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일본 총리의 황망한 죽음은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한 국가의 수반이나 다름없는 이가 대낮에 폭탄 테러로 죽었다는 공포가 그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경호처의 무능은 경악에 가까웠다.
숫자만 많았지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었던 것이다. 사전 첩보를 입수하지도 못하고, 인원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에 전 일본의 비난이 집중된다.
총리를 향해 날아가는 폭탄을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보고 있던 경호원들의 모습이 담긴 CCTV가 뉴스를 통해 방영된 건 그야말로 공개 처형이나 다름없었다. 총리의 경호를 맡은 이들의 무능을 문자 그대로 까발린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건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회적 살인을 당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분노한 군중은 돌을 던질 죄인이 필요했고, 이번 죄인은 그리 무고하지도 않았으니.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왜 그랬는지조차 밝혀 내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무능.
“현재 정부는 전력을 다해 총리 암살의 배후와 동기를 조사하고 있으며…….”
통제되지 않은 총리 암살의 현장 속에서 유유히 빠져나간 연화존자를 일본 정부는 꼬리조차 잡지 못했다.
물론 의심이야 있으리라. 이 일에 무림인이 개입한 것은 물리법칙을 무시한 것처럼 천천히 날아간 도시락 폭탄의 모습(일본의 극우계는 마치 나중에 다시 보라는 것처럼 뚜렷한 모양새로 날아간 도시락의 외양에 더욱 분노한 거 같았지만)은 내공의 사용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명백한 증거.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저토록 역사적 고증의 산물 같은 모습과 상황에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한국인과 일본인은 얼마 없으리라.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지만 조문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현 대한민국 국가무공원 소속 지윤호, 소위 강호인이라 불리는 자들 사이에서는 흑응이라 불리는 남자는 이것이 억측이라고 주장한다.
“저희가 총리를 죽여서 얻을 이익이 뭐가 있습니까?”
그런 흑응의 말에 앞에 앉은 사내는 침통한 얼굴로 되묻는다.
“…그 얘기를 왜 내게 와서 하는 거요?”
흑응의 말에서 진실 여부를 따지지 않는 남자는 오직 불편한 기색만이 역력했다.
그럴 법도 했다. 직업이 정치인인 그는 지금처럼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총리 암살의 배후로 겨누어진 상황 속에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의 위험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다가는 옴팡 뒤집어써 버릴 것이다. 설령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상관없다.
민의라는 것은 진실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정치를 업으로 삼은 일본 공산당의 당수가 모를 리 없지.
“나와 그쪽이 이에 대해 할 말이 아닌 거 같은데.”
일본 공산당을 이끄는 노회한 정치인은 흑응과의 독대가 자칫하다간 정적들의 공격에 불을 지펴 줄 거라는 걸 알기에, 거리감과 의심을 유지한 채 묻는다.
“왜 날 찾아온 거요?”
“그럼 왜 제 만남 요청을 받아 주셨습니까?”
그렇지만 흑응 역시 만만하지 않아 되레 묻는다.
그러는 너는 날 왜 만난 거냐고. 너의 욕심이 이 자리를 성사시킨 게 아니냐고.
“제가, 아니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탐나서 그러신 거 아닙니까?”
“…크흠.”
흑응이 일본 공산당을 이끄는 자를 만나자며 넌지시 언급한 것은 온 일본이 바라 마지않는 사무라이 검법의 행방이었다.
정치인을 상대하는 방법으로 참으로 적절하게도, 하지만 무림인답지 않은 모호함으로 그것을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니, 그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거절하지 못한 일본 공산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 오늘 만남의 배경이었다.
“피차 서로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하시죠. 당에서도 원하는 게 있고 저희 쪽에서도 원하는 게 있으니, 오늘 저희가 한 자리에 앉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본래라면 운하신권이 왔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뜻하지 않은 경로로 얻게 된 사무라이 검법이 일본 내에서 가진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최근 극에 달한 무공으로도 이기지 못한 세월에 몸이 불편한 운하신권이었기에, 이 막중한 책무는 흑응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연화존자가 벌인 일의 마무리이자 다 그린 용의 눈동자에 점을 찍는 것과 같았으니, 흑응은 두 어깨에 걸린 책임감을 자각하고 있다 하겠다.
“이봐, 솔직히 말하도록 하지.”
그리고 이것은 일본 공산당 쪽에서도 마찬가지.
정직한 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전쟁광 극우주의자들의 대변인이나 다름없던 총리가 죽어 버린 건 나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야.”
“과연 수틀리면 정치인 따위 칼로 찔러 버리던 나라다운 발언이군요.”
“비꼬지 말라고. 난 나름 결단을 내리고 하는 말이니까.”
사나운 기색으로 말하는 늙은 정치인은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멋대로 불을 붙이지만, 흑응 지윤호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 과장된 태도가 차라리 기껍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얘기야, 우리의 주장이야 이미 알고 온 것일 테지만.”
“맞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사무라이 검법을 손에 넣고 착수한 일 중 하나는 만약 이를 가지고 일본 정계에 영향력을 미친다면 누구를 파트너로 삼아야 하냐는 것이었다.
면밀한 검토 끝에 나온 결론은 일본 좌파 중 공산당이었는데, 사실 이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북한 싫어하고, 중국 싫어한다고 얘기하는 거야 어디든 아니 그러겠습니다만, 진실로 이를 관철할 만한 쪽은 일본의 공산당밖에 없더군요. 특히나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선을 공유할 만한 정당은 말이에요. 저희 입장에서 크게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닙니다.”
