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티베트에서의 봉기는 당하는 쪽에서는 급작스럽게, 봉기를 실행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괜찮을 수 없게 일어났다.
여기에는 당초 기대했던 것 이상의 외부 조력이 있던 것으로, 티베트가 강제 합병된 이후 전무후무한 규모로 이루어진 무장 봉기에서 제갈패밀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사업을 논의하겠다며 미리 들어갔던 제갈패밀리의 일원들은 티베트 자치구의 한족 유력자들을 일제히 암살하며 포문을 연 것이 바로 그것.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무장 독립의 열기가 뜨거웠던 자치구였던 만큼 상황에 따른 프로토콜이 준비되어 있긴 했지만, 그것도 계획의 책임자들이 일제히 죽으며 일어난 혼란에는 속수무책.
티베트 자치구 내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일어났다.
동시에 제갈패밀리의 동조자들, 당가그룹의 후원으로 성장한 반중공 그룹 역시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했다. 군대 및 경찰을 습격, 무기를 탈취하고 일제히 들고 일어나는 데는 이들의 역량이 주요한 역할을 했던 바.
결과적으로 무장 봉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티베트 무장 독립을 주장하는, 스스로를 ‘설산사자단’이라 부르는 이들은 중공군의 추가 개입을 막기 위해 모든 도로를 끊거나 점거한 후 자치구 내의 한족 세력을 일소하기 위한 격전을 연일 벌이는 중이었으니.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아도 이보다 크게 맞을 수 없었다.
비록 대다수의 정보 역량이 상하이 사태로 인해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적대세력에 대한 감시를 손 놓았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티베트와 위구르 쪽은 그러한 잠재적 적대 세력의 1순위였던 것인데, 그럼에도 이 꼴이 났으니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또 없는 일.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는 셈이었다. 티베트의 성공적인 봉기에 탄압받던 소수민족들 또한 동요 중이었고, 이래서야 가뜩이나 상하이 사태의 발생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하던 현 총서기의 연임은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
혼란의 불길은 이제 중국의 동쪽과 서쪽, 양쪽에서 타오른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중국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게 역사적으로도, 실효적으로도 증명된 일이다.’
일본 공산당의 당수가 이런 말을 당당히 내뱉고 오랫동안 다수당인 자민당과 맞서 싸울 정도로, 일본 정계는 느슨한 궤도를 이룬 것처럼 보이던 평소와 다른 느낌의 혼란에 빠져 있다.
그것은 근래 일본 공산당이 되찾아 온 사무라이 검법이 가진 위상 덕분이라 해야 할 일.
‘오직 선의, 또 선의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이 귀한 것을 돌려준 대한민국 정부와의 우호. 나아가 한미일의 강력한 공조야말로 결과적으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위한 길임을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과연 이게 평화병자로 불리며 자위대를 조롱하고, 미국과 중국 모두를 비난하기 바쁘던 일본 공산당의 당론이 맞기나 한 건지 의아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본인들이 많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뒤집어 보자면 그만큼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어 있다는 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산당이 미쳤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아!’
자민당의 독주는 너무도 오래된 일이었고 그만큼 지겨운 일이었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딱히 대안이 없다는 원인이 컸다.
본래 사람은 바뀔 것 같은 희망이 없으면 정치에서 손을 놓는 법. 계파 투쟁 끝에 근래 극우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자민당의 독주는 투표권자들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변화를 찾아 헤매기에는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인 건 여기도 마찬가지였던 바.
거기에 더해 자민당의 독주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다른 정당에서 설령 정권을 잡더라도 미숙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으니, 달리 대안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러니까 사무라이 검법을 손에 넣고 전통의 정신과 문화를 복원하여 일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공산당의 포부에 자민당의 일부가 본래 당적을 이탈하여 가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산당이야말로 작금 일본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무력감과 구태를 씻어 낼 정당임을 우리는 확신하게 되었다!’
