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20화 (120/175)

120화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된 카르텔 보스 연쇄 살인 사건의 여파는 서서히 남미 전역으로 번져 갔다.

이러한 종류의 살인이 카르텔이란 범죄 조직에만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명령의 체계와 조직의 굳건함이 무너져 가며 이익 창출과 조직원 단속에 악영향을 끼쳤고, 이는 사회 전반에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거대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크고 요란했던 건 조직 간의, 조직원 간의 항쟁이었다.

몇 안 되게 살아남은 카르텔의 잔존 두목들은 각 조직의 누군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 시카리오들을 보내 일으킨 서로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는 것도 사실 무리가 아니다. 카르텔끼리의 전쟁과 경쟁이란 그 얼마나 잔혹했단 말인가?

군부대와 같은 일사불란한 작전 또한 로스 세타스의 출현 이후로는 그리 낯설지도 않은 일.

설령 진실이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함을 알았다.

그것은 조직 내 불안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공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불온함에 가까운 뜨거운 감정에 가까울 터.

상납되어야 할 자금이 주인을 잃은 채 부유하며 이를 부추겼다.

하위 조직원들의 욕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주인을 잃은 자금은 야심만만하거나 혹은 무모한 하위 조직원들의 내면을 부추겼기에, 이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생존 역시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살아남은 두목들은 알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한텐 좋은 일이지.”

그렇게 칠익회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작업 환경이 조성된다.

남미 팀과 최익현의 팀은 미국의 정보 자산을 제공받으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녔다. 그게 아니더라도 칠익회 남미 팀이 진작 구축해 놓은 자산들, 돈 까를로 씨와 같은 인맥들을 이용해 카르텔 조직원들을 죽이고 다닌다.

전처럼 불을 지르고, 폭탄을 터트리고, 총을 쏘고, 암살하고.

하지만 계획의 첫 번째 단계에 있었던 과시적인 폭력의 증명보다는 세심하게 진행했다. 이는 계획의 중간 단계로 카르텔의 혼란을 부추겨 이들의 힘을 빼고 궁극적으로는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서로 간의 증오와 분쟁을 조장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

아울러 부수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목적으로 민간인 보호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화존자의 수하들이자 대자들인 이들 칠익회는 먼 이국 땅에서도 정파의 의협을 잊지 않아, 무고한 죽음을 최소화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긴 했어도 약간의 노출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이에 남미 전역에는 동방에서 온 무림인들이 카르텔들을 무찌르고 다닌다는 진실에 근접한 도시 전설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항쟁은 카르텔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격하를 가져왔다.

-카르텔의 무도한 범죄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섰습니다.

-주 정부는 이와 같은 불법적인 무력 사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경고를 남겼습니다.

-언제라도 국민의 평화를 위해 작전에 임할 수 있다고 신임 서장은 밝혔고…….

서로 싸우다 죽기 바쁜 카르텔은 이제 전처럼 사회 전방위에 압박을 가할 능력을 상실했다.

예전 같았으면 비참한 죽음이 무서워 제대로 보도조차 나지 않았을 카르텔에 대한 비난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고, 시민들 역시 억눌렸던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기 시작했다.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편의를 제공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뇌물로 회유하는 것도 정도껏이어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전쟁 중이라 아예 만나 주지 않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이것이 다 몰락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마약을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는 비단 남미대륙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었으니까.

대규모 미국계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간 있었던 미국의 의도적인 방치에 가까운 무관심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무어라 변명하든 간에 남미를 지옥으로 만든 데에는 미국의 실수 혹은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저 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도 모자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바다 건너 작은 나라의 핵폭탄에도 질색하는 미국이 남미의 범죄 조직들만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어떤 생각이란 게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여길 수밖에 없지.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문제고.

아무튼 남미의 정치인들은 미국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규모의 자금들, 기업 투자와 사회복지 재단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오는 돈을 보며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된다.

미국의 생각이 바뀌고 있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는데, 돈 냄새는 확실하게 난다는 것을.

정답이었다.

“앞으로 북미와 남미의 건설적이고도 긴밀한 관계를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달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비단 어느 계층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체가 그랬다. 오죽하면 카르텔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뭔가 희망찬, 삶이 나아질 거라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정도.

당연히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긴 했다. 국제 관계에서 좀 더 미국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거나 아니면 약간의 권리양보 같은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건 예전에 있었던 미국의 갑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이처럼 희망찬 남미 여러 나라의 분위기에 비해 백악관의 한편은 사뭇 싸늘한 분위기다.

말문의 물꼬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님에도.

“…한국에서 온 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소?”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답은 즉각 나온다.

“그들은 주변의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해마도가 이끄는 한국인 무림 집단은 본격적인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그것은 이제는 완전히 떨쳐 낸 일본계 우익들의 방해를 떨쳐 냄과 동시에 미 연방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

이미 풍부했던 자금을 동원, 진기요상을 통한 마약중독 치료 프로그램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인데, 시작이 매우 좋다.

필라델피아에서 보여 준 드라마틱한 도로 환경 개선이 큰 힘을 발휘한 게 크다.

“전미의 마약중독자들과 그 가족들이 캘리포니아로 대규모 이동 중에 있습니다.”

“대규모 이동?”

