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미친놈들’
연화존자는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몰리다 못해 정신이 나가 버린 중국산 빨갱이들에 대한 감상.
그럼에도 그는 솔직했다.
‘그럴 만도 하긴 한데…….’
억울하다거나, 너무하다거나 하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럴 줄 몰랐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고, 사람으로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내심으로라도 떠올리는 비겁한 일은 없었다.
이럴 수도 있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공, 그중에서도 총서기와 청혈백사 같은 이들이 궁지에 몰려 뒤가 없는 무모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세상이 무슨 상관이냐며 폭주하는 게 연화존자만의 특출 난 독창성인 것도 아니다. 이 비슷한 상상을 아주 옛날부터, 소련이 건재했을 때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해 오지 않았나?
영화에서, 소설에서, TV에서 무수히 많이 나왔던 시나리오. 무력 충돌의 궁극적인 끝에 다가올 핵전쟁의 공포, 모두의 멸망.
그런 결과가 얼핏 보일 만큼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몰릴 만큼 몰려 있다.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이대로 죽기에는. 절대권력을 한 발짝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모든 걸 얼싸안고 죽어야 된다면, 화가 나서 이런 일을 저지를 법도 하지.
그것이 괜찮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해라는 측면이 그렇다.
그렇듯 용납할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직접 나서서 달려가는 거 아니겠는가? 극성으로 경공을 발휘하여, 만사를 제쳐 두고.
연화존자의 출발지는 티베트 자치구였다.
중동을 개인 자격으로 몰래 순방하며 위구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뒤, 달라이 라마에 이어 티베트 자치구에 진입해 제갈패밀리를 치하한 뒤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제갈세가의 일원들은 거물급 범죄자의 탈을 벗고 공식적인 집단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전에 티베트의 해방, 연화존자의 지시에 충실했던 그들을 연화존자는 격려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첩보는 그 즈음에 도달했다.
중국이 핵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며칠 남지 않았다고.
덕분에 지금 중국 내로 진입 중인 무공의 고수가 몇인지 모른다. 연화존자와 칠익회를 제외하고도 말이다.
우선 제갈패밀리가 연화존자와 함께 출발했다. 시급을 요하는 일이었기에 위험함을 알고도 그리됐다.
제갈세가의 가장 강력한 고수들이 지원했다. 비록 목적지에 따라, 경공의 수준에 따라 중간에 갈라졌지만 출발만은 같았다.
상하이 쪽에서는 얼마 전, 판첸 라마 11세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혈마제와 천지극뢰가 선발대로 나섰다.
얼마 전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을 산산이 깨기 위한 고난의 행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대만의 정파 연합과 당가그룹의 고수들도 곧바로 따랐다는 사실.
핵미사일이 어디에 쏟아질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판국에 이것저것 가릴 틈이 없는 일인 것이다. 자기들이 생각해 봐도 궁지에 몰린 총서기가 어디로 미사일을 쏘고 싶을지야 뻔한 일이지.
정규 병력이 투입되지는 못했다.
미 태평양 함대는 긴급 출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중국의 핵 공격을 공식화하며 충돌할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자칫 자극했다가는 파멸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일.
최대한의 보안을 유지하며 중국의 핵기반 시설을 폭격하겠다는 미 해군이 온몸으로 달려가는 무림의 고수들보다 빠를 것 같지는 않다.
그리하여 최우선 목표란 핵미사일이 발사될 수 없게 만드는 것.
여기에는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았다.
인민해방군 내에서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장성들과 군인들이 연신 제보를 해 왔다. 단순히 정보를 넘기는 걸 넘어 저항하는 자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총서기 측에서도 방해를 예상하고 기만책을 펼치는바.
노예가 아닌 공민이 되기엔 시간이 촉박했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핵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고수가 예상 발사 장소로 이동 중이다. 가장 빠르고, 작으며, 은밀하고 확실하게 움직일 수 있는 무력 수단으로써.
다만 베이징으로 향하는 건 연화존자 한 명.
대만 정파 연합에서 도제와 권성이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가장 먼저 도착할 건 연화존자일 수밖에 없다.
