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이 나라는 뭔가 잘못됐어.”
빗발치기보다는 차라리 건조한 겨울 공기를 이기지 못한 노인의 발작적인 기침처럼 쏘아지는 총알 사이로 최익현은 투덜거린다.
그런 그의 바로 옆에서 소리로 날아오는 총알이 방향을 가늠하던 칠익회 남미 팀장은 그런 최익현을 쳐다도 보지 않고 묻는다.
“또 뭐가?”
“뭔 놈의 나라가 총이 이렇게 많은 거야, 대체?”
최익현의 불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왔다.
“개나 소나 총을 들고 다니냐고, 대체. 아니, 이럴 거면 최소한 총알이라도 잘 관리하든가. 퍽 하면 쬐그만 애들이 총 가지고 장난치다가 오발 사고로 엄마가 죽고, 아빠가 죽고, 친구가 죽고. 이게 뭔 지랄인지, 진짜.”
“…….”
“왜, 어떤 미국 개그맨이 그랬더만. 총알이 한 오백만 원쯤 하면 쏴 죽여도 죽일 만했다고 다들 납득할 거라고.”
남미 팀장은 답하지 않는다. 미국의 총기 문제가 본인들도 굉장한 문제라고 생각함에도 고쳐지지 않는 이유,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생부터 시작된 시민의 자유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 있다는 말 따위는 입에 담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답은 지금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새삼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니, 저건 그냥 최익현의 버릇일 뿐이다.
칠익회의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버릇 같은 것, 저 수다스러움이 항상 총칼 위에서 사는 무림인의 습관 비슷함이란 걸 그는 안다.
그만큼 여유가 있는 자리라는 사실 역시도.
본래대로라면 각자의 팀을 꾸려 이끌고, 또 한창 북미와 남미를 오가며 할 일이 많은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건 이들이 하던 일의 단계 중 무력으로 해결할 일이 얼추 끝나기에 가능했다.
남미에서 세력을 공고히 하던 카르텔의 관리자들을 암살하고, 불법적인 자금의 흐름을 틀어막고 법의 테두리 안으로 인력들을 끌어모은 뒤 칠익회는 빠졌다.
하나하나 다 떠먹여 줄 수는 없었다.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다.
세상에 나쁜 놈이 적어지고, 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국가무공원 소속으로 이들이 집중해야 하는 건 미국이라는 나라.
믿기 힘들지만 믿어야 하는 우방국이었다.
“지금도 봐. 우리가 해 놓은 게 있는데도 도심 한복판에서 이 모양이니, 원.”
남미에서 들어오는 마약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중국에서 보내오던 값싼 펜타닐마저 점점 규모가 내전 그 이상이 되어 가는 중국 본토의 난리로 사라져 가는 지금.
미국 내 마약 생태계는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라 하겠다.
“어디서 대마 냄새도 희미하게 나고 말이야.”
“한 번에 약을 끊는 건 힘든 일이지.”
여상하게 말하는 남미 팀장과 불쾌하다는 듯 코를 찡그리는 최익현의 여유와 달리, 미국의 마약중독자들은 요즘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마약에 의한 중독과 금단은 개인의 의지로 끊기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만약 그게 쉬웠다면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아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지 않았을 터.
실제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마약과 범죄를 해결하고 그 대가를 미 연방 정부에게서 받아 내겠다는 연화존자의 구상에 우려를 표시한 이들이 내부에도 많았고, 남미팀장 역시 사실 그러한 이들 중 하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이거였다.
‘과연 마약을 하는 자들이 마약을 포기하고 싶어 할 것인가?’
적당한 약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비율이 적다, 많다를 논할 수 없겠지만, 거대한 나라이니만큼 모아 놓으면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마약에 대한 자유를 달라고, 수십 년 전 유명한 프랑스의 문호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외친 그 구호를 거리에서 말하고 있다.
