선다면 거기엔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있으며 들키거나 문제가 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뒤처리를 위해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당연함 같은 것이 전 세계 칠익회에는 존재한다.
무엇보다 명백한 악인, 마약을 파는 범죄자들을 잡는 일 아닌가?
열심히 정보를 모아 연화존자와 청해마도에게 보고한 건 그래서였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하지만 청해마도의 아들이자 미국으로 터전을 옮긴 증산방의 차기 방주가 될 송철우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또래의 흔한 대한민국 젊은이답게 직접적으로 피를 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불안하다.
이건 무공을 익히고, 부재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문파와 기업체를 운영하는 일과는 달랐다. 가장 원초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당장 어제오늘만 해도 연화존자와 청해마도의 손에 죽은 패밀리의 중간 보스가 셋이었고, 그 과정에서 죽은 자들이 수십여 명.
이 과정에서 연화존자와 청해마도는 제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미국을 휩쓸고 있는 마약 퇴치 운동의 여파로 기존 조직들이 활동에 제약을 겪는 것에 대해서 대책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마피아 패밀리의 중간 보스들은 끔찍하게 참살당했다.
송철우가 보기엔 그랬다. 경고도, 대화도 없이 도망가지 못하게 두 다리를 강기로 날려 버리고 시작한 건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이러지 않았다.
“철우, 너도 들키지 않을 거라 상관없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러한 송철우의 우려에 발걸음을 멈춘 연화존자는 물었고, 마찬가지로 신형을 멈춘 청해마도는 고뇌에 빠진 아들을 돌아본다.
화려한 뉴욕의 밤거리 아래 불야성을 바라보며, 세 사람은 잠시 침묵한다.
물론 송철우도 아이가 아니다.
부산이라는 거대 도시를 아우르는 문파, 증산문의 후계자로 자라 칩거한 아버지를 대신하는 와중에 어찌 위험하고 힘든 일이 없었을 것인가?
고로 걱정은 악의 처단이 아닌 제 자신의 처지.
“…제가 두 분과 함께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송철우가 한국에서 했던 모든 것은 이처럼 적나라하지 않았다. 그런 법이 없었다. 폭력은 있을지언정 살인은 없었고, 피는 볼지언정 이렇게 흐르지 않았다.
국가무공원의 일을 돕기 시작하고, 방을 해체하다시피 하며 미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도 말이다.
송철우는 제 손으로 사람을 죽여 본 일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차례가 그에게까지 오지 않았기에 할 필요가 없었다.
증산방이 내로라하는 무림 문파였다고는 하나 공권력이 막강한 대한민국, 거기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상황상 범죄조직보다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
고절한 무공을 익혔지만 스스로 사람을 죽여 본 적 없는 요즘의 무림인인 그는 피를 묻힌 적이 없다.
그럴 기회가 있었던 건 최근의 일로 미국을 건너온 이후에나 고려해 봄 직했지만, 일본 우익 집단의 의뢰를 받은 갱단 여럿이 한인 사회를 위협할 때도 반격이 이처럼 잔인하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여 요즘, 오늘밤, 지금.
송철우는 자각한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이자, 새장 안 비둘기였음을.
“제가 방해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연화존자와 청해마도가 처리하는 자들의 악행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송철우는 떨리는 자신을 주체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전 아직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처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철우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한 연화존자와 청해마도였다.
이럴 거라고 예상했던 그들은 이 과정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부족함은 채워야 하는 법이지.”
송철우를 탓하지는 않는다. 절대고수로 거듭난 두 사람이었지만, 어찌 처음이 없었단 말인가?
그들이 저 나이대 즈음엔 이미 익숙해졌다는 말 따위도 하지 않았다. 삶과 사회, 경험이 다른데 하나 마나 한 옛이야기는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무림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내공이라는 힘을 다뤄야 하는 상황에서.
변화하는 대한민국과 주변국과의 관계 속을 헤쳐 나가야 할 송철우에게 이러한 경험이 필요함을 다만 알 뿐이다.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한다. 아, 그래. 어쩌면 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계속해서 살 수도 있겠지.”
아무리 좋은 재능이 있다 한들 가꾸지 않는다면 소용없음을 연화존자와 청해마도는 알고 있다.
미국으로 옮겨 온 증산방은 번영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풍부한 자금, 미국과 한국의 지원, 지금도 열성을 다해 수련 중인 소속 무인들까지.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면 그건 오직 훌륭한 지도자.
연화존자는 여기에서 말하는 ‘훌륭함’을 위해 한밤의 활극에 송철우를 동행시켰다.
“믿는다.”
짧지만 무거운 말이 송철우의 어깨를 누른다. 압박감이었지만, 쉽사리 떨쳐 내기 힘들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두 절대고수의 안목을 믿기로 한다. 부디 자신에게 그럴 힘이 있기를.
그렇게 뉴욕에서 약을 파는 소매업자들이 처리되고, 증산방의 후계자가 험하고 어려운 경험을 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사이.
중국 상하이에서는 결국 압박을 견디다 못한 인민해방군과의 전면전이 일어났고, 대한민국에서는 윤아영이 사표를 쓰고 정계 입문을 선언했다.
국가무공원은 이 모든 것에 침묵하며 말을 아꼈지만 물밑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무척이나 급박했던 바.
운하신권의 건강이 크게 염려된다는 말에 연화존자가 근심했지만, 그가 건강을 우려해야 할 상대가 고국의 아버지와도 같은 동료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연화존자와의 독대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