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남궁현은 이마를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돌조각을 똑똑히 바라보며 양손으로 쥔 검자루에 힘을 줬고, 동시에 내력을 일으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한다.
그것은 돌연한 폭발이었다.
준비된 함정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남궁현이 남궁세가의 미래라 불리는 기재 중의 기재, 최근 연화존자의 가르침으로 일취월장한 실력에 더 큰 기대와 견제를 받는 처지이긴 했지만 이 함정은 그를 노린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입수된 미국이 제공한 정보에 기반하여, 중국의 핵탄두 탑재 가능 시설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정신없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아마 누가 오더라도 여기를 통과시킬 수 없다는 다소 절박한 마음에 설치되었을 게 뻔한 과도한 화력의 집중이라 봄이 옳으리라.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의 발로일지도 모르지.
무릇 핵미사일이란 날아가도, 날아가지 않아도 곤란한 물건 아니던가?
‘왼쪽에 둘, 머리로 하나.’
남궁현은 날아오는 폭탄의 파편을 똑똑히 인식했다. 핵미사일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며 옅은 무거움과 가벼운 흥분을 동시에 떠올릴 정도로 여유롭게.
연화존자의 손길이 닿은 그의 무공이란 이제 그 정도 경지가 되었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느끼고,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그를 덮치는 열기와 팽창하는 공기의 압력 같은 건 몸에 두른 호신강기로 버텨 낼 수준이었지만, 그의 왼쪽 몸통 쪽을 향하는 돌조각 혹은 쇳덩이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했고, 머리를 향해 쏘아지듯 날아오는 것의 위력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남궁현은 두렵지 않다.
단전에 웅크리고 있던 내력을 사지백해로 퍼트린다. 이전이라면 다다를 수 없었을 빠른 속도, 마음먹음과 동시에 이루어진 내력의 발산은 남궁현의 손발을 원활하고도 자유롭게 했다.
비단 속도만 빠른 것도 아니었다. 젊은 나이와 맞지 않게 웅혼하다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남궁현이 일으키는 내력의 위력이란 강력한 검기로 승화되기 부족함이 없는바.
그 모든 것은 찰나에 어우러진다. 남궁현을 위협하던 폭발의 부산물을 거의 동시에 쳐 내고도 여력이 남아 주변의 다른 동료들을 보호하는, 자리한 몇몇을 제외하곤 제대로 눈에 담지도 못한 기민한 솜씨의 검격으로.
그리하여 남궁현의 일행 중 사망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침묵 후에 찾아온 건 나직한 감탄.
“역시…….”
“하, 다들 괜찮나?”
“훌륭한 솜씨요, 소가주.”
제왕검형의 부활을 꿈꾸는 이라면 현재의 상황조차 잊고 탄성을 내뱉을 만큼 남궁현의 검은 아름답다.
남궁세가, 나아가 대만 정파 연합의 중추가 될 남궁가의 후계자인 만큼 그를 쫓아온 무인들의 수준은 얕지 않았고 그렇기에 알아보는 것이다.
후계자의 재능과 재질은 범상치 않으며, 그런 이에게 연화존자를 붙여 준 검제의 선택은 옳았다는걸.
많은 것을 소모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받아 낸 솜씨는 과연 별호가 무색하게 무공보다 사업가의 기질을 인정받을 만한 솜씨.
“…가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궁현의 마음이란 그들처럼 가벼울 수 없다.
그는 젊지만 순진하지 않다. 국공내전의 패배로 치욕적인 도주를 감행한 뒤, 남궁세가는 물론이요 정파 연합에 속한 가문들은 더 이상 단순한 무공 문파일 수 없다.
‘무공만 익히는 게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무림 문파로 행세할 때조차도 강호의 온갖 암계와 귀계들을 상대해야 했던 처지인데, 한 국가와 같은 운명을 걷는 지금은 어떠할 것이란 말인가?