그는 빛살이 되어 대륙을 가로질렀다. 정체도, 이동도 숨기지 않고 전력을 다해 움직이는 그는 인간의 신체 능력에 대한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만큼 빨랐다.
그렇게 천외천의 내력, 끝도 없이 샘솟는 무한에 가까운 내력으로 연화존자가 북경으로 향한다.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자를 없앤다는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당연히 이를 관측한 총서기 측은 막으려 시도한다.
“막아! 막으라고!”
총서기와 청혈백사는 먼저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인민해방군, 정확히는 더 이상 뒤가 없어 본격적으로 나선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무력으로 지휘관을 협박해 굴복시킨 부대들을 움직였다.
이미 앞서 있던 혈마제와 천지극뢰의 난동에 가까운 활약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들에게는 일반 군대가 쓸모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오직 시간을 끈다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병력을 사지로 몰았다.
“흥!”
여기에 대한 대응으로 연화존자는 코웃음으로 돌파한다.
군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말이다. 그는 군대의 화력 투사와 저지선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지나쳐 버렸다.
인민해방군은 그를 쫓을 수 없었다. 좌표를 딸 틈도 없이, 포격을 가하고 총을 쏠 틈도 없이 연화존자는 사라져 자취를 잃었으니.
결국 무림인을 막을 수 있는 건 무림인뿐.
“아, 결국 이렇게 나온다는 거군?”
연화존자는 북경 인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련의 사파 무림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니 동선을 읽고 인력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죽은 눈을 한 자들이었다.
검은색으로 복장을 통일한 이들은 모두 수준이 높았지만, 개중에서도 눈에 띄게 강한 네 명의 남녀가 들어온다.
아마도 살아남은 구주팔황 중 나머지라 예상한다.
상하이 사태 이후 중공이 자랑하던 구주팔황도 숫자가 많이 줄었다. 최초의 격돌에서 장 노인으로 분장했던 연화존자의 손에 죽은 둘을 제외하고도 당가그룹의 손에 죽은 게 하나, 정파 연합의 별동대와 양패구상 한 게 하나였으니, 한 명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몰려온 것이 아닐지.
그러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우리 쪽에도 쥐새끼가 있나 보군?”
구주팔황 중 네 명과 그들을 수행해 온 인원들은 대답하지 않지만, 연화존자는 확신한다. 현재 총서기 쪽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인 구주팔황 중 절대다수를 이쪽에 투입했다는 건 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
중간중간 칠익회와 위치를 공유했던 그는 어디에서 정보가 샜을지 머리로 셈한다. 핵미사일 버튼 누르는 걸 막고 할 일이 더 늘었군.
그리고 격돌은 전조 없이 일어난다. 서로가 딴생각을 하며 몸이 움직일 때.
구주팔황 중 네 사람이 선두에서 연화존자를 향해 쇄도하고, 적 중 나머지 인원은 주변을 포위하며 호심탐탐 기회를 노린다. 각자의 내공, 자전마공과 시혈마공을 끌어 올리며.
하나만 맨손이었고 나머지 셋은 검과 도와 창을 각각 들었다. 대체 얼마나 사람을 잡아먹은 것인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상궤를 벗어난 막대한 내력이 각자에게서 요동치는 바.
연화존자 역시 이들을 경시하지 않는다.
“흐읍.”
단지 그 방식이 평소와는 다르다.
연화존자의 몸에 어린 오색 빛깔의 내력은 은은하게 그의 주변을 감쌌지만 결코 과하거나, 맹렬하지 않고 잠잠했다.
그것은 과함과 모자람 하나 없이 꼭 필요한 만큼의 내공.
연화존자는 단숨에 자신을 압살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 고수들을 기예로써 상대하기로 했고, 이는 저들의 약점을 한눈에 간파한 것이기도 했다.
저들의 내력은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이를 다루는 그들의 솜씨란 형편없다는 것을.