다른 건 몰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실된 사과를 할 만한 정당은 일본에서 공산당, 하나밖에 없다는 게 이번 만남에 크게 작용했다.
연화존자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이게 되지 않는다면 협력할 필요도 없다면서.
하여 조사를 해 보니 마땅히 사과해야 할 전쟁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일본의 평화병자로 불리는 좌파들이었고 개중에서 그나마 쓸 만한 건 공산당이었다.
“북한을 비난하는 것도 그렇지만 중국을 싫어하는 것도 진심이니, 그 정도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이란 이름을 가질 자격도 없다고 비난한 게 인상적이더군요.”
“그것참 고맙기도 하군. 그래서, 물건은 확실한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불법적인 일 같기도 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친 확실한 물건입니다.”
“어떻게 믿지?”
“세계에서 가장 능력 있는 내공 사용자들이 모인 기관의 보증을 믿으십시오. 만족하실 겁니다.”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본 공산당의 늙은 당수를 보며 흑응은 미소 지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가져왔다고?”
“물론입니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일이 잘 진행된다면 바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에 찡그렸던 얼굴이 펴진다.
이윽고 서서히 퍼지는 욕심. 흑응은 여기에 대해 경고한다.
“그러지 않으시리라고 믿지만, 얼마 전 일본의 총리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걸 잠시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 안에 담긴 명백한 협박. 수틀리면 누가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가득한 그 말에 분노와 공포가 퍼지는 걸 흑응 지윤호는 선명하게 본다.
주도권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사무라이 검법을 드리겠습니다. 다음의 조건을 지키신다면, 이건 이제 일본 공산당의 것이 될 겁니다.”
“조건, 조건이라.”
“예. 저희도 얻는 게 있어야 하니까요.”
“총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의혹을 해소시켜 달라는 건가?”
“네? 하하하하.”
그리고 웃었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에.
“고작 그딴 게 조건입니까? 아무래도 물건의 가치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뭐라고?”
“일본이 우리를 의심하면 뭘 어쩔 겁니까?”
국가무공원이 일본의 의심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안 늙은 공산당원은 당혹스럽다.
“어쩔 수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자신을 찾아온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 양국 외교의 악화를 우려하여 국가무공원이 선물을 준비했고, 이를 위한 중재를 위해 자신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렇게 싸구려로 팔지 않습니다. 조건을 빨리 말해야겠군요.”
아니었다.
“우선 저희는 일본 공산당의 일부 노선을 수정하셨으면 합니다. 가장 큰 건 주일 미군 감축에 대한 일이겠군요.”
“…그건 내정간섭일세.”
“오, 아니죠. 아직 내정의 영역이 아니라 주장의 영역 아닙니까?”
싱글거리는 흑응의 얼굴이 미치도록 얄밉고,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머리가 뜨겁다.
늙긴 늙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다음 말을 들으면서 더더욱.
“군축 감소에 대한 주장도 전향적으로 바꾸셨으면 합니다.”
“뭐라고?”
“앞의 것과 동일합니다. 주장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극우 꼴통들처럼 평화 헌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거야 시킨다고 하시지도 않겠지만, 최소한 상식적으로 굴라는 겁니다. 자위대가 훈련하는데 플래카드 걸고 반대해서 일본 국민들한테 안보 의식이 0이라는 소리를 듣지 말라는 게 저희의 요구입니다.”
혼란스럽다. 대체 대한민국에서 온 이 남자가 뭘 위해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 말을 들을 때까지는.
“그로써 저희는 일본 공산당이 오래 갔으면 합니다. 지금 자민당의 장기 집권 독주가 왜 이렇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까? 다 그들을 견제할 만한 정치적 역량의 부재가 아닙니까?”
“자네, 지금……?”
“젊은 인재들을 받아들이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분을 느낀다.
“공산당에 젊은이가 있긴 합니까? 다른 건 몰라도 안보 의식이 부재하다는 인식은 고치세요.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대면 이상한 놈 같아서라도 어울릴 마음이 들지 않을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른 늙은 정치인은 되묻는다.
“자네는 우리가 크고, 강해지길 원하는 건가?”
“맞습니다. 이건 그를 위한 선물입니다.”
흑응은 가방에서 얇지만 튼튼한 나무 상자를 꺼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일이다.
“저희는 대화가 가능한 지도자가 이웃에 있기를 원합니다.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없고, 전범에 대한 추도와 참배를 지속하며 증오를 부추기는 지도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이란 걸 갖춘 선량한 이웃이 우리의 주변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말한 흑응이 다리를 꼬며 웃어 보인다.
“오직 그것만을 원합니다. 당신들의 나라가 잃어버렸던 이것을 돌려주는 건 우호의 상징이자, 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가 되고 싶다면 진실된 자세로 이를 받아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와 같은 흑응의 말에 한참이나 고민하던 공산당의 정치인은 연거푸 담배 세 대를 태웠고, 손가락이 데일 지경이 되어서야 가슴의 질문을 겨우겨우 꺼냈다.
“혹시 이 사태, 자네들인가?”
흑응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저 미소가 가진 함의야 충분히 알아들을 일.
늙은 정치인은 그로써 알았다.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더 많은 죽음과 혼란이 이 나라를 덮칠 것이라는 걸.
그것은 평화 병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무장과 비폭력에 대한 신념이 있는 그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으니, 그의 지난 삶이 결단을 촉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군.”
흑응은 웃으며 자리에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저희 또한 그렇습니다.”
다음 날 정오, 일본이 잃어버렸던 사무라이 검법이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대가 없는 공여로 일본 공산당에게 맡겨져 돌아왔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연화존자의 행사에 대한 반발이 세상에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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