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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19화 (119/175)

119화

“…이거 맞는 거요?”

비딱하게 서 있던 혈마제는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두려움보다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는데, 그런 그에게 감히 어디서 배짱이냐며 대드는 사람은 다행히 없었다.

다들 혈마제의 악명에 겁먹지 않을 사람들만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던 것인데, 꽤 많은 숫자가 모인 이들의 면면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가장 흉흉한 기세를 피어 올리고 있는 건 자안혈조를 수행하여 온 중국 공안의 무리였다. 이중에서 그나마 가장 무장 상태도 훌륭하고, 숫자도 많았으며, 조직의 최정예만을 뽑아 왔기에, 그 기세라는 것이 사뭇 대단하여 흉흉한 눈빛이 충만했다.

최근 있었던 부패 공무원 사냥으로 떨어진 콩고물이 많았던 것의 영향으로 사기가 충천한 게 크다. 자안혈조의 잔혹함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도 적응한 거지만, 역시나 공산주의자들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돈 좋아하는 민족다운 모습.

그리고 이 모습이 고까운 건 공안에 원한이 깊은 혈마제만이 아니다.

“…기세등등한 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군.”

“뭣이?”

“무슨 소린지 몰라? 아가리 찢어 버리고 싶다고.”

대만 정파 연합의 선두에 선 젊은 검객이 날카롭게 웃으며 검을 움켜쥔다.

그것은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싸움이 아닌 진심 가득한 살기. 중국의 공권력에 유감이 많은 자의 감정적 발로였지만 적어도 그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고, 아무런 생각없이 튀어나온 도발도 아니다.

“애초에 우리랑 협력해야 하는 주제에 뭘 믿고 그따위로 고자세인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

“뚫린 입이라고 지금…….”

“어, 할 말 많지. 그러니까 닥치고 들어, 내 말 안 끝났으니까.”

볼에 난 칼자국이 인상적인 젊은 검객, 남궁준은 발작하려는 공안들을 노려보며 하고픈 말을 모두 한다.

대만 정파 연합 내에서도 미래가 창창하다는 평가를 받는, 남궁세가의 유력한 후기지수 중 하나인 그는 적진 한복판에서도 담대하고, 거침이 없다.

“너희 공산당 놈들 내분으로 지랄 난 거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 있나? 그리고 너희 공안 놈들이 밀리는 거 또 모르는 사람?”

이는 사실이었다.

자안혈조가 공안의 대다수를 장악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중국 공안 전부가 그를 따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산당의 무공 실험을 통해 고수의 경지에 이른 자안혈조에게는 인격적인 결함이 수두룩했으며,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자기 출세에 방해되는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공안 내 경쟁자들은 줄을 세워도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

이 사태를 그저 출세의 동앗줄로 보는 이들도 한둘이 아닌 판국이었으니, 복수를 위해 총서기에게 반하는 모험을 감행 중인 자안혈조는 내부의 적과도 치열하게 투쟁 중이었다.

잔혹한 인물일지언정 재물에 큰 욕심이 없어서 다행일 정도로 말이다.

만약 그가 다른 중국 고위 관리들처럼 개인적인 착복을 좋아했다면 당가그룹에선 밀어주는 걸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을 정도로, 돈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이 싸움에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 정도로 상황이 만만치 않다.

괜히 연화존자가 대만 정파 연합과 만나고, 당가 그룹이 키운 가장 비밀스러운 무인들을 보낸 게 아니었다.

“우리의 도움으로 겨우 버티는 주제에 뭐? 이제부터 네 지시를 따르라고?”

그걸 모두 잘 알고 있음에도 자안혈조는 얼마 전, 일종의 협조를 요청했다.

앞으로의 작전에서 공안의 지시에 복종하라고.

반발은 불 보듯 뻔하고 당연했다.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한 거국적인 결단일 뿐이다.”

앞선 모든 반발에도 태연하게 서 있던 자안혈조가 나른하기까지 한 얼굴로 남궁준에게 답했다.

받아들여질 리 없는 변명이었지만.

“지랄하고 있네.”

정파와 사파 사이를 간결하게 표현하는 한 단어를 보면, 과연 남궁세가의 일원.

“지랄하지 마. 우리가 너희 말을 왜 들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것은 자안혈조도 마찬가지였다.