연화존자는 자신을 짓이기려 드는 보라색 강기의 도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이에 상대는 옳다구나, 하고 도의 날을 비틀어 연화존자의 어깨를 자르려 들었지만, 그의 손목을 뒤흔드는 기묘한 균형감에 순간 손잡이를 놓칠 뻔하며 가슴이 철컹한다.
그렇게 주춤한 그의 발등을 연화존자는 밟았다.
“아악!”
터지는 비명을 배경 삼아 연화존자의 몸이 경쾌하게 회전한다. 상대의 발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며 발등이 터져 나가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걸 바랐으니까.
그 힘과 기분을 가득 실어 반대쪽 발을 뻗는다. 동료가 당했음에도 오히려 기회 삼아 치고 들어오던 성급한 공격자의 턱이 아래에서 솟아오른 연화존자의 발끝에 걸려 부숴진다.
하얀 이가 붉은 피에 범벅이 되어 쏟아지니, 순식간에 둘이 전투 불능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컥!”
“커헉!”
연화존자의 손속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발등을 밟은 자의 가슴팍에 연화존자의 손이 꽂혔다가 뽑히고, 턱이 부숴진 자 역시 남은 두 명이 공격할 수 없는 각도로 스치며 팔꿈치로 후려쳐 골통을 부순다.
그리하여 잠깐의 소강이 찾아오려는 찰나.
연화존자의 손길이 무지갯빛 강기로 날카롭게 뒤덮인다.
“크으으아악!”
“피해!”
“트, 틀렸… 아악!”
방금 전과 달리 더는 내력을 아끼지 않는 그는 파괴의 화신이 된다. 순간 보였던 예리한 움직임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주변을 뒤집는 거대한 강기의 파도로 휘몰아쳐 모두를 도살하려 든다.
흡사 끝없이 떨어지는 폭탄 같다. 타오르는 덩어리처럼 쏟아지는 강기 다발에 포위망을 이루고 있던 국가안전부 무림정찰국 소속 요원들이 분분히 피하거나 힘을 합쳐 막으려 들지만, 그야말로 어불성설.
개중 비명이라도 지르고 죽으면 실력이 뛰어난 편일 정도였다. 구주팔황 사 인과 연화존자의 대결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돌연 쏟아지는 강기의 소나기에 대다수는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노옴!”
한 발짝 늦게 남은 두 명의 사파 고수가 덤벼들지만, 이미 때는 늦어 함께 온 부하의 상당수가 부상으로 쓰러진 상황.
그렇다고 넷이서도 당해 내지 못한 절대 고수를 둘이서 어찌 당해 낼 수 있을 거란 말인가?
“맨날 내공으로 밀어붙이니까 고작 이 정도에 전부 당하는 거야, 알아?”
연화존자는 그런 그들을 비웃길 주저 않는다.
“내공이 무공의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조금만 더 고수를 만나면 손도 발도 못 쓰는 거라고, 알겠어?”
이렇게 말한 연화존자의 강기가 남은 두 명의 강기를 깨부순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오색 빛깔의 불타는 강기가 사파 고수들의 것을 박살 내니, 상대들은 꽥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각혈하며 무릎을 꿇는바.
“뭐, 이제와 아무 상관없겠지만.”
연화존자의 손이 두 사람의 목을 동시에 훑으니, 뜨거운 피가 바닥에 뿌려진다.
자신을 막으려던 중공의 가장 강력한 무림인 전력을 격살한 연화존자는 무심히 한번 내려다보고 다시 한번 경공을 펼친다.
이제 정말 북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어디에서 핵탄두가 결합 중인지 미국을 비롯한 주변에서도 파악했을 일.
중국이 가지고 있는 핵탄두가 2020년 기준으로 이백여 개였고 그걸 그대로 쓸 수 없어 미사일에 결합해야 하니 조금만 더 서두른다면, 운이 좋다면 발사를 할 곳에서부터 막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역할은 중요하다. 어쨌든 상대가 핵미사일이라는 카드를 뽑아 든 이상 끝장을 보고, 숨통을 끊어 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연화존자는 차라리 자신에게 전력이 집중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다른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적들의 수준과 힘이라는 게 줄어들 테니.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