…라고 외치며 공산당에 가입하는 정치인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정치적 생명이 끝나 가는 이들이 가입하는 경우였다. 계파가 정리되거나, 개인의 실책으로 다음 선거에서 자리를 보전받지 못할 거라는 판단 아래 기민한 판단을 내린 이들이 주로 이쪽에 해당했다.
정치라는 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과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마굴이나 마찬가지이니만큼, 여기까지야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뭘 못 하랴? 어차피 공산당 자체도 예전의 모습, 좌파 논리에 찌들어 일반인의 상식과 유리된 각종 주장들을 펼치던 걸 폐기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취하기 시작했으니, 묻어 가기에 딱 좋은 시기이기도 했다.
선점자가 좀 더 큰 이익을 누릴 것이 분명했다. 당장 공산당의 바뀐 모습에 일본 국민들이 우리 평화병자들이 바뀌었다며 눈길을 보내는 모양새이지 않나?
전당대회를 겸해 일어난 사무라이 검법을 익힐 사람들을 모집하는 선발의 열기는 그만큼 뜨거웠다.
문제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 이른바 자유민주당 내에서도 힘 꽤나 쓰는 걸로 알려진 일부 중진들의 공산당 합류.
여기엔 세상에 밝히기 어려운 뒷사정이 존재했으니, 이들 대부분은 극비리에 일본으로 입국한 대한민국 국가무공원 소속 비밀 요원들과의 접촉이 있었다.
‘미국에서 일본 우익들의 자금 흐름을 확인하니, 의원님과 재밌는 관계가 있더군요.’
‘…지금 그걸 너희가 어떻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죠? 둥지를 옮기셨으면 합니다. 서로를 위해서요.’
대략 이런 발언이 오고 가고 나서 그들은 공산당으로의 합류를 선언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수상쩍은 자금의 흐름을 해명하는 것도 모자라 숨겨 놓았던 온갖 치부가 까발려질 판국이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공산당은 이들 모두를 받아 줬다.
그래야 한다는 흑응의 말에 일본 공산당은 극심한 반발을 보일 뻔했지만, 그러면 이 모든 걸 없던 일로 하자는 말에는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1세기가 열린지도 이십여 년. 그 어느 때보다도 공산당에 대한 호감이 높은 요즘 시기에 이 마법의 도깨비방망이를 어떻게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엔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중국의 혼란은 일본 공산당의 늙은 정객들로 하여금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대한민국 국가무공원과 맞섰던 중국 공산당이 겪고 있는 내홍, 비록 불의한 그들에게 공산당의 이름조차 아깝다며 일갈하기는 했었지만 어쨌든 저만한 나라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으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바.
“그러니까 당신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겠지?”
이를 연화존자는 친절하게도 설명했다.
그간 일본이라는 나라를 뒤에서 조종하던 소위 어르신께 그는 예의 바르게도 당신이 쌓아 왔던 견고한 성채가 삽시간에 무너졌음을 조곤조곤 이해시킨다.
“완전 망하셨어요, 어르신.”
일본의 극우 세력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에도 관성이란 게 있어 득세하던 것이 삽시간에 사라질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미국에서 운용 중이던 자금이 강탈된 것도 모자라 일본 내의 자금도 서서히 말라 갈 예정이고, 사람마저 빠져나갔으니 몰락은 기정사실.
“다시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못 하게 우리가 앞으로 관리를 해 볼까 해요. 그거참 재밌겠죠?”
얄밉게도 말하는 연화존자에게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꽤나 심각한 상황, 애지중지하던 연못으로 죽은 경호원들의 피가 흘러 내려가는 와중에 느끼는 격렬한 공포감 때문.
연화존자는 그것을 알아본다.