“안 들으면 네가 어쩔 건데?”

나른했던 기색을 지우고 순식간에 살기를 끌어 올리는 자안혈조의 모습에 정파 연합 쪽 무인들 역시 내력을 끌어 올린다.

암암리에 끌어 올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대놓고들 그랬다. 공안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상황은 그야말로 일촉즉발.

그렇지만 자안혈조라고 아무 생각 없이 저러는 게 아니었다

“이제 와서 나 말고 다른 대안을 찾기엔 너희 상황도 별로이지 않아?”

만약 그가 코앞의 불운을 모르는 자였다면 진작에 ‘폐기’ 처분 당했으리라. 흉폭해지는 것과 같은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중국 공산당에서 내린 자안혈조의 인성은 충분히 합격선이었던 바.

필요한 만큼 이성적일 수 있다는 소리다.

“만약 내가 잡혀서 사지가 찢기면 그다음은 확실하게 너희 차례일걸?”

상황을 명징하게 파악한 자안혈조의 말에 이번만큼은 남궁준도 할 말을 잃는다.

그 말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둘로 쪼개진 중국 공산당의 싸움은 나날이 격화되고 있다. 각 진영에 포진한 고위 간부들의 면면을 지켜본 인민해방군이 팔짱을 낀 채 승자의 손을 들어 줄 거란 사실은 확실시되고 있으며, 싸움은 각자가 사병처럼 거느리고 있던, 경호업체 등으로 위장한 무림인들을 동원해 이루어지고 있다.

여론전은 차라리 본 게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펜이 칼보다 무섭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위해 쓰이는 말이었으며, 이 분야에서 총서기에 반대하는 자들의 열세는 무서울 정도로 뚜렷하다.

-양안 위기를 격화시키는 대만의 무림인 무뢰배들을 규탄한다!

하나의 중국은 대부분의 중국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기에, 대만 정파 연합의 참전 아닌 참전은 좋은 장작거리가 되었다.

중국 인민들은 궐기하라는 총서기의 부름에 응답할 기세였다. 자안혈조를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일부’는 내부의 다툼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반역자가 되기 직전.

오늘 자리는 이에 대한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이것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그것이 혈마제를 열받게 했다.

“아니, 이 인간들이.”

혈마제 또한 기세로서 다른 이들을 제압하려 했다. 쉽진 않았지만 적어도 보여 주려고 했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이 미친놈들아, 여기서 우리끼리 싸울 때야, 지금?”

그는 불안했다. 연화존자에게 끌려와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양새로 날뛰는 그에게 전투의 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은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당장 얼마 전, 자신과 천지극뢰의 출현을 예상한 총서기 측에서 구주팔황 중 둘을 내보내는 강수를 두는 바람에 큰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

아마 시의적절한 구원이 없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터.

“나야 멀쩡하게 돌아왔다지만 내 동료 새끼는 지금 골골대며 쓰러져 있어. 그게 그렇게 남 얘기 같나?”

혈마제는 큰 부상 없이 빠져나왔지만, 천지극뢰의 부상은 심각했다.

상하이 모처로 옮겨 당가그룹의 무인들이 달라 붙어 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그럼에도 뇌기를 다루는 무공의 특성상 쉽게 고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의 내상을 그는 입었다.

“너희도 언제든 뒈질 수 있으니까 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고. 그리고 솔직히 이대로 가면 공산당 새끼들이 아니라 연화존자 손에 내가 뒈질 거 같거든?”

혈마제의 기세 자체야 다른 이들도 능히 감당할 수준이었지만, 그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과 입에 담은 한 단어는 모인 자 대부분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연화존자의 이름은 그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던 것인데, 뭐. 그것도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연화존자, 연화존자. 그가 뭐라고?”

연화존자의 무서움을 겪어 보지 못하고 귀가 따갑게 듣기만 한, 인성에 문제 있는 사파 무인 자안혈조는 코웃음을 쳤다.

“그가 아무리 강해 봤자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탈출했다는 정체불명의 초고수, 장 노인의 진정한 정체가 연화존자가 아니냐는 짐작은 확신으로 굳어 가고 있지만 아직 오피셜은 아니었다.

일단 대한민국과 국가무공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한 게 크지만 무엇보다 상하이 사태의 격전 직전, 그가 중국을 빠져나와 미국으로 떠난 것이 컸다.