이른바 시민의 자유였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권리, 천부로 태어난 그것을 지키겠다며 마약을 원하는 미국의 시민들은 들고 일어났다.
그들의 상태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들의 배경이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이들 뒤에 마약 산업이 무너지며 경제적 손실을 입은 여러 투자자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사주가 있었음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전미총기협회가 존속도 모자라 미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상적 기반, ‘국가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었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라는 개념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마약 통제에 반발하는 가장 주요한 기반이었다.
이는 국가무공원 입장에서 그리 마음에 드는 전개가 아니었다.
“끈질기기도 하지. 이쯤이면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알고도 저러는 거 아니겠어?”
가장 부드러운 이들은 마약을 치료할 권리뿐 아니라 마약에 중독될 권리가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장 과격한 이들은 대한민국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마약중독 치료 프로그램마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정치 시민 단체로 거듭났다.
잘 조직되어 움직이는 그들의 행태는 배후자들을 추려 낼 수 있게 만들었고, 칠익회는 그런 이들을 처리하고자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 죽이기를 예사로 알고, 공권력을 우습게 알아도 한참을 우습게 알던 남미 각국의 카르텔마저 박살 냈는데 배경이 미국이라고 다를 것인가?
그 결과가 이것이다. ‘권리를 수호하는 순수한 시민들의 모임’에 속해 있는 범죄자들을 솎아 내는 것.
“들어가자.”
“어.”
‘권리를 수호하는 순수한 시민들의 모임’ 내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뭐, 어디라고 다를 것인가? 천 명이 모이면 천 명이 다 다른 사람이었다. 배경도, 성격도, 목적도.
북상한 칠익회는 그런 이들 중 범죄의 요소가 있는 자들을 타격 혹은 잡아다 FBI 등에 넘겼다. 그 과정에서 불거질 불법성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던 덕에 이 마약에 쩌들 권리를 누리고 싶어 하는 순수한 시민들께서는 공포에 떨며 행동이 위축.
기자회견 등에서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미 정부가 우리 시민들의 모임을 공권력을 동원해 해산시키고자 합니다! 우리의 동지들이 연일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불법성을 규탄합니다!’
이에 대해 미 정부는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아니었으니까. 지금 저렇게 허공을 밟아 가며 건물 안으로 진입, 저항하는 자들을 툭툭 쳐서 기절시키는 이들은 미국 정부 소속이 아니었다.
“자, 미스터 앤더슨 씨.”
쓰러진 자들을 케이블 타이로 묶는 수하들 사이로 최익현과 남미 팀장은 한 사람을 끌고 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벽도, 튼튼한 문도 없는 방이었지만 두 명의 고수가 지키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
기막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최익현이 방문에 기대고 선다. 총기를 언제라도 쏠 수 있게 준비해 놓은 상태로 귀를 열어 놓은 채 대기한다.
심문은 남미 팀장이 맡는다.
“너, 너희 누구야… 왜, 왜 원숭이 새끼들이 왜…….”
“모리아 앤더슨 씨.”
남미 팀장은 나직하게 질문한다. 명백한 인종차별적 발언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칠익회의 일원으로 돌아다니며 저런 말을 한두 번 들어 봤을까? 신분을 숨겼을 때는 저보다 더한 모욕도 숱하게 들었다. 이루 적을 수 없을 만치.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지금처럼 상대를 제압한 상태라면 더더욱.
들어야 할 말이 많다면 더욱더.
“우리가 당신에게 궁금한 건 하나야. 돈이 어디서 나서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었지?”
모리아 앤더슨은 17살에 아이비리그 대학에 조기 입학했을 정도로 검증된 수재였지만, 대학에서 맛본 헤로인의 강렬한 맛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인생을 탕진하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작년까지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청해마도를 대표로 하여 미국에 상륙, 마약중독 치료의 신기원을 연 이후 돌연 시민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현재는 ‘권리를 수호하는 순수한 시민들의 모임’의 중추적 인물로 활약 중이었다.