그것도 본토에서 쫓겨나 늘 위협받는 처지라면 무공에만 매진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검제가 무공에 대한 재능보다 상재에 재능이 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사업가의 능력이 무공만큼이나 중요한 시대라는 반증일 터.
그렇기에 남궁현은 조부의 결정을 일견 이해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난 뒤 서서히 대한민국과 연화존자와의 거리를 둬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연화존자와의 관계가 어찌 될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과 함께 오는 이해였다.
‘조부님과 연합의 다른 어르신들은 괜찮을 거라고, 수가 있다고 하셨지만…….’
대만의 정파 연합은 연화존자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건 첫째, 진정한 무림 정파는 하늘 아래 오직 대만의 정파 연합뿐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무공과 정통성으로 보자면 연화존자에게 꿀릴 것 없다는 이 생각은 정파 연합의 고위직들로 하여금 지금과 같이 끌려다니는 듯한 협력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연합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연화존자와의 협력을 추진했던 검제는 이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않고 침묵했다.
대세를 읽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좀 더 정치적인 이유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티베트와 위구르 자치구에서 있었던 봉기의 여파로 대만의 정치인들은 하나의 중국을 깨는 듯한 이 행보에 깊은 우려와 불쾌감을 동시에 표출했다.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정파 연합에만은 똑똑히 전달되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거냐는 물음은 다른 의미로 해석함이 불가능했다.
하여 남궁현은 이 모든 것이 불길했다.
‘그는 연화존자다. 어떤 무림인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검제의 주선으로 연화존자에게 무공을 배우며 남궁현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 또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비록 이 절대고수가 너무나도 바빠 긴 시간을 할애받지 못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연화존자가 마음먹은 일은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었고, 그와 맞선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걸고도 다소 부족함이 있는 무모한 일이라는 사실을.
당장 조각나고 있는 중국 공산당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대체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정신이 없을 만큼 사방팔방에서 갉아 대고 있는 이 부숴진 형국이란.
‘그러나 말릴 수가 없구나.’
침입자들을 격퇴하기보다는 시간을 끌 의도가 역력한 여러 부비 트랩을 해체하고 피하는 와중에도 남궁현의 머릿속에선 이와 같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연화존자와의 충돌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이 젊은 기재의 가슴에서 떠나질 않는 것.
그는 알고 있다. 기실 연화존자와 거리를 두고 종국에는 그가 차지한 위상이란 것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계획이란, 자격지심과 다르지 않다는걸.
강호의 이름난 무공을 가지고도 공산당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그 대단한 내공심법을 가지고도 사회를 변혁시켜 주도하지 못했으며, 그 엄청난 부유함을 가지고도 연화존자가 해낸 일의 발끝마저도 이루지 못했다는 분노 어린 고통이 정파 연합으로 하여금 저와 같은 결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걸 남궁현은 알고 있다.
그 또한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연화존자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대남궁세가의 후계자인 남궁현은 그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대체 자신들의 뭐가 그리 부족해서?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무엇으로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연화존자와의 충돌이 파멸이라는 게 중국 공산당의 상황으로, 또 마약 퇴치를 빌미로 엄청난 보험료를 뜯기고 있는 미국의 상황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되었건만 정파 연합의 고수들은 자신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다를 거라고. 아니라고.
남궁현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아직 후기지수에 불과한 그는 막을 도리가 없어 마음이 어지럽다.
하나 검로는 곧고, 힘의 배분은 일정하여 몸에 생채기도 나지 아니한 바.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위기에 처한 현 총서기가 핵미사일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꺼냄에, 상하이 사태의 동맹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
물론 연화존자가 직접 베이징으로 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는 희망이 남궁현에게는 있지만서도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저 위험한 물건이 어디로 쏘아질 지 모르는데.
그리하여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는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방어선을 돌파한다. 나중의 일을 고민할 게 아니라 현재의 일에 충실하며.
언제고 자신의 검이 정파 연합의 파멸을 막기 위해 휘둘러져야 함을 자각하며.