“뭐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 최소한 당신 같은 노인네 지켜보겠다고 죽은 경호원들에게는 비통한 사죄의 말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무공은 없을지언정 어르신의 경호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잘 훈련하고 또 잘 무장한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연화존자의 습격을 감지한 그 시점부터 위치를 잡고 일제사격 및 자살에 가까운 지연 작전을 속행하여 어르신의 탈출을 거의 성공시킬 뻔하기까지 했으니까.
“할 말이 없으신가?”
아무리 연화존자가 오늘, 크게 살계를 열겠노라 마음먹고 왔다지만, 그것이 제 임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존중마저 없다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건 생각조차 않는 욕심 많은 노인네와 다르게.
“네놈… 후회할 거다.”
“후회?”
“이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거라 믿나? 네놈의 나라가 이러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천만의 소리!”
어르신은 지팡이를 내던지며 외친다. 긴 세월,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가운데 마지막 결의라는 것을 한번 보이려는 걸까?
“네놈 조센징 놈들은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일본을 따라올 수가 없다고! 천하고, 경망스러운 것들. 모두 베끼고, 돈만 좇고, 예의와 극기라곤 하나 없는 놈들!”
적어도 본인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만, 애석하게도 연화존자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
“조금 힘이 생겼다고 곧바로 이런 무도한 짓거리를 벌이는 걸 봐라! 두고 봐라! 비록 오늘, 이 늙은 몸은 죽을지언정 다시 우리는… 커헉!”
“더럽게 시끄럽네.”
연화존자에게는 그저 짜증스러운 헛소리에 불과했다.
“무도한 짓거리로 따지자면 다른 거 얘기할 것도 없이 2차 세계대전부터 잘 생각해 보시구요.”
옳고 그름 같은 것을 따지며 흔들리기에는 연화존자 또한 살아온 세월이 깊었다.
그라고 왜 일본에 대한 증오가 없겠는가? 젊은 외모의 그이지만서도 당장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들은 일제시대와 전쟁 후의 처참함을 겪은 이들.
듣지 못했을 리 없고, 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근데 살아서는 힘드실 것 같으니, 뒈지신 다음에 합시다.”
“끄르르륵…….”
“제가 좀 바빠서 늙은이 헛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네요. 별 유감은 없을 거 같습니다. 살아 있어 봤자 창창한 젊은이들 피나 빨아먹으며 살아갔을 테니, 여기서 돌아가시는 걸 다행으로 여기도록 합시다. 알겠죠?”
그렇게 일본 정재계를 주무르며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던 어르신은 연화존자의 손에 죽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다. 연화신공에 의해 가슴이 움푹 패고, 머리가 깨진 경호원들의 시체 사이로 나란히 누워 이들을 처리하러 올 사람들을 기다리는 운명에 놓인다.
삶은 몰라도 죽음만은 이토록 공평하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연화존자가 어르신을 죽이자 모습을 드러낸 건 오랜 시간 그의 곁을 보좌했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흑응.
“고생은 무슨.”
긴 시간 만에 마주함에도 어색함 따위 없는 그들은 편한 마음으로 걸어 정원을 빠져나오고, 그런 그들을 못 본 체하며 청소부들이 들어선다.
“나야 주먹이나 쓰면 되는 일이지만, 넌 귀찮은 인간들을 상대하지 않았어?”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연화존자가 어르신을 치울 수 있었던 것에는 흑응의 활약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일본 정계가 완전히 개편되는 가운데, 대단한 권위와 실질적인 힘을 지니고 있던 어르신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이들에게 깔끔한 뒷마무리를 약속하며 살살 꾀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흑응은 해냈다.
연화존자는 국외의 일은 흑응이 맡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운하신권의 뒤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하던 현천문의 장문 제자가 이을 테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점점 자기 자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고, 오랜 아버지 같은 친우의 병환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시간을 내야겠지만 아무래도 요즘 벌이고 있는 일이 일이다 보니, 사사로운 감정으로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움이 많지 않은가?
“다음 비행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래. 가자.”
연화존자는 인도로 향하는 전세기를 타고 곧바로 일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