그런 그를 대대적으로 체포하는 건 아무리 모리아 앤더슨이 두 번의 불법 무기 소지와 다수의 불법 마약 소지의 범죄 이력과 아직 기소되지 않은 강도 폭행 혐의가 있다 해도 마음먹기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칠익회는 밀어붙였다.
지나칠 수 없는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전미총기협회가 네 뒤에 있다는 말이 있던데, 맞나?”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 NRA가 마약 퇴치 반대 운동에 나섰다는 정보는 모두를 긴장시켰다.
이들은 그토록 수많은 총기 참사에 따른 희생자들의 절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봉쇄한 막강한 단체였고 그런 자들이 반대 세력으로 나섰다가는 국가무공원 또한 피곤하고도 곤란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라 주장하는 이들도 마약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주장할 뻔뻔함까지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정도?
“크흐흐… 끄흐흐흐흐…….”
만약 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었다면 이 인생의 낙오자, 약물이 넘치는 시대의 희생자를 골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며 자금과 인력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았을 거다.
먼저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했을 테지. 대대적인 인터넷, TV, 신문 등에 광고를 실었을 테다 그러고 나서는 행사를 열고, 정치인들을 비롯해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하며 이렇게 외쳤으리라.
‘여러분의 권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죽이는 건 사람이지 저깟 무기와 약물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보다 본격적이고 전격적으로 나서지 않은 건 아마도 간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칠익회는 짐작 중이다.
어쩌면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총기 규제와 관련된 반발을 돌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이 기회에 새로운 조직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테고. 내부 사정이야 어쨌든 지금껏 파악된 바로는 그렇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리 칠익회라도 해도, 요새 칼 들고 총 들고 나서는 일보다 샴페인 잔을 들고 미국의 권력자들을 만나느라 바쁜 다니엘 김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해도, 거기까진 차마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러니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자면 역시나 이 마약에 절은 젊은이의 입을 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오늘의 공격은 그러한 이유로 이루어졌다 하겠다.
방금까지 이어진 강렬한 상황에 머리가 맛이 간 건지, 실실 쪼개며 침을 질질 흘리는 모리아 앤더슨의 상태로 보면 그 일이 영 쉽지 않아 보이지만.
결국 한숨을 한번 내쉰 남미 팀장은 내력을 끌어 올린다.
연화존자에게 사사한, 이제는 서서히 그 존재가 알려진 세계 최고의 신공이라 암암리에 인정받은 연화신공을.
“꺼… 꺼헉… 끄아아아악!”
그렇게 모리아 앤더슨은 불꽃이 된다.
남미 팀장의 왼손이 모리아 앤더슨을 움직이지 못하게 바닥으로 목을 눌러 제압하고, 그 오른손이 앤더슨의 등 한가운데에 아교로 붙인 것처럼 단단한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폭력적일 정도로 난폭하게 남미 팀장의 내력은 모리아 앤더슨의 전신을 헤집었고 그러자 앤더슨의 몸속에 있는 것들이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
불순물들, 통상적인 경우라면 있을 수도 없고 있기도 힘든 온갖 더러운 것들을 앤더슨은 온몸의 구멍으로 쏟아 낸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검은 액체의 형태로 흘러나온다. 그것들은 찌꺼기로, 통상의 삶을 살아가며 얻는 것 이상의 더러움을 연화신공의 정순한 내력이 태우고 남은 재와 불순물.
그 과정이 쉬울 리 없어 모리아 앤더슨은 몸이 타는 듯한 고통 속에 졸도 직전까지 갔지만, 어느 순간.
씻은 듯 사라진 고통 속에 실로 명징해진 정신이 그를 찾아온다.
“이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어느새 자유로워진 목을 가눈 모리아가 고개를 들자, 다소 지친 얼굴의 남미 팀장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오랜 시간 놓아 주지 않던 유혹이 그의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NRA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지?”
이제는 마약중독자가 아닌 모리아 앤더슨은 이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