이는 공안의 입장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다.

“그래 봤자 조선의 무맥을 이은 정도로 무슨…….”

남궁세가 전체의 의견은 연화존자에 대한 존중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역시 아니다.

남궁준은 그러한 입장, ‘연화존자가 대체 누구이길래 이토록 저자세여야 하냐’라는 진영의 대표라고 할 만했다. 천마격살의 전설을 믿는 것이냐는 의견부터 대남궁세가의 무공이 어디가 부족해서 연화존자에게 저자세로 나가야 하냐는 생각을 그는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연화존자의 진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혈마제에게는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힌 이야기일 뿐.

“이 미친 새끼들이… 관짝을 보고도 모자라 관 뚜껑 못 박히는 소리 정도는 들어 줘야 피눈물을 볼 새끼들일세?”

혈마제는 진심으로 살기를 뿜었다. 용암이 분출하듯 터져 나오는 그의 내력에 내심 혈마제를 경시하던 자안혈조와 남궁준의 얼굴이 굳는다.

그건 악귀처럼 일그러진 혈마제의 얼굴에서 읽은 진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 똥오줌도 못 가리는 새끼들아, 너희가 감히 연화존자의 일을 망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냐?”

혈마제의 박력에 중국 공안과 대만 정파 연합 모두가 잠시 숨을 죽인다.

“병신들아, 너희들 이거 성공 못 시키면 총서기고 지랄이고 연화존자의 방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 거다.”

“흥. 그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는 모든 것을 바꾸는 자다, 이 어리석은 것아.”

누군가의 치기 어린 말에 혈마제의 살기가 응축되어 가라앉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며, 그가 원하지 아니한 것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천천히, 어렵게 진행되는 건 단 하나야.”

붉게 물든 혈마제의 눈이 좌중을 압도한다.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만약 연화존자가 인간적인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이 지상은 지옥이 됐을 거라고. 알아?”

“그만.”

이어 혈마제가 무언가 말을 더 이으려 했지만, 다음에 출현한 지각생으로 인해 멈춘다.

“이만하면 저들도 알아들었을 겁니다.”

피곤한 얼굴로 나타난 당순이 혈마제를 말린다.

본사의 급한 연락 때문에 조금 늦을 거라던 그가 휘하 병력들을 모조리 끌고 도착하니, 가뜩이나 긴장된 주변이 경색된 것처럼 분위기가 굳는다.

“시간이 없으니 본사의 지침과 요청을 말하겠소. 경청해 주시오.”

당혹과 황망, 그럼에도 어려 있는 굳건함으로 당순은 당가그룹의 지시와 협조사항을 털어놓는다.

“우리의 세력이 밀리는 건 명백하기에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자들을 끌어들이라는 회장님의 지시가 있었소. 그 대상으로는 우선 홍콩.”

“뭐?”

자안혈조가 경악하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평소에 있었던 약간의 우호를 버린 당순은 틈을 주지 않는다.

“홍콩 내 저항 세력을 끌어들이고 육성하라는 명령이오. 이를 위해서 대만 정파 연합에서 인원을 보내 주셨으면 하는 게 그룹의 부탁이오.”

“…생각해 보지.”

홍콩의 독립운동으로 판을 새로 깔겠다는 당가그룹의 의지에 자안혈조는 경악한다. 이래서야 총서기의 여론전을 그대로 따라가는 꼴이 아닌가?

이래서는 될 일도 안 될 거라 생각하는 자안혈조. 하지만 경악이 너무 빨랐다.

“그리고 자안혈조께는 정보 공유를 요청합니다. 대상은 티베트-신장 지역에 대한 모든 기밀 정보요.”

“아니, 잠깐만. 당신들 지금?”

“티베트 독립운동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들은 곧 궐기할 거고, 그 전에 누구를 제거하고 포섭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경악 속에 자안혈조는 몸이 떨렸다. 그동안의 석연찮음, 무수히 많은 다른 대안이 있었음에도 왜 자신을 선택한 것인지에 대한 약간의 미진함이 이제야 떨쳐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일에 협조할 놈이 청안혈사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자신 말고는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거요.”

심지어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이제 와서 당가그룹의 손을 놓았다가는 답이 없으니.

“판첸라마는 어딨소?”

외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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