* * *
반면 당가그룹의 출수는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이대로 개죽음을 당해야겠습니까?”
다만 방식이 달랐을 뿐.
“만약 핵미사일이 발사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당신들이 어떤 꼴을 당하겠습니까?”
독공의 고수들은 공기 중에, 먹는 물에 독을 타는 게 아니라 그 입에서도 독을 뿜었다.
의심과 분열이라는 독을.
“가족들은 또 어떻구요. 무모한 일입니다.”
“하, 하지만 당의 명령을…….”
땀을 뻘뻘 흘리는 비대한 몸집의 중년남자는 차가운 인상의 귀공자, 당순에게 쩔쩔매며 애써 대답하지만 당가그룹의 비밀 부대를 이끄는 독군의 막내아들은 틈을 주지 않는다.
“총서기는 끝장났습니다.”
쐐기를 박는 듯한 말에 중년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야 만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아집 때문에 말입니다. 핵이라니? 흥. 미친 거 아니겠습니까?”
외면했던 진실은 그토록 싸늘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북한입니까? 인민이 다 굶어 죽어도 아득바득 핵미사일 하나 만들어 그거 하나 믿고 버티는 나라입니까? 대체 총서기의 핵미사일 발사 명령 어디에 당과 인민을 위함이 있습니까?”
중년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 또한 생각하고 있지만 차마 입으로 낼 수 없었던, 국가안전부의 사파 고수들이 들이대는 총구가 아니었다면 실행조차 안 했을 그 말을 이제 와서 하기는 꺼림직했다.
그나마 마음 한편이 편한 것은 당가그룹에서 왔다는 이들 당씨들이 국가안전부 요원들만 골라 싸그리 죽여 버렸다는 것 정도?
“저들은 끝났습니다. 우리 상하이의 인민들이 아니라 스스로 제 목을 조른 겁니다. 전 세계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동참해 주십시오.”
“도, 동참이라면……?”
“당을 위해 다른 이들을 설득해 달라는 겁니다.”
당순은 교묘한 말로 기술자를 꼬여 낸다.
“핵미사일이 발사된다면 우리 중국은 전 세계의 적이 될 거고 그건 파멸로 수렴하는 지름길입니다. 저 예전, 히틀러의 나치가 온 유럽과 세상을 상대하겠다며 무모한 전쟁을 벌였다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독일 국민들이 어떤 지옥을 지나 왔는지 생각하십시오. 그 일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 시설로 파견, 핵미사일 발사를 진두지휘하던 국가안전부 요원을 제거한 당순은 그렇게 설득을 해냈다.
무공보다 무서운 건 돈의 힘이었으니, 당가그룹은 그 급한 와중에도 이와 같은 약속을 했다.
전향하면 20억, 다른 시설의 동료 등을 설득하면 30억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던 것이니, 천하제일인의 경공조차 이보다 빠를 수는 없는 바.
당가그룹은 핵미사일 발사 저지에 나선 그 어떤 팀보다도 가장 많은 저지를 해냈다. 가장 많은 돈을 썼지만, 결국 돈을 써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이것이 가장 싸다는 지론 아래에서.
그 말은 옳았다.
무수한 희생이 있었다.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대략 200여 기로 추정되었고 개중 하나만 놓치더라도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교전은 치열하고 처절했다.
정파 연합, 당가그룹은 물론이요 제갈패밀리와 밀종의 고수들마저 숱하게 피를 뿌려야 했다. 폭탄과 총알을 뚫고 무리를 하니, 무림의 고수라도 버틸 수 없는 일.
그럼에도 행방을 알 수 없는 핵탄두가 대략 여섯.
연화존자는 마지막 마무리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고 바로 그때쯤, 베이징에서 만나야 할 이를 만나게 되었다.
“네놈이 연화존자겠군.”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피가 흐를 것 같은, 새하얀 노인이 자신을 기다리는 걸 보며 연화존자는 식상한 질문 따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세를 잡고 노려보며 준비한다. 길고 긴 내전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