“예. 헬기로 관측해야 할 정도로 긴 행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뉴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라고 불렀다.

부유한 자들은 비행기, 혹은 정말 백만장자들은 자신들의 전용기를 타고 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더 많았다. 가족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비행기 자리가 없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리를 바꿔 가며 며칠을 운전해서 도착한 가족도 있었고, 어떤 마약중독자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함께 갈 다른 가족들을 모아 버스를 대절해 운전해서 오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오게 만든 건 희망이었다.

필라델피아로 모여든 마약중독자들을 청해마도를 비롯한 무림의 고수들이 한 달 만에 치료한 게 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마약에 중독되어 기묘한 몸동작을 취한 채 거리에 서 있던 자들, 제 의지로 걷기는커녕 상체와 하체가 아예 따로 놀며 망가졌던 사람들은 동방의 신비로운 힘으로 그들 안의 독을 제거하고 서서히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이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마약중독자의 가족이 있을 리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고,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는 가족이라면 캘리포니아로, 동방의 고수들이 머무른다는 저 땅으로 아니 갈 수 없다.

저 예전, 서부 개척 시대에 금이 있다는 소문을 믿고 몰려갔던 옛 사람들과는 달리 현재의 사람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황금이 아니라 분명하고도 확실한 희망을 찾아 떠나고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이야기.

백악관의 정치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의 접근이다.

“그 덕분인지 이번 하원 선거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고 당에서는 관측하고 있습니다.”

우한폐렴 이후 이어진 여러 가지 악재 속에서 추락한 경제난 및 다른 악재들로 신속하게 떨어졌던 지지율은 완만하게 상승 중이었다.

그것은 실제로 시민들이 체감하는 변화, 거리에 돌아다니는 마약의 감소가 컸다.

“그래서 새로운 표어로 ‘안전한 거리’라든가, 아니면 ‘안심할 수 있는 생활’… 뭐, 이런 걸 생각 중입니다.”

최소한 마약으로 인한 문제가 확연히 줄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약 산업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 공급자와 수요자와 유통업자 모두를 줄이는 최근의 조치들이 효과를 발휘했음을 방증했고 이는 현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적 치적으로 차곡차곡 환산 중이었다.

잦은 실언으로 하락했던 지지율은 그 덕분에 반등하고 있으며, 연화존자와의 거래는 바로 그런 것을 의미했다.

“괜찮아 보이는군.”

애초에 정치라는 것이 그랬다. 어제까지 죽일 놈이라고, 치매 걸린 거 아니냐고 욕을 먹다가도 하나 잘하면 다시는 없을 지도자가 되는 일이 흔했다.

유명한 정치인 중 인간적인 결점 하나 없는 이가 어디 있던가? 뭐, 가끔은 결점투성이 그 자체인 일도 있지만, 그런 건 논외로 하고.

대통령은 적어도 지지율에 목이 졸리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 심히 안도했다. 그는 연화존자와의 거래가 나름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에 한숨을 돌리지만, 그로 인한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디로 갔소?”

연화존자의 행방은 미국에게도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사라졌다. 비행기도, 배도 그 어떤 것도 타지 않고 유령처럼 사라진 그를 백악관에서는 찾았지만, 청해마도는 답해 줄 의무가 없다고 했고, 추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대통령은 그래서 두렵다.

“아니, 그 전에. 최후의 기사는 뭐라고 했소? 기사단 양성에 문제는 없다고 합니까?”

연화존자의 협박 아닌 협박이 일어난 후, 대통령은 최후의 기사와 그가 만들고 있는 기사단에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말라는 긴급 행정명령을 내렸다.

명분이야 미국 시민의 마약 치료를 외국에 온전히 맡길 수 없다는 거였지만, 진실을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은 그것이 연화존자라는 절대자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안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의 나이가 그토록 많음에도,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음에도 그만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도.

“우리에게도 그런 자들이 필요하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신념에는 어긋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소.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루 경도 밝혔듯이 그건 너무 막대한 부담이 됩니다. 하원에서 동의가 될는지…….”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오.”

대통령은 강한 확신을 가지고 선포한다.

“이제 우리 미국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하오. 강력한 군대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이는 머지않아 우리만의 깨달음이 아니게 될 거란 말입니다.”

연화존자의 출현과 그에 따른 변화는 미 대통령의 늙은 정신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더 오랜 세월이 걸릴 거라고, 혹은 이루어 내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변화가 거대한 파도로 밀려오고 있음에 대한 자각이었다.

“하느님이 축복한 이 땅에도 그와 같은 힘이 필요합니다. 어찌 되었건 알렉산드루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친구. 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끼지 말고 지원하도록 하세요.”

더는 무공이란 힘이 음지에서 조각난 채 머물러 있거나, 기타 여러 제약으로 묶여 있지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 국가무공원이 건립되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하면 모르기도 힘들다.

당장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뉴 골드 러시가 그랬고, 상하이 사태가 그랬으며, 남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희망이 섞인 변화의 흐름까지 그랬다.

“그래서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이윽고 나온 참모진의 대답에 대통령은 힘이 빠진 듯 의자의 등받이에 기댔다.

막을 수 없는 재앙이 다른 곳으로 갔음에 안도하는 표정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